오늘 퇴근무렵 일찌감치 회사 근처 콩나물국밥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사무실의 내 자리에 앉았다. 회사 일이 밀려 야근을 해야 할 것 같
다. 야근... 지난 27년반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야근은 너무도 친숙했다.
1985년 6월말 ROTC 전역후 첫 직장이었던 미원(지금의 대상그룹)에
입사해 회장비서실에서 선배들과 함께 평일이면 늘상 야근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나는 새벽에는 영어, 퇴근
후에는 일본어 강좌를 듣느라 지친 몸으로 어학원으로 향해 밤 11시까
지 마치고 나면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렇지만 배우고 싶
었던 영어와 일본어를 배울 수 있어 행복했다.
토요일도 늦게까지 근무를 하고, 일주일 중 일요일만 온전한 휴일이었다.
회장비서실에서 2년 6개월을 근무하고, 본사 기획실에 복귀해서는 예산
과 결산업무를 배워 매월 실행예산 편성, 월차결산을 하면서 중역회의,
회장비서실에 보고자료를 만들고, 감사업무까지 하느라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이후에 지금의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직을 해서도 야근은 줄
지 않았다. 내가 가는 곳은 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1992년 1월 1일부로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이 제정되어 시행되면서 기존의
준칙기금을 해산하고 법인화된 기금으로 전환하면서 공채 설립요원으로
들어와 각종 규정을 만들고, 생소한 사내근로복지기금 법인결산을 하느라
1년 중 휴일만 빼고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 했다. 전직한지 1년만에
직원 4인이던 사내근로복지기금이 공제회 부대사업인 식당, 휴게실, 자판
기, 구내매장을 인수하면서 인원을 105명 인수하고 부대업장을 관리하게
되어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새로운 부대사업 운영규정을 만들고, 부대사업 인원 발령, 비영리와 영리
부분 결산작업 진행하는 중에 부대사업 부문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사내
근로복지기금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된 사례를 맞이했다. 우여
곡절 끝에 2000년 3월에 부대사업을 다시 공제회로 분리시켰다. 1998년말
동호인회와 콘도업무 인수, 1999년말 기금출연과 함께 10가지 목적사업 인
수, 입원진료비와 종업원대부사업 신설 등 목적사업을 대과없이 인수하여
정착시켰다.
매일 야근을 하였고, 시간이 부족할 때는 집에 일거리를 싸가지고 오곤 했다.
지금이야 시간외 근무를 하면 시간외 수당을 주지만 당시는 시간외수당도
없이 봉사를 했다. 오죽했으면 상사에게 노트북을 사달라고 하여 회사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은 집에서 가져와서 밤 늦도록 일을 했다. 당시 대학을
나와 공채로 입사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기에 자부심과 책임감이 나를 늘
깨어있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내가 구축한 사내근로복지기금분야 결과만을 보고 나를
부러워한다. 사내근로복지기금 관련 서적도 두권을 썼고 강의도 하고, 카페
운영과 블로그운영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각종 상담을 하는 나를
보고 퇴직 이후에도 노후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지
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 많은 세월 야근을 하며,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
다 해결방안을 찿기 위해 책을 뒤지며, 세무사, 공인회계사, 법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를 찿아 동분서주하며 고생했던 이면의 땀과 노력은 사람들은 별
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것 같다. 당시 경험하고 고민했던 많은 것들이 나에
게는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독보적인 지식과 경험, 컨텐츠로 쌓이게
되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열정과 도전, 자기
계발 노력으로 살아온 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내 전부를 바쳐 몰입할 수 있
었던 사내로복지기금이라는 업무가 나에게 주어졌고 내가 그 기회를 잡고 살
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일을 하는 동안 행복했고
나에게 많은 보람을 안겨주었다. 지난 20여년간 나의 혼신을 다받친 '사내근
로복지기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간혹 생각치도 않은 방면에
서 사내근로복지기금이 비난을 받거나 색안경을 낀 듯 쳐다볼 때면 내 몸 또한 아프고 망가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오랜만에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난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
오니 감회가 새롭다. 야근은 낮시간에 비해 집중력이 높고 업무능률이 높아서 좋다. 야근은 고독과의 싸움이자 자신과의 싸움이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김승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