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기 스스로 절망하고 포기하기 때문에 패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끝까지 절망하지도 포기하지 않았어!"

지난 11일 마포아트센터에서 마을친구들과 연말 송년모임으로 보았던 '노인과 바다' 연극에서 바다로 나가 2박 3일의 사투를 벌여 대어를 낚아서 가지고 오다 상어떼에게 모두 뜯기고 뼈만 앙상히 남은 고기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노인이 내뱉은 말이다.

2011년은 참 많은 일들이 내 신변에 일어났었다. 1월 중순에 결혼 후 22년 8개월간 모시고 살다시피 했던 장모님과의 결별, 이후 두달간 쌍둥이자식들을 데리고 싱글대디로 홀로서기 생활, 3월 중순 18년간 살았던 일산에서 목2동으로 이사, 4월 중순에 재혼, 4월말에는 지난 5년간의 힘들었던 채무가 정리되고 7월에 면책판정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서울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3월부터는 일과 학업을 병행해 나갔고 5월부터 9월까지는 고용노동부 제3기 근로복지TF에 참석하여 업무 활동영역을 넓혀나갔으며, 4월부터는 지난 3년간 게임중독에 빠져지냈던 쌍둥이자식들과 본격적으로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한 끝에 마음을 돌리게 하여 11월 17일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힘들 때는 여유를 가지고 한발 물러나 쉬어가면서 일을 하라는 조언과 격려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나이에 무슨 박사과정이냐고, 이제는 그만 편히 살지 그리 아둥버둥 사느냐고, 생활하기도 힘들텐데 무슨 돈으로 자식들을 중국까지 유학을 보내느냐, 그것도 둘씩이나......

그래도 지금껏 중도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처음 계획한 바대로 살아올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에는 힘들었던 시간만큼 이상의 보람이 늘 느껴졌다. 힘들 때마다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내 스스로를 위안삼으며 나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10년 뒤 쌍둥이들이 애비의 결정을 감사하게 생각할 날이 있으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요즘 귀가하면 음식을 만들고, 집안청소를 하기에 바쁩니다. 결혼후 22년 9개월을 함께 모시고 살았던 장모님이 1월 13일 처남집 근처로 이사를 간 이후, 본격적인 싱글대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살림살이가 쉽지 않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막상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고 전기압력밥솥에 밥을 하고 청소를 하느라 하루의 상당부분 시간을 들이고 있습니다.

전업주부도 전문직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젠가 모 여성정책연구원이 40대 전업주부의 연봉을 계산한 기사를 보니 40대주부가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세부내역을 보면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12시간 16분이고 월급은 379만 3천원이었습니다. 당시 이 금액을 두고 논란이 많았는데 이 자료가 시사하는 바는 가사와 육아가 결코 쉬운 일을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 하루 이틀은 요리하기, 즉 반찬만들기와 국 끓이기, 설겆이, 집안 청소, 세탁하기 등이 생소한 탓에 긴장도 되어 지루하지 않게 넘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에 쫓기고, 요리하는 것이 지겹고, 소홀해지기 시작합니다. 3일전과 똑같은 반찬이 계속 상위에 오르고, 인스턴트 식품이 점점 늘어나고 자식들은 싫증과 함께 음식투정을 하게되고...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결혼을 해도 출산을 꺼리는 이유도 이런 살림과 육아부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는 요리와 가사, 육아도 전문성의 시대가 되었음을 실감합니다. 예전의 신부수업이 결혼후 가사와 육아에 대한 준비기간이었음을 느끼게 되며, 앞으로는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의 심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겸직업무로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맡다보니 처음에는 새로운 업무를 맡아 긴장도 되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정감으로 일처리를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이 손이 잡히지 않아 답답해지고 서서히 열정도 식고 현실에 안주하려 듭니다. 전문성의 벽에 부딪치다보니 새로이 일을 벌리기보다 당장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급급하고 현실과 타협하려 듭니다. "왜 하필이면 내게 이런 골치아픈 업무를 주었나?", "왜 나 혼자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대충대충 하자구~" 마음이 듭니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에게 "전임자로부터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인계인수시 업무인계인수서나 업무메뉴얼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부분 받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전임자를 원망하고 불평하던 사람들도 정작 본인이 후임자에게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넘길 때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인계인수서를 작성하지 않고 대충 설명 몇마디로 후다닥 넘겨버립니다. 그토록 원망했던 전임자와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왕 하는 일이라면 전문가 수준이 되겠다는 욕심을 부려보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면 외부 전문교육도 받아보시고, 업무 메뉴얼도 작성해보시고, 사내근로복지기금 회계프로그램도 도입하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사내근로복지기금 컨설팅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잦은 사내근로복지기금 담당자 교체도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의 전문성을 키우는데 역행하고 있습니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겨우 알만하게 되었는데 금새 다른 업무로 바뀌니 전문성을 쌓을 시간이 없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저녁, 근로복지공단 연구용역자료 분석작업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미래에셋증권 오광석지점장이 와이프와 술 한잔을 하고 있는데 서울에는 지금 눈이 온다고 문자메시지가 왔다. 얼른 바깥을 쳐다보니 일산은 아직 눈이 오지 않고 곧 눈이 오려는지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1시간 후, 드디어 일산에도 눈이 내린다. 첫눈은 대부분 쌓이지 않고 내리면서 녹아버리기에 더욱 아쉬움을 주는지 모른다. '첫'이나 '새'라는 단어는 항상 사람을 설레이게 한다. 새해 첫날, 첫사랑, 새구두, 신혼여행 첫날밤, 첫 만남, 입사 첫날, 첫키스....

첫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누굴 떠올릴까? 첫사랑? 어릴적 놀던 친구? 지금의 배우자(혹은 교제중인 애인)? 아님 가족?

첫눈은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한다. 
일을 하면서도 지금 마음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거나 즐거웠던 추억을 생각한다. 때마침 호주에 이민을 간 마을친구 녀석에게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고국 소식과 마을 친구들 소식이 궁금하단다. 내 소식을 들었다며 재혼 소식을 묻는다. 대충 '나도 해야지~'하며 얼버무린다.

오늘 김장을 마쳤고, 연일 연구용역 작업에 심신이 지쳤는지 몸도 고단해지고 마음이 심난해진다. 아~~ 이런 날은 서재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뜨겁고 찐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앞에 놓고 뜨거운 커피잔에 손을 따뜻하게 감싸며 지나온 인생,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이야기하면 딱인데~~ 아직은 서재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으니... 부지런히 일하며 그 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야지!

오늘따라 쌍둥이들 두녀석 모두 12월초에 치르는 학기말 시험준비를 하느라 도서관에 가버려 평소 시끌벅적하던 일요일 저녁 집안이 더욱 적막하고 쓸쓸하다. 내가 컴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유일하게 고요함을 깨고 있다. 이걸 외로움이라 하는 거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13년전 오늘인 1997년 11월 10일은 우리 쌍둥이자식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했던 탓에 출퇴근은 항상 자가용으로 내가 모시고 출퇴근을 했다. 11월 10일날도 출산예정일이 2주가 남아있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며 언제 출산휴가를 내야 될지 날짜를 꼽고 있었다. 그때는 출산휴가가 지금처럼 길지가 않았기에 미리 휴가를 내놓으면 하릴없이 집에서 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날짜를 까먹기 때문이었다. 진짜 어미의 손길이 필요한 건 애들이 세상에 나온 이후이니까...

일산에서 출발하여 올림픽대로를 들어서 양화대교 밑을 지나는데 아내는 하혈을 한다고 조짐이 이상하다고 곧장 병원으로 가자고 하여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곧바로 여의도성모명원으로 직행하여 입원을 시켰다. 담당 의사가 당시 이름이 있는 김수평박사였는데 양수막이 터졌다며 쌍둥이인지라 조금만 늦었어도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뻔했다고 하셨다.

아내는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당시 아내 나이 39살, 큰애가 89년 2월생이니 늦둥이에 쌍둥이를 양수막이 터진 상태에서 자연분만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아침 8시 30분에 입원하여 애들을 낳은 시간은 저녁 6시를 넘어 어수룩할 때였으니 그동안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고, 내 속은 얼마나 탔는지.... 형인 재명이는 2.75킬로 호흡이 약하여 나오자마자 곧장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고, 동생인 재윤이는 3.25킬로로 건강했다. 낳을때부터 0.5킬로그램 차이가 난 몸무게는 이제는 3킬로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힘들게 쌍둥이들은 낳고 나서, 일주일만에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분유값과 기저귀값은 배로 뛰고..... 나와 아내는 이마트에 가서 번갈아가며 50개들이 기저귀를 사나르던(당시는 환율이 급등하여 한사람 앞에 기저귀는 하나씩 밖에 팔지를 않았다) 일이 생각난다.


# 둘

4년전 2006년 11월 10일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날이다. 공교롭게도 하늘나라로 간 날도 쌍둥이들이 태어난 날이자, 태어난 시간과 비슷한 저녁 7시 부근이었다.

2005년 5월초에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1년 6개월간 암투병에 힘들어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매일 링거 몇개씩을 몸에 꼽고 살았다. 아내는 평소 혈관이 잘 보이지를 않았는데 항암제를 맞고부터는 그나마 가느다란 혈관마저 살 속으로 숨어버려 초보인 간호사들은 몇번이나 찔렀다 뺐다는 반복하여 간호원들이 주사기를 새로 꼽는 시간을 제일 끔찍하게 생각했다. 식사량보다 더 많은 항암제에 진통제를 먹어가며 고생하는 것을 보니 회복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면 이제는 놓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빚 걱정없는, 항암제를 맞지 않아도 되는 하늘나라로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와 아내의 이생에서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나 보다. 1987년 8월 22일날에 만나, 8개월간의 뜨거운 연애 끝에 88년 4월 23일 결혼을 하여 세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딸이었음에도 친정집을 부양하며 힘든 삶을 살았다. 국립암센터 노정실 유방암센터장님도 "최혜숙씨는 이대로 하늘나라로 보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다"라고 아쉬워 할 정도로 참 예쁘고 똑똑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산 여인이었고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뛰어난, 나에게는 정말 과분하고 아까운 여인이었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큰 직분을 맡아 정신없이 바쁘겠지...

세월 참 빠르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엊저녁 내내 가위에 눌린듯 쫓기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아직도 술이 덜 깨는 것 같다. 어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막내 전화를 받고 인구조사 참가에 따른 봉사확인서를 출력하러 사무실에 들러 인쇄하여 집에 도착하니 밤 1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오늘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종일 강의가 있어 졸린 눈을 비비며 사내근로복지기금이야기를 써놓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새 엎치락 뒤치락 잠을 설쳐야 했다. 이것 저것 아무리 보아도 내 세울게 없는 내 처지~ 내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에 자리에 앉아있던 시간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너무도 일찍 찿아온 자리. 모든 어려움 다 이겨내고 천천히 그리고 당당히 시작하고 싶었는데...

요란한 휴대폰 알람에 잠에서 깨어 확인한 메일에 힘이 풀린다. 대충 쌍둥이들을 깨워 머리를 감도록 하고 그 시간에 어젯밤 쓴 블로그 사내근로복지기금이야기를 다시 검토한다. 오타는 없는지, 문맥에 모순을 없는지, 몇번을 읽어보고 이상이 없으면 카페에 올린다.

서둘러 아침을 챙겨먹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백마역 앞에 마침 백석역으로 가는 082번순환버스가 서있다. 이후 백석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 경복궁역까지 서서 간다. 잠을 설치고 계속 야근에 이틀간 연이어 과음을 해서일까 깜박 한눈을 팔다가 하마터면 경복궁역을 그냥 지나칠뻔 했다. 내가 오늘 왜 이러지?? 마치 혼이 나간 것만 같다.

9시부터 8시간을 꼬박 서서 진행하는 강의, 하나라도 내가 아는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오늘따라 전화도 많이 걸려오고, 문자메시지도 불이 난다. 어제 대전지방노동청에서 강의하면서 알게된 근로감독관님 한 분이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해 문의를 한다. 쉬는 시간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빼서 마신다. 오후 5시 45분, 강의를 마치고 곧장 여의도 사무실에 들러 이틀간 휴일에 작업꺼리를 챙긴다. 두번째 글을 읽으니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내 가슴이  아려온다. 좋은 사람. 돈이 왠수지...
 
쌍둥이들이 이번주 내내 학원을 오지 않았다는 학원 원장님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밤 9시, 일을 하다말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왜 이리 불행과 고난이 한꺼번에 나에게 몰려오는 걸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나 너무 너무 힘든데... 쓰러질 것만 같은데.... 눈을 감고 있으면 그냥 눈물이 난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큰애 면회를 다녀왔다. 8월 초에 부대배치를 받았으니 벌써 세번째(내가 두번, 동서가 한번) 면회이다. 말이 최전방사단이지 교통이 좋아져 차로 가면 1시간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위병소에 도착하여 10분정도 기다렸을까 이등병인 큰애가 고참 상병의 인솔하에 밖으로 나온다. 언뜻 보니 한달전보다 많이 말랐다. 조그만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가방 속에는 건빵과 군에서 먹는 부식이 들어있다.
"왜 훈련하느라 배가 고팠을텐데 먹지 않고 가져왔느냐?'
"**형이 군에 있을 때 이모가 **형에게 건빵이 먹고 싶다고 가져오라고 했는데 안가지고 왔다고 서운해 하는 말이 생각나서요. 이모에게 드릴려고요"
"짜식, 그래도 유해발굴작업 하느라 800고지 산을 매일 오르내리며 힘들었을텐데..."
"저도 배고프면 먹었어요. 조금씩 아껴 놓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훈련할 때 먹는 건데 할머니 한번 드셔보라고 가져왔어요"
"뭔데???"

한눈에 보니 전투식량이다.
"야~ 그건 네 식사잖아. 먹지 그랬지?"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드시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 이렇게 잘 먹고 지내니 걱정 마시라고..."
큰애는 태어나서 줄곧 장모님이 키우셨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를 지극히 챙기며 할머니가 군에 가서 잘 먹고 지내는지 걱정하실까봐 잘 먹고 지낸다는 것을 보여드릴려고 일부러 아껴두었다 가지고 나온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훈련하느라 배고팠을텐데 할머니 생각하며 배고픔을 참았을 큰애를 생각하니 마음이 쨘하다.
"할머니 걱정마세요. 저 건강히 생활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아침마다 웃통벗고 구보도 하고 그리고 800고지 산도 이제는 한시간안에 올라갈 수 있을만큼 건강해요" 


헤어지면서 나와 장모님이 건네주는 돈을 한사코 거부한다.
"저도 월급 받아요. 지난달에도 월급 칠만 몇천원받아서 필요한 것 쓰고, 아프리카난민 구호기금으로 3만원 내고도 사만원이나 남았어요. 이 돈은 할머니께서 도로 쓰세요."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자식들은 군에 가서도 한달이면 몇십만원씩 집에서 용돈을 타다 쓴다는데 애비가 주는 용돈도 마다하고 매달 받는 쥐꼬리만한 이병 봉급으로 아프리카 난민 기부까지 하고 있으니...

어미 없이도 너무도 번듯하게 잘 자라준 우리 큰아들.... 너무 고맙다. 아빠도 힘내어 열심히 살께. 그리고 아빠도 내년이면 어느 정도 빚 정리가 되니 어서 돈 모아서 네가 제대하는 그날 우리 함께 살 보금자리 꼭 장만하자꾸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제(10월 14일) CFO아카데미 주관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1일차 교육을 마치고 아지트인 교육장 근처 호프집 굼뱅이로 향했다. 내가 진행하는 이틀과정 중 1일차 교육을 마치면 늘상 이런 호프타임을 가져왔다. 물론 비용은 내가 모두 쏜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30대 초반의 한 남자수강생이 나에게 불쑥 말한다.
"차장님은 이렇게 열심히 사시니 정년퇴직때 까지는 걱정없이 회사를 다니실 수 있겠네요. 좋으시겠어요"
"정년퇴직이요? 그렇게 되도록 해야죠..."

정년퇴직이라는 말에 감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정년퇴직? 그러고보니 회사 사규상 정해진 정년퇴직까지 계산해보니 앞으로 8년 8개월 하고도 15일이 남았다. 그런데 왜 정년퇴직이라는 말이 이리 낯설까? 나에게도 언젠가는 닥칠 사항인데 나는 지금 정년퇴직이라는 단어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평생직업의 시대인만큼 정년퇴직이 내 삶에서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나는 오래 전부터 정년퇴직 이후먹거리를 고민해 왔다.
 
내가 현재 다니는 직장이 내가 정년때까지 내 자리를 계속 자리를 보장해 줄 수 있을까? 지금 회사가 내 정년퇴직이 도래하는 그날까지 과연 존재할 수는 있을까? 솔직히 그렇다고 100% 장담하기 힘들다. 기업환경이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고, 또한 지금같이 지출이 수익금을 훨씬 상회하는 손익구조하에서는 당장 내년이 어찌 될지도 불투명하다. 회사도 어려운데, 내 업무처리능력까지 받쳐주지 않는다면 내 앞에 펼쳐질 상황은 너무도 뻔하지 않겠는가?

나를 보고 정말 열심히 열정적으로 산다고들 말한다. 회사 일에, 싱글대디로 쌍둥이자식을 챙기고, 쨤을 내어 글을 쓰고, 카페를 관리하며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을 교육시키고, 책도 집필하고, 부지런히 세미나 쫓아다니고... 쌍둥이자식들이 이제 중학교 1학년이고 집 장만도 하지 못한 체, 빚에 허덕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이 나는 분발하게 만든다. 이런 절박함을 앞에 놓고 태평하게 시간을 보낼 사람이 관연 몇이나 될 것인가?

남들이 6시간을 잔다면, 나는 4시간을 자며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해야 불리한 격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 수명은 갈수록 늘어가는데 늘어난 노후만큼 정년퇴직 이후에도 계속 안정적인 수입원을 만들어 놓아야 삶을 풍유롭게 보내지 않을까? 또한 '내일 당장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나는 어찌 될까?', '내 가족 중에 큰 경제적인 지출을 수반하는 어려움이 닥친다면 나는 어찌 대처해야 하나?' 등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면 잠시도 여유를 부릴 수 없다. 부족함은 노력으로 채워가는 수 밖에~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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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부터 3일간 쌍둥이들이 중간고사를 치른다. 어젯밤 1시에 쌍둥이들이 잠자리에 들면서 새벽 5시에 깨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내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5시에 일어나 알람을 누르고 나서 쌍둥이들을 깨워야 하는 것을 깜박 잊고 도로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6시 20분, 허걱~~~ 그제서야 부랴부랴 녀석들을 깨우니 늦게 깨웠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급기야 두녀석 모두 아침 식사까지 거부하고... 아침을 빨리 먹으라고 채근하는 나에게 막내 재윤이가 원망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따지듯이 말한다.
"아빠가 아침 5시에 깨워주지 못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부터 하셔야 하는 것 아녜요?"

너무도 당돌한 막내의 말에 어이가 없어 나도 지지않고 응수했다.
"그래 오늘 아빠가 너희를 깨워주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그러나 지금 이시간이후 너희도 아빠에게 어떠한 부탁도 하지 마라. 아빠는 너희가 이야기하는 것을 무조건 들어줘야 하는 종이 아니거든. 아빠도 힘들고 피곤하여 아침에 못일어나는 때가 있거든. 이번 한번 너희를 못깨웠다고 너희에게 이런 원망과 푸대접을 당하고 살 하등의 이유가 없거든!"
"그리고 지난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 3개월이나 되는 많은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너희가 그 많은 소중한 시간을 덧없이 보내놓고 오늘 아침 딱 1시간 20분만 가지고 아빠에게 이렇게 따지고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너희에게는 앞으로도 많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있다. 평소 시간관리를 잘 하려무나~"
"아빠도 아빠의 삶이 있고 꿈과 비전이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아빠는 너희들에게 무한 희생을 하고나서 노후에 너희들에게 짐이 되는 존재가 되기는 싫어."

가정, 아니 가족공동체는 서로에게 절대적인 것을 요구하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다. 각자가 가진 꿈과 희망을 서로 이루어가고 완성해가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속상하다고 자식은 부모에게, 부모는 자식에게 화풀이성 말로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앞으로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이번을 빼고도 21번이 남아있다. 평소 하루하루, 한시간 한시간을 알차게 보낸 사람은 큰 시험 앞에서도 늘 당당하고 여유를 가지고 임할 수 있단다. 지난 과거를 따지고 원망하지 말고 오늘, 지금에 충실하거라! 그리고 우리 가족은 엄마의 빈자리와 부족함을 남은 가족들끼리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양보하며 채우며 살자꾸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자꾸나~~ 우리 가족 화이팅!!! 재명재윤 화이팅!!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무엇 하나를 해도
죽도록 몰입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알기에
헤어짐 뒤에 받게 되는
상처와 
속앓이의 깊이를 알기에
유독 사랑만큼은 겁이 난다.


돈도 없고,
키도 크지 않은
자식도 셋이나 딸린
사람들이 말하는
괜찮은 남자 축에도 끼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싱글이지만

다른 해보다
추위가 더 일찍 다가온
올 시월에는

시월의 푸른 하늘만큼이나
티없이 맑고도 순수한
그러면서도 가슴 뜨거운
사랑을 해보고 싶다.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도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 줄려나?

생전에 우리집 통금시간은 
밤 11시였듯이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큰 눈을 부릅뜨고 서서
천국문을 닫아버리고
열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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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며칠전 지인들과 식사를 하러 강남을 갔다. 마침 일식집을 운영하는 젊은 여사장이 합석하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식이 화제가 되었다. 공교롭게 40대의 싱글녀들인 두 여인의 대화내용

"이제, 애를 낳으면 진짜 이쁘고 잘 키울 자신이 있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럼 낳으면 되잖아?"
"그런데 애를 혼자 만들수 없잖아? 남자가 있어야지"
"남자야 만들면 되잖아? 길거리에 쌔고 쌘게 남자들인데..."
"남자는 많은데, 정말 괜찮은 남자가 없단 소리지"
"괜찮은 남자?"
"얼굴 잘 생기고, 건강하고, 키고 크고, 돈도 많고, 성격 좋고, 학력은 남들에게 내밀 정도가 되어야 하고, 직장 괜찮고, 내 일에 잔소리하지 않고, 유머감각까지 갖춘 남자...."
"너 그냥 혼자 살아라~"
"그러니까 여지껏 혼자 살고 있지..."

요즘 주변을 보면 싱글로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도 많고, 이혼이나 사별 후에도 아직 재혼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결혼을 왜 않느냐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괜찮은 상대가 없단다. 어떤 사람이 괜찮은 상대냐고 물으면 대충 대여섯가지 조건들을 들이민다. 빠지지 않는 것은 돈, 키, 미모, 직장, 성격.... 이게 다 결혼 스팩인 셈이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아예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편하단다.

8년전, 싱글로 살다가 암으로 하늘나라로 간 여사원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여사원도 눈이 높아서 이 남자 저 남자 재다가 결혼 시기를 놓쳤다고 한다.
"암에 걸려 혼자 병실에 있어보니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후회되더라. 옆 병상의 환자는 남편이며 자식들이 매일 와서 걱정해주고 간호를 해주는데 나는 나이가 드신 부모님이 간호를 해주니 부모님께 폐만 끼쳐드리는 더할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르게 되었으니... 가족이 그립고 남편과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쉽고 허전해....내가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았나 싶고... "

젊어서야 혼자 벌어서 혼자서 쓰니 불편함이 없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의 필요성이 느껴지고 그립게 된다. 그러나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괜찮은 상대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갈 수 없는 것이 결혼 아닌가?

가을이다. 싱글남녀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옆구리가 시리고 누군가가 그리운 계절...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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