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사고와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 평소 건강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는 회사 게시판에 부고장이 뜨거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한동안 당혹스럽고 멍해진다. 죽음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들, 특히 자식들에게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도 실은 이런 조바심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 뿐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기정사실이다. 그 옛날 천하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중국 진시황도, IT기술로 천하를 쥐락펴락하던 스티븐 잡스도, 내노라하는 재벌총수들도 결국은 죽음과의 대겨(?)에서 이기지 못했다.
3년 전에는 아버지가 전립선암 3기판정을 받으셨다. 아버지를 설득하여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린 후 사촌동생이 근무하는 서울성모병원을 연결하여 수술을 받으셨다. 이후 광주 전남대 화순병원에서 3개월동안 성실하게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완치되었다는 검사결과를 통보 받았다. 지금은 수술하시기 이전의 건강상태를 회복하셔서 고향 진도에서 건강하게 생활하신다.
지난주에는 아내가 자식 셋을 태우고서 회사 근처에서 나와 만나 일을 보러 가기로 하여 운전을 하던 중에 공항대로 2차선에서 타이밍벨트가 끊어지는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4차선 중 2차선상에서 스르르 차가 운행을 멈추어 버리는 황당한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예견이나 했겠는가? 아내의 기지로 아슬아슬하게 큰 사고는 면했지만 그 당시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
요즘 지난2006년 11월 유방암투병 끝에 그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막내 쌍둥이 자식을 두고 먼저간 전 아내의 일이 생각난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암환자라는 판명을 받고, 그것도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았던 의사의 판정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었고 믿어지지 않았다.
죽음은 암울하고 두려운 단어이다. 비껴가게 할 수만 있다면 억만금의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리 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정말 공평하게도 인간에게 죽음을 연장시키는 그 어떤 거래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이가 5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주변에서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누가 아프다는 소식, 특히 누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만약 내 앞에 죽음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친지 중 한 분이 12년째 암투병 중인데 이제 영원한 이별을 할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이미 7여년 전에 먼저간 아내의 암투병을 지켜본 나로서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암환자들은 처음 암이라는 판정을 받으면 분노 내지는 분노와 거부(내게 왜 암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고난을?), 공포(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 체념(내가 거부한다고 내 몸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수용(낫게 만드는 방법은? 암 전이를 지연시키는 방법은? 좋은 약은?) 단계를 밟아간다고 한다.
말기가 되면 고통이 극에 달한다.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면서 신체 기능들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환자는 고통을 행동으로 표출하면서 곁에서 간병하는 가족들도 힘들어진다. 말기가 되면 거동이 불편해지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까지 온다. 항암제를 투여하는 환자들은 뼈가 무디어져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고 흉이 아물지 않는다. 환자의 안전을 우려해서 기저귀를 채우게 되는데 환자가 순순히 응해주면 되는데 이를 거부하면(아마도 기저귀를 차게 되면 죽음에 가까이 가 있다는 공포감과 함께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다) 힘들어진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환자를 일으켜 세우고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까지 이동하는 일은 큰 고역이고 자칫 잘못하면 허리를 다치게 된다. 간병하다가 가족들이 허리를 다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이다.
환자는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고통이 심해지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고 그대로 표출이 되는데 그럴수록 진정제와 몰핀 투여량과 횟수는 늘어간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면 기억력이 현저히 감퇴되고(암세포가 기억력을 컨트롤하는 뇌를 압박) 치매현상까지 나타난다. 가족들에게도 못할말과 화를 잘 내는데(환자는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그런 변화 모습에 '힘들게 간병하는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을 하며 상처를 받는데 이때는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정떼기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자연스레 받아주면 된다.
곁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 '사람은 죽을 때 그 사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형성이 인격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신기하다. 미래의 죽음 앞에 선 나는 어떤 모습일까? 평정심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삶을 열정과 도전의 자세로 살겠다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새삼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카페지기 김승훈
'김승훈의열정과도전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하루가 새롭다. (0) | 2012.09.09 |
---|---|
런던올림픽에서 손연재 선수의 경기를 보고나서....(20120812) (0) | 2012.08.12 |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낄 때 (0) | 2012.07.14 |
나비효과 (0) | 2012.06.26 |
산사태처럼 몰려와 유럽음악계를 휩쓴 한국 음악인의 비결 (0) | 2012.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