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의 사내근로복지기금에서 올해 임금협상 및 단체협약을 앞두고 새로운 목적사업이 없는지 아이디어를 요청하여 그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민들이 있습니다.

대놓고 말은 못하면서도 근로자수가 많으니 돈이 많이 들어가는 복지사업은 곤란하다, 그리고 일부라도 돈이 들어간만큼 생색이 났으면 좋겠다 뭐 이런 뉘앙스를 풍깁니다. 돈은 들이지 않으면서 효과는 큰 기업복지제도를 만들겠다는 흡사 놀부마음과도 유사한 넌센스같은 요구이지만 이에 적합한 아이템을 만들어 추천해 주는 것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겠구나 싶어 몇가지 복지항목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장애자녀지원제'입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립니다. 특히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자녀를 둔 부모의 고통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함은 물론, 항상 부모의 손길이 가야 하고 경제적인 비용까지 부담을 해야 하니, 그것도 어쩌면 자신의 남은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짐과도 같습니다.

저도 5년 4개월전 아내가 유방암 말기판정을 받고 중증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치료를 받으며 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아내는 3년 8개월 전에 하늘나라로 갔지만 그 이후 제가 느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근로자들이 이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사내근로복지기금이 함게 나눌 수는 없을까?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 수년전부터 고민을 해왔고 몇몇 기업의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제안을 하여 실제로 목적사업에 추가를 하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내근로복지기금도 올해 임단협에서 '장애인자녀지원'을 새로운 목적사업으로 채택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동 제도를 더 확산시키기 위해 간단한 장애인자녀지원사업 개요와 절차, 방법 등을 간단히 정리하여 제안을 해 봅니다.

1. 목적 : 회사 근로자 자녀 중 선천적 및 후천적인 사고 등으로 장애인이나 중증환자가 되어 장기치료 또는 특수교육을 요하는 경우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필요한 특수교육비, 의료비 등을 지원함

2. 지원대상자 : 회사에 재직중인 근로자 자녀 중 다음 요건을 갖춘 자녀가 있어 장기치료 및 특수교육이 필요한 경우
-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장애인복지카드를 발급받은 경우
- 국민건강보험공단 중증질환자 진단을 받은 경우
- 지적능력의 발달지체자로 전문의가 학업 또는 취업이 곤란하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다고 진단한 경우

3. 지원기준 : 특수교육비와 의료비
- 소득세법에서 인정하는 특수교육비 중 장애자녀 관련 각종 학교, 학원, 기관 및 단체의 위탁교육비, 각종 특별과외 교육비, 재활비용 등
- 장애자, 중증환자, 지적능력의 발달지체 자녀의 치료관련 의료비, 치료관련 의료장비 구입비

4. 지원금액 : 해당 자녀 1인당 연간 OOO만원 한도 내에서 실비지원

5. 제출서류 :
- 장애인복지카드 사본, 중증환자등록증 사본, 의사진단서(지적능력의 발달지체자)
- 특수교육비지급 영수증, 치료비 영수증, 치료관련 의료방비(보장구) 구입 영수증

기쁨은 함께 나눔으로 배가 되고, 슬픔과 고통은 함께 나눔으로 절반이 됩니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한다는 것이 너무도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월요일, 모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와 조합측 관계자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다. 그 회사의 13년간 숙원사업이었던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을 단 8일만에 마치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에 도움을 주어 감사의 의미로 마련된 자리였다.

요즘에는 가급적 술약속을 하지 않는다. 내 나이 50을 넘다보니 이제 나에게는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가야할 시간이 더 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중하고 물릴 수 없는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과의 자리는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석을 하는 편이다. 실무에서 일하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의 생생한 현장경험과 애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등 우군이 되어주어야 기금실무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만족도가 높아지고 기금제도에 애정을 갖게 되고 기금제도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식사장소는 일식집, 내 돈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날도 소폭에 폭탄주를 겯들여 한참을 마신 것 같다. 우라나라 술 문화는 섞는 문화이다. 술도 맥주와 소주, 양주 등 몇가지 술을 섞어야 하고, 술잔도 서로 돌려야 한다. 노조관계자와 술을 마시면 그 날은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한다.

밤 9시 45분, 1차로 자리를 마치고 여의도백화점을 빠져나와 일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쌍둥이들이 기말고사가 끝났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니 애비가 자식들 얼굴은 보고 재워야지.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그것도 폭탄주를 대여섯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온다. 술도 자주 마셔야 느는데, 마시지를 않으니 요즘은 한두잔에도 곧 취기가 올라온다. 돈이 없으면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법,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면 택시를 타고 빨리 귀가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최악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지. 영등포역에서 내려 일산행 870번 좌석버스에 몸을 싣는다. 영등포역에서 순환하는 곳이니 자리는 넉넉하다. 당산역까지 가면서 버스안은 승객들로 꽉 찬다.

당산역을 마지막으로 버스는 고양시까지는 논스톱이다. 고양시에 들어서자마자 이제는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행주산성 입구, 화원 앞을 지나 능곡 기차역과 능곡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이 버스도 어쩜 우리네 삶의 모습과 똑같을까?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집착, 욕망, 꿈 등을 하나 둘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넘쳐나던 혈기도, 기개도, 꿈도 시간이 지나면서 버거움과 포기로 이어진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괴리감을 깨닫고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운이 따르지 않았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포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내 옆자리에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던 청년도 목화연립 앞에 이르자 벌떡 일어나 내린다. 그리도 곤히 자던 청년이 자기 내릴 정류장 앞에서는 정확히 깨서 내리는 그 의지가 너무 신기하다~ 삼화연립 앞에서는 경의선 열차 통과때문에 한참을 서 있다. 그렇지 삶에서도 내 의지는 반하여 기다리고 뜻을 접어야 할 때가 있었지. 아무리 살아보려고 발버둥쳐도 일이 풀리지 않고, 아내를 살려보려고, 효능좋은 항암제를 써보고 싶어도 이미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돈을 구할 수가 없어 가슴을 치던 때가 있었지.

삼성당과 섬말다리, 신주택입구, 화훼단지는 내리는 승객이 없어 그냥 통과한다. 어느새 일산병원...일산병원 맨 윗층에는 생을 마감하는 말기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아내도 2006년 10월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그 곳에 입원하여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눈을 감기 5일전까지도 재활을 꿈꾸며 재활시설을 둘러보았었지...나처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지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유방암말기 판정을 받고서도 포기라는 단어를 비웃으며 눈을 감기 3일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살았던 당찬 여인이었다. 그런 열정과 도전이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부부로 엮어주었겠지.

일산병원부터는 출입구가 붐빈다. 내가 내리는 마두1동사무소에서 한 무리의 승객이 내리고 나니 이제 버스 안 좌석은 3분의 2가 비어 있다. 버스는 남은 승객마저도 모두 내려주고 차고지로 들어가 나처럼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의 고단한 삶을 마치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살아야 된다니까?"
"맞아~ 우리 친정집도 보면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 남아계시니 누구 돌봐주는 자식도 없고 문제더라고~"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살잖아~"
"그래 맞아, 남자는 챙겨주는 여자가 있어야지, 늙어서 혼자 남으면 애물단지가 된다니까~"
"맞아맞아~ 노인들은 잘 씻지도 않아서 옆에만 가도 역겨운 냄새가 진동한다니까~ 우리 시아버지도 혼자 되신지 3년째인데 평소 몸을 잘 씻으시라도 그렇게 말씀드려도 잘 씻지도 않으셔. 그러니 손자들이 할아버지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할아버지 곁에도 잘 안가려고 그래"
"앞으로는 사람이 더 오래 살게 된되잖아. 2030년에는 사람수명이 평균 90살이 될거라는데 우리는 그럼  앞으로 40년을 더 살겠네..."
"어휴~ 징그럽다. 아파서 골골하면서 그리 오래 살면 뭐하냐? 자식들에게 짐만 되지"
"나는 좌우지간 남편보다 오래 살꺼야. 그래야 우리 남편이 애물단지가 되면 안되잖어. 그치 여보?"

지난 일요일, 교회 식당봉사를 갔는데 여자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싱글대디 직접적인 당사자라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가족 아니 10년, 20년, 30년후 우리 모습일 수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행은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닥칠 수 있는 일인데에도 자신에게만은 예외이고 비켜갈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사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당장 내일이 기초단체장과 시도위원,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는 선거인데 누가 당선되고 누가 떨어질 줄 어찌 알겠는가? 물론 여론조사나 지지도를 측정하여 당선확률이 높은 사람이 누구일 것이다라는 것은 알지만 항상 예외라는 것이 있고 이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 인생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모른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벤처기업 사장을 하면서 잘 살던 친구가 하루 아침에 와이프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회사가 어려워져 지금은 15년째 키워온 회사를 자기 손으로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았다. 나도 2005년 5월, 평소 건강하여 출산 이외에는 병원을 다녀본 적이 없던 아내가 유방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결과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아내와 사별하게 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래 다 맞는 말이지,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아야 조화로운 삶이 되지. 가려울 때는 서로 등도 밀어주고, 집에서 목욕을 할 때도 등을 밀어주고 잔 심부름이며, 대화 상대는 부부 이상이 없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을 걸리는 이유도 진정한 대화상대가 없어서이겠지. 가장 이상적인 부부 연령차이는 동갑내기라고 하는 것도 상하나 주종이 아닌 친구처럼 격의없이 사는 부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 아닐까?

휴~~ 나도 나이 들어서 자식들에게는 짐이 되지 않아야지.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지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지.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다가올 10년, 20년, 3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월 11일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가 백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늘도 녀석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는 듯 눈이 내려 온 대지를 하얗게 덮었다. 아내 없이 장모님과 큰애, 나 셋이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고 메꾸어가며 뒷바라지를 하여  녀석들이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감개무량하다.

회사에는 쌍둥이들 졸업식 때문에 늦는다고 양해를 구하고 녀석들 졸업식을 지켜보고 출근을 했다. 생각해보니 녀석들을 키우는데 많은 위가가 있었다.

첫째는 2005년 5월초 아내의 유방암 말기판정과 1년6개월의 투병생활이었다. 집안 식구들 관심이 온통 아내 투병생활로 집중되다보니 녀석들 뒷바라지는 뒷전이었다. 경제적인 부담때문에 다니던 속셈학원도 끊었다. 녀석들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때였으니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다. 엄마의 투병생활과 헤어짐을 잘 견디어준 녀석들에게 감사한다.

둘째는 도벽이었다. 4학년 때부터 내 지갑과 장모님 지갑, 큰애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특히 장모님 지갑은 감시가 소홀해서 자주 꺼내다 썼다. 내 지갑과 큰애 지갑은 금새 표시가 나니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 같다. 회초리를 들기도 했고, 파출소에 데리고 갈려고도 생각해 보았다. 결국은 녀석들을 믿고 기다려 주면서 용돈을 주기 시작하며 용돈관리를 시켰다. 한달 용돈으로 기본 만원, 성과급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하면 15,000원, 반 1등은 만원, 과목당 100점은 2000원씩을 주었다. 거짓말처럼 도벽이 사라졌다.

셋째는 재명이의 왕따사건이었다. 4학년 1학기에 재명이 책가방 끈이 칼로 잘리고, 재명이 알림장에 '재수없는 새끼 죽어버려'라는 섬뜩한 글이 쓰여있는 것을 큰애가 발견하고 추궁해보니 학급 모둠친구 5명이 공부를 잘하는 재명이를 미워하며 수업시간에 왕따를 시키고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함에 치가 떨렸으나 조용히 선생님께 재명이에게 들은 사실을 편지로 써서 보내드리고 알림장 노트에 쓰여진 글과 칼로 잘려린 가방을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학년 회의가 소집되고 상담을 통해 재명이를 괴롭혔던 학생들이 밝혀지고, 괴롭혔던 5명의 아이들 엄마들이 학교로 호출되고 5명의 친구들도 재명이에게 사과하고 부모들은 재명이에게 가방까지 새로 사주며 수습이 되었다. 재명이의 바람대로 모둠을 옮기도 예전의 밝은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모둠에서 재명이를 제일 괴롭히고 칼로 가방끈을 잘라버리라고 시켰던 학생이 여학생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넷째는 PC방 출입사건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쁜 손버릇으로 생긴 돈을 가지고 PC방을 들락거렸다. 자연히 학교나 학원성적은 엉망이 되어 갔다. 큰애랑 상의한 끝에 집에 있는 PC를 조립하여 게임을 갈아주고 숙제를 마치면 하도록 허용해 주었다. 그 이후 도벽습관도 없어지고 PC방 출입도  줄면서 학교와 학원 성적도 오르기 시작햇다. 간혹 재명이 담임선생님께서 알림장이나 휴대폰 메시지로 PC방 출입사실을 알려주어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많은 어려움, 특히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고통을 극복하고 맞이한 쌍둥이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이기에 더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장모님과 큰애, 학교 담임선생님과 영재반 강종구선생님, 서울학원 선생님들, 아내의 빈자리를 많이 채워주신 처형과 지영이 민규, 한소망교회 청소년부 신종녀선생님과 늘 기도를 아끼지 않으신 정성진집사님과 김수희권사님,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젯밤 제 꿈에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생전 모습 그대로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당신은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가슴을 쥐어뜯다가 새벽에 잠을 깼습니다.

오늘 하마터면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우리 가족(나 장모님, 쌍둥이들)을 태우고
목욕탕을 가다가 높은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과 추돌할 뻔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과 성령님, 그리고 당신이 지켜준 것만 같습니다.

당신을 하늘나라로 보낸지 어언 2년 11개월이 지나갑니다. 그동안 숱하게 당신
꿈을 꾸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당신은 제 꿈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에
잘 갔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야속했습니다.
당신이 가기전 내가 했던 말 "내가 쌍둥이들 잘 키우고 장모님 잘 모실테니 아무
걱정말고  편하게 하늘나라 가라고... 나와 살면서는 돈 걱정, 쌍둥이들 키우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서 편히 보내라고...." 정말 그 말대로
나를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어제 한소망교회 주보 셀모임 교재에 모임 오프닝으로 '환영 마음문 열기'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가을이 되면 나는 ....을 하고 싶다/...생각난다/
....에 가고 싶다. 왜냐하면 ....때문이다."

나는 올 가을에 당신과의 추억이 깃든 곳을 모두 가보고 싶었습니다.
결혼 1주년 기념으로 갔던 한려수도, 명절때마다 갔던 고향집, 휴가철에 갔던
설악대명콘도, 한화대천콘도, 한화산정호수콘도, 학암포해수욕장, 변산콘도,
그리고 우리가 살았던 신혼집 부천 고강동, 어려움을 겪었던 광명 철산동,
서울 신도림동, 일산 후곡마을, 동규를 낳았던 유광사산부인과, 쌍둥이들을
낳았던 여의도성모병원, 유방암말기 판정후 당신과 매일 운동했던 강촌공원,
당신이 입원하여 투병했던 국립암센터, 마지막까지 입원하여 재활의 의지를
불태웠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등 당신의 체취와 열정의 흔적이 남아
있을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당신의 흔적을 찿아보고 당신과 만나 함께
보냈던 19년 10개월간의 가슴뛰고 행복했던 순간들과 아름답던 추억여행
속으로 잠시나마 빠져들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세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 엎질러진 물, 그리고 내뱉은 말...그런데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내곁을 떠난 사랑'입니다. 이미 내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 당신과의 사랑을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오늘도 나는 마음 아파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떠난 당신에 대한 추억이 점점 옅어질 줄 알았는데 점점 당신의
빈자리가 더 커보입니다. 가을이어서 그런가요? 아님 당신이 그동안 내마음을
너무도 깊숙히 차지하고 있어서인가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막내 승구가 서울이 올라왔다가 형을 만나러 왔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막내동생이 불쑥 말한다,
"형님도 많이 늙으셨네요"
"이 형 나이가 이제 몇인데..."

말을 해놓고 나니 참 서글퍼진다.
97년 늦둥이 쌍둥이자식을 낳고 하루 하루가 참 힘든 나날이었지....
아내의 주식투자 실패, 아내의 유방암말기 판정, 투병생활,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개인회생을 신청하여 인가받기...혼자서 이 악물고 남겨진 세 자식 데리고
그저 앞만 보고 정신없이 지내온 생활....

힘들지만 그저 살아서 남겨진 자식들 얼굴 보고 한 집에서 지내는 것 있는 것
자체가 감사요 행복이었지. 늘어난 흰머리를 보며 주변에서는 머리 염색이라도
하지 그러느냐고 하지만 머리 염색도 사치로만 느껴진다. 머리에 염색을 해본들
시간이 흐르면 다시 흰머리로 돌아올텐데.....

홍익대학교와의 소송, 네째동생이 벌인 사업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몸이 많이 말라있는 막내가 안스럽기만 하다. 거대한 사학재단과의 소송에서
이겼지만 돌아온 것은 상처뿐인 것을.... 헤어지면서 주머니에서 5만원을 꺼내
내려가는 차비에 보태라고 막내동생 손에 쥐어주며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 잊자. 지나간 일에 마음쓰지 말고 그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매일 매일에
최선을 다해 살자.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토요일에 농협하나로마트 시장을 보는데, 지급해야할 금액이 무려 26만원이
청구되었다. 금요일 강의를 마치고 오면서 넉넉하게 50만원을 찿아와서 장모님
20만원 먼저 드리고 남은 30만원 중에서 26만원을 지출하고 있으니 뒤에서 큰애와
장모님이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아빠가 힘들게 강의해서 버신 돈, 한 몫에 써버리니 허전하시겠어요"
"남자들은 그럴려고 돈을 버는 거란다"

돈 50만원을 벌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고생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반나절만에 50만원이 감쪽같이 지출해버리니 아쉬운 마음이야 왜 없겠는가?
마침 한장에 2만원 이상 영수증 10개를 모아오면 만원금액의 할인권을 주는 행사를
하고 있어 계산대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눈치를 주는 사람들 눈총에도 굽힘없이
영수증 11개를 받았다. 한꺼번에 계산한 영수증으로 액수를 환산하여 계산해주면
좋으려만 만드시 2만원 단위로 영수증을 끊어와야 영수증 한개로 인정을 해준다고
하니 번거롭더라도 영수증을 2만원 단위로 개별로 끊을 수 밖에...
 
집사람이 유방암말기 판정을 받은 지난 2005년 5월이후 집사람이 식단에 신경을
쓴 이후 세 자식들이 부쩍 음식에 관심이 많아졌고, 2006년 11월 하늘나라로 간
이후에는 더욱 까다로워졌다. 특히 큰애는 고기는 입에 대지를 않고 야채, 두부,
파프리카, 호두, 땅콩 등 항암식품인 유기농 야채와 콩류, 견과류를 주로 찿고 있다.
야채도 과일도 유기농으로, 우유도 검은콩우유, 두유도 검정콩 두유를 골라 담는다.
국수도 우리밀 국수, 음료수도 국산과 유기농 제품만 고르니 내 부담도 커질 수 밖에....
대충 고르면 좋으련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흰우유로 청국장을 타주면 먹지를 않고 반드시 검은콩우유로 타주어야
먹는다. 부담은 되지만 그래도 제대로된 외식 한번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보니 한끼
외식할 돈으로 우리는 집에서 직접 조리해 먹는 웰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훨씬 마음은 편하다.

그래도 여지껏 큰 병치레없이 건강하게 잘 커주는 자식들이 고맙기만 하다.
지금도 싱글대디로 혼자 수입으로 가계를 꾸려 나가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자식 중
한명이라도 덜컥 병이라도 들면 내 재기전선에는 암초가 드리우게 된다. 아니 더 이상
재기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병원갈 돈으로 미리 건강에 투자한다는 생각에서
부담은 되지만 식재료와 과일 구입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예방보다 더 현명한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작지만 고객에게 주는 혜택 하나
놓치지 않고 억척스럽게 챙기는 것도 우리 보금자리 장만을 하루라도 더 앞당기는데
일조를 하게 될 것이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막내작은아버지와 나는 동갑이다. 어릴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관계로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만으로 네살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지만 나는
어릴적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와 막내작은아버지에게 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이 대해
주셨다. 그래서 어릴때 쌍둥이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명이와 윤이를 키우면서 내가 녀석들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이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막내작은아버지를 키우시며 지켜보았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께서 막내작은아버지를 둔 나이와 내가 쌍둥이들을 둔 나이가 비슷하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가 내가 대학 1학년 때인 1979년 9월이었으니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결혼도 시키지 못한 늦둥이 막내를 두고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저려온다. 부모는 자식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 든든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아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혹시 자식이 직장에서 쫓겨나지는 않을지, 오다가다 사고는 당하지
않을까, 자식들이 큰 병을 앓지는 않을지 항상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70살 노인이
50살된 자식이 출근할 때 '길조심해라, 차조심해라, 음식 조심해서 먹어라'하며
당부하는 말에서 부모의 눈에는 항상 자식이 품안의 어린 자식으로 느껴지는 무한사랑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윤이가 자연생태학습을 가는데, 부모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안내문에
따라 녀석을 따라갔는데 명이도 함께 신청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왕
내가 어렵게 시간을 낸 것, 한꺼번에 두 녀석 뒤를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 어느 한
자식이 잘되면 나머지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자식 얼굴이 떠오르고 위축되지는
않을런지 신경이 쓰이고 표정관리를 하는 것은 자식 모두가 사랑스럽고 소중하가
때문일 것이다.

가끔 쌍둥이들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보고 큰애가 쌍둥이들만 편애한다고 시샘하기도
하는데 큰애는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제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지만 어린 늦둥이 자식들에게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길이 없어
솔직히 신경이 더 쓰이고 애착이 간다. 집사람이 청천벽력과 같은 유방암말기 판정을
받고 눈을 감기 전까지 늘 쌍둥이들 걱정을 하며 나에게 신신당부하며 다짐을 받곤 했다.
"동규는 고3이라 제 앞길 스스로 헤쳐나갈 정도가 되어서 걱정이 덜 되는데 우리
쌍둥이들 불쌍해서 어떡해! 당신이 내 대신 우리 쌍둥이들 잘 키워줘. 부탁해~~"

오늘도 나는 세 자식을 키으며 내가 자랄때 보여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진했던
내리사랑을 떠올리며 내 자식에게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는 집사람이 내곁은 떠난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세월 참 무심하기도 하지...벌써 집사람이 내 곁을 떠난지가 2년이 되었다니...

집사람을 보내고 그동안 앨범을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사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바쁘기도 했지만 앨범을 보면 자꾸만 아내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지난 아픔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는데
오는 17일 방송되는 Q채널 '선물'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애들 어릴적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그제 밤 늦게 부랴부랴 세자식들 사진을 챙기느라
앨범을 펼쳐보게 되었다.

집사람의 어릴적 사진, 나와 교제하면서 찍은 사진, 결혼 사진, 신혼여행 사진,
신혼집에서 큰애를 얻었을 때 사진, 애들 어릴때 목욕사진, 여행 사진들을
속의 행복했던 시절을 보고 있으니 그리움이 복받쳐 온다. 사람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지만 우리 부부는 어찌 이다지도 일찍 헤어지게 되었는가?
세 자식, 특히 어린 쌍둥이 자식과 연로하신 장모님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병상에 누워 마지막으로 나에게 "우리 쌍둥이들 잘 부탁해",
"우리 엄마 잘 부탁해!"하며 내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하던
모습이 다시 눈가에 어른거리며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것이 모정이고,
먼저가는 불효여식이 어미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효도라는 것을 알기에...

무정한 사람! 이렇게 일찍 갈거면 차라리 나와 만나지 말고 더 좋은 사람
경제적으로 더 여유있는 사람과 만나 하늘에서 주어진 수명 누리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다가 가지 어쩌다 가진 것도 없고 부족한 나를 만나 사내 애들만
셋, 게다가 쌍둥이자식까지 낳아 이토록 고생만 하다 갔는지... 내 당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버리면 나는 어이하라고...

지난 10월 18일 Q채널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청아공원의 집사람이 안치된
곳에서 한참을 있었더니 김승희PD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느냐고 짖굳게
질문을 한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지난 21년 4개월전 집사람을 처음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들 셋을 낳아 키우며 행복하면서도 힘들게 살아왔던, 그리고 집사람 유방암
말기판정, 지긋지긋한 유방암 투병생활, 끝내 아내와의 사별, 싱글대디로 애들 셋을
키우며 살아가는 지금의 모든 과정이 그저 꿈만 같다. 꿈이라면 깨어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건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렇지만 슬픔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남겨진 나와 아내의
분신과도 같은 세 자식들이 자라고 있고, 집사람과의 약속, 내가 꼭 이루어야 할 꿈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2008.11.11.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람이 하는 착각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자기 곁에 늘 함께 있어줄 것으로 믿는 것이 있다.

나도 작년 사랑하는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집사람과 백년해로를 하면서 오래도록 함께 살 것으로 생각했다.
18년 넘게 살면서 이러한 것을 단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시한부삶 선고를 받고서도 다시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나리란 믿음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먼저 가 버린 뒤에야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나와 함께 내곁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을 때 이전보다 더 잘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집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애들을 데리고 살며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다.
오늘 그동안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이 교차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런 이유없이 내손으로 부모님께 이십만원을 부쳐 드렸다.
인터넷뱅킹을 통하여 송금하려니 받는 사람에게 표시하고 싶은 말을 일곱 글짜로
쓰라기에 그냥 '항상 건강하세요'라고만 썼다.

물론 명절이나 생신 때에 아내가 선물이며 돈을 부쳐드렸지만
내 손으로 감사함과 속죄의 마음으로 송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내 곁에 계실 것만 같은 부모님!
항상 내 곁에서 못한다고 불평하고 잔소리만 했던 아내,
항상 내 곁에서 싸우고 말썽만 피우는 자식들,
항상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들,
항상 출근하여 일할 수 있는 직장....

소중한 이런 것들이 내 곁에 항상 머물러 주지는 않는다.
떠나고 나서, 보내고 나서
그제서야 소중함을 느끼고 후회하고 애통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은,
지금 현재 자리에서,
주어진 것을 소중히 지키고 가꾸며 나누어야 한다.

김승훈 2007.1.31.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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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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