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 집사람이 아꼈던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은 지방에 근무하는데 직원 몇사람과 술 한잔하는데 집사람 이야기가 나와
생각이 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누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니
내 목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전화를 했으며 시간이 흐르면 누님이
잊혀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생각난다고 울먹인다. "형님! 잘 사십시오!"
하며 전화를 끊는다. 아내가 아꼈던 후배 몇 사람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았던 후배였다.
본인도 나에게 자기가 가장 누님에게 사랑받았던 후배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후배 전화를 받고보니 사랑하는 아니 이제는 사랑했던 아내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주변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두고 갔고 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두고 갔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아닌것 같다. 사람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고 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내는 인맥관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했고, 한번 내사람이다
생각되면 앞뒤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설사 불이익이 있더라도 끝까지 챙겼다.
지금은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계시는 분이 있다.
그분과 사귄 것은 25년전, 한참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분과 친분관계를
쌓으려 많은 사람들이 그분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분과 식사를 하려면 한달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력문제로 보직을 내놓고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냉소를 보내며,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모두 떠났을 때, 유일하게 집사람
혼자 그분을 지키고 말 상대가 되어 드렸고 매일 책상도 닦아 드렸다. 나중에 다시
명예회복이 되었을 때 다시 몰려든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 않고 가장 먼저 여직원인
집사람부터 찿았다. 집사람이 아프다고 하자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시는 의사에게 직접
전화해서 병실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하여 입원조치시키고 진찰받도록 해주고, 입원비도
2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쾌히 내 놓으셨다. 아내가 작년 11월 눈을 감았을 때 가장
애통해 하며 가족을 빼고는 3일 내내 영안실을 지켜주신 유일한 분이시다.
사람들이 그분이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그분 곁을 떠났을 때 당신은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분명 재기하실 분이다. 나는 그분 능력을 믿는다. 사람은 기쁨은 같이
해 주는 사람보다 어려울 때 함께 해 주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나이는 집사람보다 15살이나 더 연상이었지만 집사람 충고를 받아들여 그 어려운
시기를 숨 죽이며 견디어 냈고 그후 다시 화려하게 재기했고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사장으로 재직하고 계신다. 그 누구도 그 분이 다시 재기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아내는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사람을 사귀고, 사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만남을 소중히 여겼고 진심으로 대해주었고, 상대의 장점을 인정해준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를 아쉬워 한다. 유애리 아나운서가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했던 말
"최혜숙씨는 사람을 남기고 간 것 같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승훈, 2007.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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