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작은아버지와 나는 동갑이다. 어릴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관계로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품에서 자랐다. 만으로 네살때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지만 나는
어릴적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알고 자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와 막내작은아버지에게 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이 대해
주셨다. 그래서 어릴때 쌍둥이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명이와 윤이를 키우면서 내가 녀석들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이 아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막내작은아버지를 키우시며 지켜보았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께서 막내작은아버지를 둔 나이와 내가 쌍둥이들을 둔 나이가 비슷하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가 내가 대학 1학년 때인 1979년 9월이었으니 이제 대학에
갓 입학한, 결혼도 시키지 못한 늦둥이 막내를 두고 눈을 감으신 할아버지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저려온다. 부모는 자식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 든든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고 잘 사는 모습을 보아야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혹시 자식이 직장에서 쫓겨나지는 않을지, 오다가다 사고는 당하지
않을까, 자식들이 큰 병을 앓지는 않을지 항상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70살 노인이
50살된 자식이 출근할 때 '길조심해라, 차조심해라, 음식 조심해서 먹어라'하며
당부하는 말에서 부모의 눈에는 항상 자식이 품안의 어린 자식으로 느껴지는 무한사랑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윤이가 자연생태학습을 가는데, 부모를 반드시 동반해야 한다는 안내문에
따라 녀석을 따라갔는데 명이도 함께 신청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왕
내가 어렵게 시간을 낸 것, 한꺼번에 두 녀석 뒤를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 어느 한
자식이 잘되면 나머지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자식 얼굴이 떠오르고 위축되지는
않을런지 신경이 쓰이고 표정관리를 하는 것은 자식 모두가 사랑스럽고 소중하가
때문일 것이다.
가끔 쌍둥이들에게 잘해주는 모습을 보고 큰애가 쌍둥이들만 편애한다고 시샘하기도
하는데 큰애는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스스로 제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지만 어린 늦둥이 자식들에게는 달리 해줄 수 있는 길이 없어
솔직히 신경이 더 쓰이고 애착이 간다. 집사람이 청천벽력과 같은 유방암말기 판정을
받고 눈을 감기 전까지 늘 쌍둥이들 걱정을 하며 나에게 신신당부하며 다짐을 받곤 했다.
"동규는 고3이라 제 앞길 스스로 헤쳐나갈 정도가 되어서 걱정이 덜 되는데 우리
쌍둥이들 불쌍해서 어떡해! 당신이 내 대신 우리 쌍둥이들 잘 키워줘. 부탁해~~"
오늘도 나는 세 자식을 키으며 내가 자랄때 보여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진했던
내리사랑을 떠올리며 내 자식에게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지 모른다.
싱글대디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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