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모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와 조합측 관계자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다. 그 회사의 13년간 숙원사업이었던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을 단 8일만에 마치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에 도움을 주어 감사의 의미로 마련된 자리였다.

요즘에는 가급적 술약속을 하지 않는다. 내 나이 50을 넘다보니 이제 나에게는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가야할 시간이 더 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중하고 물릴 수 없는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과의 자리는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석을 하는 편이다. 실무에서 일하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의 생생한 현장경험과 애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등 우군이 되어주어야 기금실무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만족도가 높아지고 기금제도에 애정을 갖게 되고 기금제도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식사장소는 일식집, 내 돈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날도 소폭에 폭탄주를 겯들여 한참을 마신 것 같다. 우라나라 술 문화는 섞는 문화이다. 술도 맥주와 소주, 양주 등 몇가지 술을 섞어야 하고, 술잔도 서로 돌려야 한다. 노조관계자와 술을 마시면 그 날은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한다.

밤 9시 45분, 1차로 자리를 마치고 여의도백화점을 빠져나와 일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쌍둥이들이 기말고사가 끝났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니 애비가 자식들 얼굴은 보고 재워야지.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그것도 폭탄주를 대여섯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온다. 술도 자주 마셔야 느는데, 마시지를 않으니 요즘은 한두잔에도 곧 취기가 올라온다. 돈이 없으면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법,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면 택시를 타고 빨리 귀가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최악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지. 영등포역에서 내려 일산행 870번 좌석버스에 몸을 싣는다. 영등포역에서 순환하는 곳이니 자리는 넉넉하다. 당산역까지 가면서 버스안은 승객들로 꽉 찬다.

당산역을 마지막으로 버스는 고양시까지는 논스톱이다. 고양시에 들어서자마자 이제는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행주산성 입구, 화원 앞을 지나 능곡 기차역과 능곡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이 버스도 어쩜 우리네 삶의 모습과 똑같을까?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집착, 욕망, 꿈 등을 하나 둘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넘쳐나던 혈기도, 기개도, 꿈도 시간이 지나면서 버거움과 포기로 이어진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괴리감을 깨닫고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운이 따르지 않았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포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내 옆자리에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던 청년도 목화연립 앞에 이르자 벌떡 일어나 내린다. 그리도 곤히 자던 청년이 자기 내릴 정류장 앞에서는 정확히 깨서 내리는 그 의지가 너무 신기하다~ 삼화연립 앞에서는 경의선 열차 통과때문에 한참을 서 있다. 그렇지 삶에서도 내 의지는 반하여 기다리고 뜻을 접어야 할 때가 있었지. 아무리 살아보려고 발버둥쳐도 일이 풀리지 않고, 아내를 살려보려고, 효능좋은 항암제를 써보고 싶어도 이미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돈을 구할 수가 없어 가슴을 치던 때가 있었지.

삼성당과 섬말다리, 신주택입구, 화훼단지는 내리는 승객이 없어 그냥 통과한다. 어느새 일산병원...일산병원 맨 윗층에는 생을 마감하는 말기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아내도 2006년 10월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그 곳에 입원하여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눈을 감기 5일전까지도 재활을 꿈꾸며 재활시설을 둘러보았었지...나처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지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유방암말기 판정을 받고서도 포기라는 단어를 비웃으며 눈을 감기 3일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살았던 당찬 여인이었다. 그런 열정과 도전이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부부로 엮어주었겠지.

일산병원부터는 출입구가 붐빈다. 내가 내리는 마두1동사무소에서 한 무리의 승객이 내리고 나니 이제 버스 안 좌석은 3분의 2가 비어 있다. 버스는 남은 승객마저도 모두 내려주고 차고지로 들어가 나처럼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의 고단한 삶을 마치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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