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자식 셋과 함께 어머니를 모신 일산푸른솔공원과

아내가 있는 자유로청아공원을 다녀왔다. 자식 셋과 함께

다녀온 것은 지난 8월 이후 두 번째이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 추석 때 코로나 통제 때문에 다녀오지

못해 오늘 기일을 앞두고 어제 시간을 내어 다녀왔다.

올해 10월 말에 벌써 세번째 관리비 납부 통지가 왔다.

오늘이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지 벌써 만 15년째 음력기일이다.

성당에 연미사를 올렸다.

 

어제 가서는 자유로청아고원에서 계약자를 나에서 큰아들로

변경했다. 자식들이 성장하여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니 내가

지고 있던 각종 경제적인 부담을 자식들에게 하나 둘씩 

넘기고 있다. 보험료 납부도 그렇고, 이번 납골당 관리비도

그렇고.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점점 경제적인 속박에서

해방되고 있다.

 

실손보험료도 아내의 암투병을 지켜보면서 필요성을 느껴

15년 전에 가입해놓고 여지껏 불입하다 마지막 쌍둥이들 것을

지난 9월에 넘겼다. 막내가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했었는데

제대 후 취업을 해서 일을 하다가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을

다니면서 실손보험 덕을 툭툭히 보고 있다. 어제 만나니

아빠가 들어놓은 실손보험이 정말 좋은 거라고, 지금은 들려고

해도 이런 상품이 없다고 고마워한다.

 

계획에도 없던 쌍둥이자식을 97년에 가지면서 지금껏 25년을

그 힘든 시절을 어찌 헤치고 오늘까지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2005년과 2006년은 아내 암투병, 이후 아내를 보내고 5년을

홀로살이........ 2011년애 재혼. 늘어난 다섯자식들이 성장해가는

모습과 함께 거울에 비친 주름이 깊게 패이고 머리가 빠진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지난 25년을 자식들 모두 잘 키우고 잘 살아왔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1993년 8월,

일산으로 이사간 후 휴일이면 늘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걷곤 했다.

운동 겸 휴식, 그리고 아픔을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18년, 그동안 쌍둥이자식들이 태어나고,

먼저 간 아내의 유방암 말기판정과 투병생활,

그리고 사별,

쌍둥이들의 게임중독....

한 남자로서 감내하기 힘든

참으로 모진 세월이었다.

 

하얀 눈은 세상의 더러움을 덮는다.

하얀 눈은 세상의 아픔을 덮는다.

하얀 눈은 사람의 고통마저 덮어준다.

 

눈오는 추운 겨울날에도

휴일이면 두툼한 겨울파카를 입고

목도리에 장갑,

모자에 마스크까지 무장하고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추위에 호수 수면이 얼고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려 덮히면

드넓은 호수면이 하얀 평원처럼 펼쳐진다.

마치 다른 나라에 와있는 기분이 든다.

 

나는 작년 3월에 재혼과 함께

일산을 떠나왔다.

겨울이면 보고 싶었던 추억의

눈덮인 호수공원을 어제 다시 보았다.

눈 덮힌 호수공원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세월이 간다. 하얀 눈 속으로 쌓여서 세월이 간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3`~4일 가량 퇴근 후 늘 함께 근처 공원으로 운동을 나간다. 첫 아내를 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던 사별의 아픈 상처가 있고, 지금의 아내 또한 친언니가 13년째 암투병을 하다 2주전 하늘나라로 간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건강에 대한 중요성과 가족 건강챙기기는 남다르다.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가족 전체가 치료와 간병에 매달여야 하고 결국은 가정이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경험했고 또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어제도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고등학교 반창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시간에 근처 용왕산공원을 올랐다. 당일 친구 문자메시지를 보고서야 동창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목3동시장에서 장어를 준비해 놓고 있는 아내에게 저녁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을 하기가 미안했다. 동창들이 호프집에 가서 2차를 간단히 하고 가자는 유혹(?)도 친구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요즘은 아내를 보기가 미안하다. 일도 많이 생기고, 업무영역이 넓어지니 찾아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하고 나에게 업무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해결을 위해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간다. 남들은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의 교제가 적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많아지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닌가?

 

지난주에는 유난히도 약속이 많이 잡혀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바람에 아내 혼자서 내내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토요일마저 내가 대학원수업에 간다고 훌쩍 집을 나가버리니 아내 혼자 집에서 하루종일 청소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재작년 10월말 처음을 만나 교제를 하면서 재혼하면 휴일에는 늘 함께 집에서 보내면서 카피도 마시고 등산도 하고, 영화도 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작년초 대학원 등록과 함께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50년 남은 내 삶의 기간을 생각하니 눈 딱 감고 3년간 자기계발에 투자하기로 했다. 일요일은 만사를 제쳐놓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용왕산에 올라 1시간 운동을 하고, 일주일 밀린 잠도 보충하고, 저녁에는 스트레칭도 함께 하며 지난 일주일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했던 섭섭함과 미안함을 풀어준다. 처음으로 아내 따라서 스트레칭을 하니 온 몸이 욱신거린다. 몸이 굳어 있다는 신호이겠지.

 

"당신! 대학원 졸업하는 내년말까지는 봐주지만, 내후년부터 이러면 알지?"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주며, 나와 가족들 건강을 챙겨주는 아내에게 그저 미안하다고 머리를 극적일 수 밖에....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다음주가 가장 바쁠 한 주가 될 것 같다. 근로복지공단 설문서를 전국 1220개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발송해야 하고, 13일은 수원에 있는 회사 연수원에서 퇴직하시는 선배님들을 대상으로 한시간 강의, 14일과 15일은 이틀 과정으로 CFO아카데미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기초과정' 강의, 토요일은 군대에 가있는 큰애 면회 예약...

CFO아카데미 강의 교재를 작성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출근을 했다. 방해받지 않고 단시간에 집중을 하자면 사무실만한 공간이 안성마춤이다.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렇게 일에 치여 살때면 나를 한명만 더 복제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해본다. 회사 내 일을 하면서, 복제된 또 다른 나는 쌍둥이들을 챙기면서 추가로 추간하려는 책 원고도 쓰고, 카페에 글도 쓰고... 과연 그런 날은 내 생전에 올 수 있으려나?

8일밤부터 근로복지공단 설문서를 집으로 가져와 일일히 회신용 봉투에 넣어 270원어치 우표를 붙이고 사내근로복지기금 회계처리실태조사를 위한 설문서를 접어서 넣고 다시 고용노동부 설문작성 협조요청 공문과 함께 접어넣고 봉하는 작업을 하는데 허리도 아프고 집중하다보면 눈알이 빠질 것만 같다.

작업을 하는 아내 생각이 절로 난다. 아내가 살아있었더라면 만사 제쳐놓고 손발 걷어부치고 나를 도와주었을텐데... 항상 내 입장에 서서 나를 응원해주고 몸을 사리지 않고 도와주었던 아내였다. 2004년 9월 무려 7년간의 작업끝에 1350페이지에 이르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책자를 펴냈을 때 인세를 고스란히 아내에게 갔다 주었다. 내가 책을 낼 수 있도록 후원해준 아내에게 보답하는 마음에서...

쌍둥이들을 잡고 우편번호 검색을 해달라고, 한 사람당 610개씩을 마치면 15,000원을 수고비로 주겠다고 구슬러 시작을 해보았지만 처음 10분정도 하더니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이내 PC게임으로 빠져버린다. 그렇지, 너희들이 10월말까지 연구용역을 마쳐야 하는 애비의 절박한 마음을 안다면 이미 철이 들었겠지.... 애비는 눈이 빠져라, 설문서를 접어 회신용 봉투에 넣느라 손에 물집이 잡혔다고 손을 보여주어도 PC게임 못해서 애닳아하는 쌍둥이자식을 보고 있노라니 아내의 빈자리가 더 커보이고 생각이 난다.

부부의 인연이 있다면, 나와 아내가 만날 수 있었던 그 인연에 감사하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도 빨리 그 인연을 마감하게 만든 그 인연에 아쉬움을 느낀다. 참으로 좋은 여인이었고, 내 인생의 둘도 없던 길벗이었는데...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되돌아보니 추석에 고향을 가지 않은지가 꽤 오래 되었다. 결혼 후 아내와의 약속(설은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고)에 따라 아내가 유방암판정을 받기 전인 2004년까지는 추석명절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고향을 다녀왔는데 2005년과 2006년은 아내 투병생활로 국립암센터에서 보냈고, 2008년과 2009년은 아내 제사상 사건으로 내려가질 않았다.

사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뵈면 상처하고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것만 같고 2007년 제사상 사건으로 장모님이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차려주는 차례상이 최고라고 그냥 집에서 추석차례를 지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바람에 2008년부터 연 2년 주저 앉았다.

아내 제사상 사건은 2007년 추석에 일어났던 한바탕의 헤프님이었다. 할아버지 기일이 추석이다보니 우리집은 추석차례상과 할아버지 제사상이 겸해서 준비한다. 할아버지 제사상이 주가 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부님과 증조모님, 거기에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밥까지 올려지다보니 아내 제사밥을 차릴 공간이 없어 아버지께서(사실 아버지는 며느리 제사밥까지 제사상에 올리면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사전에 둘째 동생에게 아내(큰형수) 제사상을 부탁하셨고, 이를 모르는 어머니가 둘째 작은어머니에게 큰며느리가 신경이 쓰인다고 하자 아내 생전에 사이좋게 지냈던 둘째 숙모께서는 그럼 우리가 쌍둥이엄마 제사밥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나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아내 제사밥을 차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추석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작은아버지 집에를 다녀왔다가 아버지께서 동생집에서도 제사밥을 차렸다고 다녀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면서도 아침 일찍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 제수씨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이후 시골을 다녀와서 조용히 넘어갔던 이 헤프닝이 한참 뒤에 장모님과 어머님이 통화하면서 큰며느리 제사밥을 시댁이 아닌 동생집과 작은아버지 집에서 이중으로 차리게 해서 미안했다고 이실직고를 해버리는 바람에 장모님께서 발끈하셔서 "그래도 장손며느리였는데 시댁 제사상에 오르지도 못하는 그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딸 은경이(집에서 부르던 아내 이름) 제사밥은 내가 직접 차릴테니 자네도 명절에 시골 내려갈 생각은 하지 말게" 엄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중간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제사밥을 올려야 할 대상이 많은 우리집인지라 연로하신 장모님 화가 풀리실 동안은 그냥 장모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올해 3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전림선암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하시는 동안 큰아들인 내가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자주 찿아뵙지도 못해 죄송하여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추석명절을 보낼 수 없었다. 마침 시골을 편하게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회사 게시판에 9월 21일 아침 7시 20분발 용산-목포 KTX 표가 딱 한장이 나와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고향에 가면 내 형편은 모르는 친척들은 다들 '왜 재혼을 하지 않느냐?', '언제 재혼할거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 재혼을 채근하고 독촉할텐데 내려가도 마음은 편치 않을 것 같다. 또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조인스블로그 생활을 한지 1000일이 되었다. 2007년 11월 16일 개설하여 총 방문객 591,338명, 하루평균 591명을 기록중이다. 포스트는 2,656개이고 인기도는 8252점에 파워블로그이다.

내가 운영중인 많은 블로그 중에서 유독 조인스블로그에 애착이 느껴지는 것은 블로그의 이런 외면상 드러나 수치보다도 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내 삶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랑했던 아내를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보낸지 1년, 남겨진 빚과 함께 남겨진 빚을 상환해가며 장모님을 모시며, 자식 셋을 키우며 살아야 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유일한 나만의 공간이었고, 다시 삶의 열정을 재충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이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벌버둥치며 살았던 기간, 항상 내 곁에 있었던 내 삶의 반쪽과도 같았던 아내를 잃고서 방황했던 기간, 성격과 개성이 유난히도 강한 장모님과 세 자식들 사이에서 겪었던 마음고생들이 글을 써 내려감으로서 자연히 조절되고 정화되었고 훌훌털고 평상심으로 되돌아가게 해주었다.

글을 쓰는 내내 행복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글을 쓰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보니 힘들었던 일도, 외로움도, 괴로움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애비 마을을 헤아려주지 못하는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도, 이토록 끔찍한 경제적인 고통에 이르도록 된 현실에 대한 원망도 글을 써내려가다보면 모두 컨텐츠가 되고 내 사고나 감정의 폭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준 고마운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적 라디오 프로 중에 '북한 7300일'이 있었다. 해방이후 북한의 동향을 다큐멘터리로 만들 프로였다. 나는 조인스블로그 생활이 이제 겨우 1000일인데 이보다는 무려 7.3배이다. 역사와 기록은 지금 당장 평가받으려고 애쓰면 안된다. 후대에 자연스레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니 후회없도록 열심히 살면 된다. 나중에 자식들이 성장하여 이 애비가 쓴 글을 보는 날이 있겠지. 어쩌면 내가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당부하고 싶은 말, 나무라고 싶은 말들이 평소 내가 쓰는 글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지 모른다.

아내를 갑작스레 하늘나라에 보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아내의 글이나 육성, 동영상이 하나도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내 휴대폰에 남겨졌던 유일한 통화(투병생활을 하면서 머리가 아프니 빨리 병원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다급한 목소리 - 그때 나는 교육을 진행중이었다) 마저도 내 실수로 삭제를 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목소리마저도 남아있지 않다. 이랗게 갈 줄 알았으면 몰래 녹음이라도 해두고, 몰래 디카라도 모습을 찍어둘 껄~~~ 

내가 쓰는 글은 나중에 내 자식, 손자, 증손자들이 계속 읽게 되겠지. 하루하루 힘들었던 삶의 현장에서 꼭 다시 일어서리라는 긍정성과 희망을 품으며 열정적으로 도전하며 살았던 내 마음을 알게 된다면 자정도 훌쩍 지난 늦은 밤에 졸린 눈을 비벼가며 쓰는 이글에 대한 보람을 느낄 것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부터 이틀간 쌍둥이자식들이 한소망교회 청소년여름 캠프를 떠난다. 2박 3일이지만 토요일에 미래에셋증권에서 실시하는 '미래에셋 하계금융 인터쉽' 초청 세미나를 예약해 두었기에 토요일 아침에는 데리러 가야 한다.

들떠있는 두 녀석을 데리고 대하마트를 가서 필요한 음료수며 과자를 사서 챙겨준다. 침낭까지 두개를 준비하여 모두 챙겨주고 나니 밤 10시 40분.... 잠을 자지 않고 장난치는 녀석을 반 강제적으로 재우고 그제야 내 책상에 앉는다.

이틀전 쌍둥이들이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무얼 잘못 만졌는지 컴에 문제가 생겼다. 아무 이상없는 물건도 쌍둥이들 손에만 가면 고장이 난다. 집에 있는 우산도 멀쩡한 것이 없다. 무얼 하나 사주어도 호기심이 왕성해 일주일 이상 가지를 않는다. 큰애가 있으면 곧장 컴을 복구시킬텐데 큰애가 군입대를 해버리니 당장 아쉽다. 큰애가 집에 있을 때는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역시 사람은 서로 떠나 살아보아야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나보다. 

SK브로드밴드에 인터넷 고장신청을 했다. 낮에 회사에서 신고를 했을 때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사이에 A/S 책임을 두고 서로 미루기를 하기에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는데(휴대폰과 결합한 인터넷망 가입은 SK텔레콤이고, 순수한 인터넷망을 가입하는 건 SK브로드밴드라는 설명에 어차피 같은 회사 일인데 왜 일을 핑퐁치느냐고 싫은 소리를 해주었다) 당장 내가 아쉬우니 다시 통화를 할 수 밖에... 간단한 응급처리를 해보았지만 SK브로밴드 회사에서는 장애가 없는데, 우리 집에서 수신이 되지 않는걸 보니 아파트 내부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내일 출장수리를 오겠단다.

인터넷을 하지 못하니 무지 무료하다. 오늘 밤은 열대야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우리집은 에어컨이 없다. 나야 그럭저럭 더위를 참는다지만 연로하신 장모님께는 너무 미안하다. 냉장고에서 복분자주를 꺼내 거푸 두 잔을 비운다. 시원한 복분자주가 목을 타고 내려갈 때는 시원했는데 빈 속에 들이키니 금새 속에서 열기가 올라온다. 아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자기를 생각하며 마시라고 담궈둔 복분자주는 남아있다. 부부인연이 어찌 이리도 고약할꼬~~ 복분자주 한 잔을 마저 더 하고 신문스크랩을 한시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재명이 녀석이 내 자리에서 자고 있다. 자고 있는 녀석 옮기기도 이제는 힘이 든다. 그냥 내가 알아서 피해서 빈자리에서 자야지.... 아까부터 옆 502동에서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자정을 넘기니 더 요란하다. 너무 시끄러워 베란다 유리창문을 닫는다. 좁은 안방에서 셋이 잠을 자려니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등에서는 땀이 맺히고 숨이 턱 막힌다. 다시 일어나 베란다 유리창문을 연다. 개짖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고 영 신경이 거슬린다. 우리 동 아랫층에서는 드디어 남자의 화난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아파트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들린다. 나도 창문을 열고 "야~ 개새끼야!!!"하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무리 좋아하는 애완견이라지만 밤 자정이 넘도록 저렇게 짖어대도록 방치하여 소음공해를 유발하고 아파트 주변 주민들을 잠 못이루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건 이건 엄연한 민폐이다. 그 개 한마리 대문에 501동, 502동, 503동, 504동 많은 주민들이 밤잠을 설쳤으니... 열대야에 덥기는 하지, 개 짖는 소음까지 더해 왕짜증스런 밤, 잠 못이루는 밤을 보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나 : "윤아! 할머니 방에서 바느질상자 좀 가져오너라"
재윤 : "바느질 하시게요"
나 : "응, 어제 보니 시장바구니 손잡이가 너덜너덜하더구나"

곁에서 바느질 하는 걸 지켜보던 막내 재윤이 왈~
재윤 : "어쩜 아빠는 바느질 실력이 이렇게 좋으세요"
나 : "응, 아빠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 옷이나 양말이 떨어지면 아빠가 직접 바느질을 해서 기워입곤 했지"
재윤 : "아빠 바느질 실력은 뛰어나세요"
나 : "아빠 바느질 솜씨는 네 엄마도 인정했는걸. 아빠에게 이런 달란트가 있어 가족들을 위해 쓰게되니 아주 행복하구나~"

어제 농협하나로마트를 다녀오다보니 시장바구니 손잡이가 너덜너덜하는 걸 보고 오늘 생각이 나서 배란다에서 기우고 있었더니 쌍둥이자식들이 옆에 와서 내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결혼후, 내가 바느질을 할 줄 안다고 하니 아내가 믿지를 않았다. 그래서 잠시 실력발휘를 했더니 자기보다 바느질 솜씨가 더 낫다며 그 다음부터는 옷이 떨어지거나 자식들 신발주머니나 가방끈이 떨어지면 기우는 것은 모두 내 차지가 되어 버렸다.

손재주는 타고 나는 걸까? 어려서부터 가족들에게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살았다. 손으로 만드는 것도 칭찬을 들었고, 글씨도 잘 쓴 덕분에 학교 선생님을 대신하여 수업시간 칠판 판서는 내 몫이었다. 서예도 대학 1학년 말에 처음으로 배웠는데 당시 서예학원 원장님이 초보자인데도 예사 실력이 아니라고 계속 배우라고 꼬셨지만 딱 3개월 배우고 그만두었다.

1979년 12월, 9월초부터 4개월간 가정교사를 해서 받은 당시로서는 제법 큰 돈으로 내 2학년 1학기 대학 학비를 남겨놓고 남은 돈으로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웅변, 서예, 합기도 학원에 딱 3개월 다녔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느질을 하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섬세해진다. 그저 길 따라 한 올, 한 올 집중하여 순서대로 해야 한다. 글을 쓰고 자립심을 키우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홀로 살아야 했던 자취생활, 군생활, 아내와의 사별, 자식 셋을 키우고 사는 싱글대디의 삶을 아시고 나에게 이런 달란트를 미리 주신 걸까???

그래 옷, 신발주머니 뿐만 아니라 마음 속 상처나 외로움도 다 나에게 가져와라, 이 애비가 흔적도 없이 다 꿰매줄테니...^^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지난 6월 CFO아카데미 PPT교육자료를 보내주었더니 박선자님으로부터 답장 메일이 왔다.

좋은 자료 너무 감사합니다~^^
제주도는 그나마 바람이 자주 불어서 그리 덥지는 않네요~
제주도 내려오실 기회있으면 제가 아는 맛집을 많이 추천해 드릴께요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박선자올림

제주도!
나도 제주도민이 될뻔 했다. 아버지가 1961년 군 제대후 우체국에 취직되어 제주도 대정우체국에 근무를 하였는데(아버지도 어머니와 사별을 하고 쏠로인 상태였다)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본 본의 추천으로 제주도 JP농장 관리인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JP는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아버지는 숙고 끝에 우체국 자리와 농장관리인 제의를 뿌리치고 고향 진도로 돌아와 할아버지 염전일을 도와 지금껏 시골에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지나가는 말로 후회 비슷하게 말씀하신다. 돈을 크게 벌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가 몇번 많았는데 그 기회를 모두 포기했노라고....

아내는 생전에 제주도를 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정년퇴직후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나를 집요하게 세뇌시키곤 했다. 아마도 나를 만나기 일주일전, 결혼 전 해인 1987년 첫 비행기를 타고 갔던 여름휴가지 제주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좋았었나 보다. 첫 데이트에서 제주도에서 보낸 휴가 이야기로 대부분 시간을 할애할 정도였으니....아내를 첨 만났을 때 아내는 참 예뻤다.

신혼여행지도 제주도로, 그후 두번의 여행(그 중 한번은 쌍둥이들을 임신했던 해인 1997년... 쌍둥이들이 한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고 투정할 때 나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너희들은 이미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했느니라"하며 우겼다)과 한번의 업무차 여행(회사 직원 하계휴양시설 임차건으로)을 했으니 아내와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퇴직후 함께 제주도에서 함께 살자던 아내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고, 홀로 남겨진 나는 아내와의 제주도의 추억을 떠 올리고 그리워하고 있으니.... 제주도에 아직 아내의 숨결과 체취가 남아 있을까??? 갑자기 제주도에 가고 싶어진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금요일, 직원들 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다. 오늘 내가 계획했던 월차결산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이사회 의안 작성작업도 내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근무시간 중에는 걸려오는 전화 응대, 결재 작업은 숫자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집에 에어컨이 없다보니 퇴근해도 덥고 장모님이 TV를 즐겨보시기 때문에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쾌적한 사무실이 일하기는 것이 딱이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지.....

# 두~울

봉급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이리저리 부족한 돈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은 개인연금저축과 각종 보험금에 보험대출이자가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날이다. 보험대출이자는 제 날짜에 돈을 예치해두지 않았다가 연체가 되면 연 20%나 되는 고리의 연체이자를 물어야 한다. 어렵게 이자를 마련해 입금해놓으면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빠져나가 버려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참자~ 개인회생기간 동안은 어떻게든 참고 버텨 내야 한다.

#세~엣

"재명재윤이 아버님이시죠? 요즘 재윤 재명이 수업태도가 많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 공부도 열심히 공부해요. 둘이 서로 경쟁하며 공부하는데 참 귀여워요. 기말고사 결과가 기대가 되요" 내가 봐도 한달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제야 쌍둥이들이 철이 들어가나 보다.... 그래~ 아내 유언대로 쌍둥이들 잘 키워야지. 힘들어도 참자. 힘들어도 참고 살자. 힘들어도 이 악물고 살자~

#네~엣

"차장님! 6월말까지 노동부에 운영상황보고서, 국세청에 과세표준신고서를 신고해야 하는데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통 모르겠어요. 차장님이 한번 봐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제 메일로 자료를 보내주세요. 검토해서 연락줄께요"
"감사합니다. 지금 보내겠습니다"
 
3월말 결산 사내근로복지기금은 6월말까지는 운영상황보고와 법인세 신고를 해야 한다. 6월말이 코앞에 닥치니 여기저기서 SOS가 온다. 남의 일을 봐주다보면 정작 내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오늘같이 야근을 하게된다. 그러나 어떡하나?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다섯

"아버지, 치료 상태는 좋으세요?"
"응, 내 걱정은 마라. 지난번 서울성모에서 수술할 때 혈액검사에서 암 수치가 1.72였는데 엊그제 검사결과에서는 0.007이더라. 의사 선생님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전에 네가 보내준 책 이제야 시간이 나서 읽고 있다. 첫번째 책(사랑하지만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보다는 두번째 책(소심남녀제테크 도전기)이 더 재미있다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석대로 재테크를 했는데 너만 그렇지 못해 어째 시샘이 생긴다야~"
"이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되나요. 실패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실패를 한 상태에서 재기를 하여 성공한 사람이 진짜 성공자죠. 저 꼭 성공하여 책 하나를 쓸께요"

화순 전남대병원에서 전립선암 방사선치료를 받고 계신 아버지! 병실이 없어 지금은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전남대병원으로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으로 다니신다. 자식된 입장에서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뵙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불효를 어찌하리오~

지금의 아픔과 고통도 지나고 보면 내 삶에서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기억되겠지. 훗날 모든 빚 다 갚고, 어려움 다 극복하고 나서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소짓는 날이 오겠지. 나를 힘들게 했던 아내와의 사별도, 빚도, 개인회생도, 경제적인 고통도, 세 자식들 모두 내 감정의 폭을 키웠고, 나를 분발시키고 열정과 도전 그리고 성공을 자극했던 불쏘지개와 같았다고 고백하는 날이 오겠지. 다 내 삶에서 스쳐지나가는 과정이고 시간이 흐르면 씻겨 내려가고 잊혀져갈 한점의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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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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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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