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가 가사 중에 '세월이 약이겠지요. 서럽다 울지말고 괴롭다 슬퍼마세요'라는 대목이 있다. 실연한 사람에게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막상 실연이나 사별, 실패를 당하면 당시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이겨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을 가지고 견디다보면 그 아픔이나 슬픔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치유되고 해결되기 때문이 아닐까?
아내가 하늘나라에 간 후 두번째 이사를 했다. 아내 생전에는 집 알아보고, 계약하고 이사하는 것 일체를 아내가 주도적으로 알아서 처리했다. 아직도 집안에는 곳곳에 아내의 유품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집에 들어서면 아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거실 가족사진 속에, 안방에 들어서면 영정사진이 걸려있고, 집에 있는 장롱이며 가구, 그릇이며, 옷도 아내가 장만한 것이라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안방 서랍을 열어도 아내 유품(다이어리, 투병일지, 투병관련 자료들, 식이요법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메모지, 세브란스병원 유방암말기 진단서, 국립암센터 유방암말기 진단서, 투병관련 의무기록지 사본, 투병할때 복용했던 약, 가족사진 등)이 그대로 있다. 아내가 쓰던 지갑이며 핸드백도 쓰던 그대로 그냥 넣어두었다. 아내가 쓰던 지갑 속에는 우리 가족 사진이며, 내 사진, 자식들 사진이 꽂혀있다.
지금 보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유품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아내에 대한 애틋했던 마음이나 점점 옅어져 가고 하루 중에서 아내 생각을 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어간다. 아내와 보냈던 지난 추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농도가 옅어져 간다.
이번 이사를 하면서 안방에 걸어두었던 사진이며 액자 모두를 싸서 옷장 위에 올려두었다. 유품도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 둘씩 정리해 버린다.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며 살 수 있으련만 하늘나라로 간 사람인데...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이제는 미련을 접고 살기로 했다. 자식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짐은 계속 늘어만가고 이사를 다니면서 짐이 계속 늘어 비용도 늘고 힘들어진다. 얻음이 있으면 버림도 있어야 균형이 맞추어 진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이 작은 집에서 왠 짐이 이리 많는냐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장모님께 베란다에 있는 옹기그릇도 버리자고 했더니 "동치미를 담궈먹던 그릇이고, 쌍둥이엄마가 있을 때 산건데..." 하며 선뜻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신다. "앞으로 동치미를 담구어드실 겁니까?" 물었더니 이제는 힘드셔서 동치미를 담구지 못하시겠단다. 그럼 버리자고 했다. 괜히 아깝다고, 아내가 산 물건이라고 쓰지도 않으면서 보관한다면 다음 이사를 할 때에도 짐이 되고 이는 아내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아내 없이는 정말 살기 어려울 것 같았던 생활도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어 간다. 이전까지의 삶이 아내와 함께 했던 2인칭 삶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나 혼자의 1인칭 삶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이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이제는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당당히 이겨내고 싶다. 아내도 남겨진 남편이 나약하게 세상에 차이고 치이고 사는 것 보다는 자식들 잘 키우고 세상을 강하게 리드하고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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