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니 추석에 고향을 가지 않은지가 꽤 오래 되었다. 결혼 후 아내와의 약속(설은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고)에 따라 아내가 유방암판정을 받기 전인 2004년까지는 추석명절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고향을 다녀왔는데 2005년과 2006년은 아내 투병생활로 국립암센터에서 보냈고, 2008년과 2009년은 아내 제사상 사건으로 내려가질 않았다.
사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뵈면 상처하고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것만 같고 2007년 제사상 사건으로 장모님이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차려주는 차례상이 최고라고 그냥 집에서 추석차례를 지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바람에 2008년부터 연 2년 주저 앉았다.
아내 제사상 사건은 2007년 추석에 일어났던 한바탕의 헤프님이었다. 할아버지 기일이 추석이다보니 우리집은 추석차례상과 할아버지 제사상이 겸해서 준비한다. 할아버지 제사상이 주가 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부님과 증조모님, 거기에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밥까지 올려지다보니 아내 제사밥을 차릴 공간이 없어 아버지께서(사실 아버지는 며느리 제사밥까지 제사상에 올리면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사전에 둘째 동생에게 아내(큰형수) 제사상을 부탁하셨고, 이를 모르는 어머니가 둘째 작은어머니에게 큰며느리가 신경이 쓰인다고 하자 아내 생전에 사이좋게 지냈던 둘째 숙모께서는 그럼 우리가 쌍둥이엄마 제사밥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나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아내 제사밥을 차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추석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작은아버지 집에를 다녀왔다가 아버지께서 동생집에서도 제사밥을 차렸다고 다녀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면서도 아침 일찍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 제수씨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이후 시골을 다녀와서 조용히 넘어갔던 이 헤프닝이 한참 뒤에 장모님과 어머님이 통화하면서 큰며느리 제사밥을 시댁이 아닌 동생집과 작은아버지 집에서 이중으로 차리게 해서 미안했다고 이실직고를 해버리는 바람에 장모님께서 발끈하셔서 "그래도 장손며느리였는데 시댁 제사상에 오르지도 못하는 그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딸 은경이(집에서 부르던 아내 이름) 제사밥은 내가 직접 차릴테니 자네도 명절에 시골 내려갈 생각은 하지 말게" 엄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중간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제사밥을 올려야 할 대상이 많은 우리집인지라 연로하신 장모님 화가 풀리실 동안은 그냥 장모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올해 3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전림선암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하시는 동안 큰아들인 내가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자주 찿아뵙지도 못해 죄송하여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추석명절을 보낼 수 없었다. 마침 시골을 편하게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회사 게시판에 9월 21일 아침 7시 20분발 용산-목포 KTX 표가 딱 한장이 나와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고향에 가면 내 형편은 모르는 친척들은 다들 '왜 재혼을 하지 않느냐?', '언제 재혼할거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 재혼을 채근하고 독촉할텐데 내려가도 마음은 편치 않을 것 같다. 또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싱글대디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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