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살아야 된다니까?"
"맞아~ 우리 친정집도 보면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혼자 남아계시니 누구 돌봐주는 자식도 없고 문제더라고~"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오래살잖아~"
"그래 맞아, 남자는 챙겨주는 여자가 있어야지, 늙어서 혼자 남으면 애물단지가 된다니까~"
"맞아맞아~ 노인들은 잘 씻지도 않아서 옆에만 가도 역겨운 냄새가 진동한다니까~ 우리 시아버지도 혼자 되신지 3년째인데 평소 몸을 잘 씻으시라도 그렇게 말씀드려도 잘 씻지도 않으셔. 그러니 손자들이 할아버지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할아버지 곁에도 잘 안가려고 그래"
"앞으로는 사람이 더 오래 살게 된되잖아. 2030년에는 사람수명이 평균 90살이 될거라는데 우리는 그럼  앞으로 40년을 더 살겠네..."
"어휴~ 징그럽다. 아파서 골골하면서 그리 오래 살면 뭐하냐? 자식들에게 짐만 되지"
"나는 좌우지간 남편보다 오래 살꺼야. 그래야 우리 남편이 애물단지가 되면 안되잖어. 그치 여보?"

지난 일요일, 교회 식당봉사를 갔는데 여자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싱글대디 직접적인 당사자라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가족 아니 10년, 20년, 30년후 우리 모습일 수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은 불행은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닥칠 수 있는 일인데에도 자신에게만은 예외이고 비켜갈 것으로 착각을 하고 사는 불쌍한 존재들이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당장 내일이 기초단체장과 시도위원, 교육감과 교육위원을 뽑는 선거인데 누가 당선되고 누가 떨어질 줄 어찌 알겠는가? 물론 여론조사나 지지도를 측정하여 당선확률이 높은 사람이 누구일 것이다라는 것은 알지만 항상 예외라는 것이 있고 이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래서 인생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모른다.

불과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벤처기업 사장을 하면서 잘 살던 친구가 하루 아침에 와이프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회사가 어려워져 지금은 15년째 키워온 회사를 자기 손으로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았다. 나도 2005년 5월, 평소 건강하여 출산 이외에는 병원을 다녀본 적이 없던 아내가 유방암 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진단결과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아내와 사별하게 될 줄을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래 다 맞는 말이지,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살아야 조화로운 삶이 되지. 가려울 때는 서로 등도 밀어주고, 집에서 목욕을 할 때도 등을 밀어주고 잔 심부름이며, 대화 상대는 부부 이상이 없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을 걸리는 이유도 진정한 대화상대가 없어서이겠지. 가장 이상적인 부부 연령차이는 동갑내기라고 하는 것도 상하나 주종이 아닌 친구처럼 격의없이 사는 부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 아닐까?

휴~~ 나도 나이 들어서 자식들에게는 짐이 되지 않아야지. 어떻게 해야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을지 차근차근 준비하고 실천해 나가야지.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다가올 10년, 20년, 30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김연구원님은 저희 연구소 롤 모델입니다"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 공동소장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지금은 나이가 두번째로 밀렸지만 불과 한달전까지만해도 교육생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술 약속, 각종 모임을 뒤로 하고 매주 이틀씩 회사 업무를 마치면 꼬박꼬박 강남역부근으로 가서 미래예측기본과정과 미래예측전문가과정에 참석하여 교육 듣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젊은 연구원들이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지난주 어느 젊은 연구원이 나에게 묻기에 나는 "제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회사'(사카모토 코지 지음)에 소개된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회사인 일본 이화학공업(50여명의 사원중 약 70퍼센트가 지적장애인임) 사장인 오오야마씨도 처음에는 양호시설에 있으면 편하게 살텐데 왜 회사에 들어와 힘들게 일을 하려는지 그런 장애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의문은 그가 한 법요 자리에 참석하여 함께 한 스님에게 의문점을 물어봄으로서 풀렸다. 스님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행복은 첫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둘째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 셋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넷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 중 첫째 외에는 양호시설에서 얻을 수 없잖습니까? 이 세가지 행복은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내 절박한 환경 못지않게 일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나 보람이 나를 더욱 일에 배움에 몰입하게 한다. 아내사별이나 싱글대디의 아픔과 상처도 스스로 자가치유하며 돈에 대한 다소간의 불편은 마음을 비우고 씀씀이를 줄여나감으로써 해결해 나간다. 이 힘든 상황을 내가 버티어 줌으로써 내 가족들이 편히 살고 자식들은 나날이 성장해나가고 황무지와 같은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를 운영하는데 내가 쓴 책이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이 실무를 처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내 글을 통해서 삶의 목표를 찿게되고 좌절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답글에서 내 스스로 자가동력을 공급받는다.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되고, 도움이 되고, 자극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람...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런 롤 모델이라면 사양치 않고 더 열심히 그리고 기꺼이 그 역할을 수행하리라!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월 11일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가 백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늘도 녀석들의 졸업을 축하해 주는 듯 눈이 내려 온 대지를 하얗게 덮었다. 아내 없이 장모님과 큰애, 나 셋이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고 메꾸어가며 뒷바라지를 하여  녀석들이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감개무량하다.

회사에는 쌍둥이들 졸업식 때문에 늦는다고 양해를 구하고 녀석들 졸업식을 지켜보고 출근을 했다. 생각해보니 녀석들을 키우는데 많은 위가가 있었다.

첫째는 2005년 5월초 아내의 유방암 말기판정과 1년6개월의 투병생활이었다. 집안 식구들 관심이 온통 아내 투병생활로 집중되다보니 녀석들 뒷바라지는 뒷전이었다. 경제적인 부담때문에 다니던 속셈학원도 끊었다. 녀석들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때였으니 한참 손이 많이 가는 시기였다. 엄마의 투병생활과 헤어짐을 잘 견디어준 녀석들에게 감사한다.

둘째는 도벽이었다. 4학년 때부터 내 지갑과 장모님 지갑, 큰애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특히 장모님 지갑은 감시가 소홀해서 자주 꺼내다 썼다. 내 지갑과 큰애 지갑은 금새 표시가 나니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 같다. 회초리를 들기도 했고, 파출소에 데리고 갈려고도 생각해 보았다. 결국은 녀석들을 믿고 기다려 주면서 용돈을 주기 시작하며 용돈관리를 시켰다. 한달 용돈으로 기본 만원, 성과급으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하면 15,000원, 반 1등은 만원, 과목당 100점은 2000원씩을 주었다. 거짓말처럼 도벽이 사라졌다.

셋째는 재명이의 왕따사건이었다. 4학년 1학기에 재명이 책가방 끈이 칼로 잘리고, 재명이 알림장에 '재수없는 새끼 죽어버려'라는 섬뜩한 글이 쓰여있는 것을 큰애가 발견하고 추궁해보니 학급 모둠친구 5명이 공부를 잘하는 재명이를 미워하며 수업시간에 왕따를 시키고 괴롭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함에 치가 떨렸으나 조용히 선생님께 재명이에게 들은 사실을 편지로 써서 보내드리고 알림장 노트에 쓰여진 글과 칼로 잘려린 가방을 선생님께 꼭 보여드리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 학년 회의가 소집되고 상담을 통해 재명이를 괴롭혔던 학생들이 밝혀지고, 괴롭혔던 5명의 아이들 엄마들이 학교로 호출되고 5명의 친구들도 재명이에게 사과하고 부모들은 재명이에게 가방까지 새로 사주며 수습이 되었다. 재명이의 바람대로 모둠을 옮기도 예전의 밝은 모습을 회복할 수 있었다. 모둠에서 재명이를 제일 괴롭히고 칼로 가방끈을 잘라버리라고 시켰던 학생이 여학생이었다는 사실도 충격이었다. 

넷째는 PC방 출입사건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나쁜 손버릇으로 생긴 돈을 가지고 PC방을 들락거렸다. 자연히 학교나 학원성적은 엉망이 되어 갔다. 큰애랑 상의한 끝에 집에 있는 PC를 조립하여 게임을 갈아주고 숙제를 마치면 하도록 허용해 주었다. 그 이후 도벽습관도 없어지고 PC방 출입도  줄면서 학교와 학원 성적도 오르기 시작햇다. 간혹 재명이 담임선생님께서 알림장이나 휴대폰 메시지로 PC방 출입사실을 알려주어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다. 

많은 어려움, 특히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고통을 극복하고 맞이한 쌍둥이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이기에 더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장모님과 큰애, 학교 담임선생님과 영재반 강종구선생님, 서울학원 선생님들, 아내의 빈자리를 많이 채워주신 처형과 지영이 민규, 한소망교회 청소년부 신종녀선생님과 늘 기도를 아끼지 않으신 정성진집사님과 김수희권사님,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부터 설날 연휴가 시작된다. 친구들은 오늘 고향을 출발한다, 내일 새벽에 출발을 한다, 부모님과 가족들과 만난다, 시골에서 친구들끼리 모여 술 한 잔 하자는 등 들떠있지만 나는 도통 명절 기분이 나지를 않는다.

우리집은 할아버지 형제분이 삼형제(고모할머니도 계셨지만 잘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아버지 형제가 5남 2녀, 우리 형제가 5남이나 동생들은 나이 차가 있고 어릴적 나는 항상 삼촌들이나 고모들을 따라다녔다. 명절이면 온 가족들이 다 모이고, 작은할아버지나 사촌 작은아버지들도 차례 때문에 우리집으로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명절이 지나고 삼촌과 고모들이 객지로 다시 떠나버리면 집안 분위기는 왜그리 쓸쓸하고 허전했던고....

설날은 뭐니 뭐니해도 모처럼 새 옷을 입을 수 있고(아마 1년에 새 옷을 입을 수 있던 기회는 설날과 추석 딱 두번이 아니었을까?) 세뱃돈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할아버지께서는 신권으로 바꾸어 세뱃돈을 주셨다. 그러면 나는 그 신권이 아까워 쓰지도 못하고 그냥 몇날 며칠을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다보면 손떼가 묻어 헌돈으로 변해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부모님과 장모님, 어른들의 세뱃돈과 자식, 조카들 세뱃돈을 챙겨주어야 하고 작은아버지며 고모, 처이모님 등 찿아뵙지 못하는 분들의 명절 선물을 챙겨드려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아내가 있을 때에는 선물이며 신권세뱃돈은 모두 아내가 다 알아서 척척 준비했으나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한다. 넉넉치 못한 살림에 가계를 꾸려나간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실감하며 산다.

명절이 되면 만나는 사람마다 사별한 아내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하곤 한다. 유난히도 손이 크고 친척들에게 이것 저것 많이 챙겨주었던 아내였다보니 다들 잊지 않고 한마디씩 거든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아쉬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만은 그래도 마음이 따스했던 사람이라 사람들에게 정을 많이 남겨놓고 간지라 그 빈자리가 크고 명절이면 나를 향한 연민의 눈길과 말이 오가는 그런 분위기와 자리가 부담스럽고 자꾸 피하게 된다. 명절때면 더 위축되는 싱들대디의 삶~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근무시간에 휴대폰진동음이 울린다.
발신번호가 '아부지'로 되어있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면서 아버지를 부를 때는 '아버지'보다는 '아부지'로 부르는 것이 더 좋았고 정감이 있었다. 내가 쓰는 휴대폰의 이름입력어 중 사람이 아닌 단어가 딱 세개 있는데 '우리집', '울마눌', '아부지' 중 하나이다.

나 : "아부지세요?"

아부지 : "응, 승훈이냐? 지금 사무실이냐?"

나 : "네"

아부지 : "가만, 쌍둥이들 생일이 11월 10일 아니냐? 사돈어른 이야기를 들으니 이모가 어제 생일잔치를 준비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 : "쌍둥이들 생일이 원래 양력으로 11월 10일이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애엄마 기일과 날짜가 겹치다보니 애엄마 기일은 음력으로, 쌍둥이들 생일은 양력으로 치르고 있고요"

아부지 : "그러냐? 사돈어른이 검정쌀을 부탁하셨다고 그래서 오늘 한가마 찧어서 보낸다. 그리고 얼마되지는 않지만 돈도 부쳤으니 쌍둥이들에게 필요한 것 사주거라"

나 : "아부지도 힘드시면서 무슨 돈이 있으시다고 돈을 부치세요"

아부지 : "가까이라도 있으면 가서 녀석들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 싶다만 쉽지가 않구나"

나 : "죄송해요. 제가 오히려 돈을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부지 : "네가 열심히 살고 있으니 됐다. 이만 끊는다"

서둘러 전화를 끊는 아부지. 내 밑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동안 알토란같이 일군 땅을 모두 팔고 지금은 신용불량까지 몰리신 우리 아부지. 그런 아부지께서 쌍둥이들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니 갑자기 목이 맨다. 당신도 어려운데....

시골을 내려가지 못한 것이 벌써 2년이 넘었구나. 학교 진학이며, 취직, 결혼 등 부모에게 걱정끼쳐드리지 않고 잘 헤쳐나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던 아부지였다. 그러나 믿었던 큰 자식이 경제적인 어려움, 아내의 사별, 남겨진 세 자식을 데리고 혼자 사는 기막힌 모습이 많이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당신도 젊어서 아내와 사별을 했는데 큰아들인 나도 똑같이 아내와 사별하고 사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시며 이제는 쌍둥이엄마 잊고 빨리 새로운 사람 만나라고 하시는 우리 아부지. 2주전 막내가 6학년 전교에서 1등을 했다고 알려드렸더니 기뻐하시던 우리 아부지.

아부지! 저 꼭 재기하렵니다.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주전, 회사 사무국장님이 '당신, 앞으로는 자꾸 미스최 이야기는 하지마'라고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국장님 뜻을 잘 압니다. 당신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 지난 23여년간 당신과 너무도 가까웠고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고 흉금을 털어놓고
지냈던 몇사람 안되는 선배님이셨는데 그런 국장님이 이제는 당신을 잊으라고
말하십니다.

국장님 뜻은 잘 압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으니 나더러 더 이상 당신과의
있었던 과거 추억에 머물러 살지 말고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지난 추억을 훌훌
털고 아내의 사별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 갈길을 가라는 뜻이겠지요.
더 나아가서는 재혼을 염두에 두라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당신을, 당신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행복했던 지난날의 시간들을
내 기억속에서 밀어낸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난 아름답던
추억을 회상하며 살게 된다는데 우리 가족 좋은 일, 궂은 일,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당신이 생각납니다. 요즘 동규가 애비에게 무슨 섭섭함이 있는지 나에게 다가오지를
않으니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이런 가족들 문제를, 답답함과
서운함을 상의해야 할지 마음이 아려옵니다.

늦은 저녁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에는
유난히도 크고 밝은 별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당신의 큰 눈과도 닮았습니다.
첫 만남에서 나를 쑥 빠져들게 했던 눈이었지요. 그 크고 아름다웠던 호수같은
눈은 아직도 나를 당신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찌 해야할지 오늘 저녁 살짝 내 꿈 속에 와서 알려줄 수는 없는지요?
하늘나라에는 병이 없다는데 나에게 다시 올 때는 마지막 헤어질 때 모습이 아닌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아리따운 모습으로 왔으면 합니다. 그래야 내가 마음이
덜 아플테니까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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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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