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시작한지 만 29년이 되는 날이다.

1985년 6월 30일 ROTC 전역 후 (주)대상에 입사하여 회장비서실과 본사

기획실에서 7년 8개월 근무하고, 기획실 관리과장 승진 발령을 받고 2일째

되는 날, KBS에서 새로 발족하는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인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창립요원을 공채로 채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시하여 합격 후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갑작스런 사직서 제출에 사표 수리가 늦어지고 인수인계 때문에 입사일자를

2주 늦춰 2주를 더 근무하고 1993년 2월 16일자로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직해 20년 9개월 근무를 한 뒤 2013.11.5일자로 일반퇴직으로 사직을 했다.

이미 내 활동무대가 전국인데 KBS사내근로복지기금에만 머무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리고 상사의 견제도 심했고.... 

 

그후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창업해 만 8년 3개월째 이르고 있다.

1993.2.16일부터 지금까지 만 29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파고 있다.

1996년 12월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에 지원, 합격하여 1997년 3월부터

3년 동안 자비로 경영학석사 과정을 이수했고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주제로

경영학석사 논문을 썼고, 2000년 2월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고 11년이 지난 2011년 3월 내 나이 50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 역시 자비로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경영학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5년 6개월 만인 2016년 8월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주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제1호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느 책에서 전문성을 갖추려면 일만 시간을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는 법칙을

이야기했는데 이는 1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일만 시간을 년으로 환산하면

1,000시간이고 다시 날짜로 하루 2.74시간이,고 휴일 110일 빼면 254일로

환산하면 평일에 하루 3.92시간 즉 하루 4시간 이상을 하루도 빼지 않고

계속해야 하는 시간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세 번 강산이 변한 시간에서 딱 1년이 부족한

기간 동안 오직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로 한 우물을 팠다.

내가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행운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회를 놓치고 나서 후회를 한다. 나도 남들처럼 놀 때

놀고 편하게 살았으면 오늘처럼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7년 8개월 동안 대기업에서 정말 빡세게 근무를 하며 배움에 대한 갈증과

열정이 있었기에 내 자비를 들여 석사와 박사학위 취득, 사내근로복지기금

전문도서 5권 출간, 기금실무자교육 개설하여 강의 실시, 평일이면 매일

사내근로복지기금 칼럼 쓰기(오늘까지 3,856호)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 호흡기내과 진료를 위한 사전 검사 때문에 서울성모병원을 갔는데

건너편에 중앙도서관 건물이 보였다. 지난 2011년부터 2016년 6월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 박사 논문을 쓰느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자료와

뿌리를 찾기 위해 무거운 노트북과 책가방을 들고 휴일날이면 일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자주 갔던 곳이다. 내 열정과 도전의 땀이 서려있는 곳이다.

 

꿈을 이룬 사람은 고생했던 장소를 보면 성공의 과정이었기에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 근처에도

가기 싫어한다. 오늘 오늘이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시작한지 만 29년째라,

박사학위 논문 때문에 고생했던 중앙도서관 건물을 쳐다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이제 회사에 근무하는 우리 친구나 동기들은 없다.

나처럼 주민번호가 2년이나 늦었어도 올해가 60세 정년이다.

그래도 나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공기업에 준하는 직장에

근무했던 친구나 동기들도 하나 둘 퇴직하더니 이번 연말을

마지막으로 다들 직장을 떠난다.

 

역시 사람들이 공기업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한때는 은행이 선호하는 직장이었으나 요즘은 50이 되기 전에

희망퇴직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것 같다. 그나마 은행은 두둑한

희망퇴직금이라도 받으니 역시 은행은 좋은 직장이다.

 

문제는 퇴직 이후이다. 요즘은 퇴직 이후 마땅히 갈 곳이 없다.

30~40대 실력있는 젊은이들이 중도에 쏟아져 나오다 보니

60대 퇴직자가 갈 재취업 자리가 보이지를 않는다.

 

어제, 굴지의 대기업을 임원으로 작년 말에 퇴직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1년동안 재취업을 해보려고 백방으로 뛰었으나

만만치 않더란다. 결국 회사에서 제공해준 3년짜리 해외영업

고문으로 가기로 했단다. 가면 3년동안 나오기 어려우니

내년 초 출발이니 올 연말 안으로 식사나 하자고 했다.

 

중견그룹 임원을 했던 고등학교 친구도 퇴직 후 3년째 놀고 있다.

더 젊고 똑똑한 40~50대 대기업 관리자 출신들이 쏟아져 나오니

작은 일자리를 놓고 그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정년이 없는 직장이라고 다들 부러워한다.

결과만 보면 그렇게 보이겠지. 사람들은 이 자리가 있기까지

그 사람이 했던 노력은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껏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설립실무, 결산실무, 회계 및 예산실무, 법인설립실무의

총 다섯 권의 사내근로복지기금 단독 집필 책을 쓰느라 엉덩이가

짓무르고 탈모에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거 있다. 늦은 나이에 연구소

일을 하면서 날밤을 세워가며 경영학박사 논문을 썼고, 총 네 번의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매월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교재를

업데이트를 해왔고2005년 3월 16일부터 어제까지 17년째 

3,811개의  김승훈의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이야기 칼럼을 

꾸준히 써왔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지금도 투자사업을 위해 매일 두 시간 이상 기사를 검색하고

투자종목을 연구하고 있다.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연구소 교육사업의

부진을 투자사업에서 만회할 수 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지금껏 살아보니 딱 하나 통하는 진실이 있었다.

'땀과 노력은 결코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홈페이지(www.sgbok.co.kr)

 

어제 오전에 서울에 소재한 모 대기업과 사내근로복지기금 합병컨설팅 미팅을 다녀왔다. 그 대기업도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 분할이나 사내근로복지기금 합병, 사내근로복지기금 해산은 아무나 해낼 수 없는 전문영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물론 대형 법무법인에서는 가능할 것이나 들여야 하는 비용이 억대에 이른다. 나도 수년 전 모 대기업이 몇 개 자회사를 분사시키면서 사내근로복지기금도 분할해야 하는 이슈가 생겨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메이저 법무법인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분할작업에 대한 전략적인 제휴 제안을 받았는데 그 법무법인에서 생각하는 금액이 수억원이었기에 정중하게 사절한 바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해당 회사 직원들의 복지증진에 사용해야 하는데 수억원을 사내근로복지기금 분할컨설팅에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컨설팅을 수행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당장은 돈을 많이 받으면 좋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가 태어나게 된 배경이나, 성격과 제도 본연의 취지를 생각한다면 선뜻 내키지 않았다.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에서 최종 관건은 늘 컨설팅 fee, 곧 돈이다. 그래서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는 서로가 윈윈하는 선에서 컨설팅 금액을 제시하고 있다. 간혹 하도급업체 다루듯이 컨설팅 금액을 후려치는 회사들이 있는데 그런 회사들과는 거래를 하지 않음을 원칙으로 한다. 2013년 12월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국내 굴지의 모 대기업이 3자(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사내근로복지기금 합병법인, 사내근로복지기금 피합병법인)가 작성하고 법인인감까지 날인한 사내근로복지기금 합병컨설팅 계약서를 그 회사 자금팀장이 손으로 찢고서 "컨설팅을 하려면 지금 계약서의 절반으로 금액을 깎아 와라"라고 큰소리 치자 "저희도 그런 금액으로는 컨설팅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회사를 나왔고 그 회사와는 그 이후 일체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

 

컨설팅은 서비스 용역이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회사와는 거래할 필요가 없다. 설사 거래를 한다고 해도 과정마다 끝없는 굴종을 강요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본인 스스로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설 자리가 없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연구하며 29년째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어제 사내근로복지기금 합병컨설팅 미팅을 가졌던 회사 회의실에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 한 말이 액자로 만들어져 걸려있기에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다.(Nothing great on the world has been accomplished without passion.) 그 중심에 내가 좋아하는 열정(Passion)이 있다.

 

나는 1993년 2월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직한 이래 지금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와 기업복지제도에 대한 열정 하나로 살아왔다. 이러한 열정이 사내근로복지기금 전문도서 5권 단독 집필, 경영학박사(우리나라 사내근로복지기금 제1호) 학위 취득, 경영지도사(재무관리) 자격증 취득, KBS사내근로복지기금에서 외부 강의를 금지하자 일반퇴직하고 맨손으로 구로구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창업하여 2년 9개월만에 기금실무자들에게 공언대로 연구소를 강남으로 이전하였고 연구소 교육을 통해 내 지식과 경험을 기금실무자들과 나누고 있다. 열정은 꿈을 꾸게 만들고, 꿈은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다음은 영화 <철의 여인>에서 치매에 걸린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면서 남긴 말이다. 열정은 생각을 만든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는 실현된다.

 

김승훈박사의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이야기를 보려면 여기(www.sgbok.co.kr)를 클릭하세요.

 

경영학박사 김승훈(사내근로복지기금/공동근로복지기금&기업복지)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허브 (주)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www.sgbok.co.kr

전화 (02)2644-3244, 팩스 (02)2652-3244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112길 33, 삼화빌딩 4층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오전에 모 업체와 사내근로복지기금 합병컨설팅 미팅을 마치고

그 회사 회의실에 걸려있던 액자에서 본 글귀를 한 컷 찍었다.

 

Nothing great on the world has been accomplished without passion.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이 한 말이다.

그 중심에 내가 좋아하는 Passion 이 있다.

 

지금껏 나는 열정 하나로 살아왔다.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에 대한 열정.

기업복지제도에 대한 열정.

자기계발에 대한 열정.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배우고자 하는 열정.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

갑부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얻고자 했던 열정.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정점을 찍고 싶은 열정.

 

이러한 열정이 하나 하나 무에서 유를 창조해가고 있다.

끝없는 열정이 꿈이 되고,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 전문도서 5권을 단독으로 집필했고,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경영지도사(재무관리) 자격증을 받았고,

안정적인 직장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일반퇴직으로 퇴직하고

구로구에다 맨손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창업했고,

그 뒤 2년 9개월만에 공언대로 연구소를 강남으로 이전했다.

2016년 강남으로 전월세로 이사하여 3년만에 아파트를 장만했고

비상장기업인 쎄니팡에 투자하여 경제적 자유를 얻어가는 중이다. 

또한 자식 다섯 모두를 잘 키웠다.

 

영화 <철의 여인>에서 치매에 걸린 마가렛 대처 전 영국수상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면서 남긴 말이다.

 

생각을 조심해라.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성격이 된다.

성격을 조심해라. 운명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우리는 실현된다.

 

열정은 생각을 만들고,

열정이 종국에는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홈페이지(www.sgbok.co.kr)

 

지난 1993년 2월,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직하여 지금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업무를 하고 있으니 햇수로는 29년째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중에 한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하는 직장인들은 많은데 이런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한 업무만 적게는 30년에서 많게는 40년, 아니 평생을 한 업무만 하신 분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그 분야 일은 A부터 Z까지 훤히 꿰뚫고 있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실재로 전 직장에서 아시는 어느 분은 직무가 자동차 정비였는데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들어도 차 상태를 아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전기차가 많이 나오지만 예전에는 자가용으로 경유차나 휘발유차가 대부분이었고 엔진 상태가 매우 중요했고 주기적으로 엔진 보링을 해주어야 했던 시기였다.

 

한 회사에서, 아니 이직을 해서 같은 업무를 20년 이상 했으면 적어도 그 분야의 책 한 권을 쓸 정도의 전문성을 축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보통 일만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하는데 평일 하루에 4시간씩 52주를 근무하면 1,040시간이고 10년이면 10,400시간이 된다. 20년간 평일에 회사를 나가 같은 업무를 4시간씩 근무하면 2만시간이 되기에 마음만 먹으면 전문성을 갖출 충분한 시간이고 20년이상 직장생활을 했다면 그 분야의 도서 하나를 집필할 전문지식을 갖출수 있고 이를 책으로 펴낼 수 있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직장인들이나 직장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책으로 펴내는 사례들이 많은데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도서를 펴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한 것도 아쉽다. 물론 회사측에서 회사의 영업비밀이나 기술 보호에 대한 제약 때문이라면 어쩔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한 사무직군들은 본인 마음과 노력만 있으면 책을 집필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는데도 이를 하지 않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나의 경험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분석해 보면 회계와 세무업무가 50%, 기획업무가 30%, HR 및 노무 업무가 10%, 등기 및 대관업무가 10%로 본다. 「근로복지기본법」이 노동법으로 분류되다 보니 노무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덤볐다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HR 및 노무 업무 비중이 작고 회계와 세무, 기획업무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한 법인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업무이다. 회사에서 출연해준 돈을 운영하고 관리(지원)하는 자금관리, 회계처리, 세무관리업무 비중이 가장 크고 그 다음은 정관이며 시행세칙을 제·개정하고, 협의회 및 이사회 의안 및 회의록 작성, 예산편성, 출연전략 마련, 목적사업 전략 마련, 홍보 업무 등 기획업무가 그 다음으로 많다.

 

요즘 직장인들은 힘든 일과 업무를 기피하는데 길게 보면 이런 업무들을 잘 배워두면 자신에게 득이 된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를 빨리 파악하고 꿰찰 수 있었던 이유도 전 대기업(주식회사 대상)에서 7년 8개월동안 회장비서실과 기획실에서 기획업무, 예산, 결산, 원가관리, 설비투자관리, 감사업무까지 제대로 배우고 두루 섭렵했기 때문이다. 특히 영리회계인 기업회계기준을 익혔고 대기업의 예산과 관리결산 작업을 직접 수행했었기에 비영리를 추가로 배우니 빨리 실무에 적응할 수 있었다. 첫 직장은 빡센 대기업에서 시작했던 것도 좋은 경험이자 자극이었다. 첫 직장을 공기업에 입사를 했더라면 현실에 안주하며 지금과 같은 자기계발 습관은 몸에 배이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힘든 곳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자기계발 습관이 길들여졌고,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전직을 한 이후에도 대학원에 진학하여 경영학석사, 경영학박사 학위 취득, 경영지도사(재무관리) 자격증 취득, 사내근로복지기금 전문도서 5권 집필을 하게 되었다. 환갑이 지난 지금도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연구와 기금실무자을 대상으로 강의, 컨설팅을 계속하고 있으니 모두가 지난 자기계발 덕분이다.

 

김승훈박사의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이야기를 보려면 여기(www.sgbok.co.kr)를 클릭하세요.

 

경영학박사 김승훈(사내근로복지기금/공동근로복지기금&기업복지)

사내(공동)근로복지기금허브 (주)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www.sgbok.co.kr

전화 (02)2644-3244, 팩스 (02)2652-3244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 112길 33, 삼화빌딩 4층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둘째가 피부과 전문의 실시시험을 마쳤다.

실시시험 치르기 이틀 전 호텔에 들어가 대기하고 나서

어제 고대에서 실시시험을 치렀다.

 

어제 연구소에서 밀린 일을 마치고 자정 무렵 퇴근하고

집에 갔더니 둘째가 "그동안 감사합니다"하며 나에게

안긴다. 필기와 어제 실기시험 모두 잘 치렀단다.

함께 시험을 치른 응시자들끼리 서로 가채점을 해보더니

대충 합격할 것 같단다. 최종 합격자 발표는 오는 18일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아부지, 이제부터 사람들이 '자식 뭐하노?'하고 물으시면

그냥 의사라고 하지 마시고, 꼭 '피부과 전문의'라고 하셔야

합니다. 피부과 전문의는 1년에 딱 70명 배출합니다."

 

그래, 의대 예과2년 - 본과 4년 - 인턴 1년 - 레지던트 4년,

11년 간 힘든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다. 중도에 압박감을

못이겨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 전문의 시험을

망치고 자살하는 경우도 이번에 있었다고 한다. 길고도 힘든

과정 잘 견디어 주어 감사하다.

 

3월 10일에는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3년간 군 의무복무를

해야 한다. 레지던트를 하면서 박사과정까지 밟아서 3년

군의관 복무를 마치면 다시 남은 박사과정 2학기를 마치면

정식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가장 난제인 해외논문

등재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해외에 보낸 논문이 마무리

보완 지시가 떨어져 다시 마무리 작업을 해서 보내면 곧

등재가 될 것 같단다. 군 입대하기 전에 논문 마무리작업

한다고 방금 원주로 부랴부랴 떠났다.

 

내 꿈이 내(代)에서 우리집에 전문가 집단을 만드는 것과

완전한 경제적인 자유를 획득하는 것인데 두 가지 모두가

순항 중이다. 우리집에 나 다음으로 2호 박사가 탄생하게 된다.

아내는 경영학석사를 끝으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하고,

다음에는 남은 네 자식 중에서 누가 박사 3호가 되려나?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게들의 손 바뀜이 많다.

오늘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출근하면서 보니 근처 가게

두 곳이 공사 중이다.

 

버티지 못하는 사람은 떠나고,

다시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OECD 국가 중 자영업 비중 순위를 보면 2019년 기준 한국은

8위(24.6%)로 나타났다.(참고로 일본은 28위 10.0%, 독일 31위 9.6%,

미국 36위 6.1%) 우리 앞에 있는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는

GDP가 낮은 국가들이다.(콜롬비아 50.1%, 브라질 32.6%,

멕시코·그리스 31.9%, 터키 31.5%, 코스타리카 26.6%,

칠레 25.8% 순) 대학을 졸업한 청년층이나 40~50대들이

회사를 퇴직한 이후 뚜렷히 할만한 것이 없으니 진입장벽이

비교적 쉬운 숙박·음식점업이나 도·소매업을 시작하다 보니

좁은 시장이나 수요층을 놓고 무한경쟁을 펼치게되고 생존율

또한 낮아지게 된다.

 

통계청 기업생멸행정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주요산업별

기업의 5년 생존율은 숙박·음식점업이 가장 낮은 20.5%,

도·소매업이 그 다음으로 낮은 27.9%이다. 전체 평균은

31.2%이다.

 

나는 연구소 교육에 참석한 기금실무자들에게 내 경험으로

늦어도 40대 초부터 퇴직 이후를 준비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나는 36살부터 퇴직 이후를 준비했던 것 같다. 1996년에

경영지도사(재무관리) 도전, 1997년에 합격, 1997년부터

중앙대 대학원 입학하여 2000년 2월 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 도서 5권 출간,

2004년부터 사내근로복지기금 강의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50이 훌쩍 넘은 2011년에는 늦은 나이에 경영학박사

학위에 도전하여 5년반 만인 2016년 8월에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쎄니팡에 투자했다.

이런 기초가 있었기에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의 자발적인

퇴직이 가능했다. 연구소를 개소한 7년 전에는 퇴직 이후를

준비하라고 하면 시큰둥하던 기금실무자도 지금은 진지해졌다.

그만큼 상황이 급변한 결과이다.

 

부모에게 거액의 유산을 받았거나 배우자가 부자인 사람,

사업으로 충분한 재력을 비축한 사람, 그리고 금퇴족이 아닌

이상, 퇴직 이후는 본인 스스로 대비하고 해결하야 한다.

쎄니팡에 투자한 사람들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앞으로 쎄니팡이 전세계 글로벌 상수도배관 시장을 개척하면

배당을 실시할 것이고(김병준대표의 오래 전 약속이다)

주가상승에 배당금으로 부모에게 거액을 상속받은 사람이나

금퇴족 못지 않은 편안한 노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쎄니팡에 투자하라고 권유했을 때 사기라고 비웃고 나를

휴대폰 수신거절로 해놓고 인연을 끊었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굴러온 복을 스스로 걷어찼다고 두고두고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인생에서 대박 인연은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에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쎄니팡과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인연으로 나를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그들이 잘 되기를 매일 기도한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004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금실무자 강의를 시작한지

어언 17년째, 그동안 불모지와 같았던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책자를 단독으로 집필하면서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교육을 시작하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내가 사내근로복지기금 교육을 시작하니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지식과 정보부족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던 회사 관계자나 기금실무자들의 호응이 뜨거웠고

참석자들도 많았다. 교육기관은 대박이 난 셈이었다.

 

그동안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지식과 정보 갈증에 시달렸던

사람들이다 보니 교육때 질문들이 쏟아졌다. 심지어는 교육 중

쉬는 시간에도 질문하려고 줄을 서는 바람에 화장실을 가기도

힘들었다.

 

2004년 당시 그동안 12년간 사내근로복지기금 업무에 전담으로

올인하며 고민하고 연구했던 내 실전 경험과 중앙대학교대학원에

진학하여 장지인 교수님께 지도받은 사내근로복지기금 결산과

회계처리방안이 큰 힘이 되었다. 기금실무자들의 질문들이

대부분 그동안 내가 고민했던 사항들이었기 때문에 즉석에서

답변해주는 것에 대부분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에서만 기금실무자 교육을

직강하고 있는데 교육 중이나 쉬는 시간, 교육이 끝난 후에도

기금실무자들의 질문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열정은

전염되는 것 같다. 활기차고 반짝이는 기금실무자들의 눈빛이

아름답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주, 공기업에 근무했던 어느 지인을 만났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는 공기업에 근무하며 기세등등했다.

억대 억봉을 받으며 대접받던 그 위세와 당당함이 언제까지

계속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영원함은 없다.

어느 유행가 가사에 나오는 말이 정답이다.

'화무(花無)는 십일홍(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

 

직장인으로서 누렸던 영화는 직장을 떠나면 끝이다.

이제는 집에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간혹 아는 지인들에게

전화하여 취업 부탁을 한다고 한다. 최저임금만 받아도 좋으니

시키는 일을 할테니 딱 1년만 채용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나는 그 지인에게 5년 전에 박사과정 진학을 권했었다.

지난주 만났더니 5년 전 그때 내 권유대로 박사과정에

진학해 박사 학위를 취득해 놓지 않은 것이 요즘 너무도

후회된단다. 당시 좋은 직장에 근무했으니 학비도 50% 감면,

시간도 많아 학위 취득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니 당장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엄두도

나지 않고, 재취업을 하려 해도 석사 라이선스로는 명함도

내밀기 어렵고, 내세울 것이 없으니 어디서 불러주는 곳도

없다고 한다. 이제는 계속 집콕하고 있으려니 가족들 눈치가

보여 다음 달부터는 등산이나 다녀야겠다고 했다.

 

그 지인은 지금도 일을 하는 내가 제일 부럽단다. 그 지인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치열하게 퇴직 이후를 준비했는지 모른다.

나는 30대 후반부터 일찌감치 퇴직 이후를 준비해왔다.

 

1996년 경영지도사(재무관리) 1차 합격, 97년 중앙대대학원

진학과 경영지도사(재무관리) 2차 합격, 2000년 2월 대학원

졸업(경영학석사), 2004년 사내근로복지기금 첫 도서 단독

집필 및 강사 데뷔, 2010년 사내근로복지기금2차 도서 집필,

2011년 늦깎이 52살에 대학원 박사과정 진학,

2013년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을 과감히 일반 퇴직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창업, 2014년 사내근로복지기금

3차 및 4차 도서 집필과 당시 무명 신설 벤처기업이었던

쎄니팡에 투자 시작, 2015년 사내근로복지기금 제5차 도서

집필, 2016년 경영학박사 취득에 이르기까지 열정과 눈물겨운

도전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퇴직 이후 재취업이나 안정적인 일자리, 경제적인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다.

이제는 기술발전이 빠르고 기업 수명이 계속 단축되고 있어

퇴직 또한 빨라지고 있으니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표를 잡고, 학력,

경력관리, 필요한 자격증 취득 등을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8월 20일 페이스북에서 4년 전,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던 추억을 알려준다. 맞아, 4년 전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에서 제1호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었지.

2011년 3월에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에 입학해서 5년 6개월

만인 2016년 8월 늦깎이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었지. 

 

사람들은 박사학위를 받은 후 뭐가 달라졌느냐고 궁금해한다.

 

첫째는, 명함이 바뀌었다. 명함에 경영학박사 학위가 추가되었다.

내가 쓰는 칼럼(사내근로복지기금이야기, 기업복지이야기)에도

내 이름 앞에 경영학박사가 더해져다.

 

둘째는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운영하고

대외 기관을 출입하고 컨설팅 상담을 하면서 상대방에서 전문성을

인정해주었다. 특히 관공서에서는 경영학박사 라이선스는 대학의

교수급으로 대우를 해주었고 교육기관을 출입하고 강의를 하면서

위상이 높아졌고 강사료 단가 책정에서도 유리해졌다.

 

셋째는 자식들에게 학구열을 높이는데 마중물이 되었다. 자식들은

부모 등을 보고 자란다고 둘째가 석사학위를 이미 받았고, 현재

의학박사 학위에 도전 중이다. 첫째도 머지 않아 석사와 박사학위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우리 집안에 학구열의 불을 지폈고, 앞으로

집안에 박사학위 도전과 학위 취득자가 계속 늘어갈 것이다. 가장

큰 성과이다.

 

넷째, 호칭이 바뀌었다. 전에는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김박사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진짜 학위를

가진 김박사로 호칭을 한다. 연구소 교육 수강생들도 이제는 교수님,

소장님 보다는 박사님으로 더 많이 호칭을 한다.

 

속칭 영끌이(영혼까지 끌어내어)해서 이루어낸 학위 취득이기에

감회와 자신감이 남다르고 또 다른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중물이

되고 있다. 나의 박사학위 도전은 취업용이 아닌(나이가 있어)

순수한 연구와 자기계발 목적이었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에서

최고 정점을 찍고 싶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나이 50을 넘어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박사학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이 50이 넘어

박사과정 진학(52세), 남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직장이었던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일반퇴직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

창업(54세), 사내근로복지기금 시리즈 도서(결산, 예산, 설립) 3권

집필(55세~56세), 경영학박사 학위 취득(57세)과 연구소를

구로동에서 강남 논현동으로 이전(57세), 숙원이던 강남에 아파트

마련(59세)하였다.

 

내 삶에서 50대에 이 많은 것을 이루게 한 마중물과 열정과 도전

노력의 원동력 요인 1위를 꼽으라면 나는 당당히 경영학박사

학위 도전이라고 말하고 싶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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