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13년전 오늘인 1997년 11월 10일은 우리 쌍둥이자식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했던 탓에 출퇴근은 항상 자가용으로 내가 모시고 출퇴근을 했다. 11월 10일날도 출산예정일이 2주가 남아있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며 언제 출산휴가를 내야 될지 날짜를 꼽고 있었다. 그때는 출산휴가가 지금처럼 길지가 않았기에 미리 휴가를 내놓으면 하릴없이 집에서 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날짜를 까먹기 때문이었다. 진짜 어미의 손길이 필요한 건 애들이 세상에 나온 이후이니까...
일산에서 출발하여 올림픽대로를 들어서 양화대교 밑을 지나는데 아내는 하혈을 한다고 조짐이 이상하다고 곧장 병원으로 가자고 하여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곧바로 여의도성모명원으로 직행하여 입원을 시켰다. 담당 의사가 당시 이름이 있는 김수평박사였는데 양수막이 터졌다며 쌍둥이인지라 조금만 늦었어도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뻔했다고 하셨다.
아내는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당시 아내 나이 39살, 큰애가 89년 2월생이니 늦둥이에 쌍둥이를 양수막이 터진 상태에서 자연분만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아침 8시 30분에 입원하여 애들을 낳은 시간은 저녁 6시를 넘어 어수룩할 때였으니 그동안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고, 내 속은 얼마나 탔는지.... 형인 재명이는 2.75킬로 호흡이 약하여 나오자마자 곧장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고, 동생인 재윤이는 3.25킬로로 건강했다. 낳을때부터 0.5킬로그램 차이가 난 몸무게는 이제는 3킬로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힘들게 쌍둥이들은 낳고 나서, 일주일만에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분유값과 기저귀값은 배로 뛰고..... 나와 아내는 이마트에 가서 번갈아가며 50개들이 기저귀를 사나르던(당시는 환율이 급등하여 한사람 앞에 기저귀는 하나씩 밖에 팔지를 않았다) 일이 생각난다.
# 둘
4년전 2006년 11월 10일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날이다. 공교롭게도 하늘나라로 간 날도 쌍둥이들이 태어난 날이자, 태어난 시간과 비슷한 저녁 7시 부근이었다.
2005년 5월초에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1년 6개월간 암투병에 힘들어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매일 링거 몇개씩을 몸에 꼽고 살았다. 아내는 평소 혈관이 잘 보이지를 않았는데 항암제를 맞고부터는 그나마 가느다란 혈관마저 살 속으로 숨어버려 초보인 간호사들은 몇번이나 찔렀다 뺐다는 반복하여 간호원들이 주사기를 새로 꼽는 시간을 제일 끔찍하게 생각했다. 식사량보다 더 많은 항암제에 진통제를 먹어가며 고생하는 것을 보니 회복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면 이제는 놓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빚 걱정없는, 항암제를 맞지 않아도 되는 하늘나라로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와 아내의 이생에서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나 보다. 1987년 8월 22일날에 만나, 8개월간의 뜨거운 연애 끝에 88년 4월 23일 결혼을 하여 세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딸이었음에도 친정집을 부양하며 힘든 삶을 살았다. 국립암센터 노정실 유방암센터장님도 "최혜숙씨는 이대로 하늘나라로 보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다"라고 아쉬워 할 정도로 참 예쁘고 똑똑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산 여인이었고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뛰어난, 나에게는 정말 과분하고 아까운 여인이었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큰 직분을 맡아 정신없이 바쁘겠지...
세월 참 빠르다....
싱글대디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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