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11일 이사를 간다. 좀 더 살고 싶은데 2년 기한이 지나고 주인집이 들어오겠단다. 2년전 507동에 살 때도 주인집이 들어오겠다고 해서 지금 504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수리를 해서 더 높은 가격에 전세를 주었다. 이번에도 집주인이 수리해서 들어와 살면서 집을 팔겠단다. 약정한 2년 임대차 기간이 끝났으니 연장 여부는 집주인이 맘이고 나가달래니 어쩔 수 없다. 매번 이사 때마다 집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는다.

1988년에 결혼해 살면서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우리집은 딱 세번, 신혼초 부천 고강동 현대아파트와 뒤 이은 광명 철산동 우성아파트 그리고 일산 백마마을 쌍용아파트 511동.... 이후 신도림동 우성아파트 2년, 일산 후곡마을 건영아파트 2년와 주공아파트 2년, 백마마을 극동아파트 2년, 한양아파트 2년, 쌍용아파트 507동 4년, 504동 2년 도합 16년을 남의 집에서 살고 있다. 지난 1991년 철산동 완구가게의 사업실패 이후 지금것 전월세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1990년말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장모님 모시고 살며 자식이 셋 게다가 늦둥이 쌍둥이들이 태어나니 집 장만은 엄두도 못내겠다. 그저 흩어지지 않고 좁지만 한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 뿐이다.

자식들 양육비와 교육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자식 한 명을 대학까지 키우는데 2억 3000만원이 든다는데, 세 녀석이나 되는 녀석들 뒷바라지를 어이 할꼬? 이사를 다닐 때마다 다음에는 꼭 집장만을 하리라 다짐을 해보지만 연신 공수표다.

한번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이사비용도 만만찮아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자식이 셋에 장모님까지 모시고 살다보니 27평이라지만 왠만한 40평짜리 집 이사 물량이다. 이사 견적을 하러 온 사람들마다 놀란다. "왠 짐이 이리도 많으세요?" 우리집은 책이 많다. 내가 보는 책도 책장 2개 분량이고, 큰애도 책이 많고, 쌍둥이들도 책이 많다. 나와 자식들 옷에 아내가 생전에 쓰던 장롱이 셋이고 화장대며 아내가 쓰던 유품이 고스란히 있어 이번에도 포장이사 비용만 110만원이다. 중개인 수수료에 이것 저것 수리비를 합하면 이사비용이 200만원 훌쩍 넘어간다. 이러니 어지간하면 세입자들이 그냥 전세금 올려주고 눌러서 사나 보다.

불편해도 왠만하면 그냥 살자고 해도 지저분한 것을 못보시는 장모님은 이사를 할 때마다 씽크대며 세탁기 하수구멍 수리, 베란다 방충망 등을 여기저기 고치느라 돈도 꽤 많이 들었다. 그래보아야 주인집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을... 그냥 참고 살자고 해도 단 하루를 살아도 지저분한 것은 딱 질색이신 우리 장모님 성화는 말릴 수가 없다.

다음 2년 뒤를 기약해 본다. 큰애도 올 7월에는 군입대를 한다. 2년 뒤에는 정말로 집을 꼭 장만해야지~~ 남의집살이를 하다 힘들게 내집을 장만한 사람이 입주를 하여 거실 바닥에다 입맞춤을 하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김연구원님은 저희 연구소 롤 모델입니다"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 공동소장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지금은 나이가 두번째로 밀렸지만 불과 한달전까지만해도 교육생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았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술 약속, 각종 모임을 뒤로 하고 매주 이틀씩 회사 업무를 마치면 꼬박꼬박 강남역부근으로 가서 미래예측기본과정과 미래예측전문가과정에 참석하여 교육 듣고, 책도 쓰고, 강의도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에서 젊은 연구원들이 많은 자극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사시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지난주 어느 젊은 연구원이 나에게 묻기에 나는 "제가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회사'(사카모토 코지 지음)에 소개된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회사인 일본 이화학공업(50여명의 사원중 약 70퍼센트가 지적장애인임) 사장인 오오야마씨도 처음에는 양호시설에 있으면 편하게 살텐데 왜 회사에 들어와 힘들게 일을 하려는지 그런 장애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의문은 그가 한 법요 자리에 참석하여 함께 한 스님에게 의문점을 물어봄으로서 풀렸다. 스님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행복은 첫째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둘째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 셋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넷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 중 첫째 외에는 양호시설에서 얻을 수 없잖습니까? 이 세가지 행복은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내 절박한 환경 못지않게 일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나 보람이 나를 더욱 일에 배움에 몰입하게 한다. 아내사별이나 싱글대디의 아픔과 상처도 스스로 자가치유하며 돈에 대한 다소간의 불편은 마음을 비우고 씀씀이를 줄여나감으로써 해결해 나간다. 이 힘든 상황을 내가 버티어 줌으로써 내 가족들이 편히 살고 자식들은 나날이 성장해나가고 황무지와 같은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를 운영하는데 내가 쓴 책이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이 실무를 처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내 글을 통해서 삶의 목표를 찿게되고 좌절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답글에서 내 스스로 자가동력을 공급받는다.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되고, 도움이 되고, 자극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람...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런 롤 모델이라면 사양치 않고 더 열심히 그리고 기꺼이 그 역할을 수행하리라!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아버지께 10만원을 송금해드렸고, 장모님께는 10만원을 더 드렸다. 아버지는 지난 3월 하순 암수술도 하셨고, 장모님은 한달전 새로 틀니를 하셨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실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더 많이 드리고 싶었지만 내 형편이 허락을 하지 않으니 또 다시 내년을 기약할 수 밖에....

아버지는 "네 형편도 어려울텐데 왠 돈을 부쳤냐"고 하시면서도 기분이 좋으신듯 목소리가 밝으시다. 다섯 자식 중에서 직장을 가진 자식은 나 혼자뿐이니 내가 작더라도 매월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하는데 개인회생에 세 자식을 키우며 장모님 모시고 살다보니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렇게 부쳐드린 돈을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쌍둥이들 중학교 간다고 필요한 것 사라고 도로 주시고, 명절에 내려오는 손자들에게 용돈으로 주시고... 나도 자식을 키워보니 이제야 부모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아파도 자식이 걱정할까봐 자식에게는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않으시는 아버지, 전립선암이 3기가 되도록 나에게는 말 한나디 않으셨던 아버지, 치질 수술을 받으시고도 나에게는 연락도 않으셨던 아버지, 내가 쓴 책 3권을 안방에 잘 보관해두시고 계시는 아버지!

오늘 한소망교회 찬송 중에 부모는 자식이 힘드록 어려울 때는 기도하고, 자식이 잘 나갈 때는 찬송을 한다는 귀절을 들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는 내가 잘 나갈 때는 자부심과 보람으로 지켜보셨고 내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안타까움으로 위기를 극복하도록 기도하시며 늘 자식과 함께 하셨다. 자신과 똑같이 아내의 사별이라는 닮지 않아야 할 부분까지도 똑같이 닮아가는 자식의 모습에 얼마나 힘드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아내가 암투병을 할 때 동생들 사업실패를 수습하느라 이미 신용불량 상태가 되신 아버지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해 며느리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낸 것처럼 아직도 자책하시며 나에게 미안해 하신다.

모 일간지에서 소개한 가장 좋은 효도방법 Best 5에 4위는 부모님께 충분히 용돈을 드리는 것, 3위는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것, 2위는 자식들끼리 행복하게 사는 것, 제 1위가 자주 만나고 연락하는 것이라 하였다. 나도 이제부터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아야지, 아프지 말고, 경제적인 위기도 하나하나 극복해 가며, 자주 연락도 드려 부모님이 흐믓하게 미소짓도록 해드려야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언제부터인지 내 책상서랍 속에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작은 돼지 저금통.... 주머니에 잔돈이 생기면 밥을 주곤 했다. 아니 잔돈이 무겁고 부딪치는 소리가 귀찮아 잔돈 처리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회사 봉급날은 매월 21일! 봉급날이래야 빚 잔치 하고 나면 당일날 돈이 다 빠져나가 버리지만 그래도 매달 통장에 찍히는 금액을 보며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며 또 한 달을 보낸다. '그렇지~ 이번달로 개인회생을 인가받은지 4년이 되어가는구나! 앞으로 1년만 더 참으면 힘들었던 개인회생도 끝이구나~~'

지난 일요일 오후, 교회를 다녀오니 거짓말처럼 통장에 18,500원만 남겨좋고 지갑에는 단돈 1000원짜리 하나 없다. 장모님과 자식들에게는 돈이 떨어졌다는 말을 하면 불안해하시니 내색을 하지 않고 일요일을 넘기려는데 중간고사 때문에 보충학습을 받으러 학원에 간 쌍둥이들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재명 : "아빠! 저 자건거 뒷 타이어가 자꾸 걸려요. 손좀 보아도 돼요?"
나 : "얼마나 드는데?"
재명 : "이천원이래요"
나 : "그래? 그럼 수리해라. 지금 아빠가 돈 가지고 갈테니..."

수중에 단돈 2천원이 없어 양복 주머니며 가방, 차 콘솔박스를 뒤지니 그럭저럭 동전으로 2000원이 만들어진다. 자전거가게에 가니 재윤이가 친구가 주었다고 자전거를 하나 가지고 있다. 친구가 구해주었다데 중고자전거치고는 꽤 쓸만해 보인다. 재윤이도 가방을 싣고 다니려면 바구니를 달아야 한다기에 가격을 물어보니 12,000원이란다. '휴~~ 다행이다' 통장에 있는 잔액 18,500원을 염두에 두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집으로 오는 도중 재윤이가 준비물이 있다기에 페이펄문구를 들러 4,200원을 사용하니 이제 통장에 남은 돈은 겨우 300원...

재명이가 자건거 수리가 잘못된 것 같다고 다시 손보아야겠다며 또 다시 자전거가게를 가더니 잠시 후 전화가 걸려온다. 뒷 타이어가 낡아 다시 수리해야 한단다. 얼마가 드는지 물으니 15,000원이란다. "헉~~ 녀석 눈치도 없이...이틀만 지나면 봉급날인데 이틀만 더 참으면 안되나?" 재명이는 애비 마음도 아랑곳없이 뒷타이어를 갈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그래 고쳐라! 대신 자전거가게 주인에게는 아빠가 내일 회사에 출근하여 입금해준다고 하고 입금계좌번호를 받아오도록 했다.

월요일에 출근하여 송금해주려다가 수중에 돈이 없어 하루를 넘겼고 화요일에는 15,000원을 송금해주어야 하는데 수중에는 돈 한 푼이 없어 보험대출을 받으려고 보니 대출이율이 연 11.5%라 망설여진다. 녀석들 급식비 통장을 찿기 위해 책상 서랍을 뒤지는데 마침 돼지저금통이 눈에 들어온다.

"아하~~그렇지 돼지 저금통이 있었구나~~" 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가서 모두 통장에 입금시켜달라고 저금통과 통장을 함께 넘기니 통장에 40,000원을 찍어준다. 그 순간 40,000원이라는 돈이 그렇게 커보일 수가 없었다. 돼지저금통 덕분에 자전거가게 주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고, 교육장에 가기 위한 티머니 충전, 미래예측세미나 교육때 필요한 교재구입까지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이렇게 힘들 때 쓰려고 다들 저축하고 사는구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쌍둥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내가 시도한 첫 작업이 녀석들을 자율형인간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스스로 머리를 감고, 밥과 반찬도 골고루 스스로 챙겨 먹고, 학교 책가방이나 학원책가방과 준비물도 스스로 정리하고, 등교하는 시간도 자율적으로 조정하여 행동에 옮기도록 훈련하고 있다.

하지만 장벽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내부, 장모님의 장벽이 너무 높다. 오늘 아침에도 재윤이 머리를 감겨주지 말라고 당부를 했건만 기어이 화장실에 들어가셔서 샤워기를 틀어주고 샴푸도 손에 짜서 머리도 감겨주고, 아침 밥상에서는 예전처럼 반찬도 녀석들 숫가락에 하나 하나 올려주신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까지 계속 뒤를 따라다니며 양치질 해라, 옷 갈아입어라, 책가방 정리해라 큰소리를 내시며 채근하시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려도 '아직 어린데, 요즘 공부하느라 피곤한데' 하시며 이를 말리는 나에게 오히려 일을 한다고 자식들 일에 무심하다고 서운해하시는 장모님을 어이 해야 할지.....

쌍둥이들도 이런 장모님의 과잉보호 때문에 학교가 끝나고 오거나 학원 수업을 마치고 오면 장모님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 피곤해요"하며 어리광을 부린다. 내 앞에서는 잠시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내가 없으면 예전 습관으로 도로 원위치가 되어 버린다. 집안의 중심, 특히 교육의 중심은 애비가 되어야 함에도 자꾸 내 양육방침과 의도와 배치되는 쌍둥이들은 유아적인 습관에 계속 젖도록 만드시는  장모님을 어이 해야 할지 난감하다. 완고하신 분인데 나이를 드실수록 더 본인 주장이 강해져가니 갈등과 부담이 커져만 가고 집에 있기가 부담스러워진다.

지금껏 살면서 장모님 의견과 말씀이라면 전적으로 수용하고 양보해왔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결혼 이후 계속 장모님을 모시며 살아오면서 장모님 아니 아내의 뜻에 거스르는 일은 하지 않으며 살아왔지만, 싱글대디로서 비록 장모님이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해주시지만 이제부터는 마찰을 감수해가면서 내 삶의 방식대로 자식들을 끌고 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지 고민이 깊어져만 간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장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요즘처럼 자주 부딪힌 적이 없었다. 그 원인의 대부분이 쌍둥이들 양육습관과 관련된 것들이다. 쌍둥이들이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건만 여느 할머니들처럼 장모님은 쌍둥이들을 어린 애들로만 보고 대하고 있다.

지지난주까지만 해도 아침에 녀석들이 일어나면 장모님이 녀석들 세수를 시켜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식사를 할때 반찬을 수저 위에 올려주곤 했다. 지난주 초에 쌍둥이들을 앉혀놓고 '이제는 너희가 중학생이 되었으니 혼자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반찬도 너희들이 손으로 집어다 먹어라' 다짐을 받았건만 아직은 습관화가 되어 있지 않아 매일 잔소리가 나온다.

오늘 아침, 장모님이 윤이 머리를 감겨주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제발 그렇게 하지 마세요. 재윤아 네 혼자 힘으로 머리를 감아라' 말했더니 '그럼 아픈 애를 지 혼자 머리 감으라고 두느냐?'며 역정을 내신다. 반찬도 올려주는 것을 '직접 너희들 손으로 반찬을 집어서 먹어라'하며 나무라자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반찬을 먹지를 않는데 어떡하느냐?'며 오히려 '자네가 더 답답하네'하신다.

어미없이 자라는 손자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것이 할머니들 마음인 것은 알지만 쌍둥이들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장모님이 이럴수록 녀석들이 어리광을 부리고 게을러져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할머니 의존적이 되어 간다. 윤이가 아프다고 하자 공부하기도 힘들고 피곤한데 새벽기도회까지 끌고 나가서 감기를 더 악화시켰다고 그 화살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실은 엊저녁에 윤이가 옷을 벗고 이불도 덮고 자서 그렇데 되었는데....

불쌍하고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애비인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녀석들 장래를 생각하며 지금부터라도 홀로서기를 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언제까지 장모님이나 애비가 따라다니며 뒤를 봐줄 수는 없는 일, 할머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식이 아닌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는 자율적이고 자립성이 강한 자식으로 키우고 싶은데.... 할머니 의존적이 되어 애비에게 세배를 거부하는 자식은 큰애 하나만으로 족하다. 내 자식의 양육에 관한 일인 만큼 쌍둥이들의 교육과 양육은 일체 타협하지 않고 내가 주도해 나갈 것이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신 장모님과의 잦은 갈등과 충돌은 앞으로도 불가피하게 자주 일어날 것 같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아버지께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하셔서 오늘 전립선암 수술을 받으셨다. 아침 7시 30분부터 준비하여 8시부터 수술이 시작되어 12시 45분까지 무려 4시간 45분간 수술을 받으시고 회복실에서 1시간 30분정도 회복실에 계시다가 오후 2시 15분쯤 병실로 내려오실 때까지 내내 가슴을 졸이며 아버지 수술이 잘 되기만을 기도했다. 병실에 오셔서도 수술한 상처부위 통증 때문에 연신 고통스러워 하시는 아버지를 뵈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아내도 2006년 유방암이 뇌로 전이되어 방사선치료를 하였지만 20% 정도는 치료가 되지 않아 마지막으로 뇌에 전이된 암세포를 직접 약물치료하기 위해 머리에 오마야관 시술을 했었다.

오마야관 시술동의서를 써주고 수술실에 들어가 시술을 받는 동안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며 아내가 겪을 고통(머리를 드릴로 뚫어 오마야관을 심는 작업)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흘러 내렸다. 나중에 집도한 의사분이 그 고통스런 시술작업을 웃으면서 덜 아프게 해달라고 말하며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참아내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아내는 그렇게도 잘 참아냈다. 나중에 병실로 돌아오자 얼마나 아팠냐고 위로를 하니 "마지막인줄 알고 체념을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이런 첨단 시술이 있어 수술을 받게 되어 오히려 감사하지"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내의 고통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불과 4년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의 수술을 보게 되니 마음이 착잡하다. 원래 전립선암 3기는 교과서에는 수술을 하지 않고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으로 되어있다는 여의도성모병원의 담당의사 설명이 있었지만, 서울성모병원으로 옮긴 후 다행히 전이가 되지 않았고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수술을 해도 치료성과가 높아져 수술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주치의교수님의 설명, 무엇보다 아버지께서 수술을 하시겠다고 결심을 하셔서 수술을 하였지만 막상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고통스러워 하시는 모습을 뵈니 자식으로서 아무런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하는 내 처지가 죄스럽기만 하다.

아프지 말아야지, 나는 아프지 말아야지.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고 나 마저 아프면 않되지.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고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아프지 말아야지~ 쌍둥이자식들 뒷바라지 하려면 내가 아프면 않되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아프면 안되지~ 이제는 운동도 매일 꾸준히 하고, 운동도 하고, 수면도 부족하지 않게 취하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렇게 살아야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2박 3일로 정발중학교 체험학습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쌍둥이들이 강원도 횡성으로 떠나는 바람에 집에 오니 안방이 휑하다. 원래 월요일과 화요일은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주관으로 열리는 미래예측세미나에 고정적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집에 오면 으례 밤 11시 40분. 평소 이 시간이면 녀석들은 안방에서 이리 저리 뒹굴하며 곤히 잠자는 시간인데....

오랜만에 안방에서 나 혼자서 독방 차지하고 수면도 방해받지 않고 싱글다운 싱글 밤을 맞이하겠네... 여기서 싱글은 싱글벙글의 줄임말이라는데... 편히 두 발 뻣고 잠을 잘 것 같은데 막상 누워있느니 뭔가 허전하다. 오늘따라 코 끝을 스치는 방안 공기도 차갑게 느껴진다. 1997년 11월 쌍둥이들이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녀석들은 안방에서 내 옆에 재우며 키우고 살아온지라 자꾸만 쌍둥이들이 잠자던 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태어나 강보에 쌓여서부터 내 옆에서 키웠으니 녀석들 잠버릇이며 습관들, 행동들이 모두 그려지고 예견이 된다. 특히 잠버릇이 고약한 탓에 아내 편히 잠자게 해주려고 내 잠자리는 항상 아내와 쌍둥이들 가운데였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으려니 쌍둥이들이 내 옆구리를 찰 것만 같다.

두 녀석 모두 잠버릇이 고약하다. 이불을 차는 것은 기본이고(이불을 덮어주면 차버리고 그러면 다시 덮어주고 다시 차고...) 재명이는 자면서 이를 뽀드득 뽀드득 가는 버릇이 있고, 재윤이는 자면서 코를 살짝 골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안방을 갈고 다니면서 잠을 잔다. 어떤 날은 머리가 재명이 발아래에 있다가 재명이 발에 차여 코피를 쏟기도 한다. 이제는 녀석들 체격이 제법 커져서 밤중에 녀석들에게 몇번씩 발길질을 당하고나면 꽤나 아파서 밤 잠을 설치기도 한다. 밤중에 몇번씩 장롱에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룻 밤이 지나갈 정도이니 녀석들의 코 고는소리, 이빨 가는 소리, 장롱에 부딪치는 소리가 이제는 마치 자장가처럼 익숙하게 들린다.

잠을 자려해도 아직 추울텐데 녀석들 이불은 잘 덮고 자는지,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차 멀미는 하지 않았는지(유독 재윤이가 차 멀미가 심하다), 밤에 잠은 잘 자는지, 잠을 자면서 이불은 잘 덮고 자는지, 밥은 잘 먹고 지내는지 딱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이래저래 걱정 때문에 자꾸 잠자리를 뒤척이게 된다.  자식을 낳아 키워 보아야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지천명이 넘어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중학생이 되었건만 워낙 장난이 심한 개구장이 녀석들인지라 밖에 내놓아도 애비 마음은 항상 노심초사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자식들은 내 품안에 끼고 살 수는 없는 일, 이런 때라도 한번씩 애비 품을 떠나서 밖에서 생활도 해보고, 가족 품안을 떠나 단체생활도 해보아야겠지.... 이런 과정을 통해 자립심과 사회성도 기르고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지혜도 갖춰나가게 되겠지.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마을친구들 모임에 나가면 다들 내 싱글대디 생활을 걱정하며 더 늦기 전에 재혼해야 하지 않느냐며 의사를 떠보곤 한다. 회사 사람들도 그러고 친구들도 다들 그러니 요즘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부담이 된다. 가족들 특히 자식들에게는 아빠의 재혼이 민감한 사안이다. 지난 금요일 문득 쌍둥이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재명이와 재윤이가 학원 끝나는 밤 11시에 데리고 오면서 넌즈시 물었다.

나 : "명아윤아~ 아빠가 재혼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처음 꺼내는 아빠의 갑작스런 재혼 이야기에 두 녀석이 눈을 똥그랗게 뜨며 긴장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묻는다.

재명 : "재혼이요? 엄마가 재혼하지 말라고 그러셨잖아요?"

나 : "헐~~ 언제? 엄마는 아빠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재명 : "엄마가 그렇게 말하지 않으셨어요?"

나 : "아빠는 엄마가 유방암을 얻고나서 투병생활하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대화하며 생활했었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재혼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점점 녀석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나 : "엄마는 아빠에게 '자식이 셋이나 되고, 빚만 주렁주렁인 당신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을 올까?'하며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아빠가 불쌍하다고 늘 그렇게 말했는데...."

재윤 : "아빠는 결혼하지 마세요!"

나 : "아니, 그럼 아빠는 지금처럼 계속 혼자 살라고?"

재명 : "저희가 있잖아요? 우리랑 함께 살면 돼죠?"

나 : "그건 간단하지 않을텐데... 너희는 아빠랑 살고 싶어도 와이프들이 함께 살기 싫다고 반대하면 어떡해?"

재명 : "설마, 그런 여자들이 있을려고요?"

나 : "요즘 신세대 여자들은 사부모 모시고 살자고 하면 당근 싫어하지~ 만약 재명이 와이프가 시아버지 모시고 사는 거 싫다고 반대하면 어떡할래?"

재명 : "음~~ 그럼 그런 여자 고르면 돼죠?"

나 : "피식, 네 마음대로 되어주면 좋지만 쉽지가 않을꺼야. 그리고 아빠가 아프기라도 하면 서로가 힘들잖아? 아빠는 너희들에게 짐이되는 존재는 정말 되기 싫은데.... 아빠는 너희 빨리 대학 졸업시켜 놓고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여행도 하며 아빠의 생활을 즐길거야. 너희들도 아빠에게 짐이 되지 않기~ 알았지?"

다른 집 아이들은 "아빠 편하신대로 하세요" 한다는데 우리 자식들은 세 녀석들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아빠 재혼을 반대하니, 비록 한번 던져본 말이었지만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네. 휴~~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는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정발중학교에서 2박 3일로 체험학습을 떠나는 쌍둥이들 준비물을 사주기 위해 마트 앞을 지나던 중 B사와 L사 두 곳의 패스트푸드점을 지나가게 되었다. 우리집은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잘 애용하지 않아 자주 가지를 않는지라 별 관심없이 지나치는데 갑자기 재윤이가 한마디 불쑥 말한다.

재윤 : "아빠! 전에는 B사가 훨씬 매장도 컸고,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가지 않아서 거의 망했어요. 보세요, 매장도 일부 휴대폰매장으로 팔았잔아요. 매장안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잖아요?"

재윤이의 갑작스런 말에 실제 매장을 보니 B사는 썰렁한데, L사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갑자기 두 녀석들과 경제토론을 해 볼 수 있는 좋은 주제라는 느낌이 들어 슬슬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 : "어~ 그러네. 왜 B사가 저렇게 됐지? 재윤이는 B사가 실패한 원인이 무어라고 생각해?"

재윤 : "B사는 원래부터 맛이 별로였는데 값이 비쌌어요. 옆에 L사가 가격을 낮추어버리니 사람들이 L사로 몰려버린거죠"

나 : "음, 그래. 그럼 재명이가 B사의 사장이라면 어떻게 대처할까?"

재명 : "저라면 1차로 맛을 좋게 하고, 2차로는 가격을 낮추겠어요"

나 : "지금보다 맛을 좋게 한다면 좋은 재료를 사오기 위해 재료비가 더 들어갈테니 당연히 돈이 더 들어갈거고, 가격까지 낮추면 수입이 줄어들어 그럼 가게는 손해가 커질텐데 어떡하지? 재윤이는 어떻게 대처할까?"

재윤 : "저는 돈을 더 들여서 휴대폰 매장을 사서 더 넓히고 재료 품질도 높이고, 가격도 떨어뜨릴려고요"

나 : "마찬가지 좋은 재료를 사오는데, 옆 휴대폰 가게를 다시 사서 넓힐려면 돈이 더 들고, 가격까지 다운시키면 수입도 줄어들텐데 괜찮을까?"

재윤 : "어차피 승부를 걸어야 하잖아요. 지금 이 상태로 가면 가게가 더 위축될텐데요."

나 : "L사가 쓰는 전략이 저가전략이란다. 2등 회사가 1등을 이기기 위해 가격을 내리며 손님들을 끌어들이는거지. 맛에서 별 차별화를 시키지 못할 경우 손님들은 싼 집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거지. 만약 B사가 돈이 넉넉했더라면 맞불을 놓아 같은 가격대로 판매가를 내렸거나 그 이하로 내리며 서로 치열하게 가격전쟁을 벌였을거야. 그렇지만 아빠가 보아하니 B사는 형편이 여의치 않아 가격을 내리지 못한거야. 그래서 손님을 고스란히 L사에게 빼앗긴거지. 저렇게 경쟁사를 이기고 주변에 적수가 없게 되면 L사는  다시 가격을 예전처럼 슬그머니 올리게 된단다. 뉴스에서 나오는 반도체 치킨게임도 이와 유사한 거란다."

재윤 : "아빠?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데 비싸요?"

나 : "못해도 아마 연 10%는 줘야 할껄"

재윤 : "1,000만원을 빌리면 그럼 이자로 월 얼마를 주어야 해요"

나 : "1,000만원에 10%면 1년에 100만원이니 12로 나누면 되겠네?"

재명 : "우와~ 그럼 은행들은 돈을 많이 벌겠네요?"

나 : "아무에게나 돈을 막 빌려주었다가는 돈을 떼일 수도 있잖아. 갚을 수 있는 사람인지 회사인지 알아보고 빌려주지 않겠니? 그런데 요즘은 개인들도 아파트는 일정비율 이상은 빌려주지 못하게 막아놓았고 회사들도 많이 어려워 문을 닫으니 돈을 빌려줄 곳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

재명 : "그럼 은행에 돈을 예금해 놓았는데 은행이 망해버리면 어떻게 되요?"

나 : "우리나라에는 예금자보호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들이 하는 보통예금이나 정기예금 같은 예금은 은행이 망해도 한 사람당, 한 은행에서 5000만원까지는 국가가 보호를 해준단다"

재명 : "그럼 예금이 10만원이 있는데도 5000만원까지 줘요?"

나 : "떼끼~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양심불량이지~~"

아직은 단순하여 세상 물정을 모르리라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쓰겠다고 논리적으로 주장들을 펼치는 것을 보니 나는 싱글대디로 앞만보고 살았는데 어느새 녀석들이 이토록 성장했나 대견하고, 앞으로 녀석들과 자주 이런 토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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