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6시 20분에 기상을 했다. 어제 토요일에 미리 김장재료를 준비하러 나갔다가 절임배추를 사려면 새벽에 줄을 서야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터라(농협하나로마트 개점시간은 오전 9시인데 김장배추며 무우를 사려면 최소한 오전 7시 이전에 나와 줄을 서야 한다고 절임배추를 사가시는 분이 살짝 귀띔해 주었다) 휴일임에도 보통 평일과 같은 시간에 기상을 하여 주섬주섬 옷을 입고 6시 40분에 차를 운전하여 대화동 하나로마트로 출발했다.

도착하니 시간이 6시 55분, 벌써 사람들이 30여명 줄을 섰다. 5분간을 기다렸을까 아무래도 이상하여 무슨 줄이냐고 확인을 하니 배추를 사는 줄이란다. "그럼 절임배추를 사는 줄은요?" 반대편 무우를 파는 쪽으로 가란다. 뛰어갔더니 벌써 이쪽도 20여명이 줄을 섰다. 아무래도 이상하여 다시 확인을 하니 절임배추 줄은 바로 옆 줄이란다. 내 앞에 줄을 선 사람은 10명 정도... 새벽 6시에 도착한 사람도 있다. 한사람당 3박스밖에 팔지를 않는단다. 8박스를 사야 하니 얼른 카트기 두개를 더 불여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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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우니 사람들은 모두 차 안에 들어가 있고 카트기가 대신 줄을 서고 있다.
7시 40분에 집으로 SOS를 쳤다. 8박스를 사려면 사람 두명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큰애와 쌍둥이 재명이가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왔다. 이후 8시 10분쯤 되니 절임배추를 사려는 사람들 줄이 꽤 길어졌다. 얼추 80미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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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애와 쌍둥이형인 재명이와 함께 셋이 줄을 서있으니 어느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터울이 많이 지네요. 몇살 차이예요?"
"아홉살 차이입니다"
"너희들은 착하구나. 우리 아들들은 나오지 싫다고 지금 잠을 자고 있는데. 애 엄마는 집에 계신가봐요?"
"아,  예"(대답하기 곤란하게 왜 애 엄마는 묻고 그럴까? 대충 얼버무린다)
"내무장관은 집에서 준비하시고 아빠와 애들만 나왔네요"

오전 09시가 되어 입장하여 재빨리 해남 친환경무농약 절임배추를 8박스를 챙겼다. 10킬로그램 1박스에 21,000원이면(세일하는 다른 지역 절임배추에 비해 비싸지만) 1년을 두고 전 가족이 먹을 김장인데 가족들 건강을 생각해서 '외식 한번 하지않는다' 생각하고 눈 딱 감고 구입했다. 이 마저도 조금만 늦으면 구입을 할 수가 없다. 아니나다를까 개점후 10분만에 해남친환경무농약 절임배추는 동나고 말았다. 차에 실으려는데 한 박스가 상태가 좋지 않아 반품을 해서 차에 실으니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며 잠을 설친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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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무우도 친환경으로 개당 2,350원씩 10개(23,500원), 국산다진마늘 19,865원, 친환경미나리 5단 11,300원, 국산홍갓 3단 9,900원, 국산깐쪽파 3단 7,680원 국산생굴(소굴) 2근 24,544원, (액젖과 새우젖은 미리 구입해 놓았고, 고춧가루는 시골에서 보내주셨다) 오늘 들어간 돈은  264,889원. 처형이 200,000원을 보태어 김장을 담구어 나누자고 하여 부담이 적었다.

이후는 무무채를 썰어 김치속을 만들어 버무리는 일, 나와 장모님, 처형, 지영이와 큰애 모두가 동원되었다. 절임배추 한 박스에 10포기(배추로 하면 5개)가 나오는데 장모님은 배추 상태가 좋다고 배추를 좋은 걸로 잘 골라서 사왔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나는 머리카락이 떨어질까 모자까지 쓰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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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들은 그 시간 컴퓨터게임에 열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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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동원된 덕분에 2009년 김장 전쟁을 무사히 끝냈다. 장모님께서는 그동안 김장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신 듯 "김장을 담구어 놓으니 속이 후련하다", "김장을 끝내놓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든든하다", "재료를 모두 친환경 무농약으로 해서 김장을 담구니 마음이 놓이네" 하시며 기분이 좋으신지 연신  싱글벙글하신다. 처형네 집에 절반을 실어드리고 우리 것은 김치냉장고와 냉장고 안에 집어 넣으니 모든 작업 끝.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근무시간에 휴대폰진동음이 울린다.
발신번호가 '아부지'로 되어있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면서 아버지를 부를 때는 '아버지'보다는 '아부지'로 부르는 것이 더 좋았고 정감이 있었다. 내가 쓰는 휴대폰의 이름입력어 중 사람이 아닌 단어가 딱 세개 있는데 '우리집', '울마눌', '아부지' 중 하나이다.

나 : "아부지세요?"

아부지 : "응, 승훈이냐? 지금 사무실이냐?"

나 : "네"

아부지 : "가만, 쌍둥이들 생일이 11월 10일 아니냐? 사돈어른 이야기를 들으니 이모가 어제 생일잔치를 준비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 : "쌍둥이들 생일이 원래 양력으로 11월 10일이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애엄마 기일과 날짜가 겹치다보니 애엄마 기일은 음력으로, 쌍둥이들 생일은 양력으로 치르고 있고요"

아부지 : "그러냐? 사돈어른이 검정쌀을 부탁하셨다고 그래서 오늘 한가마 찧어서 보낸다. 그리고 얼마되지는 않지만 돈도 부쳤으니 쌍둥이들에게 필요한 것 사주거라"

나 : "아부지도 힘드시면서 무슨 돈이 있으시다고 돈을 부치세요"

아부지 : "가까이라도 있으면 가서 녀석들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 싶다만 쉽지가 않구나"

나 : "죄송해요. 제가 오히려 돈을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부지 : "네가 열심히 살고 있으니 됐다. 이만 끊는다"

서둘러 전화를 끊는 아부지. 내 밑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동안 알토란같이 일군 땅을 모두 팔고 지금은 신용불량까지 몰리신 우리 아부지. 그런 아부지께서 쌍둥이들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니 갑자기 목이 맨다. 당신도 어려운데....

시골을 내려가지 못한 것이 벌써 2년이 넘었구나. 학교 진학이며, 취직, 결혼 등 부모에게 걱정끼쳐드리지 않고 잘 헤쳐나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던 아부지였다. 그러나 믿었던 큰 자식이 경제적인 어려움, 아내의 사별, 남겨진 세 자식을 데리고 혼자 사는 기막힌 모습이 많이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당신도 젊어서 아내와 사별을 했는데 큰아들인 나도 똑같이 아내와 사별하고 사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시며 이제는 쌍둥이엄마 잊고 빨리 새로운 사람 만나라고 하시는 우리 아부지. 2주전 막내가 6학년 전교에서 1등을 했다고 알려드렸더니 기뻐하시던 우리 아부지.

아부지! 저 꼭 재기하렵니다.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이 벌써 당신 3주기 제사이네.
그넘(?)의 유방암이 하필이면 당신에게
그것도 전이가 되어버린 말기상태로 느닷없이 오더니만
그냥 훌쩍 내 곁에서 당신을 데려가 버렸지

그 이후로도 이넘의 무정한 세월은 까먹지도,
잊어버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내 앞을 3년이나
잘도 스쳐 지나갔네 그려.

장모님이 먼저 보낸 딸 제사상은 당신이
직접 차려주고 싶다는 뜻 그대로 하시라고 했지.
당신은 내 아내이기에 앞서 또 한 명의 딸이었으니....

내 그때 뒷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라고 웃으면서
큰소리는 쳤지만 내 요즘 너무 많이 힘들어.
매주 시장을 보아야 하고 장모님께 20만원씩 드려야 하는
토요일은 왜 이리도 빨리 찿아오고,
월세주는 날이나, 쌍둥이자식들 학원비를 납부하는 날,
그리고 직원들 빚을 갚아주어야 하는 날짜는
왜 이리 빨리 그리고 자주 돌아오는지,
입안에 침이 바짝 타고 피가 마르는 것 같아.

'이승 저승 하지만 그래도 이승이 좋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먼저 간 년만 불쌍하지" 간혹 내게 섭섭하실 때면
하시는 장모님 성화에도 전에는 무지 섭섭해서
화도 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가 되었네.

당신이 가고 나면 나 혼자 어찌 사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고 살아지네.
내 하늘나라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당신얼굴 보려고
내 이 악물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하다하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볼거라네.

2006년 11월 10일까지가 이승에서 나와 당신과의
인연이었다면 아직도 못다한 우리의 사랑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이으면 되겠지.

내일 한국생산성본부 8시간 종일 강의인데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오질 않을 것 같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회사 내에서나 밖에서 내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묻는 말이다. 그럼 난 "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또 실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주 일주일도 일 속에 파 묻혀 정신없이 그리고 치열하게 보냈다.
한국인사관리협회에서 새로이 요청받은 강의 준비에,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용실무' 강의, 근로복지공단 주관으로 수원에서 열린
'선진근로복지제도 사업주초청 세미나'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는 수원을
다녀왔고, 월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퇴근후에 지하철을 다고 강남역 인근에
있는 성공을도와주는가게에 가서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에서 실시하는
미래예측기본과정과 전문가과정을 세시간씩 수강하고, 틈틈히 시간을 내어
글 쓰고, 카페관리하고... 일이 없는 날은 일찍 퇴근하여 쌍둥이자식들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마중나가서 데려오고....

오히려 아내와 함께 살 때보다 더 일에 미쳐 시간을 보낸다. 금요일 세미나를
마치고 밤 10시 20분 강남역에서 9700번 직행좌석을 타고 집에 들어오면 밤
11시 40분. 그제서야 '아~ 이번주가 지나갔구나'를 느끼며 컴에 앉아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는 것으로 금요일 하루를 마감한다.

태어나 딱 한번 뿐인 삶! 후회없이 살아보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느 지인이 언젠가 나에게 불쑥 물었다.
"너무 힘들게 사시는 것 같아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저는 이해가 않되네요. 저는 그냥 대충 편하게 삽니다"
나는 즐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회사일은 기본이고, 세미나에 참가하여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또 내가 강의를
진행하며 내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러기
위해 강의 원고를 쓰고, 카페나 블로그에 내 주변이야기도 써서 올리고,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쌍둥이자식들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학원앞으로 마중도 나가고, 휴일에는 정발산을 넘어
호수공원을 도는 걷기운동을 하며 건강도 챙기고, 일요일에는 쌍둥이들과
주일예배도 다녀오고 장모님 모시고 일주일치 우리 가족이 먹을 시장을 보고,
가족들과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이 모든 일과들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고 이런 일상속에서 나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한치 양보도 없이 서로 경쟁하는 쌍둥이들을
지켜보며 바르게 자라주는 모습 속에서 싱글대디인 나는 미래의 희망을 본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용실무' 8시간 종일 교육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수강생이었던 해양도시가스 고평촌대리가 크레벤에서 내가 쓴 글을 잘 읽고 있다고 불쑥 말을 꺼낸다.

이전에도 내가 운영하던 다음카페 사내근로복지기금동아리, 기업복지연구회, 네이버카페 사내근로복지기금포럼 등 카페에 일상에 관한 글을 종종 써왔지만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나선 것은 지난 2006년 6월 6일 크레벤에 '김승훈의 열정과 도전의 삶'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시는 아내가 말기유방암으로 힘겹게 투병하던 시기로서 내 인생의 동반자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내 몸의 절반이 내 몸에서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것과 같은 절망과 고통속에서 보내던 시기였다.

직장생활과 아내 간병생활, 자식들을 돌보는 일, 병원비 마련 등 경제적인 고충까지 이중 삼중으로 조여오는 심리적인 압박을 견디며 힘든 나날을 보내야했던 당시 글쓰기는 내 유일한 취미였고 스트레스 탈출구였다. 힘들다고 하소연도 해보고, 아내가 완쾌될 것이라는 희망을 적어보기도 했고, 아내를 보낸 뒤에는 생전에 더 잘 대해주지 못했던 일을 후회하며 미안함으로 아내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했고, 싱글대디로 남겨진 쌍둥이자식들을 데리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쓰기도 했다.

남겨진 빚을 매월 조금씩 갚아나가면서 줄어드는 액수에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고, 5년이라는 개인회생기간이 끝나면 어느 정도는 생활이 추수려질 것으로 기대하며 지쳐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나갔다. 나와 우리 가족의 아픔과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힘든 과정을 견디며 나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나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삶을 포기하지 말고 다시 용기를 내서 도전하며 살자고 독려하고 싶었다.

크레벤 카페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도 벌써 3년 4개월이 지나가고 쓴 글도 863개째가 쌓여간다. 이제는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오히려 나를 응원해줌으로써 지쳐가는 내가 오히려 힘과 용기를 얻는다. "글 잘 읽고 있습니다", "크레벤에 자기계발 글을 쓰시는 분 맞죠?","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글이 살아있는 듯 실감이 납니다"  부족한 글을 칭찬해주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다. 아직도 부족하고 엉성하고 투박한 글인데....'더 잘 쓰라는 채찍이구나' 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나를 독려해 나간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빠! 아빠 신발이 찢어졌어요"
토요일, 아파트 베란다 밖 1층 정원에 있는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를 따서 아내
추석 제사상에도 올리고 처남과 동서집에도 이번 추석명절에 쓰라고 보내주려고
대추나무에 올가가 대추를 한참 따고 있는데 밑에서 대추를 받아담기 위해
바구니를 가지고 있던 큰애가 불쑥 말한다.

정확히 40년전, 나도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을에 아버지를 따라 논일을 도우러 가는데 앞서 가시는 아버지의 고무신 뒤가
찢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부지, 신발 뒤가 떨어졌어요" 했더니 아버지는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을 들키신 것 같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응, 그러냐"하시며 넘기셨다.

내가 신고있는 신발은 2년전 손윗 동서가 거래처 아는 사람이 신발세일을 하는데
싸다고 동규가 생각나 한컬레를 더 사서 집에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애들이 이런 메이커가 아닌 신발을 신겠는가?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보니 멀쩡하여
처박아두기는 아까워 내가 신기 시작했다. 신으면 큰애 발이 나보다 두치수는 커서
신발을 신으면 발이 신 안에서 노는 것 같다. 7개월전에는 그나마 신발과 밑창
고무를 연결하는 본드가 떨어져 걸을 때마다 밑창이 홀딱거려 다시 강력본드를
붙였는데도 다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는 표시가 안났는데
나무에 오르기 위해 나무가지를 타니 신발틈새가 벌어진 것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렸다.

40년전,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생각나 가슴이 미어진다. 시간이 흘러
나도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키우다보니 그때 아버지께서 돈이 없으셔서 뒤축이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들은 아빠가 돈도
버니 당연히 밖에서 아빠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먹고, 입고 쓰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다 사먹고, 쓰고 다니는 줄 안다. 그러나 부모는 본인보다도 자식들을
생각하여 더 쓰지 못한다.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입히고 먹이기 위해
악착같이 아끼고 저축하며 산다.

편하게 즐기며 살고 싶고 옷도 좋은 것으로 사서 입고다니고 싶지만 참고 산다.
그 돈으로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을 때, 기뻐하며 웃을 자식들 얼굴을
떠올리며 사고 싶은 마음을 대신한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큰애도
나중에 결혼하여 자식이 생기고 자식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오늘 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겠지?

이번 추석명절에 고향을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는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더해지고 마음이 착잡하다. 아버지게 걱정만 끼쳐드리는 못난 자식이 아버지를
환하게 웃게 해드릴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현재의 위기를 넘기 위해 오늘도 나를
채찍질 한다. 10월에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 및 신고사례' 책자를 반드시 펴내
아버지께 꼭 보내드려야겠다. 명절에 내려가지 못하는 자식의 불효를 대신하여....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장모님을 모시고 큰애와 대화동 농협하나로마트 시장을 보러가는데
라디오에서 가수 방미의 '올가을엔 사랑할거야"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코메디언 방미를 가수 방미로 전환시켜준 노래였지.... '날보러와요'는
외국 번안곡이라 히트는 했지만 가수로 별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이 노래는
가을에 노총각, 노처녀들의 쓸쓸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서인지 꽤 히트를
쳤었는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처럼 이미 가수에서 발을 뗀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런 노래가 다시 라디오방송을 통해 다시 들려지는 것을 보니 예술의 힘은 참
대단하고 생명력이 길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아마 가을만 되면 이 노래는 혼자인
또는 홀로된 사람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달려주기 위해 자주 불려지겠지.

'..... 나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밖에 눈물짓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아~~ 가을은 소리없이 본체만체 흘러만가는데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아~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꺼야 사랑할거야~"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이란 가사에서 그만 몸이 굳어진다.
이 노래는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아픔과 언젠가는 예전의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사랑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혼자인 사람들은 그렇지않아도 쓸쓸하고 우울한데 이런 노래까지 들으면
더 옆구리가 시리고 허전하다. 사람의 체온이란게 참 이상하다. 사람의 체온은 항상
36.5도로서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생명이 위험하다. 사람의 체온이 떨어질 경우 나머지
사람이 체온을 나눔으로서 어려움에 처해진 사람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드라마에서
자주 본다. 사랑은 서로 체온을 나누는 것과 같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고 안정감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사랑을 나누어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행복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외롭고 좋았던 순간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을 한 사람은 다시 사랑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무엇이랄까? 마치 불을 붙일 쏘시개마저 다 태워버린 마음...
노래는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왜 이리도 가슴이 답답하고 휑할까?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주 어느 지인과 식사를 하고 차 한 잔을 할 자리가 있었다.
10월 중에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고 싶은데 콘도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어렵게 꺼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편이 나와 비슷했다. 맞벌이로 와이프가 직장을
다니는데 지금껏 자식 한명을 장모님이 맡아서 키워주셨다고 한다.
아리가 혼자이니 안되겠다 싶어 더 늦기전에 자식을 하나 더 낳자고 해도
와이프가 극력 반대한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 있는 하나로도 족하다. 내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 이제 아이를
낳으면 또 언제 그 아이를 키울 것이며 그동안 희생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나도 직장에서 관리자도 승진을 해야 할 시기이고 승진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어 평가도 좋게 받아야 하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가지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내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에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자식이 더 이상 자산도 아니요, 보물도 아니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돈도
벌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승진도 해야 하는데 자식은 이를 가로막는 비용의
주체요, 걸림돌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자식이 부모에게 손자들을 키워달라고 부탁하면 손자라고
선뜻 맡아주고 키워주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인과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만약에 내 자식들이 자라서 결혼하여 나에게 손자를
봐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어떡할 것인가?

10년, 20년뒤에 내가 혼자서 산다면 나는 아마도 십중팔구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고 있을텐데 어떤 답변을 해줄 것인가? "아빠도 아빠 삶이 소중하니 봐주기
어렵다?", "그러려무나" 이 둘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겠지. 아내 생전에
쌍둥이들은 자주 우리 가족이 모여 사는 꿈을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가 크면 5층짜리 집을 지을 거예요. 그래서 1층은 형아 사무실로 쓰고,
2층은 엄마아빠 집과 형과 우리 쌍둥이네 자식들이 놀 수 있는 공동 놀이방을
만들고, 3층은 형아네가 쓰고, 4층과 5층은 우리 쌍둥이들이 각각 살거예요'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제와 어제, 연이틀 회사 사무실 이관형대리 모친상이 있어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슬하에 5남2녀의 자식이 있는데, 문상객을 맞는 7명의 자식과 사위들,
그리고 그 아래에 줄지어 서있는 손자들의 모습이 참 다복해보였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을
애경사에 다녀보면 실감이 난다. 자식은 키울 때는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장성하여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때는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끼게 된다.
자식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기에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어제 장례식장에서 어느 직원이 딸만 둘 있는데 하나를 더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하면서 오늘 문상객을 맞는 다복한 자식들 모습을 보니
하나 더 낳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한다. 다만 큰애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애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터울이 너무 커서(내년에 낳으면 정년퇴직을 할
나이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고 한다) 낳아도 키울 일이 걱정이라고 다시
얼굴이 어두워진다.

선진국은 애를 낳으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가며 키운다는데 우리나라는
모조리 부모들 몫이니... 게다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은 허리를 휘게 만든다.
나도 외벌이로 자식 큰애와 쌍둥이자식 셋 뒷바라지를 하려니 너무도 힘들다.
혜택을 주는 것은 고작 연말정산시 자녀소득공제(국가), 다가구전기료 감면(한전),
형제10%할인(학원) 뿐이니 국가에서 아무리 저출산재앙 운운하며 자식을 낳으라고
난리를 쳐도 이런 열악한 보육 및 교육환경에서 누가 선뜻 자식을 낳아 키우려
하겠는가?

다복한 모습에 대비되는 키울 때의 고통과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저출산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1층 베란다 앞 정원에도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과일나무도 해걸이를 하나보다. 작년에는 대추는 씨가 말랐고, 감이 많이 열렸는데
올해는 반대로 감이 씨가 말랐고 대추는 가지가 휘도록 많이 열렸다. 감이든 대추든
번걸아 가면서 많이 열려주니 텅빈 마음이 위안이 된다.

가을이 되니 더 많이 힘들어진다. 계획한 일들이 내 의도대로 되어주지 않을 때, 하긴
모든 일이 내 의도대로 되어주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테지....  아내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지도 않았을테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테고, 그럼 아내가
유방암에도 걸리지도 않았을 테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쪼들리더라도 미리 암보험도
많이 들어놓고 병원비 걱정없이 암치료에만 전념하게 만들었을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주식투자는 못하게 말렸을텐데....

어제 미래예측기본과정에서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소장님이 소장님이 진행하는
미래예측과정 교육에서 나에게 '미래례측기법을 이용한 주식투자'라는 과정을 맡아서
해보라고 하신다. 아~~ 이가 갈리는 주식, 우리 부부를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은
왠수같은 이 주식투자를 앞으로 어찌 요리해서 강의를 진행할까 고민이 된다.

가을이 되니 신경이 더 예민해진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아무래도 힘들어서일까?
예전에는 그냥 별일아니게 넘어가던 큰애의 삐닥해진 행동이 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안타깝게 한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집은 끝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내마음을
항상 억누른다. 애비가 세미나를 끝내고 밤 11시 30분에 집에 들어오면 "다녀오셨어요"
하고 나와서 반갑게 인사하던 녀석이 이틀째 식사시간 이외에는 제 방문을 꼭 닫고
제 방에서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사람은 어리석은 동물이다. 삶과 시간, 돈, 권력이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며
만용을 부린다. 부부가 사별하고 나서야 배우자의 소중함을 깨닫듯 소중한 것을 보내고
잃교 나서야 사람들은 후회를 한다. 삶과 미움, 오해 이 모두가 부질없고 일순간인 것을....
삶이 그저 잠시 허용된 것이라 생각하면 미움도 서운함도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을,
가족간 미워하고 상처받고 살면 그만큼 자신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미움도 털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일분 일초라도 빨리 털고 마음 편히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을 왜 모르는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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