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기 전에 차례상을 앞에 두고, 큰애와 쌍둥이들이 베란다 밖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느라 자꾸 들락거렸다. 보다 못해 "너희들은 엄마 차례상, 조상님들 차례상보다 고양이에게 밥 챙겨주는 것이 더 소중하니?"하며 나무랬다.
이윽고 설날 가정예배를 마치고 세배를 드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먼저 장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드리고나서 자식들 세배를 받으려는데 큰애가 자신은 아빠에게 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싫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쌍둥이들만 세배를 받고 지나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릴 때(여섯살까지) 고집이 무척이나 쎈 울보대장이었다. 심사가 뒤틀려 아침에 울기 시작하면 저녁때까지 하루종일 그치지 않고 울었다. 주위에서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울면서 발가락을 비볐는데 나중에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나도 멈추지 않고 비볐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엄지발가락은 보통 사람들보다 배 이상 크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의 이런 유치했던 행동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어머니는 내가 태어난지 1년 2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그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얻고자 갈구했던 또 다른 표현수단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오시더니 울고있는 나를 회초리로 엄청 때리렸다(나는 당시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자랐다). 처음에는 아파서 울었고 나중에는 반항심에서 더 크게 울었다. 울면 울수록 아버지의 회초리는 더 아프게 종아리며 엉덩이 내 온 몸을 때렸다. 결국은 내가 울음을 그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고 그 이후 나의 울음을 그쳤다. 대신 처음으로 죽도록 맞아본 공포,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가 살아오는 내내 내 잠재의식 속에 두렵고 무서운 공포의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큰자식은 의무감으로 엄하게 키운다. 나도 큰애를 키우면서 회초리를 참 많이 들었다. 리더십이 강했고 행동이 앞섰던 아내의 성격 때문에 아내 대신 내가 매를 들 때가 많았다.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가 병이 들어 시름시름하자 나에게 동물병원에 데려가겠다고 10,000원을 달라고 하였는데 나와 아내는 집에서 병아리를 키우는 것이 못마땅했고 그렇지 않아도 곧 죽게 생겼는데 무슨 동물병원이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사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느라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큰애는 장모님께 15,000원을 빌려 병아리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살리지 못하고 곧 죽고 말았다. 큰애는 울면서 아파트 화단을 파고 병아리를 묻어주며 나에게 원망과 적개심의 싹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큰애에게는 따스한 애비의 정을 제대로 주지 못한체 훌쩍 시간이 흘렀고 늦둥이 쌍둥이동생까지 태어나는 바람에 큰애에게는 더욱 관심이 줄어들게 되고 큰애에게 회초리와 병아리사건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게 되었다. 지금 큰애가 그때 받았던 상처로 힘들어한다. 나와 대화도 거부하며 산지 4개월이 지났다.
자식이 아파할 때 부모는 마음 속으로 그보다 수십배 아니 수백배는 더 아파한다. 세배를 거부한 큰애에게 섭섭함 보다는 그렇게 마음먹게 된 상처를 내가 좀 더 일찍 감싸주지 못함에 마음이 애리고 미안핟. 아파트 베란다 밖에는 매일 아침이면 밥을 달라고 열마리도 넘는 고양이들이 모인다. 내가 그 어릴적 집안 식구들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울었고 흘렸던 눈물처럼 어쩌면 큰애도 애비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고양이를 돌보며 위로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어미는 하늘나라로 가버려 어미의 사랑은 더 이상 받을 수도 없는데, 애비가 잠재되어 있던 큰애의 역린을 건들어 세배를 거부하게 된 것은 아닌지 어제와 오늘 내내 큰애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3주전 시골을 가서 뵌 아버지 얼굴에서 그 옛날 무섭던 아버지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이제는 너무도 많이 늙으신 모습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죄책감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내 좀 더 일찍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용서하고 다가갔더라면.... 세상에 이유없이 자식을 미워하고,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나를 거부하면서도 막상 집을 나가서 독립을 하지도 못하는 여린 큰자식, 아버지가 무서워 그동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가 지금 내가 하는 후회를 내 큰자식이 또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정작 가장 큰 수혜자는 자기 자신인데....
싱글대디 김승훈
이윽고 설날 가정예배를 마치고 세배를 드릴 차례가 되었다. 내가 먼저 장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드리고나서 자식들 세배를 받으려는데 큰애가 자신은 아빠에게 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싫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고 쌍둥이들만 세배를 받고 지나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릴 때(여섯살까지) 고집이 무척이나 쎈 울보대장이었다. 심사가 뒤틀려 아침에 울기 시작하면 저녁때까지 하루종일 그치지 않고 울었다. 주위에서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울면서 발가락을 비볐는데 나중에 엄지발가락에서 피가 나도 멈추지 않고 비볐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엄지발가락은 보통 사람들보다 배 이상 크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나의 이런 유치했던 행동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람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어머니는 내가 태어난지 1년 2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그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을 얻고자 갈구했던 또 다른 표현수단이었던 것 같다.
어느날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오시더니 울고있는 나를 회초리로 엄청 때리렸다(나는 당시 할아버지를 아버지로 알고 자랐다). 처음에는 아파서 울었고 나중에는 반항심에서 더 크게 울었다. 울면 울수록 아버지의 회초리는 더 아프게 종아리며 엉덩이 내 온 몸을 때렸다. 결국은 내가 울음을 그치는 것으로 사건은 종료되고 그 이후 나의 울음을 그쳤다. 대신 처음으로 죽도록 맞아본 공포,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가 살아오는 내내 내 잠재의식 속에 두렵고 무서운 공포의 존재로 자리잡게 되었다.
큰자식은 의무감으로 엄하게 키운다. 나도 큰애를 키우면서 회초리를 참 많이 들었다. 리더십이 강했고 행동이 앞섰던 아내의 성격 때문에 아내 대신 내가 매를 들 때가 많았다. 큰애가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집에서 키우던 병아리가 병이 들어 시름시름하자 나에게 동물병원에 데려가겠다고 10,000원을 달라고 하였는데 나와 아내는 집에서 병아리를 키우는 것이 못마땅했고 그렇지 않아도 곧 죽게 생겼는데 무슨 동물병원이냐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사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느라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기였다). 큰애는 장모님께 15,000원을 빌려 병아리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살리지 못하고 곧 죽고 말았다. 큰애는 울면서 아파트 화단을 파고 병아리를 묻어주며 나에게 원망과 적개심의 싹을 키워왔던 것 같다.
그렇게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큰애에게는 따스한 애비의 정을 제대로 주지 못한체 훌쩍 시간이 흘렀고 늦둥이 쌍둥이동생까지 태어나는 바람에 큰애에게는 더욱 관심이 줄어들게 되고 큰애에게 회초리와 병아리사건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게 되었다. 지금 큰애가 그때 받았던 상처로 힘들어한다. 나와 대화도 거부하며 산지 4개월이 지났다.
자식이 아파할 때 부모는 마음 속으로 그보다 수십배 아니 수백배는 더 아파한다. 세배를 거부한 큰애에게 섭섭함 보다는 그렇게 마음먹게 된 상처를 내가 좀 더 일찍 감싸주지 못함에 마음이 애리고 미안핟. 아파트 베란다 밖에는 매일 아침이면 밥을 달라고 열마리도 넘는 고양이들이 모인다. 내가 그 어릴적 집안 식구들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며 울었고 흘렸던 눈물처럼 어쩌면 큰애도 애비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고양이를 돌보며 위로받고 있는지 모른다. 이제 어미는 하늘나라로 가버려 어미의 사랑은 더 이상 받을 수도 없는데, 애비가 잠재되어 있던 큰애의 역린을 건들어 세배를 거부하게 된 것은 아닌지 어제와 오늘 내내 큰애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3주전 시골을 가서 뵌 아버지 얼굴에서 그 옛날 무섭던 아버지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이제는 너무도 많이 늙으신 모습만 남아있는 것을 보고 죄책감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내 좀 더 일찍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용서하고 다가갔더라면.... 세상에 이유없이 자식을 미워하고, 회초리를 드는 아버지가 어디 있겠는가? 나를 거부하면서도 막상 집을 나가서 독립을 하지도 못하는 여린 큰자식, 아버지가 무서워 그동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가 지금 내가 하는 후회를 내 큰자식이 또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정작 가장 큰 수혜자는 자기 자신인데....
싱글대디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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