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11일 이사를 간다. 좀 더 살고 싶은데 2년 기한이 지나고 주인집이 들어오겠단다. 2년전 507동에 살 때도 주인집이 들어오겠다고 해서 지금 504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수리를 해서 더 높은 가격에 전세를 주었다. 이번에도 집주인이 수리해서 들어와 살면서 집을 팔겠단다. 약정한 2년 임대차 기간이 끝났으니 연장 여부는 집주인이 맘이고 나가달래니 어쩔 수 없다. 매번 이사 때마다 집없는 설움을 톡톡히 겪는다.

1988년에 결혼해 살면서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우리집은 딱 세번, 신혼초 부천 고강동 현대아파트와 뒤 이은 광명 철산동 우성아파트 그리고 일산 백마마을 쌍용아파트 511동.... 이후 신도림동 우성아파트 2년, 일산 후곡마을 건영아파트 2년와 주공아파트 2년, 백마마을 극동아파트 2년, 한양아파트 2년, 쌍용아파트 507동 4년, 504동 2년 도합 16년을 남의 집에서 살고 있다. 지난 1991년 철산동 완구가게의 사업실패 이후 지금것 전월세를 전전하며 살고 있다.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1990년말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장모님 모시고 살며 자식이 셋 게다가 늦둥이 쌍둥이들이 태어나니 집 장만은 엄두도 못내겠다. 그저 흩어지지 않고 좁지만 한 집에서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살 뿐이다.

자식들 양육비와 교육비가 가장 큰 부담이다. 자식 한 명을 대학까지 키우는데 2억 3000만원이 든다는데, 세 녀석이나 되는 녀석들 뒷바라지를 어이 할꼬? 이사를 다닐 때마다 다음에는 꼭 집장만을 하리라 다짐을 해보지만 연신 공수표다.

한번 이사를 다닐 때마다 이사비용도 만만찮아 빈곤의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자식이 셋에 장모님까지 모시고 살다보니 27평이라지만 왠만한 40평짜리 집 이사 물량이다. 이사 견적을 하러 온 사람들마다 놀란다. "왠 짐이 이리도 많으세요?" 우리집은 책이 많다. 내가 보는 책도 책장 2개 분량이고, 큰애도 책이 많고, 쌍둥이들도 책이 많다. 나와 자식들 옷에 아내가 생전에 쓰던 장롱이 셋이고 화장대며 아내가 쓰던 유품이 고스란히 있어 이번에도 포장이사 비용만 110만원이다. 중개인 수수료에 이것 저것 수리비를 합하면 이사비용이 200만원 훌쩍 넘어간다. 이러니 어지간하면 세입자들이 그냥 전세금 올려주고 눌러서 사나 보다.

불편해도 왠만하면 그냥 살자고 해도 지저분한 것을 못보시는 장모님은 이사를 할 때마다 씽크대며 세탁기 하수구멍 수리, 베란다 방충망 등을 여기저기 고치느라 돈도 꽤 많이 들었다. 그래보아야 주인집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을... 그냥 참고 살자고 해도 단 하루를 살아도 지저분한 것은 딱 질색이신 우리 장모님 성화는 말릴 수가 없다.

다음 2년 뒤를 기약해 본다. 큰애도 올 7월에는 군입대를 한다. 2년 뒤에는 정말로 집을 꼭 장만해야지~~ 남의집살이를 하다 힘들게 내집을 장만한 사람이 입주를 하여 거실 바닥에다 입맞춤을 하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장모님 : "언제 이삿짐센터 계약을 하려고 드는가? 이왕이면 빨리 해버리지.."
나 : "제가 알아서 할께요. 견적이 125만원인데, 그래도 한두군데 정도는 더 견적을 받아서 비교해 보고 결정해야죠"
장모님 : "꼼꼼히 잘해준다고 하니까, 빨리 결정했으면 좋겠구먼 그러네, 결정해버려야 내가 마음이 놓이지. 냉장고도 청소해주고, 이사갈 아파트도 청소해준다는데 그냥 이번에 견적을 받은대로 결정을 했으면 좋겠구먼..."
나 : "아직도 이사가 20일이나 남아있잖아요"
장모님 : "이사갈 생각만 하면 걱정이 되어 쌩머리가 더럭더럭 아프다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하겠다고 말을 했는대..."
나 : "포장이사를 할꺼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장모님 : "자네는 이사가는 것이 뉘집 강아지 이름처럼 쉬운 일인줄 아는가? 이사하는 것이 얼마나 신경쓰이는 일인데..."
나 : "그래서 비싼 돈주고 포장이사를 맡기잖아요"

이사를 할 때면 장모님은 1년전부터 걱정을 하신다. 이사를 가게 될 전월세 집 계약이며 이삿짐센터 계약, 이사갈 집 청소, 이사준비 등 미리 걱정을 하며 계약을 빨리빨리 하라고 재촉하신다. 휴~~ 언제 내집을 마련하여 이런 장모님 이사 스트레스에서 벗어날거나?

# 둘

장모님 : "재윤아! 빨리 나와라"
재윤 : "금방 나갈께요"
장모님 : "아직도 안나오니"
재윤 : "잠깐만요"
장모님 : "빨리 나오라니까..."

농협하나로마트 시장을 나가는데 장모님은 현관문 앞에서 굼뜬 쌍둥이들이 나오기를 지키고 서 있다. 매주마다 반복되는 현상이다.

# 셋

장모님 : "빨리 출발하세"
나 : "너무  이르잖아요"
장모님 : "10시 이전에는 목욕탕을 가야지, 늦게가면 사람도 많고 물이 더러워서 목욕을 못할 정도라니까"
나 : "목욕탕물이야 계속 새 물로 정수가 되어 바꾸어 지는데요"
장모님 : "그래도 물이 틀리다니까 그러네...늦게 가면 사람도 많아 앉을 자리도 없고 정신이 없다니깐..."
 
장모님은 매주마다 목욕탕을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어야 일주일간 쌓인 피로가 풀리신다. 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매주마다 장모님을 모시고 목욕탕을 가야한다. 장모님은 최소한 10시 이전에 목욕탕으로 출발하기를 재촉하신다. 10시가 넘어 출발하면 목욕탕 물이 더럽다고 아예 목욕가는 것을 보이콧 하신다. 그래서 우리집 매주 목욕 D-time는 오전 10시이다.

# 넷

장모님 : "빨리 농협마트 출발하세"
나 : "하던 일 좀 마무리짓고요."
장모님 : "농협도 일찍 가야 싱싱한 물건을 고를 수 있지, 늦게 가면 처진 것만 사게 된다니까"
나 : "물건이야 떨어지면 저온창고에 보관된 야채들이나 물건들이 계속 나오잖아요"
장모님 : "그래도 일찍 가야 싱싱한 것을 골라서 살 수 있지, 늦게가면 남들이 다 고르고 남은 안좋은 것들만 있다니까..."

한번은 일 때문에 늦어 저녁 늦게 농협하나로마트에 들렀다가 상품가치가 처진 것만 남아, 물건 질이 떨어진 것만 사게 되었다고 시장을 보는 내내 뿐만 아니라 그 이후 일주일 내내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 다섯

나 : "오늘 저녁은 칼국수나 먹으로 가죠"
장모님 : "그럼 사람들 오기 전에 일찍 나가야지, 안그러면 한참 줄을 서야 돼네"
나 : "오후 6시 전에만 도착하면 될꺼예요"
장모님 : "그때 가면 밀린다니까~ 더 일찍 출발해야지"

결국 오후 5시 30분에 출발했다.
말이 떨어지면 장모님 재촉과 성화는 알아주어야 한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행동으로 옮겨야지 안그러면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계속 들볶인다.

# 여섯

재명 : "아빠! 우리도 아빠처럼 교통카드를 만들어 주세요"
나 : "나중에 아빠가 시간나면 만들어줄께"
재명 : "내일 당장 친구들과 영화보러 가는데 쓸지 몰라요"
나 : "여지껏 교통카드가 없어도 잘 지내왔잖아?"
재명 : "그때는 없어서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만들면 쓸지 모르잖아요?"
나 : "알았다. 어디서 만드는데?"
재명재윤 : "GS25나 훼미리마트에 가면 살 수 있데요"
나 : "가장 가까운 GS25나 훼미리마트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렴"
재명재윤 : "네"

쌍둥이자식의 재촉도 알아주어야 한다. 심부름을 시키면 동작이 굼떠 수십번을 이야기해야 겨우 움직이는 녀석들인데 자기들이 필요한 것은 숨이 넘어가도록 나를 졸라댄다.

# 일곱

재명 : "아빠~ 마법천자문 책이 새로 나왔어요"
나 : "나중에 농협하나로마트에 가면 사줄께"
재명 : "그전에 사주시면 안돼요?"
나 : "며칠만 참으면 되는데?"
재명 : "그래도 더 일찍 보고 싶어요"
나 : "알았다"

이렇게 나는 성질 급한 가족들 사이에서 매일매일을 들볶이고 산다. 지금 사는 집이 아파트 1층이라 오가는 사람들마다 들볶이는 고성 때문에 매번 고성이 오가니 본의 아니게 우리 동에서는 시끄럽기로 유명한 집이 되고 말았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이거 잡으러 갔구먼"
지난 일요일 밤, 6월에 열릴 사내근로복지기금 정모장소 헌팅차 용평리조트 무창포 비체펠리스콘도와 여수 디오션콘도를 1박 2일로 답사하고 왔다. 여수디오션콘도에서 바다낚시체험으로 낚은 농어 세마리를 아이스박스에서 꺼내놓자 장모님께서 불편한 심기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해 버린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런 귀한 생선은 사서라도 다듬으셨으나 그날은 내가 집을 비운 바람에 꼬박 이틀동안 쌍둥이들에게 시달리느라 피곤하셨던지 싱싱한 자연산 생물 농어를 가져왔는데도 시큰둥한 반응이시다. 쌍둥이들 중간고사가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붙어있기만 하면 다투고 우김질하고 장난을 치는 쌍둥이들을 집에 맡기고 애비가 이틀씩이나 집을 비우고 밖에서 놀다 왔으니 서운하실 수 밖에....

지금껏 장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부억에서 생선을 손질해 본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내손으로 농어를 손질해 드렸다.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출타를 하셨다 돌아오실 때나 장에서 생선을 사오시면 할아버지께서는 마당에서 숫돌에 칼을 갈아가며 손수 생선을 다듬어 주셨다. 생선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고, 지느러미와 머리, 꼬리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잘라서 먹기 좋게끔 잘라 토막을 내서 소금으로 간을 맞춰서 부얶으로 넘겨주셨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께서 생선을 다듬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자란 탓에 나도 억센 농어의 비늘, 지느러미 머리와 꼬리를 능숙하게 손질해 나간다. 장모님께서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는지 계속 이틀동안 쌍둥이들과 있었던 일들을 고자질하시며 나에게 성화를 부리신다. 그러자 옆에서 그런 모습을 쭈욱 지켜보고 있던 막내 재윤이가 불쑥 한마디를 거든다.
"할머니! 아빠가 이틀동안 콘도를 다녀오신 건 그냥 놀러갔다 오신 것이 아니라 사내근로복지기금카페 회원들 정모 때문에 미리 현지답사를 다녀오신 거예요. 아빠를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헐~~ 생각지 않았던 막내 재윤이의 말 한마디에 나에게 향하고 있던 장모님의 불편한 심기가 그만 그 예봉이 맥없이 꺾이고 말았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그래도 자네는 애비 편을 들어주는 자식이 있으니 좋겠네"
그렇게 사위와 장모의 잠시 불편했던 한랭전선은 막내의 재치넘치는 말 한마디로 한순간에 막을 내렸다.

쌍둥이아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나는 너무 힘들고 외롭게 자랏던 탓인지 자식에 대한 욕심이 털끝만큼도 없었다. 어머니가 너무도 일찍 돌아가시고(나를 낳은지 1년 2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어머니에 대한 정이, 가족에 대한 따스함이 무언지도 모르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집을 떠나 객지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삶 속으로 따라들어가 버렸다.

아버지 형제가 칠남매(5남 2녀)여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많은 삼촌들과 고모들을 객지로 보내 학교를 다니시게 하느라 고생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릴적 할아버지께서 삼촌과 고모들에게 보낼 돈이 없어 할머니께 이야기를 하면 할머니는 싫은 기색없이 마을에서 돈이 있을 만한 집에 가서 돈을 만들어 오셨다. 할아버지께서는 마을이자 지역 유지이신 덕분에, 신용이 좋아 비교적 돈 빌리기는 쉬웠던 것 같다. 그렇지만 부잣집에서 고생 모르고 살다가 시집오신 우리 할머니께서 남의 집에 가서 돈을 빌려달란 말을 하기는 자존심이 많이 상하셨을텐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면 싫은 기색없이 다녀오시곤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런 호흡이 자식과 장손자인 나를 시골 어려운 환경에서 모두 고등학교 이상 졸업시킨(고모 한 분만 빼고) 교육열로 승화되었던 것 같다.

우리집은 아주 어릴적부터 염전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일 때는 할머니가 직접 우리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장에 가서 직접 파시기도 했다. 우리 염전에서 함께 소금을 떼가지고 간 마을 다른 여자분들은 장사에 능해서 오전내에 모두 팔아치웠지만 우리 할머니는 오전에 모두 팔지를 못하고 오후가 되면 주변 가게를 돌아다니며 팔아달라고 사정하시는 모습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지역 유지이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계신데 할머니께서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금을 이고 시장에 나가서 판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형제도 내 밑으로 남동생이 넷, 5형제이다. 아버지도 우리 다섯 형제 모두 고등학교 이상 본인들이 원할 경우 대학까지 진학시켰다. 지금 돌아보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은 자식들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하느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포기한 셈이다.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자식들, 손자를 먼저 챙기셨다. 나는 이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식들에게 치이며 고생하시고 희생하시는 모습이 싫어 나는 결혼하면 자식을 딱 하나만 낳아야겠다고 일찍이 결심을 했다.

결혼 하자마다 우리 부부는 사주에 손이 귀하니 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장모님 성화대로 허니문베이비로 들어선 큰 애를 낳아, 솔직히 큰 애는 정보다는 의무감으로 키웠다. 그 때 큰애에게 아비의 정과 사랑을 많이 주지 못하고 키웠던 것이 지금은 많은 아픔과 회한으로 남는다. 게다가 97년에 아내가 늦게 아기를 가져 그것도 아들 쌍둥이를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을 선언을 하기 일주일 전에 낳아 졸지에 아들만 셋이 되어 눈코 뜰새 없이 키우다가 아내마저 2006년 11월에 많은 빚을 남겨놓고 하늘나라로 훌쩍 가버린 지금, 나 혼자 신용불량 상태에서 개인회생까지 이행하면서 세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 무척이나 버겁고 마치 나의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만 같았다.

왜 나에게 원치 않은 아들을 셋이나 주었을까? 특히 늦둥이는 아들 쌍둥이로 주셨을까? 많은 의문 속에서 살았다. 나는 그 답을 아내가 내 곁을 떠나고 내 나이 오십을 넘긴 이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야근에,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매일 밤 11시 40분, 큰애와는 냉전 중이라 내가 퇴근하고 집에 가도 얼굴도 내비치지 않는다. 불이 꺼진 집,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여기저기 뒹글며 이불을 차버린체  곤히 잠들어 있는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그 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지! 자식은 하나님이, 먼저 간 아내가 나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구나! 먼저간 아내가 남긴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선물! 나 혼자면 이 세상 살아가는데 외롭고 힘들까봐 서로의 비전을 공유할 자식을 셋씩이나 나에게 선물하고 갔구나! 유난히도 밝고 성품에 구김이 없어 복원력이 빠른, 그리고 해맑은 미소를 지닌 쌍둥이들이 곁에 있어 나는 아내의 빈자리를 금새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녀석들 키우고 뒷바라지하고 공부시키려면 잠시도 좌절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즐거움과 행복함으로 굴곡많은 삶에 당당히 맞서고 자식들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끌어안고 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나는 부자구나~~ 아들을 셋씩이나 둔 당당한 자식 부자아빠.^^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이 벌써 당신 3주기 제사이네.
그넘(?)의 유방암이 하필이면 당신에게
그것도 전이가 되어버린 말기상태로 느닷없이 오더니만
그냥 훌쩍 내 곁에서 당신을 데려가 버렸지

그 이후로도 이넘의 무정한 세월은 까먹지도,
잊어버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내 앞을 3년이나
잘도 스쳐 지나갔네 그려.

장모님이 먼저 보낸 딸 제사상은 당신이
직접 차려주고 싶다는 뜻 그대로 하시라고 했지.
당신은 내 아내이기에 앞서 또 한 명의 딸이었으니....

내 그때 뒷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라고 웃으면서
큰소리는 쳤지만 내 요즘 너무 많이 힘들어.
매주 시장을 보아야 하고 장모님께 20만원씩 드려야 하는
토요일은 왜 이리도 빨리 찿아오고,
월세주는 날이나, 쌍둥이자식들 학원비를 납부하는 날,
그리고 직원들 빚을 갚아주어야 하는 날짜는
왜 이리 빨리 그리고 자주 돌아오는지,
입안에 침이 바짝 타고 피가 마르는 것 같아.

'이승 저승 하지만 그래도 이승이 좋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먼저 간 년만 불쌍하지" 간혹 내게 섭섭하실 때면
하시는 장모님 성화에도 전에는 무지 섭섭해서
화도 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가 되었네.

당신이 가고 나면 나 혼자 어찌 사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고 살아지네.
내 하늘나라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당신얼굴 보려고
내 이 악물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하다하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볼거라네.

2006년 11월 10일까지가 이승에서 나와 당신과의
인연이었다면 아직도 못다한 우리의 사랑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이으면 되겠지.

내일 한국생산성본부 8시간 종일 강의인데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오질 않을 것 같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함께 회사 통근버스를 타는 회사 동료가 있는데 그 사람은 아침에
절대 뛰는 법이 없다. 그 사람이 가진 징크스는 다름 아닌
'아침에 뛰면 하루종일 뛰게 된다'는 거다.

오늘 아침 아파트 단지를 종종걸음으로 걸어나오는데, 왠지 주머니가 허전하다.
어???? 휴대폰이 없다. 집으로 돌아갈까? 말까? 오늘 외부 사람과 미팅이
있는지라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가 휴대폰을 들고 나오니 통근버스 도착시간이
7분밖에 남지 않았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얼추 500미터, 통근버스를 놓치면 일산에서
여의도까지 아침 출근길은 통근버스로 가는 시간의 두배를 서서 가야 한다.

통근버스 타는 정류장까지 무거운 가방을 메고 일단 뛰었다.
오늘따라 퇴근후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어 넷북을 넣은지라 가방이 무겁다.
겨우 통근버스를 탔는데 이마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린다.

이렇게 시작한 하루 일과, 골치 아픈 일들이 봇불터지듯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막내 학교선생님은 막내가 숙제를 5번이나 해오지 않아서 학교 교실에 남겨
명심보감을 쓰라고 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오고, 잠시후 전화를 거니 막내가
선생님이 내준 과제도 하지 않고 그냥 사라져버렸단다. 죄송하다고 자식교육
잘 시키겠노라고 죄송하다고 말하고 애들이 한참 놀기 좋아하는 시기 아니냐며
위로아닌 위로를 들으며 전화를 끊는다. 집에서는 막내가 집에 와야 할 시간인데
오지 않는다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나에게 묻는다. 학원에서는 오늘 보충을
하기로 했는데 학원에 오지 않았다고 전화가 걸려온다.

정말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다. 어제 큰애와 한바탕 냉전을 치른 후 큰애는
쌍둥이 동생들 챙기라는 장모님 말씀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짜증을 부린다고
속상해하기며 장모님은 나에게 성화이시다.

정말 징크스는 있는 걸까? 아침부터 뛰어서 그런 걸까?
아침부터 뛰지 않았으면 과연 막내가 오늘같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가 "내일 두고보자!"는 말은 유머라고 한다.
태어나서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하루살이의 '하루'는 삶의 전부이자 너무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어제 하루는 싱글대디인 나에게 너무나 힘든 날이었다.
1인 3역을 한다는 것이 큰 인내와 투자를 요하며, 엄마의 역할 또한 얼마나 소중한지,
자식들 뒷바라지의 어려움, 집사람 없이도 씩씩하게 어려움을 잘 이겨낼 것이라
자신했는데 집사람의 빈자리가 너무
커보여 마음과 몸이 모두 무척이나 아팠고 힘들었다.

어제는 몇가지 일이 동시에 터진 날이었다.
집 전화기가 고장이 나서 전화벨 소리가 아예 울리지를 않았다. 아마 호기심 많은
막내 재윤이가 여기저기를 쑤셔 고장을 내 놓은 모양이다. 여기저기 전화가 걸려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아예 울리지를 않으니 집으로 전화를 하는 사람도 짜증이 났고, 집에서
전화를 왜 받지 않느냐고 무슨 일 생겼나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에 장모님도 짜증이
났고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큰 애가 2주 전에 지방으로
내려갈 때는 한참 더웠으나 그 사이에 날씨가 급변하여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저
긴팔 옷을 빨리 부쳐달라고 아우성대고, 쌍둥이 중 막내인 재윤이는 3일전부터 눈병에다
몸에
피부 알러지까지 생겨 학교와 학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죽치고 아픈 눈으로
하루
종일 TV만 보고 있으니 장모님 심정이 오죽 답답하셨겠는가?

장모님이 불편하신 몸으로 비가 오는 와중에 재윤이를 데리고 병원 안과에 피부과까지
다녀오셨고 빈 사과박스를 구해 큰애 옷을 두박스나 챙기느라 동분서주 하셨던 모양이다.
다행히 막내 재윤이 눈병은 바이러스성 결막염으로 판명되어 어제 진단서를 떼어 학교에
제출하고 어제부터 겨우 등교하기 시작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제 저녁은 지난 여름성수기 콘도운영에 협조해준 콘도사
관계자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는 자리를 만들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늦게까지 약간의 과음을 하고 밤 12시 30분에야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장모님의 전화기, 큰애 옷, 재윤이 병원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나에게 풀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자네, 제 정신인가?",
"빨리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하게! 나도 이제 더 이상은 애들 뒷바라지 못하겠네..."
폭탄 선언을 하시는 바람에 수습하느라 많이 힘들었다.

사람은 가끔 하루쯤 잠적하여 모든 일을 잊고 혼자 지내고 싶을 때가 있다고 한다.
어제는 나도 모처럼 그동안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술에 취하고 싶었고 노래방에서
목청이 터져라 마음껏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 '하루' 마저도 나에게는 허용이
되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은 당신의 하루를 당신이 마음껏 사용십니까?
'예'라고 대답하는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재명이가 한달째 기침을 하고 있다. 동네 병원과 약국에 갔다 바친 돈만해도
꽤 된다. 5일전부터는 재윤이도 기침을 하더니 급기야 열이 펄펄 끓어 학원
수업을 받는 도중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생겼다.

지난주 4일간 새벽기도회를 나간 것이 감기를 악화시켰다고 장모님의 성화가
여간이 아니다. 하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교회 새벽기도화를 다녀오고,
잠시 집에 있다가 8시 10분에 등교했다가 오후 두시 30분경에 귀가하여 겨우
두시간정도 집에서 쉬다가 다시 학원으로 직행하여 밤 10시 10분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강행군과도 같은 생활을 계속하다보니
어린 녀석들 몸이 견딜리가 만무하다.

일단 지난주 금요일부터 쌍둥이들의 새벽기도회 참석을 중단시키고 아침까지
푹 자도록 하니 조금은 몸이 추수려지는 것 같다. 밤이면 한때 40도까지 오르던
재윤이의 체온도 이제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고, 모든 일정에 차질을 가져온다.
쌍둥이들이 아프다보니 장모님이나 내 생활이 말이 아니게 피폐해져 간다.
녀석들 곁에서 간호하느라 밤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새고
새벽에 겨우 일어나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가 회사에 나가다보니 기운도 없고
머리는 멍하고,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맥을 못추고 자연히 넘치던 삶의 열정도
의욕도 떨어진다.

건강 밸런스가 깨어지면 이처럼 치러야 하는 댓가가 너무 크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 뿐만 아니라 시간투자, 업무효율성 저하 등 여러가지
면에서 출혈이 뒤따르게 된다. 우리 집안의 재롱둥이인 쌍둥이들이 침울해 있고
기침을 연신 해대니 집안 분위기도 자연히 다운되어 있다.

건강을 유지해야 주어진 소명도, 목표도 이룰 수 있다.
건강함 속에 꿈과 비전을 향한 열정과 도전이 함께 할 수 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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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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