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리 추석인사를 하러 고양시에 있는 추모공원 두 곳

(일산추모공원과 청아공원)을 다녀오려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추석 연휴에는 추모공원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세월은 참 많이 변했다.

이제는 상을 당하면 매장보다는 화장이 대세이고,

납골당에 많이들 모신다.

추석이면 후손들이 모여 산소를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3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일산추모공원으로 모셨다.

쌍둥이어미는 청아공원에 있고......

그래도 지근 거리에 있으니 자주 들여다 본다.

앞으로 20~30년 후에는 또 장례문화가 변할 것이다.

조상은 많이 잊고 당장 현실에 충실하며 살겠지.

 

내 이후에는 납골당에 모신 두 사람을 어찌 해야 할지

이 또한 내가 살아있을 때 처리해야 할 숙제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수요일 4월 23일이 결혼 20주년인데도 평일이고 회사에서 선약이 잡혀 있어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집사람이 있는 청아공원을 가지 못했다. 주중 내내 마음이
불편하여 오늘은 집사람에게 꼭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오전에 농협하나로마트도
다녀오고, 목요일에 삼성전자A/S센터에 맡긴 노트북도 수리하여 찿아오고 부지런히
서두른 덕에 오후 3시가 되니 대충 일이 마무리되어 시간이 한가해졌다. 지금
시간을 내어 엄마가 있는 청아공원을 잠깐 다녀오자고 했더니 아들녀석들 셋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지금이요?" 하며 썩 내키지 않은 얼굴표정들이다.

"그래 지금, 날 어둡기 전에 빨리 다녀오자"
큰녀석은 대답도 하지 않고, 재명이와 재윤이 쌍둥이 녀석들은 숙제 때문에 집에 온
친구와 노느라 들은 체도 하지를 않는다. 오직 장모님 혼자만 반가운 기색으로 얼른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가신다.

"친구들과 숙제를 해야 하는데요?"
"갔다와서 하면 되잖아?"
"그래도..."
"지난 수요일이 아빠와 엄마 결혼20주년이었는데 다녀오지를 못해서 오늘 가려는거야"

친구가 한명 집에 와있어 할 수 없이 쌍둥이 중 형인 재명이와 큰녀석, 장모님과 함께
청아공원에를 다녀왔다. 가는 내내 재명이는 내키지 않았는지 심기가 불편하여 입이
댓자나 나와 말도 하지 않고 있더니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청아공원을 다녀오는 내내 기분이 착잡했다.
어미가 외롭게 혼자 있는 산소에 가자는데도 게임이 좋아서, 친구와 노는 것이 좋아서
어미 산소에를 가기 싫다고 고집피우는 아들들을 장차 어디에 쓸꼬?

어려서도 이런데 더 크면 자기네 고집을 피우며 더 이기적인 행동을 할텐데...
물론 자식들을 곁에 끼고 살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내 모든 것을 투자하고 희생하여
힘들게 모두 키워놓아 본들 나중에는 자신들의 일이 우선순위가 되면 그때는 나 혼자
어찌 시간을 보내며 살아야 할지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하기만 하다.

지금이야 "4층 빌딩을 지어 1층은 아빠 사무실과 큰애 사무실, 2층은 애들 놀이방과
아빠 방, 3층은 큰형 집, 4층은 쌍둥이들 집으로 꾸밀거예요. 우리가족 오래도록 함께
살아요" 하고 말하지만 지금도 게임이 좋아서 엄마 산소에도 가는 것도 저토록
싫어하는데 과연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겠는가?

나도 이땅의 부모들처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열심히 일하느라 노후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자식들에게 짐이되고 버림받는 불행한 세대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어린 자식들에게 내 노후 챙겨야하니 너희는
너희가 벌어서 학교도 다니고 살아나가거라 하며 매몰차고 거리로 내몰 비정한 부모가
어디 있으랴! 과거 부모들이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한 결과 지금
우리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OECD선진국이 되고 세계에서 모범적인 경제강국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 혼자 수입으로 자식들도 챙기고 빚도 갚아나가고 내 노후도 내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고단한 삼중고의 싱글대디의 삶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현실이고 내 운명이라면 나 또한
피하지 않고 당당히 현실과 부딪치며 꼭 극복해내리라 다짐해 본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는 어린이날이었다. 집사람이 하늘나라로 간 이후 처음으로 맞는 어린이날이다.
그러다보니 더 신경이 쓰이고 쌍둥이들 재명이와 재윤이에게 세심히 배려하게 된다.
모처럼 나들이를 하였는데 곳곳이 정체여서 기분전환하려 나갔다가 오히려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도 지방에서 큰애까지 올라와 온 가족이 모처럼 함께 모여
어린이날을 뜻깊게 보냈다. 아침에 집사람이 있는 청아공원에를 들러 곧장 산본에 있는
처남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지난 5월 2일 생산성본부에서 오전교육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막내 재윤이가 갑자기 "아빠!!! 학원을 한달 쉬면 안되요?"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올 해 들어서 2006년 결산이다, 법인세 신고다, 이사회 및 협의회 자료 준비다,
비정규직건으로 소송준비다, 사내근로복지기금 교육이다, 국가인권위원회 현장조사
준비 및 수검을 받으며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가장 소중한 내 가족들에게 내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것을 느꼈다. 항상 내 일이 우선이었고 재명, 재윤이는 항상 뒷전이었다
집에 퇴근해서도 내 일에 바빠 숙제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방치를 한 적이 더 많았다.
숙제나 준비물이 없느냐고 묻고, 없다고 하면 만화나 TV를 보도록 했고 PC게임까지
하게 해주었다. 자연히 PC게임을 하기 위해 숙제가 있으면서도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고, 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엎지러진 물! 교육을 마치고 곧장 쌍둥이들이 다니는 학원을 가서 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니 요즘 막내인 재윤이가 숙제를 잘 해오지 않고 시험을 보아도 틀리는 것이 많아서
매일 보충을 받는다고 한다. 자연히 학업에 흥미가 떨어져 학원을 가기가 싫어진 모양이다.
학원 선생님들께 엄마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과 나도 이제는 보다 재명, 재윤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하겠다고 약속하며 앞으로 애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고 학원을 나섰다.

그 이후부터는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와서 재명, 재윤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많은
대화를 나누며 부족함이나 어려움은 없는지 지켜보고 있다.
 
일과 가족 사이에서 느끼는 갈등은 비단 나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다.
가족을 희생하며 얻은 성공이 과연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며, 오래 지속될 것인가?
일은 내일로 미루어도 되지만 가족은 항상 내곁에 그대로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가족은 가장 소중하다. 군부독재시절에는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나의 미션과 열정은 가족으로부터 나온다.
이제부터는 내 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며 생활해야겠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은 어버이날, 한달전부터 시골 아버지와 어머니께는 무슨 선물을 보내드려야 할지,
모시고 사는 장모님께는 또 무슨 선물을 해드려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옷을 사서
보내드리기도 그렇고 그냥 돈으로 부쳐드리기로 마음먹고 시골 집으로는 어제 이번에
새로 출간한 '사랑하지만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책을 등기로 보내드리고 오늘
아버지 통장으로 10만원을 송금해 드렸다.

장모님께는 우리 가족에 대한 책을 썼다는 말을 못드리고 있어 늘 사다드리는 건삼 6년근
15편짜리를 두개 오늘 구입하여 내일 아침에 드리려고 한다. 매일 새벽 5시 30분, 나보다
항상 먼저 일어나 내 새벽밥을 챙겨주시고 쌍둥이들 아침이며, 오후 간식, 저녁까지
준비해주신다. 회사에서 야근으로 늦는 날이면 건강 잘 챙기라고, "자네마저 아프면 불쌍한
이 새끼들 누가 뒷바라지 하겠는가?" 하시며 건강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 주신다.

매일 밥상에도 올라오는 가장 크고 굵은 생선은 "이건 아빠가 먹고 일 열심히 해서 너희
뒷바라지 해야 한단다"하시며 내 앞에 놓아 주신다. 내 대신 우리 가족들 챙겨주시며
살림을 도맡아 해주시는 장모님께는 뭐라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1988년 4월 결혼과 함께 같이 모시고 살면서 큰애를 낳자 지금까지 길러주시고, 이제는
쉴만한 때 쌍둥이자식들이 덜컥 들어서는 바람에 다시 두 사내녀석들 키우고 뒷바라지
하느라 편히 쉬어보지 못하셨다. 2006년 11월 집사람이 먼저 하늘나라에 가면서 쌍둥이들
뒷바라지를 부탁하는 바람에 연로하신 몸으로 계속 녀석들 뒷바라지를 해주고 계신다.

내가 매일 자식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신경쓰지 않고 회사 일과 내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장모님 덕분이다. 여유가 되면 치아도 새로 해드리고
싶고 매년 건강진단도 받게 해드리고 싶은데 생활에 여유가 허락하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집도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여 넓은 방도 하나 쓰시라고 드리고 싶고, 그토록 원하시는
침대도 하나 사드리고 싶고, 일주일에 한번은 온 식구들과 함께 나가 외식도 시켜드리고
싶고, 가끔은 집안일 잠시 떠나 머리 식히시라고 여행도 보내드리고 싶다. 그리고 빨리
차를 장만하여 마음이 울적할 때 먼저간 딸 체취를 느낄 수 있도록 청아공원에도 자주
모시고 다니고 싶다. 이러한 희망이 빨리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내가 열심히 삶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은 설날이다.
안향련님의 심청전 중 곽씨부인을 안장후 평토제를 지내면서 심봉사가 축문을
지어 바치는 대목을 듣고 있으니 내 가슴이 찢기듯 아프다. 축문 내용이나
심청전을 목이 터지도록 절절히 부르고 있는 안향련님도 젊은 나이에 이미 고인이
되어 있는 상황이 어이 이다지도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지...

「차호부인(嗟乎夫人)  차호부인(嗟乎夫人),
요차요조(邀此窈窕) 숙녀혜(淑女兮)요.
행불구혜(行不苟兮)  고인(古人)이라.
기백년지(幾百年之) 해로(偕老)터니
홀연몰혜(忽然沒兮)  언귀(焉歸)요,
유치자이(遺稚子而) 영서혜(永逝兮)여,
이걸  어이 길러내어,
누삼삼이(淚森森而) 칠금혜(漆襟兮)여,
진한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沈耿耿)이 소홀하여,
살 길이 정히 없네. 
누추추 절히하니 어느 때나 오시려오.
주과포혜(酒菓哺醯) 박전(薄奠)하나,
만사(萬事)를 모두잊고, 많이 먹고 돌아 가오.
(무덤을 부여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北邙山川)  들어가,
송죽(松竹)으로 울을 삼고,  두견(杜鵑)이 벗이 되니,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하리.
노이무처(老而無妻) 환부(鰥夫)라니,
사궁중(四宮中)에 첫  머리요, 아들 없고 앞 못보니,
몇가지 궁(窮)이 되더란 말이냐?
마누라가 아니면 얼어서도 죽을테요.
주려서도 죽을테니 차라리.....

무덤을 부여안고, 곽씨부인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심봉사의 애절한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당신이 있으면 지금쯤 설명절을 맞기 위해 밤을 새우며 음식을 장만하고,
여기저기 친척집에 전화를 걸어 설날에 와서 고스톱을 치자고 부르고,
밤 늦도록 TV 로 방영되는 영화를 보느라 밤 늦도록 집안이 북적거리고
부산하였을텐데, 오늘은 쌍둥이들을 일찍 재우고나니 집에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오늘 청아공원에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당신이 들어올 때는 납골안치실이 거의 비어있었는데 이제는 절반 약간 못미치게
많이 차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은혜홀가홀의 내무반장 아니 청아공원 영령들의
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고 하나님도 당신의 리더십이 아까워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모님이 먼저간 당신을 위해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 성질이 고약하여 차례상에 올릴 전도 마트에서 사서 올리면 정성이 부족하다고
난리친다고 장모님이 불편한 몸으로 정성스레 직접 부쳤다오.
남겨진 가족은 걱정말고 천국에서 여자로, 학력으로, 각종 차별과 경제적인
이유로 펼치지 못한 꿈과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사시구려~~~

2008.2.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11월 10일 사랑하는 아내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습니다.
발인하는 13일 월요일 아침 6시 40분,
하늘도 우리 가족의 아픔을 느낀듯
거짓말처럼 10분간 비가 내리며 대지를 적셨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8년 4월 23일 저와 결혼하여
꼬박 18년 6개월 18일을 같이했던 제 생애 최고의 길벗이자
제 인생 여정의 멋진 반려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규, 명, 윤을 저에게 맡기고
뭐가 그리 급한지 훌훌 먼저 떠나갔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집안에서는 장손며느리로서,
세 아이의 어미로서,
직장(KBS)에서는 사원으로서,
KBS노동조합에서는 여성중앙위원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바쁜 삶을 살다 갔습니다.

눈을 감기 3일 전만해도 초등학교 3학년인
쌍둥이 아들 명, 윤이가 눈에 밟혀
1년만 더 살아서 쌍둥이자식들을 키워놀고 가고 싶다고
어미로서의 간절한 애정도 보였습니다.

능력과 재능이 너무 많았기에
하늘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불러 데려간 것으로
혼자 위안삼는 것으로 아픔을 달래봅니다.

삶은 투쟁입니다.
2005년 5월 8일,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유방암 말기와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고도 흔들리지 않고
그동안 암과 당당히 싸워 삶을 1년 더 연장하였습니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장학생이 아니면
대학을 진학할 수 없었기에 대학 진학에 실패 후
1978년 6월 KBS 시청료 징수부서에 일당 아르바이트요원으로 들어가
일용직을 거쳐 업무직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여
정규직으로까지 신분을 개척한 입지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는 사람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직장에서는 비일반직 여성 사원들의 대모로서
초대 여성협회 부회장으로서,
비일반직 사원들의 모임체인 지원협회의 간부로,
노동조합 대의원과 여성중앙위원까지 맡으며
어렵고 힘든 비일반직, 여성사원들의 권익을 위해 일했습니다.

국립암센터에서 유방암 투병 중에서도
유방암을 앓고 있는 병상 환자들에게
유방암에 관한 자료와 새로운 신약 개발 정보를 검색하여
출력, 복사해 나누어주며 용기를 잃지 말고 조금만 더 버티자고
그러면 신약이 개발되어 모두 살아날 수 있다고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병원에 입원시 간호사나 의사에게 찍히면 불이익을 받는다며
불편함도 그대로 감수하며 생활하는 환자들을 대신하여
'환자는 고객이다'며 불편 부당함은 과감히 따지기도 하며
고충과 애로사항은 개선을 건의하는 등 환자들의 가려운 곳을
곧잘 대변함으로써 병동 내무반장, 환자 대표라는 닉네임도 얻었습니다.

아내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평소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약속 장소에도 정한 시간보다 항상 미리 나가서 기다렸습니다.

현재의 인력 구조조정 시대를 미리 예견하였던지
1993년 2월 당시 미원 기획실 관리과장으로 근무하던 나에게
보다 고용이 안정된 현재의 직장으로 전직할 것을
권유한 것도 아내였습니다.

평소 공부를 더 하고 싶어하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향후에는 지식사회가 도래할 것임을 미리 내다보고
앞으로는 공부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1997년 저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흔쾌히 학비를 마련해 주었던 아내였습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는 미리 수산물시장이며 농협을 들러
틈틈히 과일이며 생선을 구입하여 미리 보내주거나
가지고 내려가 시골에서는 별 준비없이도 명절이나 제사를
치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큰애 동규를 가졌을 때 군소리없이 만삭의 몸으로
셋째 동생 일구의 대학입시 뒷바라지며,
입시원서까지 사다주며 대학을 합격시켰습니다.
네 시동생 모두를 두루 챙기는 큰 형수이기도 했습니다.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스스로 해결해 나갔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겼습니다.
일을 사랑하고 삶을 소중히 생각했고
주어진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자 했던 점은
저와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둘도 없는 동지였습니다.

그런 선이 굵었던 아내였기에
다시는 볼 수 없는 하늘나라에 먼저 보내고나니
아내의 빈자리가 더 커보입니다.

당신이 했던 일은 이제 남은 사람들의 몫입니다.
우리 부부는 수년전 장기기증서에 서명을 해두었습니다.
장기를 기증하려고 해도,
암에 걸려 더 이상 기증할 장기가 아무것도 없다며
안타까워하던 아내였습니다.

가족과 자식들에게 짐이되기 싫다며
화장한 후 뿌려달라는 처음 유언을 설득하여
자식들이 어리니 저식들이 모두 결혼할 때까지만
청아공원에 안치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아내의 유언대로 화장하여
청아공원에 안치하고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소서....

2006.11.1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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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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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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