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3`~4일 가량 퇴근 후 늘 함께 근처 공원으로 운동을 나간다. 첫 아내를 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던 사별의 아픈 상처가 있고, 지금의 아내 또한 친언니가 13년째 암투병을 하다 2주전 하늘나라로 간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건강에 대한 중요성과 가족 건강챙기기는 남다르다.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중병에 걸리면 가족 전체가 치료와 간병에 매달여야 하고 결국은 가정이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경험했고 또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어제도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고등학교 반창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늦은 시간에 근처 용왕산공원을 올랐다. 당일 친구 문자메시지를 보고서야 동창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목3동시장에서 장어를 준비해 놓고 있는 아내에게 저녁식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을 하기가 미안했다. 동창들이 호프집에 가서 2차를 간단히 하고 가자는 유혹(?)도 친구들 오랜만에 얼굴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요즘은 아내를 보기가 미안하다. 일도 많이 생기고, 업무영역이 넓어지니 찾아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하고 나에게 업무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많고, 반대로 해결을 위해 내가 만나야 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간다. 남들은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과의 교제가 적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많아지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 아닌가?

 

지난주에는 유난히도 약속이 많이 잡혀 밖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바람에 아내 혼자서 내내 저녁식사를 해야 했다. 토요일마저 내가 대학원수업에 간다고 훌쩍 집을 나가버리니 아내 혼자 집에서 하루종일 청소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재작년 10월말 처음을 만나 교제를 하면서 재혼하면 휴일에는 늘 함께 집에서 보내면서 카피도 마시고 등산도 하고, 영화도 보자고 약속을 했는데 작년초 대학원 등록과 함께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집에서 아내와 함께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50년 남은 내 삶의 기간을 생각하니 눈 딱 감고 3년간 자기계발에 투자하기로 했다. 일요일은 만사를 제쳐놓고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오늘도 용왕산에 올라 1시간 운동을 하고, 일주일 밀린 잠도 보충하고, 저녁에는 스트레칭도 함께 하며 지난 일주일 혼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했던 섭섭함과 미안함을 풀어준다. 처음으로 아내 따라서 스트레칭을 하니 온 몸이 욱신거린다. 몸이 굳어 있다는 신호이겠지.

 

"당신! 대학원 졸업하는 내년말까지는 봐주지만, 내후년부터 이러면 알지?"

나를 믿어주고 이해해주며, 나와 가족들 건강을 챙겨주는 아내에게 그저 미안하다고 머리를 극적일 수 밖에....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사고와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 평소 건강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는 회사 게시판에 부고장이 뜨거나,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한동안 당혹스럽고 멍해진다. 죽음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들, 특히 자식들에게 잔소리가 늘어가는 것도 실은 이런 조바심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길고 짧음의 차이만 있을 뿐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기정사실이다. 그 옛날 천하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중국 진시황도, IT기술로 천하를 쥐락펴락하던 스티븐 잡스도, 내노라하는 재벌총수들도  결국은 죽음과의 대겨(?)에서 이기지 못했다.

 

3년 전에는 아버지가 전립선암 3기판정을 받으셨다. 아버지를 설득하여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린 후 사촌동생이 근무하는 서울성모병원을 연결하여 수술을 받으셨다. 이후 광주 전남대 화순병원에서 3개월동안 성실하게 방사선 치료를 받은 후 완치되었다는 검사결과를 통보 받았다. 지금은 수술하시기 이전의 건강상태를 회복하셔서 고향 진도에서 건강하게 생활하신다. 

 

지난주에는 아내가 자식 셋을 태우고서 회사 근처에서 나와 만나 일을 보러 가기로 하여 운전을 하던 중에 공항대로 2차선에서 타이밍벨트가 끊어지는 아찔한 사건이 발생했다. 시속 80킬로미터로 달리는 4차선 중 2차선상에서 스르르 차가 운행을 멈추어 버리는 황당한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예견이나 했겠는가? 아내의 기지로 아슬아슬하게 큰 사고는 면했지만 그 당시를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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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난2006년 11월 유방암투병 끝에 그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막내 쌍둥이 자식을 두고 먼저간 전 아내의 일이 생각난다. 평소 건강하던 사람이 암환자라는 판명을 받고, 그것도 말기라는 청천벽력과 같았던 의사의 판정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었고 믿어지지 않았다. 

 

 

죽음은 암울하고 두려운 단어이다. 비껴가게 할 수만 있다면 억만금의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할 수만 있다면 그리 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정말 공평하게도 인간에게 죽음을 연장시키는 그 어떤 거래도 허락하지 않았다. 나이가 5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주변에서 누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누가 아프다는 소식, 특히 누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만약 내 앞에 죽음이 닥친다면 나는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친지 중 한 분이 12년째 암투병 중인데 이제 영원한 이별을 할 시간이 그리 멀지 않았음이 느껴진다. 이미 7여년 전에 먼저간 아내의 암투병을 지켜본 나로서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받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암환자들은 처음 암이라는 판정을 받으면 분노 내지는 분노와 거부(내게 왜 암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고난을?), 공포(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 체념(내가 거부한다고 내 몸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수용(낫게 만드는 방법은? 암 전이를 지연시키는 방법은? 좋은 약은?) 단계를 밟아간다고 한다.

 

말기가 되면 고통이 극에 달한다.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면서 신체 기능들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환자는 고통을 행동으로 표출하면서 곁에서 간병하는 가족들도 힘들어진다. 말기가 되면 거동이 불편해지고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상황까지 온다. 항암제를 투여하는 환자들은 뼈가 무디어져 넘어지면 뼈가 부러지고 흉이 아물지 않는다. 환자의 안전을 우려해서 기저귀를 채우게 되는데 환자가 순순히 응해주면 되는데 이를 거부하면(아마도 기저귀를 차게 되면 죽음에 가까이 가 있다는 공포감과 함께 수치심을 느끼는 것 같다) 힘들어진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환자를 일으켜 세우고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까지 이동하는 일은 큰 고역이고 자칫 잘못하면 허리를 다치게 된다. 간병하다가 가족들이  허리를 다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이다.

 

환자는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고통이 심해지고 감정조절이 되지 않고 그대로 표출이 되는데 그럴수록 진정제와 몰핀 투여량과 횟수는 늘어간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면 기억력이 현저히 감퇴되고(암세포가 기억력을 컨트롤하는 뇌를 압박) 치매현상까지 나타난다. 가족들에게도 못할말과 화를 잘 내는데(환자는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그런 변화 모습에 '힘들게 간병하는 나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을 하며 상처를 받는데 이때는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고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정떼기를 하는구나' 생각하며 자연스레 받아주면 된다.

 

곁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 '사람은 죽을 때 그 사람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형성이 인격이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신기하다. 미래의 죽음 앞에 선 나는 어떤 모습일까? 평정심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삶을 열정과 도전의 자세로 살겠다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해왔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가? 새삼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우리나라 기업들의 기업복지제도를 조사하다보면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업 중의 하나가 의료비지원사업이다. 특히 중병일수록 종업원들이 느끼는 고마움과 필요성은 크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에는 의료비지원제도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늘기 시작하고 있다.

나도 지난 2005년 5월 아내가 몸이 좋지 않아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종합검진을 받아본 결과 말기암으로 판정받아 1년 6개월 투병생활하다가 사별한 아픈 추억이 있다. 암으로 판정받는 순간 남은 휴가(연월차휴가) 사용, 병가 사용, 그 다음은 휴직에 사직으로 연결되게 된다. 병가는 일정기간 이상을 사용할 수 없고 급여 중 기본급은 나오지만 급식비나 교통비 등 복리후생비는 지급이 제한된다.

휴직이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기본급마저 끊어지게 된다. 이때부터는 급여는 끊기고 온전히 개인 자금이 투입되게 되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는 기약없는 암과의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그나마 초기암일 경우는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어 집이나 땅을 팔고 대출을 받아서라도 살려보겠지만 말기암일 경우는 기약없는 돈과의 전쟁이다.

그나마 암보험이나 실손보험에 가입해둔 경우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암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의료비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 특히 암에 대해서는 일반 질병과 차별화시켜 지원금액을 높여 지급하고 있다.

의료비지원을 실시할 경우는 그 재원과 수혜대상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지난 2월말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대해 총괄평가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입원환자당 평균 입원일수는 16.7일로 OECD 국가 중 2위(OECD 평균은 8.8.일), 관리가 잘 안돼 입원한 당뇨환자는 인구 10만명당 127.5명으로 OECD국가 중 3위(OECD 평균은 50.3명), 국민 1인당 의사진찰건수는 13건으로 OECD 국가 중 2위(OECD 평균은 6.5건)로 '입원천국'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의료비지원제도를 설계할 때 입원비로 제한하고, 수혜대상은 종업원 본인부터 재원규모에 따라 배우자, 직계 자녀 순으로 순차적인 확대가 바람직하다. 다만 부모는 폭발적인 비용부담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하며 만약 수혜대상에 포함시킨다면 연간 지원금액 한도를 일정금액으로 제한하는 것이 좋다. 기업복지비는 처음부터 늘렸다가 나중에 축소하게 되면 내부에서 많은 저항에 직면하게 되므로 서운하더라도 처음부터 적게 시작하며 재원을 보아 늘려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기업복지비를 늘리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줄이는 데는 힘들고 적잖은 아픔이 따른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 사람이 머물었던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월요일 아침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는데, 곳곳에 토요일과 일요일 다녀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책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마도 공원을 청소하는 분들은 월요일이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다.

비단 다녀간 자리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전임자가 맡았던 업무도 인수하여 검토해보면

그 사람의 실력 수준과 회사 업무에 임하는 자세, 삶의 태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목적과 과정을 빈틈없이 꼬박꼬박 체크하고 기록하며 일을 처리한 사람과

대충대충 업무를 처리한 사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철저하게 관리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후임자가 업무를 빨리 적응하여 처리할 수 있다.


일부 성질이 급한 사람은 본인 재직시 본인이 처리한 일에 대해 성급히 평가서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는 부하나 동료사원들이 그 사람의

영향력과 안면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 사람이 그 직을 떠났을 때

비로소 후임자나 동료, 후배들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를 내릴 수가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를 데리고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재명, 재윤이는 인라인을 타고, 나는 걷고.... 걸어가는 도중에 강촌공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신발을 벗고 그 위를 걸어가는 지압코스가 있다. 곳곳에 자갈이 깔려 있고,

뾰족뾰족 돌멩이들이 박혀 있어 그 위를 걸어서 돌다보면 자연히 발에 지압이 되는 것이다.

집사람이 투병중일 때 매일 저녁이면 저녁밥을 먹고 어김없이 나와 집사람은 쌍둥이인
재명, 재윤이
손을 잡고 와서 이 공원을 다녀갔었다. 어제도 그 옆을 지나는데

“아빠! 엄마랑 걸었던 지압공원이 나왔어요. 우리 한 바퀴 돌아요!”하기에 오랜만에

재명, 재윤이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의 꿋꿋하게 암투병하던 모습을 애들은 아직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살고 있다.

열심히 운동했던 모습, 손을 잡고 지압공원을 걷던 모습, 항암제를 투여하면서도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며 근무하던 모습, 하늘나라로 가기 3일전까지도 병실에서 부축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나 걸어서 다니던 모습, 투병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모습, 항상 밝게 웃던 모습....

집사람은 떠났지만 주변 모두에게 그런 용기 있고, 역경과 맞서 싸우며 극복하려 했던

모습도 함께 남기고 갔다. 집사람은 비록 떠났지만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남기고 간

의연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모습은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김승훈 200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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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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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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