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외국투자회사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에 대한 문의가 있었습니다.
그 회사는 우리나라에 공장 및 제조설비를 가지고 있으며 단순히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근로자들을 위해 선택적복지제도를 도입하려다
보니 회사에서 선택적복지제도를 도입하여 지급하다보면 근로소득으로 합산되므로
이를 피하는 것을 연구하다가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회사에서 지급하는 금품은 근로의 댓가로서 근로소득으로 합산되지만 사내근로복지에서
지급하는 금품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은 회사와는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되어 운영되므로
근로의 댓사관계가 형성되지 아니하므로 근로소득에 해당되지 아니하고 증여관계에
따른 법적용을 받게 됩니다.

외국 투자회사의 기금설립여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동부 예규가 존재합니다.

 당사는 국내 대기업 정보통신부문이 외국계 투자회사에 매각되어 2000.11월 출범한 회사로서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 경우 도입자체가 가능한지와 전년 순이익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투자금만으로 기금출연이 가능한지 여부, 그리고 이 경우 사업주가 아닌 제3자의 임의출연에 의한 기금설립으로 보아야 하는지 여부


 국내의 외국인 사업도 법령 또는 조약상 속인주의를 인정하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사내근로복지기금법이 적용되는 바, 같은법에 따른 기금의 출연은 기금협의회의 결정에 의해 사업주가 사업이익의 일부를 출연하는 방식 외에 같은법 제13조제2항에 의한 임의출연 방식이 있음.

 따라서 귀문의 투자금이 같은법 제13조제2항에 따른 사업주의 출연금이라면 신규출연도 가능할 것이나, 제3자 출연금이라면 사업주의 기금설립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사료됨.

(복지 68233-40, 2001. 3. 21)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이 한가족처럼 지내는 서사장님 생신이라 넥타이를 선물하기 위해
영등포 모 백화점을 나갔다.
 
넥타이 매장을 들러 가격을 살펴보니 젠장, 가격들이 넘 비싸다.
괜찮은 것은 죄다 10만원이 넘으니....평소 내 지론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넥타이는 자기 돈으로는 못산다. 누가 선물해주면 몰라도...)
 
판매원이 추천해주는 넥타이 세개를 앞에 놓고 흥정을 한다.
남자들은 흥정이라봤자 건성이다. 판매원이 부르는 가격에 대충 구입해 버린다.
그넘의 체면 때문에 깎아달라는 말 한마디가 도통 입에서 떨어지지가 않는다.
 
"이거 얼마예요?"
"네, 105,000원인데요"
"너무 비싸네"하며 한발짝 슬쩍 물러난다.
그러자 판매원 아가씨가 한발 다가선다.
"얼마정도 예상하고 오셨는데요?"
"7~8만원정도 예상했는데..."(얼굴을 찡그리며 자못 심각하게...)
(잠시 판매원의 고민하는 얼굴 표정이 연출되며)
"지난주까지 20%할인행사를 했었는데, 그럼 20% 할인한 가격으로 드릴께요"
 
일순간 밀려드는 후회감...
(흐미~~~ 그런줄 알았으면 6~7만원이라고 말할껄.. 그랬으면 만원을 더 깎는건데...)
 
카드를 넘겼으니 흥정은 끝난 셈이다.
결국 105,000원서 21,000원 깎은 84,000원에 넥타이를 사가지고 왔다.
 
다시 한번 아내의 빈자리가 그리워진다.
집사람은 물건값을 너무도 기술적으로 잘 깎는 바람에
"혹시 장사하세요?"라는 소리를 너무도 많이 들었다(실제로 완구가게도 1년반 했고)
덕분에 나는 옆에서 흥정하는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곤 했다.
 
3년전 집사람이 국립암센터에 입원해 유방암 투병중일때 이런 내 성격을 알고선
안타까운 눈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쳐다보며 말하곤 했다.
"세상물정 모르고, 물건 값도 제대로 깎을 줄도 모르는 물러터진 당신에게 우리
쌍둥이자식들과 엄마를 맡겨놓고 먼저 가려니 내 마음이 놓이지를 않네"
 
이제는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야지,
집사람이 했던 것처럼 물건 값도 제대로 깎고 살아야지...
 
2009.1.30.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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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결혼하게 되면 명절은 어디서 보낼거예요?"
"설과 추석 명절 중 한번씩은 우리집(처가)과 시골집에서 보내려고
합니다. 추석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니 설은 우리집서,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면 되겠군요"
 
1887년 8월 집사람과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집사람이 당돌하게 나에게
묻기에 나는 내 의견을 말했고, 결혼후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
22년간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집사람은 손위 처남과 손아랫 처남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도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장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명절 두번 모두 남편따라 시댁으로 내려가면 친정부모님이 적적할 것 같아
끊고 맺는 확실한 성격에 미리 단도리를 해두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사람과의 약속도 약속이고, 이미 하늘나라로 올라간 사람과의
약속도 약속이기에 이번 설명절에도 나는 올해도 시골 고향을 내려가지
않고 세자식들과 장모님을 모시고 살며 집을 지키고 있다.
 
무정한 사람같으니라고... 나를 만난 첫자리에서 나에게 그런 다짐을 받았으면
함께 설을 보내며 맺어진 부부의연 사랑하며 백년해로 오래도록 잘 살아야지
나만 혼자 두고 이렇게 일찍 훌쩍 가버리면 나는 어찌 하라고....
 
덕분에 설명절 연휴 4일동안 2월에 열리는 한국생산성본부와 CFO아카데미
교육원고 작업을 할 수 있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내린 폭설로
귀성길 고생하지 말고 힘들게 세 자식 키우고 살려면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생전에 그런 약속을 받아두지않았나 생각하고
위안을 삼는다.
 
다음카페 국사모(국악을 사랑하는 모임) 운영자님이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전체메일로 보내준 박병천님의 넋풀이를 듣고
있으니 그 애절함에 가슴이 미어지고 저려온다. 넋풀이를 부르는 박병천님도
작년에 생을 달리했지만 박병천님은 이렇게 음반이라도 남아있어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몇번이고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나 당신은 목소리 하나 남겨놓지를
않았으니 그 맑고 고았던 음성을 어디서 다시 들을 수도 있을까?  
 
오늘따라 KBS에서 방영된 천추태후에서 남편인 폭군 광종이 폐홍을 앓고
있으면서 부인과 피붙이 어린 자식을 지키주기 위해 애쓰다 믿었던 최지몽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하자 더 이상 지켜줄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황주원군을 불러
황제자리를 선위해 주는 조건으로 부인과 어린 자식의 신변을 지켜줄 것을
다짐받고 황위를 선위하고 죽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광종이 죽기전 했던 말이 내 가슴을 울린다.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진즉 성군이 되었을텐데 왜 이리 늦게
만났단 말이오. 당신에게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의 남편으로서 나를
기억해 줄 수 없겠소."
 
2009.1.2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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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는 집사람이 내곁은 떠난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세월 참 무심하기도 하지...벌써 집사람이 내 곁을 떠난지가 2년이 되었다니...

집사람을 보내고 그동안 앨범을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사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바쁘기도 했지만 앨범을 보면 자꾸만 아내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지난 아픔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는데
오는 17일 방송되는 Q채널 '선물'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애들 어릴적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그제 밤 늦게 부랴부랴 세자식들 사진을 챙기느라
앨범을 펼쳐보게 되었다.

집사람의 어릴적 사진, 나와 교제하면서 찍은 사진, 결혼 사진, 신혼여행 사진,
신혼집에서 큰애를 얻었을 때 사진, 애들 어릴때 목욕사진, 여행 사진들을
속의 행복했던 시절을 보고 있으니 그리움이 복받쳐 온다. 사람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지만 우리 부부는 어찌 이다지도 일찍 헤어지게 되었는가?
세 자식, 특히 어린 쌍둥이 자식과 연로하신 장모님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병상에 누워 마지막으로 나에게 "우리 쌍둥이들 잘 부탁해",
"우리 엄마 잘 부탁해!"하며 내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하던
모습이 다시 눈가에 어른거리며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것이 모정이고,
먼저가는 불효여식이 어미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효도라는 것을 알기에...

무정한 사람! 이렇게 일찍 갈거면 차라리 나와 만나지 말고 더 좋은 사람
경제적으로 더 여유있는 사람과 만나 하늘에서 주어진 수명 누리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다가 가지 어쩌다 가진 것도 없고 부족한 나를 만나 사내 애들만
셋, 게다가 쌍둥이자식까지 낳아 이토록 고생만 하다 갔는지... 내 당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버리면 나는 어이하라고...

지난 10월 18일 Q채널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청아공원의 집사람이 안치된
곳에서 한참을 있었더니 김승희PD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느냐고 짖굳게
질문을 한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지난 21년 4개월전 집사람을 처음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들 셋을 낳아 키우며 행복하면서도 힘들게 살아왔던, 그리고 집사람 유방암
말기판정, 지긋지긋한 유방암 투병생활, 끝내 아내와의 사별, 싱글대디로 애들 셋을
키우며 살아가는 지금의 모든 과정이 그저 꿈만 같다. 꿈이라면 깨어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건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렇지만 슬픔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남겨진 나와 아내의
분신과도 같은 세 자식들이 자라고 있고, 집사람과의 약속, 내가 꼭 이루어야 할 꿈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2008.11.11.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카페 한줄메모장에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책상위를 보니 박카스 한병과 피로회복제가 포장되어
올려져 있더군요~! 들여다보니 메모에 "XX오빠 잘 부탁합니다!!"... ㅋㅋㅋ
xx님 밑에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의 여자친구가 보낸거더군요~ ㅋㅋ
어찌나 귀여운지...

안보아도 눈에 선하다. 남친이 입사를 했는데 여자친구가 미리 직장 상사에게
잘 보아달라고 선물로 애교공세를 펼치는 모습.

사랑할 때는 상대의 모든 것이 장점으로 보인다. 사랑은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위대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지배하기 때문에
왠만한 결점이나 단점도 쉽게 극복이 된다.

그러나 사랑이 식었을 때는 감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크게 작용하여 따지게
되고 비교하게 되면서 불평과 잔소리를 하게 된다. 부부간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리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집사람이 내 곁을 떠나면서 나에게 '살면서 손찌검 한번 하지 않고, 항상
존댓말을 써서  애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내 기를 살려줘서 고마워' 했던
것처럼 나도 집사람이 다른 집 남편과 비교하여 '봉급을 많이 받아오라,
집안 일에 자상하지 못하다'는 등 불평하지 않고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한 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살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사람에게 결혼전이나 신혼 초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고 무리이다.
자식을 낳는 순간 여자는 몸이 망가지게 되어 있고, 영양분을 자식에게 빼앗겨
피부도 거칠어지고 얼굴에 기미도 끼게 된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때로는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도 참아야 하고, 남는 밥이나 반찬이 아까워 먹다가
몸매도 망가지고 체중도 불게 되고, 화장에 들이는 돈도 아까워 치장에도
소홀하게 된다.

오늘 올려진 글을 보면서 지금 사랑할 때 그 마음이 나중 결혼을 하고 나서도
변치 않고 계속되기를,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후 6시 20분. 내 휴대폰 벨이 연신 울린다. 우리 집이다.

장모님 : "난데, 오면서 떡집에 들러 동규엄마 제사상에 놓을 떡좀 사가지고 오소!"
나 : "네. 알겠습니다."

장모님은 내가 당연히 통근버스를 타고 오시는 줄 안다.
그런데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통근버스를 타지 못했다.
택시를 타든지 아님 일산가는 직원차 편에 편승을 하든지...
아시는 선배님 자리에 전화를 했다.  선배님이 센터장님실에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일찍 가시면 태워달라고...
한참 후에 온 전화는 7시 40분경이 되어야 퇴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영등포에 나가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조금 기다렸다 선배님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매한가지일 것 같아 선배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6시 50분부터 선배님 사무실에 올라가 기다리는데 도통 회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니 7시 40분이 다 되어 회의가 끝나고 그제서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서강대교를 지나 강변북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7시 50분이 되니 집에서 또 전화가 걸려온다. 쌍둥이 목소리인데 장모님께서 내가
늦으니 애를 시켜 전화를 한 것 같다.

재명 : "아빠 지금 어디세요?"
나 : "응, 집에 가는 길인데 30분 정도 늦겠구나!"
재명 : "알았어요"

일분 일초가 바늘방석이다. 성격 급하신 장모님의 성화가 눈에 선하다.
차라리 6시 45분에 곧장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출발할껄~~ 후회가 밀려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자유로에서 삼중 추돌사고가 나는 바람에
길이 온통 차들로 꽉 막혀 있다. 백석역에 내리니 8시 20분이다. 허겁지겁 인절미에
약식을 사들고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오니 8시 55분이다.

집에 오니 처형과 동서, 처남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처형은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내고 오늘 집사람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장만을 도와주셨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처형에게 도움을 청하면 항상 말없이 도움을 주시곤 한다.

우리집은 나와 쌍둥이자식들은 기독교, 장모님과 큰애 동규, 처형, 처남은 불교,
손위 형님은 뚜렷한 종교가 없으시다. 장모님이 차려놓으신 제사상과 상위에
놓인 집사람 영정사진을 보니 갑자기 참았던 그리움이 밀려든다. 영정사진을
보며 혼자 주절거려 본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당신 두번째 맞이하는 제사네. 참 세월 빨라,
당신이 나와 우리 가족을 떠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기 제사라니...
남겨진 세 자식 데리고, 장모님 모시고 좌충우돌 1인3역, 4역 정말 정신없이
살다보니 요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네.

당신에게 집안 살림 다 떠맡겨 놓고 편하게 살다가 당신이 유방암 말기 판정 받고
그제서야 허둥지둥 살림 하나하나 넘겨받아 꾸리며 남겨진 빚 갚아가며 살다보니
마음 편히 쉬어본 날이 없었지. 당신이 내게 남기고 간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다리 쭉 뻗고 쉴 겨를이 없었지. 누군가는 그랬지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산 자는 어떻게든 산다고..."
당신이 나를 떠나고 나서 내가 그 짐을 다 넘겨받아 헤치며 살아나가다보니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어.

결혼때 우리 부부는 꼭 백년해로 하자고 그토록 굳게 맹세했었는데,
어이하여 하늘이 우리 부부를 이다지도 빨리 생과 사로 갈라놓았는지
부부사별이라는 운명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지만 살아서 받아야 하는 고통이
이다지도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다면 차라리 그 짐을 나 혼자 다 받아 감내하고
당신은 빚 걱정, 병원비 걱정, 힘든 암투병의 고통없는 곳에서 살게 주어야
겠다고 마음먹으니 그제서야 당신을 홀가분하게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었어.

우리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닐 거야!
그저 잠시, 당신이 주고간 선물인 세 자식을 훌륭히 키워 사회에 내보내 훌륭한
리더로 성장해 갈 그 때까지 아주 잠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네.
다시 만나는 날, 그때 나는 아마 훌륭히 성장해 우리나라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해
활약하고 있는 세 자식을 보며 웃는 모습으로 당당히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열심히 후회없이 살아갈테니 꼭 지켜봐줘...

2008.10.18.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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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올 추석은 짧아서 시골에 내려가지 않을 생각이다.
또한 작년에 집사람 제사상을 우리 집에서 차리지 않고 작은아버지 집과
동생 집에서 이중으로 차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모님이 크게 상심하여
은근히 추석때 내려가지 않으면 안되냐고 묻기도 했었다.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남편이 차려주는 제사밥이 최고라네..."

그동안 집사람이 두 처남들을 대신하여 가장 역할을 하며 처갓집을 이끌어
왔던터라 애지중지하며 아끼고 의지했던 딸이 자신보다 먼저 갔으니 원통함과
안타까움, 그리움이 오죽하랴! 어느 수필가는 부모를 잃은 아픔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했는데 자식을 먼저 보내는 고통이 천붕지통보다 더
아픔이 크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기둥같았던 딸자식을 먼저 보낸 후의 세월이
얼마나 장모님을 힘들게 했었을까!

작년 추석때 이중 제사상 사건 이후 나에게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은경이
제사상 만큼은 내 손으로 직접 차려주고 싶으니 그렇게 알고 있게" 하시며
단호하게 말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면 '이것이 모정이구나!'를 느끼며 콧등이
시큰해진다.

지난주말 시골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주말마다 농협하나로마트를
가면 제수용품을 하나하나 준비하신다. 오늘은 피문어 한마리와 햇쌀,
햇찹쌀을 고르신다. 지난주에는 내가 주신 용돈으로 아파트 장터에서
곶감과 병어를 미리 사두셨다고 귀띰하신다. 자연히 평소보다 시장비용이
훨씬 늘어나고 있다.

매년 추석이 다가올 즈음이면 집사람 손에 이끌려 미리 노량진 수산시장에
나가 제수용품으로 민어, 숭어, 도미, 장대, 병어 같은 생선을 사서 손질하고
말려서 시골에 가져가 제사상에 올리고 과일은 낱알이 굵고 큰 것으로 골라
차 트렁크에 실어 시골 내려갈 때 가져갔는데 이제는 내 손으로 제수용품을
사서 집사람 제사상을 차려야 하다니, 참 얄궂고 무정한 세월이로고!

추석이 다가오는 요즘 살아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했던 아쉬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가슴 한켠에 더 크게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2008.8.31.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늦은 토요일 밤,
밖에는 당신을 그리는
나의 애타는 그리움을 식혀주는 듯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이번주에는 사무실 여직원도
두명이나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당신 생전에는
매년 8월 초 휴가는
항상 우리 차지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떠난 이후
그 날을 사무실 여직원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필요한 날은
마찬가지 남도
필요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장모님은 오늘 아침
쌍둥이에게 말하십니다.
"올해는 수영장도 못가보고
여름 휴가 지나갔네.
쌍둥이들 서운해서 어떻해?"

우리 쌍둥이들 애비 마음을 읽은 듯
"할머니! 우리는 괜찮아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만도 감사해야지요"

말을 해놓고 오늘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모님이 얼마나 섭섭해 하셨을까?
실은 장모님이 콘도를 가고 싶으셨을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하늘나라 가기 3개월 전
나중에 나 없으면 나 생각하고
마시라고 당신이 그 아픈 몸으로
절리고 떨리는 그 손으로 직접 담군
복분자주를 다섯잔이나 마셨습니다.
그만큼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다섯잔을 마시면 취해서
잠이 쉬 올 줄 알았는데
기억이 더 뚜렸해지는 것을 보니
오늘은 잠을 이루는데
꽤나 뒤척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복분자주가 후두를 타고 넘어가는데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정말 힘들 때는
당신이 생각나지 않은데,
한 고비 넘겼거나
여유가 있거나,
쌍둥이자식들이 좋은 성적 받았을 때,
집안에서 웃음이 넘치고
평강을 느낄 때면
그때는 어김없이
당신이 생각납니다.

이 행복,
이 웃음,
이 평강,
당신과 함께 했었으면...

2008.8.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LG광고에 등장한 문구가 하나 있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습니다.'

1987년 8월 한 여인을 만나 열렬히 사랑에 빠졌고,
끈질긴 구혼끝에 결혼하여 18년 7개월간 후회없는 사랑을 했습니다.
친정가족을 위해 가게를 열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접고
주식투자에 손댔다가 실패하여 고통속에 지내다가
유방암으로 굵고도 짧은 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여인이 떠난 지금,
이제는 그녀를 처음 만나 나를 떠나가까지
19년 3개월간 함께 했던 추억으로 살아갑니다.
더 잘해주지 못했던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주어진 인연을 지키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살아갑니다.

그 여인이 너무 힘들어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많이 건네지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지 못했고,
애썼다, 고생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등을 토탁거려주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언제까지 사랑하는 아내가 내 곁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사랑하기에 많은 기회가 주어진줄 알았습니다.
부부라는 미명하에 내가 힘들고 거추장스런 일,
아쉬운 부탁은 그 여인이 도맡아 했습니다.
부부는 벽이 없어야 하는데 스스로 남편이라는
권위로 벽을 만들고 군림하여 들었습니다.

의견충돌이 있었을 때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오만함으로 화해하는데 너무도 소중하고 많은 시간을
그냥 허비했습니다.

그여인에게 생전에
힘들게 했던 일,
마음 아프게 했던 일,
상처주었던 말,
다 치유해주고
용서받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당신이 내 인생 최고였다,
당신을 만나 후회없이 살았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꼭 하고 싶었고
당신을 힘들게 했던 몇배로
꼭 기쁘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당신은 그만 너무도 일찍 내곁을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람처럼 와서
잠시 머무르다
연기처럼 사라진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 여인이 남긴
마지막 부탁이자 그녀가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세 자식을 돌보며 그 속에서
그여인의 모습과 흔적을 찿으며
살아가렵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사랑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면
이런 회한은 덜 남기며 살았을텐데..."
 
정말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것을.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사랑하는 한여인을 보내고야 알았습니다.

2008.7.2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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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당신이 2005년 5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일 때
나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조용히 묻고 내 스스로 답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약 우리 부부 중에 한사람을 꼭 데려가야 한다며 당신과 나, 둘 중에
누가 남겠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주저없이 내가 남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았음을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부 중에서 사별을 한다면 먼저 죽은 자만 불쌍하고 그래도 살아남은
자가 복 받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장모님도 늘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홀로 남아 살아야 하는 자의 앞길이 세 자식을 키워야 하고, 집도 없이
월세살이에 빚투성이고 개인회생까지 받은 상태라면 그래도 복 받은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누구에게도 이제는 손을 벌릴 수 없습니다. 손을 벌려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조롱 뿐입니다. 요즘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무사히 넘길지,
당장 부족한 돈은 어디서 조달하고 해결해야 하나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갑니다.

오늘 장모님이 사무실에 전화하여 쌍둥이들이 다니는 학원 영어선생님이 전화가 왔다고
빨리 전화해보라고 하시기에 퇴근길에 들려보니 방학때 쌍둥이들에게 특강을 하라는
권유였습니다. 처음에는 방학때 힘들다고 특강 하지 않겠다고 하던 녀석들이 마음이
바뀌어 재윤이는 1학기말 시험에서 국어를 망쳤다고 영어와 논술 특강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재명이도 재윤이가 하겠다고 나서니 "그럼 저도 영어와 논술 할래요" 누가
쌍둥이자식이 아니랄까봐 두 녀석 경쟁이 치열합니다.
 
두 녀석 기본 학원비에 특강 두 과목씩을 수강하면 65만원나 되며, 특강은 선착순
마감이니 빨리 신청하라는 말에 "특강 신청은 애들과 상의하여 모레 금요일까지
결정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하며 얼른 학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교육비부담이 갈수록
만만치 않을텐데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서운하더라도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지출을 줄이면 곧 해결이 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와 냉소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 큰 마음의 상처로 남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당신이 돈과 빚,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내가 지켜보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려서부터 외로움과 오래참음에 익숙해져있는 내가 이런 고통과 수모를 받는
것이 낫고 그래야 내 마음도 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나를 선택하여 남기신
모양입니다. 혼자서 버텨내야 하는 외롭고 힘든 삶을 이렇게라도 당신에게 하소연해야
 후련해질 것 같습니다.

나는 꼭 이겨내고 승리할 것입니다. 20년간 고통받았던 말더듬도 치료한 나입니다.
대신 당신은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여보! 그동안 힘드셨죠? 고생 많았어요" 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됩니다. 그 말 한마디면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시퍼렇게 멍들고
휑하니 뚫려있을 내 마음속 상처가 일순간 모두 치유될 것만 같습니다.

2008.7.1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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