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르' 저녁식사를 하는데 진동으로 해 둔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울린다.
멀리 지방에서 상경한 회원사 직원들과 업무관련 논의를 하며 저녁식사를 하는데 시골
둘째작은아버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이다. 요란한 주변 사람들 말소리 때문인지 금새
밖에서 식사중이라는 것을 눈치채신다.
"승훈이냐! 밖에서 직원들과 식사를 하는 모양이구나. 오늘 쥐눈이콩을 택배로 보냈는데
잘 도착했는지 확인차 전화했다."
"일 때문에 회사 근처에서 식사 중입니다. 그냥 집에서 밥에 놓아 드시기 번거롭게 저희
집에까지 보내주셨어요"
"쥐눈이 콩을 보니 쌍둥이엄마와 쌍둥이들 생각이 나더구나. 보내주면 쌍둥이들 잘 먹을 것
같아서 조금 보냈다"
"아직 집에 들어가지를 못했는데요 집에 도착하면 확인해보고 전화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께요"
지난 2005년 5월, 집사람이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쥐눈이콩이 암 치료에 효험이 많은
항암식품이라는 기사를 보고 시골집으로 쥐눈이콩을 구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5월
하순이면 쥐눈이콩은 이미 수확철이라 그 해에는 쥐눈이콩을 파종하지 못해 결국 마을에서
이집 저집 부탁하여 겨우 구해서 보내주셨다. 이듬해 2006년 시골 우리 논두렁에는 온통
쥐눈이콩으로 삥 둘러쌓이게 심었고 집사람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끊이지 않고
쥐눈이콩을 보내주셨다.
밤 11시 15분에 집에 도착해보니 조그만 박스에 막 수확한 듯 싱싱한 쥐눈이콩이 박스 안에
가득 들어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장모님이 이미 1/4쯤 까서 놓아두셨다. 요즘 몸도 좋지
않으신데 그냥 주면 상해서 버린다고 그 아픔 몸으로 일부러 까신 모양이다. 저녁 6시 30분에
회사 일로 늦는다고 전화를 했을때 서운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셨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럴줄 알았으면 양해를 구하고 좀 더 일찍 들어올껄....
대충 씻고 밤 11시 40분부터 콩깍지를 까지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자란 탓에 이런
콩까기는 잘 하는데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것들이 많아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조금만 까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지만 장모님이 내일 또 아픈 몸으로 손대실 것 같아
한줌만 더, 이번 한줌만 더...하고 까다보니 어느덧 열줌이 되고 스무줌이 되고....조금만
더 하며 계속 까다보니 나중에는 큰애까지 합류하여 도와주어 결국 밤 1시 45분에 모두
마칠 수 있었다. 두시간 넘게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콩깍지를 깠더니 눈도 시리고 허리도
아프고 팔다리도 쑤신다. 그래도 나는 젊으니(?) 괜찮지만 장모님은 저만큼을 까시느라
오늘 얼마나 힘드셨을까?
모두 마치고 정리하고 일어서는데 거실에 걸려진 가족사진 속 집사람 얼굴이 오늘따라
나에게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것만 같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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