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직원들 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있다. 오늘 내가 계획했던 월차결산을 마무리하지 못했고, 이사회 의안 작성작업도 내 계획대로 하지 못했다. 근무시간 중에는 걸려오는 전화 응대, 결재 작업은 숫자에 집중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집에 에어컨이 없다보니 퇴근해도 덥고 장모님이 TV를 즐겨보시기 때문에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에 비하면 차라리 쾌적한 사무실이 일하기는 것이 딱이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야지.....
# 두~울
봉급날이 월요일이었는데 이리저리 부족한 돈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다. 오늘은 개인연금저축과 각종 보험금에 보험대출이자가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날이다. 보험대출이자는 제 날짜에 돈을 예치해두지 않았다가 연체가 되면 연 20%나 되는 고리의 연체이자를 물어야 한다. 어렵게 이자를 마련해 입금해놓으면 생각지도 않았던 돈이 빠져나가 버려 나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참자~ 개인회생기간 동안은 어떻게든 참고 버텨 내야 한다.
#세~엣
"재명재윤이 아버님이시죠? 요즘 재윤 재명이 수업태도가 많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 공부도 열심히 공부해요. 둘이 서로 경쟁하며 공부하는데 참 귀여워요. 기말고사 결과가 기대가 되요" 내가 봐도 한달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제야 쌍둥이들이 철이 들어가나 보다.... 그래~ 아내 유언대로 쌍둥이들 잘 키워야지. 힘들어도 참자. 힘들어도 참고 살자. 힘들어도 이 악물고 살자~
#네~엣
"차장님! 6월말까지 노동부에 운영상황보고서, 국세청에 과세표준신고서를 신고해야 하는데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통 모르겠어요. 차장님이 한번 봐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제 메일로 자료를 보내주세요. 검토해서 연락줄께요"
"감사합니다. 지금 보내겠습니다"
3월말 결산 사내근로복지기금은 6월말까지는 운영상황보고와 법인세 신고를 해야 한다. 6월말이 코앞에 닥치니 여기저기서 SOS가 온다. 남의 일을 봐주다보면 정작 내 업무는 뒷전으로 밀리고 오늘같이 야근을 하게된다. 그러나 어떡하나?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다섯
"아버지, 치료 상태는 좋으세요?"
"응, 내 걱정은 마라. 지난번 서울성모에서 수술할 때 혈액검사에서 암 수치가 1.72였는데 엊그제 검사결과에서는 0.007이더라. 의사 선생님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전에 네가 보내준 책 이제야 시간이 나서 읽고 있다. 첫번째 책(사랑하지만 한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보다는 두번째 책(소심남녀제테크 도전기)이 더 재미있다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정석대로 재테크를 했는데 너만 그렇지 못해 어째 시샘이 생긴다야~"
"이 세상에 잘 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되나요. 실패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죠. 실패를 한 상태에서 재기를 하여 성공한 사람이 진짜 성공자죠. 저 꼭 성공하여 책 하나를 쓸께요"
화순 전남대병원에서 전립선암 방사선치료를 받고 계신 아버지! 병실이 없어 지금은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하여 전남대병원으로 매일 방사선치료를 받으로 다니신다. 자식된 입장에서 당장이라도 내려가서 뵙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이 불효를 어찌하리오~
지금의 아픔과 고통도 지나고 보면 내 삶에서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기억되겠지. 훗날 모든 빚 다 갚고, 어려움 다 극복하고 나서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소짓는 날이 오겠지. 나를 힘들게 했던 아내와의 사별도, 빚도, 개인회생도, 경제적인 고통도, 세 자식들 모두 내 감정의 폭을 키웠고, 나를 분발시키고 열정과 도전 그리고 성공을 자극했던 불쏘지개와 같았다고 고백하는 날이 오겠지. 다 내 삶에서 스쳐지나가는 과정이고 시간이 흐르면 씻겨 내려가고 잊혀져갈 한점의 추억으로 기억되겠지.....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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