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의학신문에 말기 유방암 환자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인 먹는 항암제인
‘타이커브’가 최근 국내 식약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보도자료를 접했다.

이 항암제는 집사람이 1년전 그토록 써보고 싶어하던 항암제였다.
집사람 유방암 인자는 국립암센터 유전자검사 결과 진행성 HER2(ErbB2)로 밝혀져
이 인자에 맞는 표적치료제(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항암제)인 허셉틴과 면역증강제인
'제넥솔'과 함께 사용하여 놀랄만한 호전을 보였으나(실제 작년 2월 MRI나 CT 촬영
결과 유방 및 간에 있는 암세포가 전부 괴사했다고 기적이라고 했다), 뼈로 전이된
암세포 치료를 놓치는 바람에 그나마 호전됐던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어 결국 손을
들어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뇌로 전이된 암세포는 방사선치료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뇌로까지 뚫고 올라가는 항암제가 나와있지 않아서 10번의 방사선치료에도 완전히
암세포가 치료되지 않아 뇌속에 오마야관을 넣어 직접치료까지 시도를 했지만
내성이 강해질대로 강해진 암세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지금 국립암센터에는 전체가 아닌 국소부위에 대해 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는 기계가
도입되어 환자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집사람은 1년만 더 버티면 새로운 항암제가 나올 것이라고 의욕을 불태우곤 했다.
인터넷으로 외국의약 정보를 검색하여 새로운 항암제 동향을 알아보고, 언제 국내에
들어오느냐고 의사 선생님께 묻곤 했다. 집사람은 특히 '타이커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국내에 빨리 시판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들도 처음 들어보는
항암제 이름을 거론하며 빨리 임상시험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는 집사람 때문에
종종 난감해하곤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은 국립암센터 유방암센터장인 노정실 박사님이 마지막 나와의 면담에서
"최혜숙씨는 너무 똑똑한 사람입니다. 지금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입니다."
1년만 더 버텨주었더라면 새로운 먹는 항암제인 '타이커브"도 쓰고, 국소 방사선
치료기계도 써보고, 뼈 전이에 도움이 되는 ‘조메타’ 등의 치료제를 마음껏
사용해 보았을텐데... 그랬다면 지금 이토록 나에게 회한으로 남지는 않았을텐데...

현재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러우십니까?
조금만 참고 버티십시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정상으로 가는 길목의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상은 머지 않아 반드시 옵니다. 그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고, 현재의 고난을 이겨 내야 합니다.

김승훈 2007.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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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한소망교회 주일예배에서 류영모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이 지난주에 이어 창세기 22장이었고.
그리고 저녁예배때 설교주제가 문제의 창세기 제23장이었다.

창세기 제23장은 구원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죽음과 장사에 대한 내용이다.
결혼에 대한 정의를 연극배우에게 물었더니 '희극과 비극이 섞인 시나리오다"라고 했고,
역시 같은 질문을 군인에게 하니 '30년 장미전쟁이다'라고 했고,
일기예보관에게 물의니 '고요한 밤에 폭풍우가 쳤다 개였다, 다시 폭풍우가 치다 안개가 끼는
예측불가능한 전선'이라고 했으며, 사업가에게 물으니 '가장 위험한 투자이다'리고 했다고 한다.
참 결혼을 직업에 맞게 기막히게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 제2절에서는 '몹시 슬퍼했고 애통해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아브라함과 살면서 볼 것 못 볼 것 많이 보고 살았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80년에서 90년을 아브라함과 함께 산 것으로 나온다.
자신에게 아들이 없어 몸종에게서 이스마엘을 보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두번씩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이방인의 남자 품에 던지는 아내에게는 지울수 없는 상처를 주는 못난 남편을
섬기고 살았다. 늙그막에 낳은 자식 이삭도 번제의 제물로 바치하는 말씀에 남편인 아브라함이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번제의 제물로 데리고 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서 성경에는 수많은 여인들 중 사라만이 누린 햇수(수명)와 죽어서 묻힌 곳이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2절처럼 아브라함은 몹시 슬퍼했고, 애통해하다가 제3절에서는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슬픔에만 젖어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약속의 땅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을 믿고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를 탈피하여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과 자손이 묻힐 약속의 땅을 만들기 위해 그냥 주겠다는
가나안 헤브론 족속의 땅을 거액을 주고 구입함으로써 스스로 약속의 땅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울면 안된다고 자라면서 수없이 교육받아 왔다. 나도 집사람 상중에 슬픔을
꾸욱 참고 견디어 왔다. 무엇보다 애들에게 기둥인 아빠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고, 슬픔에 안주하여 넋을 놓고 있기에는 현실이 너무 다급했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산적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들으며 그때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
내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나서 행복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을 때는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가슴 벅찬 환희에 들떠 기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주어진 좋은 인연의 끈을
계속 잇지 못했던 아픔과 좌절을 겪었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집사람이 나에게 부탁한 일과 함께 못다 이룬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 눈물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 열정으로 채우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불태운다.

김승훈,  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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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 사람이 머물었던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월요일 아침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는데, 곳곳에 토요일과 일요일 다녀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책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마도 공원을 청소하는 분들은 월요일이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다.

비단 다녀간 자리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전임자가 맡았던 업무도 인수하여 검토해보면

그 사람의 실력 수준과 회사 업무에 임하는 자세, 삶의 태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목적과 과정을 빈틈없이 꼬박꼬박 체크하고 기록하며 일을 처리한 사람과

대충대충 업무를 처리한 사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철저하게 관리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후임자가 업무를 빨리 적응하여 처리할 수 있다.


일부 성질이 급한 사람은 본인 재직시 본인이 처리한 일에 대해 성급히 평가서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는 부하나 동료사원들이 그 사람의

영향력과 안면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 사람이 그 직을 떠났을 때

비로소 후임자나 동료, 후배들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를 내릴 수가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를 데리고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재명, 재윤이는 인라인을 타고, 나는 걷고.... 걸어가는 도중에 강촌공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신발을 벗고 그 위를 걸어가는 지압코스가 있다. 곳곳에 자갈이 깔려 있고,

뾰족뾰족 돌멩이들이 박혀 있어 그 위를 걸어서 돌다보면 자연히 발에 지압이 되는 것이다.

집사람이 투병중일 때 매일 저녁이면 저녁밥을 먹고 어김없이 나와 집사람은 쌍둥이인
재명, 재윤이
손을 잡고 와서 이 공원을 다녀갔었다. 어제도 그 옆을 지나는데

“아빠! 엄마랑 걸었던 지압공원이 나왔어요. 우리 한 바퀴 돌아요!”하기에 오랜만에

재명, 재윤이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의 꿋꿋하게 암투병하던 모습을 애들은 아직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살고 있다.

열심히 운동했던 모습, 손을 잡고 지압공원을 걷던 모습, 항암제를 투여하면서도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며 근무하던 모습, 하늘나라로 가기 3일전까지도 병실에서 부축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나 걸어서 다니던 모습, 투병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모습, 항상 밝게 웃던 모습....

집사람은 떠났지만 주변 모두에게 그런 용기 있고, 역경과 맞서 싸우며 극복하려 했던

모습도 함께 남기고 갔다. 집사람은 비록 떠났지만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남기고 간

의연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모습은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김승훈 200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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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은 설날이다.
안향련님의 심청전 중 곽씨부인을 안장후 평토제를 지내면서 심봉사가 축문을
지어 바치는 대목을 듣고 있으니 내 가슴이 찢기듯 아프다. 축문 내용이나
심청전을 목이 터지도록 절절히 부르고 있는 안향련님도 젊은 나이에 이미 고인이
되어 있는 상황이 어이 이다지도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지...

「차호부인(嗟乎夫人)  차호부인(嗟乎夫人),
요차요조(邀此窈窕) 숙녀혜(淑女兮)요.
행불구혜(行不苟兮)  고인(古人)이라.
기백년지(幾百年之) 해로(偕老)터니
홀연몰혜(忽然沒兮)  언귀(焉歸)요,
유치자이(遺稚子而) 영서혜(永逝兮)여,
이걸  어이 길러내어,
누삼삼이(淚森森而) 칠금혜(漆襟兮)여,
진한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沈耿耿)이 소홀하여,
살 길이 정히 없네. 
누추추 절히하니 어느 때나 오시려오.
주과포혜(酒菓哺醯) 박전(薄奠)하나,
만사(萬事)를 모두잊고, 많이 먹고 돌아 가오.
(무덤을 부여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北邙山川)  들어가,
송죽(松竹)으로 울을 삼고,  두견(杜鵑)이 벗이 되니,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하리.
노이무처(老而無妻) 환부(鰥夫)라니,
사궁중(四宮中)에 첫  머리요, 아들 없고 앞 못보니,
몇가지 궁(窮)이 되더란 말이냐?
마누라가 아니면 얼어서도 죽을테요.
주려서도 죽을테니 차라리.....

무덤을 부여안고, 곽씨부인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심봉사의 애절한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당신이 있으면 지금쯤 설명절을 맞기 위해 밤을 새우며 음식을 장만하고,
여기저기 친척집에 전화를 걸어 설날에 와서 고스톱을 치자고 부르고,
밤 늦도록 TV 로 방영되는 영화를 보느라 밤 늦도록 집안이 북적거리고
부산하였을텐데, 오늘은 쌍둥이들을 일찍 재우고나니 집에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오늘 청아공원에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당신이 들어올 때는 납골안치실이 거의 비어있었는데 이제는 절반 약간 못미치게
많이 차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은혜홀가홀의 내무반장 아니 청아공원 영령들의
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고 하나님도 당신의 리더십이 아까워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모님이 먼저간 당신을 위해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 성질이 고약하여 차례상에 올릴 전도 마트에서 사서 올리면 정성이 부족하다고
난리친다고 장모님이 불편한 몸으로 정성스레 직접 부쳤다오.
남겨진 가족은 걱정말고 천국에서 여자로, 학력으로, 각종 차별과 경제적인
이유로 펼치지 못한 꿈과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사시구려~~~

2008.2.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회사 게시판에 붙은 손미나 아나운서 결혼 초대글 첫머리에
"사랑은 약속이다라고 배웠습니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배움에 목말라했던 집사람에게 신혼 때 내 약속했었지...
대학 졸업도 꼭 시켜주고, 대학원까지 보내주겠다고...
비록 결혼한지 18년 10개월,
당신이 하늘나라로 간지는 3개월 18일만에
대학졸업장은 뒤늦게야 당신 영전에 바쳤지만
대학원까지 보내준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지킬 수가 없다네...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당신은 늘 나보고 자기보다 오래 살아달라고 했지,
"내 몸을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 싫으니,
사랑하는 당신이 마지막까지 챙겨주면 좋겠다고..."
나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그러마 약속하며,
웃으며 대신 오래만 살아달라고 했지....
그러나 그 약속을 너무나 빨리 지켜야 했네....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집이 없어 이곳 저곳 부동산에 집 알아보러 다니며 마음 고생할 때
당신은 우리도 빨리 우리집을 가졌으면,
이사 걱정없이 마음 편히 살면 좋겠다고 말했지...
내 그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만 곧 내 돈을 모아서 빚내지 않고
우리집을 사겠노라고, 그래서 우리 식구 모두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
당신 생전에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지만,
내 그 약속 꼭 지키고 말겠네...
사랑은 약속이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나 결혼전에 내 자신에게 약속했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내 결혼하면 그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리라"
당신과 살면서 내 그 약속 지키며 살았지.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았지,
사랑은 약속이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당신은 나에게 동규, 재명, 재윤이 자식 셋과 장모님을 부탁한다고 했지.
나는 그러겠노라 약속했지.
나 그 약속 지키려 그동안 하지 않던 걷기도 하루에 한시간 이상씩
꼭꼭 하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자기계발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지...
인생은 장기전이며 하루 이틀 살고 말 것이 아니고
그들을 지키려면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인 자유 또한 중요하니까...
나 그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하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올해 1월에 쌍둥이 재명, 재윤이와 약속을 했지...
아빠가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겠다고,
대신 거짓말하지 말 것과 시간약속을 지킬 것을 주문했지...
그 약속만 잘 지키면 아빠는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그런데 어제 재명이가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친구 집에 가서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학원도 지각하고,
거짓말까지 하고, 동생 재윤이 간식도 내 팽개치고 왔었지...
나는 약속대로 사랑의 회초리를 들었지.
사랑은 약속이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당신은 1년 6개월을 그 고통스런 항암제로 버텨왔지.
나와 이별하기 일주일전 나에게 말했지.
"이제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
나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 약속해줘!!" 했지...
나 터져 나오려는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으며 그러겠노라 약속했지!
챙겨주는 마누라가 없으니
사람이 꾀죄죄하게 하고 다닌다는 소리 듣기 싫어
당신과 살 때보다 더 복장 깔끔하게 정장으로 입고
표정도 밝게하고,
언행에도 조심하며 산다네...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신 생각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지....
사랑은 약속이니까....

김승훈, 2007.5.10.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당신과 만나 결혼해 살았던 시간이 앞으로 가는 시간이었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면,

당신과 헤어진 이후 시간은 거꾸로 가는 시간이고,
당신과의 추억을 지워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내일이면 설명절이 시작됩니다.
당신과 신혼 초에 약속했던 대로
설은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함께,
추석은 우리 시골 고향집에서 지내자고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년 설에도,
이번 설에도 나는 시골을 내려가지 않습니다.

장남에 장손인 내가 시골을 안내려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많이 서운해 하셨지만
나는 장모님을 마지막까지 잘 모셔달라는
사랑하는 당신과의 생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떠나면 혼자서 며칠간
집에 계실 장모님을 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떠난 그 다음날부터 전화를 하면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를 부리시는 장모님을
오래 홀로 집에 계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설이면 처남이나 처형,
막내이모님들이 모두 우리집에 모여
윷놀이며 고스톱을 치곤 했지요.
당신은 항상 고스톱자금을 빳빳한 신권으로
미리 바꾸어 놓는 용의주도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없으니
이제는 우리집에서 모임도 갖지 못합니다.
다들 바쁘기도 하겠지만
당신같은 강한 카리스마와
흡인력을 가진 사람이 이제는
없음이겠지요.

또 명절 3일을 어찌 보내야 하나?
명절이면 온 처가집 식구들이 모여 함께 놀던
그 시절이 자꾸 생각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그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내 머릿 속에서 지워질까요?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당신과 다시 만나 사랑의 추억을
다시 쌓을 수 있을까요?

2008.2.5.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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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모 중앙일간지에 배우자 뒷조사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통화 내역을 직접 훔쳐 보는 것은 이제는 고전적인 방법에 속하고,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통화 내역서를 떼어 보기도 하고, 정보통신(IT) 기술을 동원하여
배우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각종 조회 서비스에 가입하여 문자메시지의 경우는 인터넷으로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몰래 신청해 온라인에서 감시한다고 한다.

e-메일이나 싸이월드, 메신저 등 배우자의 온라인 행적은 비밀번호를 알아내 엿보기도 하는데,
상대방에게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배우자의 차량에
설치해
행적을 추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고 심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가 있다. 배우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사용한 경우 상대방이 원하면
주민등록법에 따라 처벌받게 되며 동의를 얻지 않고 위치 추적을 한 경우에는 2005년 신설된
"위치정보 보호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행과 감시는 처음에는 호기심과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배우자가 이러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나를 감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대가 받게되는 마음의 상처는 매우 크다.
부부관계는 신뢰가 생명인데, 신뢰관계가 금이 가게 되면 심하면 별거나 가정파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 부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어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집사람은 생전에 기념일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 생일, 결혼기념일, 집사람과 맨처음 만났던 날... 일년에 이 날은 잊지않고 내가 꽃과 선물을
사주곤 했다. 어제도 통근버스를 타고 내려 집 근처에서 아무리 꽃집을 찿았지만 없었다.
예전에 있던 백마3단지 입구 꽃집도 장사가 안되었는지 오늘 가보니 가방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꽃을 사가지고 와도 건내줄 집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다.
배우자는 내 의지로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부부간 사랑의 근간은 상호 신뢰이다.
부부는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신뢰를 잃지 않도록 상호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배우자를 믿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것인가? 부부간은 촌수가 없는 동격이다.
촌수가 없다는 것은 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깨어지기도 쉽다는 뜻이리라.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서 점 하나를 더하면 "남"이 되기도 하고,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님"이 되기도 한다.

그 점이 바로 사랑이며, 사랑의 종착역은 결혼이다.
부부의 사랑과 결혼을 지탱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서로간의 믿음이다.

헤어지고 나서 "그 때 잘해줄껄" 후회하지 말고,
지금, 같이 살 때 후회없이 아껴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김승훈 200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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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직원이 장인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 요즘 마음고생이 심하다.
오늘 식사를 하면서 불현듯 내뱉는 말이 내 폐부를 찌른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장인어른을 보고 있으니 지난 시절에 맏사위로서
잘못한 일과 서운하게 해드린 일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평소 잘 다투셨습니다. 장모님은 다투시면 항상 저희 집으로
피신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잠시후에 장인어른이 꼭 오십니다. 그럴 적마다
장인어른에게 서운하게 해드린 일이 자꾸 떠오릅니다."

아직 정정하게 활동하실 예순일곱의 연세인데 약 한달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폐암수술을 하였으나 수술후 경과가 좋지않아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어 지난주 금요일부터 뇌사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아내와의 사랑과 만남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백년해로까지는
갈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한지 18년 7개월도 채되지 않았는데
허무하게 막을 내릴 줄 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전에 집사람 고집에는 늘상 지고 살았는데,
눈을 부릅뜨기라도 하거나 언성이 높아지려고하면 그냥 꼬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집안 청소며 화장실 청소, 이부자리 펴고 개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쌍둥이자식들 숙제봐주기 등 심부름이나 청소는 알아서 척척 해주며 살았는데
막상 너무도 일찍 내 곁을 훌쩍 떠나고 나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이내 후회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아내와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으면
더 기쁘게 해줄껄!
하자고 했던일 다 들어주고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줄껄!
내몸이 부서저라 일해서 금전적인 고통을 덜어줄껄!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은 모두 내탓이다.
아내를 먼저 보낸 것은 모두 내탓이다.
이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아내와의 사랑을 어이하랴!

2008.1.28.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제2교육관에서
당신의 졸업증서를 받아와
이제야 당신 영정 앞에 바칩니다.

당신이 생전에 그토록 받고자 했던 대학졸업장!
풍족하지 못했던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만을 포기할 수 없어
1981년도에 진학한 한국방송통신대학!
영광의 대학 졸업장을 받는데
무려 26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난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후 아르바이트로 취직하여
그대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마지막이자 평생 직장이 되어버린
KBS에서도 사람이 만든 성차별과 학력차별 때문에
수없이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온 당신입니다.

학점을 모두 받고서도
결혼과 큰 애 출산 때문에,
직장에서 나와 놀고있던 오빠 완구가게 마련해주고 운영하느라,
지난 1990년 개봉동 물난리때 가게가 침수되어
모든 희망을 잃고 이사하고,
1997년에는 쌍둥이자식을 낳고 키우느라
이 땅의 뭇 여인네들 처럼
당신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기한내에 졸업시험을 치르지 못해
제적처리가 되었고
졸업을 포기해야 했지요.
그리고 내가 신경을 쓸까봐
여지껏 나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애를 태운 당신입니다.

그러나 학점을 모두 이수하였으나
졸업시험만 치르지 못한 수료생들의 사정을
딱히 여긴 교육당국의 배려로 졸업논문으로 대체되어
다시 졸업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병 중인 지난해 3월에 듣고
당신은 이제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들떠서 나에게 전화를 주었지요.

작년 5월 유방암 말기 투병 중인
아픈 몸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졸업논문을 만들었습니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10일 간격으로 지독한 항암제를 맞아가며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쳐내려 갔습니다.
밀려드는 통증은 진통제를 먹어가며
암세포가 시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와
논문작성에 매달렸지요.
한페이지를 작성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암세포도 당신의 뜨거운 열정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결코 희망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당신이었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런지...

작년 8월, 드디어 졸업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기뻐 눈물을 흘리며
"내가 졸업식 때까지 살 수 있을까?"하기에
나는 단호히 말했지요.
"그럼! 어떻게 받게되는 졸업장인데
당연히 살아서 당당하게 받아야지!"

그렇게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을 불사르며 고생한 노력으로 취득한
대학 졸업증서를 주인공인 당신 대신
오늘에야 제가 받아 당신 영정 앞에 바칩니다.

학위번호 : 방송대2006학056xx 최혜숙

김승훈

2007.4.5.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밤 늦게 집사람이 아꼈던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은 지방에 근무하는데 직원 몇사람과 술 한잔하는데 집사람 이야기가 나와
생각이 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누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니
내 목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전화를 했으며 시간이 흐르면 누님이
잊혀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생각난다고 울먹인다. "형님! 잘 사십시오!"
하며 전화를 끊는다. 아내가 아꼈던 후배 몇 사람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았던 후배였다.
본인도 나에게 자기가 가장 누님에게 사랑받았던 후배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후배 전화를 받고보니 사랑하는 아니 이제는 사랑했던 아내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주변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두고 갔고 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두고 갔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아닌것 같다. 사람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고 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내는 인맥관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했고, 한번 내사람이다
생각되면 앞뒤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설사 불이익이 있더라도 끝까지 챙겼다.

지금은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계시는 분이 있다.
그분과 사귄 것은 25년전, 한참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분과 친분관계를
쌓으려 많은 사람들이 그분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분과 식사를 하려면 한달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력문제로 보직을 내놓고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냉소를 보내며,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모두 떠났을 때, 유일하게 집사람
혼자 그분을 지키고 말 상대가 되어 드렸고 매일 책상도 닦아 드렸다. 나중에 다시
명예회복이 되었을 때 다시 몰려든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 않고 가장 먼저 여직원인
집사람부터 찿았다. 집사람이 아프다고 하자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시는 의사에게 직접
전화해서 병실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하여 입원조치시키고 진찰받도록 해주고, 입원비도
2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쾌히 내 놓으셨다. 아내가 작년 11월 눈을 감았을 때 가장
애통해 하며 가족을 빼고는 3일 내내 영안실을 지켜주신 유일한 분이시다.

사람들이 그분이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그분 곁을 떠났을 때 당신은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분명 재기하실 분이다. 나는 그분 능력을 믿는다. 사람은 기쁨은 같이
해 주는 사람보다 어려울 때 함께 해 주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나이는 집사람보다 15살이나 더 연상이었지만 집사람 충고를 받아들여 그 어려운
시기를 숨 죽이며 견디어 냈고 그후 다시 화려하게 재기했고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사장으로 재직하고 계신다. 그 누구도 그 분이 다시 재기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아내는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사람을 사귀고, 사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만남을 소중히 여겼고 진심으로 대해주었고, 상대의 장점을 인정해준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를 아쉬워 한다. 유애리 아나운서가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했던 말
"최혜숙씨는 사람을 남기고 간 것 같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승훈, 2007.3.23.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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