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집사람과 나는 수산시장을 다니며 추석 제수용품을 미리 준비하느라
바빴다. 점심때 잠시 짬을 내어 노량진 수산시장을 함께 다녀오곤 했다. 추석이 닥치면
건어물이 비싸다고 미리 사다가 손질하여 말려두거나 손질하여 냉동시켜 두었다가
아이스박스에 담아 추석때 시골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추석 전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다보니
장손 며느리인 집사람은 결혼후부터 유방암으로 입원해있던 작년을 빼고는 줄곧 매년
도맡아서 하곤 했다. 매년 추석때 집으로 내려갈 때는 내 차는 제수용품으로 가득 차곤
했으며 덕분에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은 항상 풍성했다.
이렇듯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하던 집사람은 병이 들고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게 될
이라는 것을 직감한 이후에는 나를 많이 훈련시켰던 것 같다. 그동안 집사람이 집안
모든 것을 결정하다보니 나는 그저 운전하고 짐을 나르는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시장 가자고 하면 차를 운전하고, 사놓은 물건 나르고, 물건 고르는 것과
가격 흥정하는 것은 모두 집사람 몫이었다. 시장에서도, 할인점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집사람은 가격 흥정을 잘해 가격을 많이 깍아서 나에게 만족스런 미소를 보내곤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큰 금액을 후려쳐서 결국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가격조정이 이루어지곤
하는데 나는 아무리해도 부르는 물건값에서 단돈 몇천원도 깎지를 못해 그냥 달라는대로
주거나 겨우 덤이나 하나 얻어오는데 집사람은 예전에 완구가게를 운영해본 경험으로
흥정을 잘했다. 상인들은 흥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장사하세요?" 하고 묻곤 헸는데
그때마다 집사람은 미소를 띄며 "네, 조그만 가게를요..." 말하면 상인들은 "어쩐지..." 라며
다음에는 꼭 자기 가게를 단골로 삼으라고 기분좋게 덤까지 얹어주곤 했다. 이렇게 단골로
삼은 거래처를 회사 직원들이나 친구 등 여러사람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유방암판정을 받은 이후 집사람은 나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며 일을 시키며 결과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은행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면 송금수수료가 적게 든다고 미리 은행에
신청하여 만들어두고 사용하라고 하고 가족과 친척들 생일과 제사날, 은행 입금계좌,
연락처(집, 회사. 핸드폰)을 깨알같이 적어서 알려주었다. 수산시장에 가서는 생선을
고를 때는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느 때 가야 싸게 사는지도 알려 주었다. 이마트나
하나로마트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맛있는 과일이나, 신선한 야채 고르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우유나 식품도 유통일자를 보도록 하고 대충 골랐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꼭 깊숙히 속에 있는 것과 비교해보고 하루라도 유통일자가 길고 이왕이면 덤이
붙은 것으로 골라 사도록 했다. 평소 옥션으로 싸게 사먹던 과일농장이나 옥수수집
연락처, 입금계좌도 모두 깨알같이 적어 남겨놓고 갔다.
쌍둥이자식들 옷도 항상 계절이 닥치기 전에 미리 사두곤 했다. 여름옷은 겨울에, 겨울 옷은
여름에 세일할 때 사면 싸다고 집으로 오는 전단지의 세일행사를 꼼꼼히 살피곤 했다.
혼자서 세 자식을 키우며 홀로서기를 했던 지난 10개월을 생각해보니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집사람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곤 했다.
집사람없이 처음 맞이하는 올 추석은 남은 자식 셋을 데리고 시골을 내려가야 한다.
항상 집사람이 타던 조수석은 생전 그토록 예뻐했던 막내 재윤이 자리가 되었다. 그 먼
귀성길 집사람은 과자며 음료, 과일을 미리 준비해서 내가 배고프거나 심심치않게 먹으며
내려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누가 내 간식거리를 챙겨줄꺼나?
항상 집사람이 손수 준비해서 차렸던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인데, 이제는
거꾸로 본인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그 상을 받아야 한다니 인생사가
어찌 이다지도 얄궂은지....
아마도 먼저 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께 많은 이쁨을 받고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하고 간 집사람의 부탁대로 나도 위축되지 않고
삶을 열심히 살리라 다짐해 본다. 나의 열정의 이면에는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집사람의
삶의 흔적이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김승훈 2007.9.1.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집사람과 나는 수산시장을 다니며 추석 제수용품을 미리 준비하느라
바빴다. 점심때 잠시 짬을 내어 노량진 수산시장을 함께 다녀오곤 했다. 추석이 닥치면
건어물이 비싸다고 미리 사다가 손질하여 말려두거나 손질하여 냉동시켜 두었다가
아이스박스에 담아 추석때 시골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추석 전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다보니
장손 며느리인 집사람은 결혼후부터 유방암으로 입원해있던 작년을 빼고는 줄곧 매년
도맡아서 하곤 했다. 매년 추석때 집으로 내려갈 때는 내 차는 제수용품으로 가득 차곤
했으며 덕분에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은 항상 풍성했다.
이렇듯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하던 집사람은 병이 들고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게 될
이라는 것을 직감한 이후에는 나를 많이 훈련시켰던 것 같다. 그동안 집사람이 집안
모든 것을 결정하다보니 나는 그저 운전하고 짐을 나르는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시장 가자고 하면 차를 운전하고, 사놓은 물건 나르고, 물건 고르는 것과
가격 흥정하는 것은 모두 집사람 몫이었다. 시장에서도, 할인점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집사람은 가격 흥정을 잘해 가격을 많이 깍아서 나에게 만족스런 미소를 보내곤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큰 금액을 후려쳐서 결국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가격조정이 이루어지곤
하는데 나는 아무리해도 부르는 물건값에서 단돈 몇천원도 깎지를 못해 그냥 달라는대로
주거나 겨우 덤이나 하나 얻어오는데 집사람은 예전에 완구가게를 운영해본 경험으로
흥정을 잘했다. 상인들은 흥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장사하세요?" 하고 묻곤 헸는데
그때마다 집사람은 미소를 띄며 "네, 조그만 가게를요..." 말하면 상인들은 "어쩐지..." 라며
다음에는 꼭 자기 가게를 단골로 삼으라고 기분좋게 덤까지 얹어주곤 했다. 이렇게 단골로
삼은 거래처를 회사 직원들이나 친구 등 여러사람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유방암판정을 받은 이후 집사람은 나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며 일을 시키며 결과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은행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면 송금수수료가 적게 든다고 미리 은행에
신청하여 만들어두고 사용하라고 하고 가족과 친척들 생일과 제사날, 은행 입금계좌,
연락처(집, 회사. 핸드폰)을 깨알같이 적어서 알려주었다. 수산시장에 가서는 생선을
고를 때는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느 때 가야 싸게 사는지도 알려 주었다. 이마트나
하나로마트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맛있는 과일이나, 신선한 야채 고르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우유나 식품도 유통일자를 보도록 하고 대충 골랐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꼭 깊숙히 속에 있는 것과 비교해보고 하루라도 유통일자가 길고 이왕이면 덤이
붙은 것으로 골라 사도록 했다. 평소 옥션으로 싸게 사먹던 과일농장이나 옥수수집
연락처, 입금계좌도 모두 깨알같이 적어 남겨놓고 갔다.
쌍둥이자식들 옷도 항상 계절이 닥치기 전에 미리 사두곤 했다. 여름옷은 겨울에, 겨울 옷은
여름에 세일할 때 사면 싸다고 집으로 오는 전단지의 세일행사를 꼼꼼히 살피곤 했다.
혼자서 세 자식을 키우며 홀로서기를 했던 지난 10개월을 생각해보니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집사람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곤 했다.
집사람없이 처음 맞이하는 올 추석은 남은 자식 셋을 데리고 시골을 내려가야 한다.
항상 집사람이 타던 조수석은 생전 그토록 예뻐했던 막내 재윤이 자리가 되었다. 그 먼
귀성길 집사람은 과자며 음료, 과일을 미리 준비해서 내가 배고프거나 심심치않게 먹으며
내려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누가 내 간식거리를 챙겨줄꺼나?
항상 집사람이 손수 준비해서 차렸던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인데, 이제는
거꾸로 본인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그 상을 받아야 한다니 인생사가
어찌 이다지도 얄궂은지....
아마도 먼저 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께 많은 이쁨을 받고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하고 간 집사람의 부탁대로 나도 위축되지 않고
삶을 열심히 살리라 다짐해 본다. 나의 열정의 이면에는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집사람의
삶의 흔적이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김승훈 2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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