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난 6월 CFO아카데미 PPT교육자료를 보내주었더니 박선자님으로부터 답장 메일이 왔다.

좋은 자료 너무 감사합니다~^^
제주도는 그나마 바람이 자주 불어서 그리 덥지는 않네요~
제주도 내려오실 기회있으면 제가 아는 맛집을 많이 추천해 드릴께요ㅎㅎ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박선자올림

제주도!
나도 제주도민이 될뻔 했다. 아버지가 1961년 군 제대후 우체국에 취직되어 제주도 대정우체국에 근무를 하였는데(아버지도 어머니와 사별을 하고 쏠로인 상태였다)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본 본의 추천으로 제주도 JP농장 관리인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JP는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아버지는 숙고 끝에 우체국 자리와 농장관리인 제의를 뿌리치고 고향 진도로 돌아와 할아버지 염전일을 도와 지금껏 시골에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지금도 가끔 지나가는 말로 후회 비슷하게 말씀하신다. 돈을 크게 벌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회가 몇번 많았는데 그 기회를 모두 포기했노라고....

아내는 생전에 제주도를 참 좋아했다. 오죽했으면 정년퇴직후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고 나를 집요하게 세뇌시키곤 했다. 아마도 나를 만나기 일주일전, 결혼 전 해인 1987년 첫 비행기를 타고 갔던 여름휴가지 제주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좋았었나 보다. 첫 데이트에서 제주도에서 보낸 휴가 이야기로 대부분 시간을 할애할 정도였으니....아내를 첨 만났을 때 아내는 참 예뻤다.

신혼여행지도 제주도로, 그후 두번의 여행(그 중 한번은 쌍둥이들을 임신했던 해인 1997년... 쌍둥이들이 한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다고 투정할 때 나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너희들은 이미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여행을 했느니라"하며 우겼다)과 한번의 업무차 여행(회사 직원 하계휴양시설 임차건으로)을 했으니 아내와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다. 불과 5년전까지만 해도 퇴직후 함께 제주도에서 함께 살자던 아내는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고, 홀로 남겨진 나는 아내와의 제주도의 추억을 떠 올리고 그리워하고 있으니.... 제주도에 아직 아내의 숨결과 체취가 남아 있을까??? 갑자기 제주도에 가고 싶어진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유행가 가사 중에 '세월이 약이겠지요. 서럽다 울지말고 괴롭다 슬퍼마세요'라는 대목이 있다. 실연한 사람에게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하다. 막상 실연이나 사별, 실패를 당하면 당시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이겨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을 가지고 견디다보면 그 아픔이나 슬픔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치유되고 해결되기 때문이 아닐까?

아내가 하늘나라에 간 후 두번째 이사를 했다. 아내 생전에는 집 알아보고, 계약하고 이사하는 것 일체를 아내가 주도적으로 알아서 처리했다. 아직도 집안에는 곳곳에 아내의 유품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고 집에 들어서면 아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거실 가족사진 속에, 안방에 들어서면 영정사진이 걸려있고, 집에 있는 장롱이며 가구, 그릇이며, 옷도 아내가 장만한 것이라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안방 서랍을 열어도 아내 유품(다이어리, 투병일지, 투병관련 자료들, 식이요법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메모지, 세브란스병원 유방암말기 진단서, 국립암센터 유방암말기 진단서, 투병관련 의무기록지 사본, 투병할때 복용했던 약, 가족사진 등)이 그대로 있다. 아내가 쓰던 지갑이며 핸드백도 쓰던 그대로 그냥 넣어두었다. 아내가 쓰던 지갑 속에는 우리 가족 사진이며, 내 사진, 자식들 사진이 꽂혀있다.

지금 보내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유품들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아내에 대한 애틋했던 마음이나 점점 옅어져 가고 하루 중에서 아내 생각을 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어간다. 아내와 보냈던 지난 추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그 농도가 옅어져 간다.

이번 이사를 하면서 안방에 걸어두었던 사진이며 액자 모두를 싸서 옷장 위에 올려두었다. 유품도 필요치 않은 것은 하나 둘씩 정리해 버린다.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며 살 수 있으련만 하늘나라로 간 사람인데...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이제는 미련을 접고 살기로 했다.
자식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 짐은 계속 늘어만가고 이사를 다니면서 짐이 계속 늘어 비용도 늘고 힘들어진다. 얻음이 있으면 버림도 있어야 균형이 맞추어 진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이 작은 집에서 왠 짐이 이리 많는냐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장모님께 베란다에 있는 옹기그릇도 버리자고 했더니 "동치미를 담궈먹던 그릇이고, 쌍둥이엄마가 있을 때 산건데..." 하며 선뜻  결정을 못하고 망설이신다. "앞으로 동치미를 담구어드실 겁니까?" 물었더니 이제는 힘드셔서 동치미를 담구지 못하시겠단다. 그럼 버리자고 했다. 괜히 아깝다고, 아내가 산 물건이라고 쓰지도 않으면서 보관한다면 다음 이사를 할 때에도 짐이 되고 이는 아내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아내 없이는 정말 살기 어려울 것 같았던 생활도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어 간다. 이전까지의 삶이 아내와 함께 했던 2인칭 삶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나 혼자의 1인칭 삶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이게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이제는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당당히 이겨내고 싶다. 아내도 남겨진 남편이 나약하게 세상에 차이고 치이고 사는 것 보다는 자식들 잘 키우고 세상을 강하게 리드하고 사는 삶을 살기를 원할 것이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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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주 토요일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원이 300킬로미터MTB울트라 경기에 출전하여 합격하여 당당히 철인 인증을 받았다.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신청자 총 632명이 참가하여 103명만 정해진 시간안에 들어왔다니 합격율이 16.3%이다.

이틀간 2박을 잠도 자지 못하고 34시간 안에 주야로 산악지형을 자전거로만 이동한다는 것이 대회 슬로건처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경기이다. 심야 01:00시에 집결, 인원점검후 03:00에 출발하여 그날 꼬박 그리고 그 다음날 13:00까지 골인을 해야 하니 잠도 자건거 안장 위에서 10분정도 겨우 눈을 붙이고 식사는 베낭에 넣고 다니며 해결하며 쉼없이 달리고 걷고를 계속했다고 한다.

그 직원은 합격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로 파트너를 잘 만난 것을 꼽았다. 선두그룹 중 기아자동차 MTB동회원을 만나 함께 경쟁하며 격려하며 가니 무서운 밤길도(그 직원은 평소 무서움을 잘 탔다) 무섭지도 않고 고된 34시간 강행군도 외롭지 않더라는 것이다.

인생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좋은 파트너를 만나 부부가 되면 인생길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성인이 되면 남자와 여자는 대부분 결혼을 하는데 결혼생활이 행복만 가득찬 것은 아니다. 모 가수의 유행가 가사처럼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떼면 님이 되고,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붙이면 도로 남이 되는게 남녀관계이다. 또 성격과 자라난 환경, 성장한 가정환경이 다른 두 사람이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부부가 되고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 부딪치고 충돌하면서 어찌어찌 살아가는 과정이 어찌보면 항상 이별의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처지인지 모른다. 그래서 좋은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고 좋은 파트너의 기준은 물질이나 외모 보다는 성격 등 인성적인 면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어차피 하고 후회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며칠전 함께 교육을 받는 모 여자연구원(미혼)이 다쳐서 집에 있다보니 정말 빨리 결혼하고 싶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저 조용히 웃었다. 그 연구원은 결혼하면 정말 행복하게 잘 살 것으로 느껴졌다. 누군가는 결혼은 무덤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율배반적인 소리라고 생각하다. 내 경험으로는 결혼생활은 연애 당시, 결혼 초기의 초심을 잃지 않고 살면 본인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행복하게 만들수 있다.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보고 싶고, 그리워지고, 챙겨주고 싶고, 밤을 세워 이야기를 해도 시간이 부족하고, 이해하고 양보해주고 서로 칭찬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결혼생활 내내 행복하다.

남과, 특히 잘 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자. 살다보면 장점은 보이지 않고 단점만 자꾸 눈에 보인다. 그럴 때마다 눈 질끈 감고 넘겨야 한다. 외모도 변해간다. 늘씬하던 몸매도 체중이 늘고 주름살도 생기고 머리숱도 없어져 간다고 불평한다. 상대를 탓하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보자. 또 연애 당시 배우자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그때는 날씬했지 않은가? 배우자가 지금처럼 볼품없이 된게 무엇 때문인가? 다 내 탓이지...

부부가 나이들어서까지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데... 요즘 부쩍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이 부럽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006년 11월 8일, 당신은 나에게 병상에서 두 가지를 부탁했지.
하나는 우리 쌍둥이들 잘 키워달라는 것, 다른 하나는 장모님을 잘 부탁한다고...

당신이 하늘나라로 가던 날이 하필이면 쌍둥이들 생일날이라, 우리 명이는 엄마 기일이 자기네 생일과 겹친다고 "아빠 우리 생일은 영원히 불행한 날이 될꺼예요"하며 나에게 와서 눈물을 글썽거렸지. 엄마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보다 자신의 생일을 챙기 못할 것을 걱정하던 철없던 쌍둥이들이 지난 11일날 백마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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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윤이는 공부를 잘해서 경기도의회의원 표창까지 받았어요. 당신이 있었더라면 많이 대견해했을텐데, 당신이 있었더라면 무척 기뻐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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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도 우리 쌍둥이들 졸업을 축하라도 하듯 눈이 펑펑 내렸어요.
당신이 우리 쌍둥이들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한다고 하늘에서 눈을 보내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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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게도 이모와 이모부, 지영이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쌍둥이들 졸업식에 와주었어요.
장모님이 녀석들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요즘 고집이 늘어가고 서로 잘 다투고 말싸움을 잘해 속상해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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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잘 키울 것입니다. 쌍둥이들이 우리나라 아니 세계의 인재로 성장하도록 내 뒷바라지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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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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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랑받을 여인

2010. 1. 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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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벌써 당신 3주기 제사이네.
그넘(?)의 유방암이 하필이면 당신에게
그것도 전이가 되어버린 말기상태로 느닷없이 오더니만
그냥 훌쩍 내 곁에서 당신을 데려가 버렸지

그 이후로도 이넘의 무정한 세월은 까먹지도,
잊어버리지도 않고 꼬박꼬박 내 앞을 3년이나
잘도 스쳐 지나갔네 그려.

장모님이 먼저 보낸 딸 제사상은 당신이
직접 차려주고 싶다는 뜻 그대로 하시라고 했지.
당신은 내 아내이기에 앞서 또 한 명의 딸이었으니....

내 그때 뒷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라고 웃으면서
큰소리는 쳤지만 내 요즘 너무 많이 힘들어.
매주 시장을 보아야 하고 장모님께 20만원씩 드려야 하는
토요일은 왜 이리도 빨리 찿아오고,
월세주는 날이나, 쌍둥이자식들 학원비를 납부하는 날,
그리고 직원들 빚을 갚아주어야 하는 날짜는
왜 이리 빨리 그리고 자주 돌아오는지,
입안에 침이 바짝 타고 피가 마르는 것 같아.

'이승 저승 하지만 그래도 이승이 좋고,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먼저 간 년만 불쌍하지" 간혹 내게 섭섭하실 때면
하시는 장모님 성화에도 전에는 무지 섭섭해서
화도 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며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나이가 되었네.

당신이 가고 나면 나 혼자 어찌 사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버티고 살아지네.
내 하늘나라에서 떳떳한 모습으로 당신얼굴 보려고
내 이 악물고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
하다하다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 살아볼거라네.

2006년 11월 10일까지가 이승에서 나와 당신과의
인연이었다면 아직도 못다한 우리의 사랑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이으면 되겠지.

내일 한국생산성본부 8시간 종일 강의인데
오늘 밤은 왠지 잠이 오질 않을 것 같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순천방송국에 근무하는 윤형혁님이
우리 사무실로 단감을 한 박스 보내주었다.
평소 콘도담당자에게 늘 노동조합에 있을 때나
지금도 신세를 많이 졌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사람들은 신세받은 것은 잊고 사는데
잊지않고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니
정말 좋은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사무실서 오후에 간식으로 깎아먹고
일부는 사람들과 나누어 가져갔는데
집에 7개를 가지고 갔더니 장모님이 단감을 보시더니 반색을 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은경이 제사장에 올릴려고 단감을 사려고 하셨단다.

그렇구나~~ 아내가 평소 윤형역님을 좋아했지.
사람이 순수하고 심지가 곧다고,
그러고 보니 순천에는  오석윤님도 있고,
오세웅님도 있고, 윤형혁 님도 있네....
모두 아내가 회사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좋아했던 사람들이고
그들 모두 아내를 많이 따랐었지.

그러고보니 윤형혁님이 아내 제사장에 올리라고
미리 알고 감을 보내주었나?

당신이 간지도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네.
아직도 주변에 당신을 많이 그리워하고
먼저 간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당신 외롭지는 않겠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주전, 회사 사무국장님이 '당신, 앞으로는 자꾸 미스최 이야기는 하지마'라고
정색을 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국장님 뜻을 잘 압니다. 당신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 지난 23여년간 당신과 너무도 가까웠고 당신이 그토록 좋아했고 흉금을 털어놓고
지냈던 몇사람 안되는 선배님이셨는데 그런 국장님이 이제는 당신을 잊으라고
말하십니다.

국장님 뜻은 잘 압니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으니 나더러 더 이상 당신과의
있었던 과거 추억에 머물러 살지 말고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지난 추억을 훌훌
털고 아내의 사별이라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제 갈길을 가라는 뜻이겠지요.
더 나아가서는 재혼을 염두에 두라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아직은 당신을, 당신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행복했던 지난날의 시간들을
내 기억속에서 밀어낸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지난 아름답던
추억을 회상하며 살게 된다는데 우리 가족 좋은 일, 궂은 일,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당신이 생각납니다. 요즘 동규가 애비에게 무슨 섭섭함이 있는지 나에게 다가오지를
않으니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이런 가족들 문제를, 답답함과
서운함을 상의해야 할지 마음이 아려옵니다.

늦은 저녁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에는
유난히도 크고 밝은 별이 하나 있습니다. 마치 당신의 큰 눈과도 닮았습니다.
첫 만남에서 나를 쑥 빠져들게 했던 눈이었지요. 그 크고 아름다웠던 호수같은
눈은 아직도 나를 당신에게서 헤어나지 못하고 하고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어찌 해야할지 오늘 저녁 살짝 내 꿈 속에 와서 알려줄 수는 없는지요?
하늘나라에는 병이 없다는데 나에게 다시 올 때는 마지막 헤어질 때 모습이 아닌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아리따운 모습으로 왔으면 합니다. 그래야 내가 마음이
덜 아플테니까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젯밤 제 꿈에 당신이 나타났습니다. 생전 모습 그대로 너무도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꿈에 당신은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것입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가슴을 쥐어뜯다가 새벽에 잠을 깼습니다.

오늘 하마터면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우리 가족(나 장모님, 쌍둥이들)을 태우고
목욕탕을 가다가 높은 속도로 지나가는 차량과 추돌할 뻔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과 성령님, 그리고 당신이 지켜준 것만 같습니다.

당신을 하늘나라로 보낸지 어언 2년 11개월이 지나갑니다. 그동안 숱하게 당신
꿈을 꾸려 했지만 야속하게도 당신은 제 꿈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늘나라에
잘 갔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야속했습니다.
당신이 가기전 내가 했던 말 "내가 쌍둥이들 잘 키우고 장모님 잘 모실테니 아무
걱정말고  편하게 하늘나라 가라고... 나와 살면서는 돈 걱정, 쌍둥이들 키우느라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서 편히 보내라고...." 정말 그 말대로
나를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어제 한소망교회 주보 셀모임 교재에 모임 오프닝으로 '환영 마음문 열기'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가을이 되면 나는 ....을 하고 싶다/...생각난다/
....에 가고 싶다. 왜냐하면 ....때문이다."

나는 올 가을에 당신과의 추억이 깃든 곳을 모두 가보고 싶었습니다.
결혼 1주년 기념으로 갔던 한려수도, 명절때마다 갔던 고향집, 휴가철에 갔던
설악대명콘도, 한화대천콘도, 한화산정호수콘도, 학암포해수욕장, 변산콘도,
그리고 우리가 살았던 신혼집 부천 고강동, 어려움을 겪었던 광명 철산동,
서울 신도림동, 일산 후곡마을, 동규를 낳았던 유광사산부인과, 쌍둥이들을
낳았던 여의도성모병원, 유방암말기 판정후 당신과 매일 운동했던 강촌공원,
당신이 입원하여 투병했던 국립암센터, 마지막까지 입원하여 재활의 의지를
불태웠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등 당신의 체취와 열정의 흔적이 남아
있을만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당신의 흔적을 찿아보고 당신과 만나 함께
보냈던 19년 10개월간의 가슴뛰고 행복했던 순간들과 아름답던 추억여행
속으로 잠시나마 빠져들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세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 엎질러진 물, 그리고 내뱉은 말...그런데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내곁을 떠난 사랑'입니다. 이미 내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간 당신과의 사랑을 다시 되돌릴 수가 없어 오늘도 나는 마음 아파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떠난 당신에 대한 추억이 점점 옅어질 줄 알았는데 점점 당신의
빈자리가 더 커보입니다. 가을이어서 그런가요? 아님 당신이 그동안 내마음을
너무도 깊숙히 차지하고 있어서인가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1년동안 위암으로 투병중이던 배우 장진영씨가 사망했다고 한다.
기사를 읽고 장진영씨가 해맑게 웃고있는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눈물이 난다.
그동안 그 힘든 투병생활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아쉬움과 남겨진 연인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슴을 저며 온다.
 
아내도 1년 6개월 유방암 투병생활을 하면서 잘 견디어주었지만 끝내 온몸으로
전이된 암세포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쌍둥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시간만 나면
'나는 꼭 완치된다'고 스스로에게 자기암시를 하곤 했다. 하루에도 네번씩 꼬박꼬박
어떨 때에는 한끼 먹는 식사량보다도 더 많은 콩알만한 덱사라는 진통제를 한입에
입으로 털어넣으면서도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에 오마야관을 심는 수술을 할 때에도 그 힘든 고통을 감내하며 그래도 이런
수술을 받을 수 있어 행운이라고 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웃던 아내였다. 2006년 당시
TV뉴스에서 황우석 교수만 나오면 구세주처럼 황박사님이 줄기세포를 만들어 암을
치료해줄 항암제며 치료제를 만들어 암환자들을 고쳐줄 것으로 잔뜩 기대를 했었다.

그동안 장진영씨 곁에서 희망을 잃지말고 투병을 하도록 도와주고 함께해준 연인의
헌신적인 고생도 보람도 없이 하늘나라로 가버린 이 또한 맺어지지 못할 인연이었나
보다. 얼마나 힘들까? 사랑하는 연인을 데려간 하늘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꼬!

그래도 장진영씨는 암을 훌훌 털고 일어나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왕성히 연기활동을 하기를 바랬는데,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접하니 나도 3년전
아내와 투병생활을 할 때 추억이 떠오르며 이제는 자꾸 옅어져 가는 아내의 모습이
더욱 그리워지며 마음이 울적해진다. 쌍둥이들 잘 키워달라고 했는데...

고 장진영씨의 명복을 빕니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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