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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0월 집사람이 국립암센타에서 유방암 말기 투병 중일 때
식사량이 공기밥 한 그릇 이라면 복용해야 할 약은 그의 1.5배였다.
대부분 통증을 완화시켜주기 위한 마약성분이 함유된 진통제들로 일반 약국에서는
판매가 금지된 약들이다. 그 약 중에 덱사라는게 있는데 처음에는 하루에 네번씩
두 알부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8개로 늘어났다. 8개를 목으로 넘기려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집사람 곁에서 먹는 음식보다 더 많은 덱사를 입안에 넣고 고통스럽게 삼키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항암제를 맞으며 이렇게 고통스런 약을 처방받아 먹는 것 이외에 달리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그저 참고 기다리며 한시라도 빨리 새로운 항암제가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인터넷을 뒤지며 암에 관한 정보를 애타게 찿았다.

한때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에 모든 희망을 걸며 열광하며 올인했다. 집사람이
국립암센터에 입원해 있었던 당시 항암치료에 지쳐 자포자기하고 희망의 끈을
놓으려는 병실 환자들에게 "조금만 버티자. 황박사님이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항암제와 줄기세포 기술을 개발하여 반드시 우리를 살려 주실거야"라고 격려하고
식사를 포기한 환자들에게도 밥을 먹어야 기운도 내어 암과 싸워 이길 수 있다며
억지로 밥을 먹게 만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분명 방법은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20일 네째 동생이 광주광역시 첨단지구에서 나이트틀럽을 오픈하는
것을 지켜보신 아버지가 3일전 전화통화에서 나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건낸다.
"그날같은 이 경사스런 자리에 꼭 있어야 했던 한 사람이 빠져 서운했다.
동규엄마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경사스런 자리에서 동규엄마 얼굴이 자꾸 떠올라 아쉽고 서운했다"
아버지가 이미 1년 반 전에 하늘나라에 간 집사람을 거론한 것은 그동안
집사람이 우리 집안에 끼친 영향력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는 장모님까지 한마디 거드신다.
"동규엄마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지만 죽은 년만
불쌍하지"

"빚만 남겨놓고 가서 미안해! 동규는 컸으니 지 앞길 혼자 헤쳐나갈 수 있지만
우리 쌍둥이들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쌍둥이들 끝까지 잘 부탁해!"
"쌍둥이들은 걱정말고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잘 살어. 내가 쌍둥이들은 잘 키워
사회의 리더로 내보내고 당신 뒤를 따라 하늘나라에 갈테니깐..."
눈을 감기 3일전 마지막으로 나에게 유언을 하고 쌍둥이들을 부탁하며 집사람은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남겨 놓은 빚을 정리하느라 지금껏 2년간 한달 한달을 먹고 싶은 것 참고,
입고 싶은 것 아끼며,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다니며,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자린고비 생활을 하며 악착같이 살고 있다. 휴일이면 회사 사람들은 관광지며
콘도를 여행하며 외식도 한다지만 나는 집과 교회만 왔다갔다 하며 참고 버틴다.

살아있으니 행복할 거라고? 빚에 허덕이며, 남겨진 세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는
산 자의 고통을 아는지? 몇년 지나면 빚도 갚고 빠듯한 생활도 차츰 펴지겠지!
그러나 보고 싶은 사람 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곁에 하소연할 사람도 없어 나홀로
고민하고 결정하고, 그리움도 외로움도 혼자 삭히고 참아내야 하는 정녕 산 자의
고통을 아는가?

2008.5.28.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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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은 우리 결혼 20주년기념일입니다.
88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8년 4월 23일 여의도 가든예식장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의 이상향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당신을 만나 너무 행복했습니다.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행복했고
세상이 온통 장밋빛이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구입한 고강동 아파트에, 철산동
사원아파트까지 결혼하자마자 아파트도 2채나 생기고 마침 불어닥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몸에 받으며 부모님 공경할 줄
알고, 재치 넘치고, 리더십이 강한 평생 동반자를 만나니 지난 30년간의 어려움과
외로움, 고난을 하늘이 이제야 한꺼번에 보상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1989년은 우리 부부에게 최고의 해였던 것 같습니다. 큰아들 동규가
결혼 이듬해인 1989년 2월에 태어났고, 나는 대리로 승진했고, 당신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출발하여 계약직을 거쳐 꿈에 그리던 업무직
직능전환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업무직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1993년 기획실 과장으로 승진했고, 일주일만에 현재 직장으로 전직을 했습니다.
생각했던 일들이 너무도 잘 풀려 잠시 우쭐대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함께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계획성있고, 절제된 삶에서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큰형님을 위해 차린 완구가게의 실패, 이후 경제적인
고통을 겪으며 당신이 병을 얻고, 당신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면서 깨달았습니다.

당신만을,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만 이기적으로 살았다면 지금의 경제적인 고통이나
이별하는 아픔은 아마 겪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혼자서만 잘사는 것이 아닌
가족들 특히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들을 챙기며 함께 살려고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기에 내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신의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막내처남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당신의 지난시절 힘들게 내렸던 결정과 마음 씀씀이가 이해가 됩니다. 당신은
어쩌면 내가 품고 살기에는 너무나 큰 그릇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가족 당신과
행복했던 지난 시간만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나보다 절대 먼저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할겁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유방암으로
투병할 때 경제적으로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 때의 무기력함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파하는데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이를 깨물고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무기력한 가장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내고나서 가족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일확천금이나 과욕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열심히 산
덕에 빚도 계속 줄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좋아했던 장미 두송이를 당신에게 바칩니다.
20주년이니 20송이를 바치고 싶지만 한푼이라도 더 아껴 하루라도 우리 가족이 발을
편히 뻗고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하는 것이 시급하고 당신이 더 기뻐할 것 같아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동규와 쌍둥이인 재명이와 재윤이 세 자식 훌륭히 키우고 장모님 잘
모시겠다는 당신과의 약속 내 잘 지켜낼 것입니다.

2008.4.23.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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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나는 집사람을 처음으로 만나 결혼하여 함께 했던 지난 19년 3개월의 시간을
내 일생 최대의 행운으로 생각한다. 진정 소중한 만남은 서로의 영혼을 교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집사람을 만나 많은 대화를 통해 영혼을 교류하고
살았고 내내 소중한 마음의 안식과 평안을 가질 수 있었다. 집사람이 즐겨썼던
표현대로 "아~ 하면 어~ " 할 정도로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

우리 부부는 생각해보니 대화를 많이 나누고 살았던 것 같다.
서로 같은 직장으로 출퇴근하다보니 집에서도 함께 지냈고, 출퇴근, 회사에서도
자주 만났고, 집에 와서도 산책도 같이 다니고 쇼핑도 같이 하고 너무도 당연하지만
잠자리도 같이 하고... 아무튼 같이했던 시간이 너무 많다보니 대화할 시간이 그만큼
많았던 것 같다. 집사람과 헤어진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다정하게 사는
것을 하늘이 시기해서 집사람을 일찍 데려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화를 시작하다보면 소재는 끝이 없었다.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회사 동료 이야기, 친척들 이야기, 우리의 미래 이야기, 빚 걱정, 집은 언제 마련할
수 있을까? 등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때론 잠자리에서도 대화가
너무 길어져 "우리 내일도 있으니 오늘은 그만 잡시다" 하고 겨우 끝을 맺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중도에 이별할 줄 알았더라면 그때 밤을 세워서라도 이야기를 계속
나눌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화가 좋은 점은

첫째, 서로간에 비밀이 없어져 신뢰가 쌓인다. 우리 부부는 비밀이 거의 없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것 같다. 거짓말을 하면 얼굴이 빨개져
금방 탄로가 나 버린다. 비밀은 감추고 혼자만 독점하는 것으로 남을 배척하는
타인의 접근을 막는 형태로 표출된다. 비즈니스 또는 사람과의 만남에서 상대방의
말만 듣고 자기 속내나 의견은 일절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상대할수록 거북하고
때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서움까지 느끼게 한다.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것으로 많이 할수록 신뢰와 정이 쌓이게 된다.

둘째, 아이디어와 중지를 모을 수 있다. 혼자가 아닌 둘, 셋, 그 이상이 모여 대화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더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참고하여 문제
해결에 더 효율적인 방법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셋째, 이해와 배려가 가능하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상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실행으로 옮김으로서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과 결과로 연결된다. 우리는 집사람 생전에 거의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하더라도 빨리 끝냈다. 평소 대화를 많이 나누다보니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면 싫어하는 말과 좋아하는 말,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히 불필요한 의견충돌이 생기지 않았다.

넷째, 상대를 격려하고 격려받게 된다. 아픔과 어려움을 털어놓을 때 사람들은
진정으로 상대를 격려하고 격려받게 된다. 좌절에 빠져있었다면 격려를 통해 다시
일어나게 된다. 격려는 사람의 아픔과 고통도 잊게 해주는 영혼의 마약과도 같다.

다섯째, 몸과 마음의 건강함을 유지시켜 준다. 고민을 혼자만 간직하고 끙끙대다
보면 스트레스가 되고 이로 인해 건강을 해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홧병이란 병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 마음에 응어리를 누구에게도 털어내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안정되고 홀가분해진다.
자연히 몸의 신진대사도 활발해지고 건강이 좋아지게 된다.

기쁨은 감추고 슬픔은 여러 사람에게 알리라는 말이 있다.
이 시대를 위기라고 하는데 그 근본원인을 분석해놓고 보면 아마도 "대화부족"이
가장 큰 요인을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승훈, 20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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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추석이 3주 앞으로 다가왔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집사람과 나는 수산시장을 다니며 추석 제수용품을 미리 준비하느라
바빴다. 점심때 잠시 짬을 내어 노량진 수산시장을 함께 다녀오곤 했다. 추석이 닥치면
건어물이 비싸다고 미리 사다가 손질하여 말려두거나 손질하여 냉동시켜 두었다가
아이스박스에 담아 추석때 시골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추석 전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다보니
장손 며느리인 집사람은 결혼후부터 유방암으로 입원해있던 작년을 빼고는 줄곧 매년
도맡아서 하곤 했다. 매년 추석때 집으로 내려갈 때는 내 차는 제수용품으로 가득 차곤
했으며 덕분에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은 항상 풍성했다.

이렇듯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하던 집사람은 병이 들고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하게 될
이라는 것을 직감한 이후에는 나를 많이 훈련시켰던 것 같다. 그동안 집사람이 집안
모든 것을 결정하다보니 나는 그저 운전하고 짐을 나르는 역할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시장 가자고 하면 차를 운전하고, 사놓은 물건 나르고, 물건 고르는 것과
가격 흥정하는 것은 모두 집사람 몫이었다. 시장에서도, 할인점에서도, 백화점에서도
집사람은 가격 흥정을 잘해 가격을 많이 깍아서 나에게 만족스런 미소를 보내곤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큰 금액을 후려쳐서 결국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가격조정이 이루어지곤
하는데 나는 아무리해도 부르는 물건값에서 단돈 몇천원도 깎지를 못해 그냥 달라는대로
주거나 겨우 덤이나 하나 얻어오는데 집사람은 예전에 완구가게를 운영해본 경험으로
흥정을 잘했다. 상인들은 흥정이 이루어지고 나면 "장사하세요?" 하고 묻곤 헸는데
그때마다 집사람은 미소를 띄며 "네, 조그만 가게를요..." 말하면 상인들은 "어쩐지..." 라며
다음에는 꼭 자기 가게를 단골로 삼으라고 기분좋게 덤까지 얹어주곤 했다. 이렇게 단골로
삼은 거래처를 회사 직원들이나 친구 등 여러사람에게 소개해 주기도 했다.

유방암판정을 받은 이후  집사람은 나에게 이것저것 주문하며 일을 시키며 결과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은행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면 송금수수료가 적게 든다고 미리 은행에
신청하여 만들어두고 사용하라고 하고 가족과 친척들 생일과 제사날, 은행 입금계좌,
연락처(집, 회사. 핸드폰)을 깨알같이 적어서 알려주었다. 수산시장에 가서는 생선을
고를 때는 무엇을 보아야 하고 어느 때 가야 싸게 사는지도 알려 주었다. 이마트나
하나로마트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맛있는 과일이나, 신선한 야채 고르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우유나 식품도 유통일자를 보도록 하고 대충 골랐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꼭 깊숙히 속에 있는 것과 비교해보고 하루라도 유통일자가 길고 이왕이면 덤이
붙은 것으로 골라 사도록 했다. 평소 옥션으로 싸게 사먹던 과일농장이나 옥수수집
연락처, 입금계좌도 모두 깨알같이 적어 남겨놓고 갔다.

쌍둥이자식들 옷도 항상 계절이 닥치기 전에 미리 사두곤 했다. 여름옷은 겨울에, 겨울 옷은
여름에 세일할 때 사면 싸다고 집으로 오는 전단지의 세일행사를 꼼꼼히 살피곤 했다.
혼자서 세 자식을 키우며 홀로서기를 했던 지난 10개월을 생각해보니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집사람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해 보곤 했다.

집사람없이 처음 맞이하는 올 추석은 남은 자식 셋을 데리고 시골을 내려가야 한다.
항상 집사람이 타던 조수석은 생전 그토록 예뻐했던 막내 재윤이 자리가 되었다. 그 먼
귀성길 집사람은 과자며 음료, 과일을 미리 준비해서 내가 배고프거나 심심치않게 먹으며
내려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누가 내 간식거리를 챙겨줄꺼나?

항상 집사람이 손수 준비해서 차렸던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인데, 이제는
거꾸로 본인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그 상을 받아야 한다니 인생사가
어찌 이다지도 얄궂은지....

아마도 먼저 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께 많은 이쁨을 받고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하고 간 집사람의 부탁대로 나도 위축되지 않고
삶을 열심히 살리라 다짐해 본다. 나의 열정의 이면에는 그토록 열심히 살았던 집사람의
삶의 흔적이 많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김승훈 20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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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비둘기 암컷은 수컷한테 그렇게 헌신적이래. 그런데 일찍 죽는단다.
자기도 사랑받고 싶었는데 주기만 하니까 허기 때문에 속병이 든 거지.
사람도 그래. 내가 주는 만큼 사실은 받고 싶은 거야.
그러니 한쪽에서 계속 받기만 하는 건 상대를 죽이는 짓이야."

'은희경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에 있는 글이다..

며칠전 장모님이 쌍둥이녀석들을 챙겨주면서 엄마와 아빠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아빠들은 별 생각없이 애들이 잠자는 모습을 보며 잘 자는구나 하며
그냥 잠자리에 들지만, 엄마들은 애들이 낮에 밖에서 놀다가 혹시 몸에 상처가
나지는 않았는지, 모기에 물리지는 않았는지 꼼꼼히 애들 몸을 살펴보고 필요하면
약도 발라준다는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남자들은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 단순하다보니 직장이라는 한가지 일에 집중하게
되고 자녀들 일이나 가정사에는 관심이 덜하고 세심하지 못하다. 모두 주부들
몫이다. 그렇지만 주부들은 하루종일 열심히 일을 하고서도 퇴근후 집에 돌아온
남편들로부터 좋은 소리나 따뜻한 말도 듣지 못한다. 그래도 나는 맞벌이부부 생활을
하였기에 애들 숙제며, 집안 청소를 많이 도와준다고 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도 별수없는
남자였기에 편함과 권위의식에 익숙해 살았고 집사람에게 더 잘 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자책감과 후회감이 든다.

가정은 부부가 같이 꾸려나가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의 일방적인 몫이 아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의 남편들은 권위주의적이고 아내들에게 무관심하고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아내이고 서로 좋아서 배우자로 선택했는데
왜 처음 만나 교제하고, 청혼할 때, 신혼일 때의 그 사랑했던 마음을 오래도록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직장이나 사회에서 보는 젊은이들과 비교하는 마음에서일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변치않은 사실은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밖에서 늘씬한 몸매나 근육질을 과시하는 그들도
언제가 나이가 들면 지금의 배우자처럼 몸무게도 늘어 펑퍼짐하게 변하고, 얼굴도
세파에 찌들어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도 희어지고 빠진다. 어쩌면 지금의 배우자의
모습은 힘들게 살아온 자신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고마움을 잊고 산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마워할지 모르고 막 대하고 때로는 상처를 준다.
처음 배우자를 만났을 때 예쁘고 청순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자!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한푼이라도 절약하느라 몸도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놀러 가고 싶은 데도 참으며 이제껏 살아온 사람이다.
배우자가 있었기에 그동안 마음편히 직장생활도 하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오늘은 따뜻한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보자.
"당신 때문에 우리 가족이 그동안 너무나 행복했소.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오!
그리고 사랑하오!"라고...

김승훈 2007.8.22.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의학신문에 말기 유방암 환자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인 먹는 항암제인
‘타이커브’가 최근 국내 식약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는 보도자료를 접했다.

이 항암제는 집사람이 1년전 그토록 써보고 싶어하던 항암제였다.
집사람 유방암 인자는 국립암센터 유전자검사 결과 진행성 HER2(ErbB2)로 밝혀져
이 인자에 맞는 표적치료제(암세포만 골라 죽이는 항암제)인 허셉틴과 면역증강제인
'제넥솔'과 함께 사용하여 놀랄만한 호전을 보였으나(실제 작년 2월 MRI나 CT 촬영
결과 유방 및 간에 있는 암세포가 전부 괴사했다고 기적이라고 했다), 뼈로 전이된
암세포 치료를 놓치는 바람에 그나마 호전됐던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어 결국 손을
들어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뇌로 전이된 암세포는 방사선치료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뇌로까지 뚫고 올라가는 항암제가 나와있지 않아서 10번의 방사선치료에도 완전히
암세포가 치료되지 않아 뇌속에 오마야관을 넣어 직접치료까지 시도를 했지만
내성이 강해질대로 강해진 암세포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지금 국립암센터에는 전체가 아닌 국소부위에 대해 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는 기계가
도입되어 환자치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집사람은 1년만 더 버티면 새로운 항암제가 나올 것이라고 의욕을 불태우곤 했다.
인터넷으로 외국의약 정보를 검색하여 새로운 항암제 동향을 알아보고, 언제 국내에
들어오느냐고 의사 선생님께 묻곤 했다. 집사람은 특히 '타이커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국내에 빨리 시판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들도 처음 들어보는
항암제 이름을 거론하며 빨리 임상시험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조르는 집사람 때문에
종종 난감해하곤 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은 국립암센터 유방암센터장인 노정실 박사님이 마지막 나와의 면담에서
"최혜숙씨는 너무 똑똑한 사람입니다. 지금 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입니다."
1년만 더 버텨주었더라면 새로운 먹는 항암제인 '타이커브"도 쓰고, 국소 방사선
치료기계도 써보고, 뼈 전이에 도움이 되는 ‘조메타’ 등의 치료제를 마음껏
사용해 보았을텐데... 그랬다면 지금 이토록 나에게 회한으로 남지는 않았을텐데...

현재 상황이 어렵고 고통스러우십니까?
조금만 참고 버티십시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정상으로 가는 길목의 9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상은 머지 않아 반드시 옵니다. 그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고, 현재의 고난을 이겨 내야 합니다.

김승훈 2007.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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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한소망교회 주일예배에서 류영모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이 지난주에 이어 창세기 22장이었고.
그리고 저녁예배때 설교주제가 문제의 창세기 제23장이었다.

창세기 제23장은 구원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의 죽음과 장사에 대한 내용이다.
결혼에 대한 정의를 연극배우에게 물었더니 '희극과 비극이 섞인 시나리오다"라고 했고,
역시 같은 질문을 군인에게 하니 '30년 장미전쟁이다'라고 했고,
일기예보관에게 물의니 '고요한 밤에 폭풍우가 쳤다 개였다, 다시 폭풍우가 치다 안개가 끼는
예측불가능한 전선'이라고 했으며, 사업가에게 물으니 '가장 위험한 투자이다'리고 했다고 한다.
참 결혼을 직업에 맞게 기막히게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동 제2절에서는 '몹시 슬퍼했고 애통해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긴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는 아브라함과 살면서 볼 것 못 볼 것 많이 보고 살았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80년에서 90년을 아브라함과 함께 산 것으로 나온다.
자신에게 아들이 없어 몸종에게서 이스마엘을 보았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두번씩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하여 이방인의 남자 품에 던지는 아내에게는 지울수 없는 상처를 주는 못난 남편을
섬기고 살았다. 늙그막에 낳은 자식 이삭도 번제의 제물로 바치하는 말씀에 남편인 아브라함이
자신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번제의 제물로 데리고 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아야 했다.
그래서 성경에는 수많은 여인들 중 사라만이 누린 햇수(수명)와 죽어서 묻힌 곳이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2절처럼 아브라함은 몹시 슬퍼했고, 애통해하다가 제3절에서는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슬픔에만 젖어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약속의 땅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을 믿고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를 탈피하여 자신이 사랑했던 부인과 자손이 묻힐 약속의 땅을 만들기 위해 그냥 주겠다는
가나안 헤브론 족속의 땅을 거액을 주고 구입함으로써 스스로 약속의 땅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울면 안된다고 자라면서 수없이 교육받아 왔다. 나도 집사람 상중에 슬픔을
꾸욱 참고 견디어 왔다. 무엇보다 애들에게 기둥인 아빠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고, 슬픔에 안주하여 넋을 놓고 있기에는 현실이 너무 다급했고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산적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들으며 그때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
내리는 것을 느꼈다.

처음 만나서 행복했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을 때는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가슴 벅찬 환희에 들떠 기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주어진 좋은 인연의 끈을
계속 잇지 못했던 아픔과 좌절을 겪었지만 그 자리에서 계속 주저앉아 슬퍼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집사람이 나에게 부탁한 일과 함께 못다 이룬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 눈물과 고통을 딛고 일어서 열정으로 채우고 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불태운다.

김승훈,  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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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 사람이 머물었던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월요일 아침 여의도공원을 산책하는데, 곳곳에 토요일과 일요일 다녀간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책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마도 공원을 청소하는 분들은 월요일이

가장 힘든 날이 될 것이다.

비단 다녀간 자리뿐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전임자가 맡았던 업무도 인수하여 검토해보면

그 사람의 실력 수준과 회사 업무에 임하는 자세, 삶의 태도까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목적과 과정을 빈틈없이 꼬박꼬박 체크하고 기록하며 일을 처리한 사람과

대충대충 업무를 처리한 사람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철저하게 관리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후임자가 업무를 빨리 적응하여 처리할 수 있다.


일부 성질이 급한 사람은 본인 재직시 본인이 처리한 일에 대해 성급히 평가서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는 부하나 동료사원들이 그 사람의

영향력과 안면 때문에 공정한 평가를 내리기가 어렵다. 그 사람이 그 직을 떠났을 때

비로소 후임자나 동료, 후배들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평가를 내릴 수가 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난 이후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를 데리고 집에서 호수공원까지 걸어서 다녀왔다.

재명, 재윤이는 인라인을 타고, 나는 걷고.... 걸어가는 도중에 강촌공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신발을 벗고 그 위를 걸어가는 지압코스가 있다. 곳곳에 자갈이 깔려 있고,

뾰족뾰족 돌멩이들이 박혀 있어 그 위를 걸어서 돌다보면 자연히 발에 지압이 되는 것이다.

집사람이 투병중일 때 매일 저녁이면 저녁밥을 먹고 어김없이 나와 집사람은 쌍둥이인
재명, 재윤이
손을 잡고 와서 이 공원을 다녀갔었다. 어제도 그 옆을 지나는데

“아빠! 엄마랑 걸었던 지압공원이 나왔어요. 우리 한 바퀴 돌아요!”하기에 오랜만에

재명, 재윤이 손을 잡고 걸었다.


엄마의 꿋꿋하게 암투병하던 모습을 애들은 아직도 자랑스럽게 간직하고 살고 있다.

열심히 운동했던 모습, 손을 잡고 지압공원을 걷던 모습, 항암제를 투여하면서도 씩씩하게

회사를 다니며 근무하던 모습, 하늘나라로 가기 3일전까지도 병실에서 부축을 거부하고

스스로 일어나 걸어서 다니던 모습, 투병 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던 모습, 항상 밝게 웃던 모습....

집사람은 떠났지만 주변 모두에게 그런 용기 있고, 역경과 맞서 싸우며 극복하려 했던

모습도 함께 남기고 갔다. 집사람은 비록 떠났지만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남기고 간

의연하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모습은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김승훈 2007.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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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은 설날이다.
안향련님의 심청전 중 곽씨부인을 안장후 평토제를 지내면서 심봉사가 축문을
지어 바치는 대목을 듣고 있으니 내 가슴이 찢기듯 아프다. 축문 내용이나
심청전을 목이 터지도록 절절히 부르고 있는 안향련님도 젊은 나이에 이미 고인이
되어 있는 상황이 어이 이다지도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지...

「차호부인(嗟乎夫人)  차호부인(嗟乎夫人),
요차요조(邀此窈窕) 숙녀혜(淑女兮)요.
행불구혜(行不苟兮)  고인(古人)이라.
기백년지(幾百年之) 해로(偕老)터니
홀연몰혜(忽然沒兮)  언귀(焉歸)요,
유치자이(遺稚子而) 영서혜(永逝兮)여,
이걸  어이 길러내어,
누삼삼이(淚森森而) 칠금혜(漆襟兮)여,
진한 눈물 피가 되고,
심경경(沈耿耿)이 소홀하여,
살 길이 정히 없네. 
누추추 절히하니 어느 때나 오시려오.
주과포혜(酒菓哺醯) 박전(薄奠)하나,
만사(萬事)를 모두잊고, 많이 먹고 돌아 가오.
(무덤을 부여안고) 아이고 여보 마누라, 날 버리고  어디 가오.
마누라는 나를 잊고  북망산천(北邙山川)  들어가,
송죽(松竹)으로 울을 삼고,  두견(杜鵑)이 벗이 되니,
나를 잊고 누웠으나, 내  신세를 어이하리.
노이무처(老而無妻) 환부(鰥夫)라니,
사궁중(四宮中)에 첫  머리요, 아들 없고 앞 못보니,
몇가지 궁(窮)이 되더란 말이냐?
마누라가 아니면 얼어서도 죽을테요.
주려서도 죽을테니 차라리.....

무덤을 부여안고, 곽씨부인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심봉사의 애절한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당신이 있으면 지금쯤 설명절을 맞기 위해 밤을 새우며 음식을 장만하고,
여기저기 친척집에 전화를 걸어 설날에 와서 고스톱을 치자고 부르고,
밤 늦도록 TV 로 방영되는 영화를 보느라 밤 늦도록 집안이 북적거리고
부산하였을텐데, 오늘은 쌍둥이들을 일찍 재우고나니 집에 고요함을 넘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오늘 청아공원에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당신이 들어올 때는 납골안치실이 거의 비어있었는데 이제는 절반 약간 못미치게
많이 차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은 은혜홀가홀의 내무반장 아니 청아공원 영령들의
천국대표로 활동하고 있을 것이고 하나님도 당신의 리더십이 아까워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모님이 먼저간 당신을 위해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 성질이 고약하여 차례상에 올릴 전도 마트에서 사서 올리면 정성이 부족하다고
난리친다고 장모님이 불편한 몸으로 정성스레 직접 부쳤다오.
남겨진 가족은 걱정말고 천국에서 여자로, 학력으로, 각종 차별과 경제적인
이유로 펼치지 못한 꿈과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사시구려~~~

2008.2.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회사 게시판에 붙은 손미나 아나운서 결혼 초대글 첫머리에
"사랑은 약속이다라고 배웠습니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배움에 목말라했던 집사람에게 신혼 때 내 약속했었지...
대학 졸업도 꼭 시켜주고, 대학원까지 보내주겠다고...
비록 결혼한지 18년 10개월,
당신이 하늘나라로 간지는 3개월 18일만에
대학졸업장은 뒤늦게야 당신 영전에 바쳤지만
대학원까지 보내준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네.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지킬 수가 없다네...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당신은 늘 나보고 자기보다 오래 살아달라고 했지,
"내 몸을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 싫으니,
사랑하는 당신이 마지막까지 챙겨주면 좋겠다고..."
나는 그저 지나가는 소리로 듣고 그러마 약속하며,
웃으며 대신 오래만 살아달라고 했지....
그러나 그 약속을 너무나 빨리 지켜야 했네....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집이 없어 이곳 저곳 부동산에 집 알아보러 다니며 마음 고생할 때
당신은 우리도 빨리 우리집을 가졌으면,
이사 걱정없이 마음 편히 살면 좋겠다고 말했지...
내 그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지만 곧 내 돈을 모아서 빚내지 않고
우리집을 사겠노라고, 그래서 우리 식구 모두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
당신 생전에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였지만,
내 그 약속 꼭 지키고 말겠네...
사랑은 약속이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나 결혼전에 내 자신에게 약속했지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내 결혼하면 그 사람만을 사랑하며 살리라"
당신과 살면서 내 그 약속 지키며 살았지.
곁눈질 한번 하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살았지,
사랑은 약속이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당신은 나에게 동규, 재명, 재윤이 자식 셋과 장모님을 부탁한다고 했지.
나는 그러겠노라 약속했지.
나 그 약속 지키려 그동안 하지 않던 걷기도 하루에 한시간 이상씩
꼭꼭 하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자기계발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지...
인생은 장기전이며 하루 이틀 살고 말 것이 아니고
그들을 지키려면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인 자유 또한 중요하니까...
나 그 약속 반드시 지켜야 하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올해 1월에 쌍둥이 재명, 재윤이와 약속을 했지...
아빠가 다시는 매를 들지 않겠다고,
대신 거짓말하지 말 것과 시간약속을 지킬 것을 주문했지...
그 약속만 잘 지키면 아빠는 절대 매를 들지 않겠다고,
그런데 어제 재명이가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친구 집에 가서 몰래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학원도 지각하고,
거짓말까지 하고, 동생 재윤이 간식도 내 팽개치고 왔었지...
나는 약속대로 사랑의 회초리를 들었지.
사랑은 약속이니까....

그래! 사랑은 약속이다.
당신은 1년 6개월을 그 고통스런 항암제로 버텨왔지.
나와 이별하기 일주일전 나에게 말했지.
"이제 버티기가 너무 힘들어!
나 없어도 씩씩하게 잘 살아! 약속해줘!!" 했지...
나 터져 나오려는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어금니를  꽉 깨물으며 그러겠노라 약속했지!
챙겨주는 마누라가 없으니
사람이 꾀죄죄하게 하고 다닌다는 소리 듣기 싫어
당신과 살 때보다 더 복장 깔끔하게 정장으로 입고
표정도 밝게하고,
언행에도 조심하며 산다네...
때론 외롭고, 힘들지만 내색하지 않고
당신 생각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지....
사랑은 약속이니까....

김승훈, 2007.5.10.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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