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토요일 밤,
밖에는 당신을 그리는
나의 애타는 그리움을 식혀주는 듯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이번주에는 사무실 여직원도
두명이나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당신 생전에는
매년 8월 초 휴가는
항상 우리 차지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떠난 이후
그 날을 사무실 여직원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필요한 날은
마찬가지 남도
필요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장모님은 오늘 아침
쌍둥이에게 말하십니다.
"올해는 수영장도 못가보고
여름 휴가 지나갔네.
쌍둥이들 서운해서 어떻해?"

우리 쌍둥이들 애비 마음을 읽은 듯
"할머니! 우리는 괜찮아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만도 감사해야지요"

말을 해놓고 오늘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모님이 얼마나 섭섭해 하셨을까?
실은 장모님이 콘도를 가고 싶으셨을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하늘나라 가기 3개월 전
나중에 나 없으면 나 생각하고
마시라고 당신이 그 아픈 몸으로
절리고 떨리는 그 손으로 직접 담군
복분자주를 다섯잔이나 마셨습니다.
그만큼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다섯잔을 마시면 취해서
잠이 쉬 올 줄 알았는데
기억이 더 뚜렸해지는 것을 보니
오늘은 잠을 이루는데
꽤나 뒤척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복분자주가 후두를 타고 넘어가는데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정말 힘들 때는
당신이 생각나지 않은데,
한 고비 넘겼거나
여유가 있거나,
쌍둥이자식들이 좋은 성적 받았을 때,
집안에서 웃음이 넘치고
평강을 느낄 때면
그때는 어김없이
당신이 생각납니다.

이 행복,
이 웃음,
이 평강,
당신과 함께 했었으면...

2008.8.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LG광고에 등장한 문구가 하나 있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습니다.'

1987년 8월 한 여인을 만나 열렬히 사랑에 빠졌고,
끈질긴 구혼끝에 결혼하여 18년 7개월간 후회없는 사랑을 했습니다.
친정가족을 위해 가게를 열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접고
주식투자에 손댔다가 실패하여 고통속에 지내다가
유방암으로 굵고도 짧은 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여인이 떠난 지금,
이제는 그녀를 처음 만나 나를 떠나가까지
19년 3개월간 함께 했던 추억으로 살아갑니다.
더 잘해주지 못했던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주어진 인연을 지키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살아갑니다.

그 여인이 너무 힘들어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많이 건네지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지 못했고,
애썼다, 고생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등을 토탁거려주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언제까지 사랑하는 아내가 내 곁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사랑하기에 많은 기회가 주어진줄 알았습니다.
부부라는 미명하에 내가 힘들고 거추장스런 일,
아쉬운 부탁은 그 여인이 도맡아 했습니다.
부부는 벽이 없어야 하는데 스스로 남편이라는
권위로 벽을 만들고 군림하여 들었습니다.

의견충돌이 있었을 때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오만함으로 화해하는데 너무도 소중하고 많은 시간을
그냥 허비했습니다.

그여인에게 생전에
힘들게 했던 일,
마음 아프게 했던 일,
상처주었던 말,
다 치유해주고
용서받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당신이 내 인생 최고였다,
당신을 만나 후회없이 살았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꼭 하고 싶었고
당신을 힘들게 했던 몇배로
꼭 기쁘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당신은 그만 너무도 일찍 내곁을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람처럼 와서
잠시 머무르다
연기처럼 사라진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 여인이 남긴
마지막 부탁이자 그녀가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세 자식을 돌보며 그 속에서
그여인의 모습과 흔적을 찿으며
살아가렵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사랑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면
이런 회한은 덜 남기며 살았을텐데..."
 
정말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것을.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사랑하는 한여인을 보내고야 알았습니다.

2008.7.2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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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당신이 2005년 5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일 때
나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조용히 묻고 내 스스로 답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약 우리 부부 중에 한사람을 꼭 데려가야 한다며 당신과 나, 둘 중에
누가 남겠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주저없이 내가 남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았음을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부 중에서 사별을 한다면 먼저 죽은 자만 불쌍하고 그래도 살아남은
자가 복 받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장모님도 늘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홀로 남아 살아야 하는 자의 앞길이 세 자식을 키워야 하고, 집도 없이
월세살이에 빚투성이고 개인회생까지 받은 상태라면 그래도 복 받은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누구에게도 이제는 손을 벌릴 수 없습니다. 손을 벌려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조롱 뿐입니다. 요즘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무사히 넘길지,
당장 부족한 돈은 어디서 조달하고 해결해야 하나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갑니다.

오늘 장모님이 사무실에 전화하여 쌍둥이들이 다니는 학원 영어선생님이 전화가 왔다고
빨리 전화해보라고 하시기에 퇴근길에 들려보니 방학때 쌍둥이들에게 특강을 하라는
권유였습니다. 처음에는 방학때 힘들다고 특강 하지 않겠다고 하던 녀석들이 마음이
바뀌어 재윤이는 1학기말 시험에서 국어를 망쳤다고 영어와 논술 특강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재명이도 재윤이가 하겠다고 나서니 "그럼 저도 영어와 논술 할래요" 누가
쌍둥이자식이 아니랄까봐 두 녀석 경쟁이 치열합니다.
 
두 녀석 기본 학원비에 특강 두 과목씩을 수강하면 65만원나 되며, 특강은 선착순
마감이니 빨리 신청하라는 말에 "특강 신청은 애들과 상의하여 모레 금요일까지
결정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하며 얼른 학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교육비부담이 갈수록
만만치 않을텐데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서운하더라도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지출을 줄이면 곧 해결이 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와 냉소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 큰 마음의 상처로 남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당신이 돈과 빚,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내가 지켜보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려서부터 외로움과 오래참음에 익숙해져있는 내가 이런 고통과 수모를 받는
것이 낫고 그래야 내 마음도 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나를 선택하여 남기신
모양입니다. 혼자서 버텨내야 하는 외롭고 힘든 삶을 이렇게라도 당신에게 하소연해야
 후련해질 것 같습니다.

나는 꼭 이겨내고 승리할 것입니다. 20년간 고통받았던 말더듬도 치료한 나입니다.
대신 당신은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여보! 그동안 힘드셨죠? 고생 많았어요" 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됩니다. 그 말 한마디면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시퍼렇게 멍들고
휑하니 뚫려있을 내 마음속 상처가 일순간 모두 치유될 것만 같습니다.

2008.7.1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우리 쌍둥이자식들이 참 많이 컸습니다.
당신이 2년전 사놓고 간 팬티가 이제는 작아 꼭 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당신이 하늘나라로 간지도 벌써 1년 8개월이 훌쩍 지나갔군요.
무정한 세월!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 혼자 남겨진 나는 죄인된 심정으로
이 악물고 두주먹 불끈 쥐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쌍둥이들이 한참 뛰고 놀 시기인지라 활동량이 많아 땀을 비오듯 흘리기
때문에 하루에도 두세번씩 옷을 갈아입히곤 합니다. 막내 재윤이가 당신을 꼭
닮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옷 입는 것도 유난히도 까다롭고 깔끔을 떨기도
합니다. 날씨도 더운데 요즘 녀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장모님이 무척 힘들어
하십니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가니 장모님이 쌍둥이들 런닝이며 팬티가 없다고 하시며
비슷한 사이즈로 사오라고 넣어주시는 런닝과 팬티 하나씩을 들고 부랴부랴
뉴코아아울렛으로 갔습니다. 당신이 건강할 때는 쌍둥이들 옷을 사러 늘 함께
다니던 낯익은 곳인데 요즘은 참 낯설기만 합니다. 전에는 둘이서 함께 다녔지만
이제는 나 혼자서 보고 고르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 남자가 물건값도 잘 흥정하지
못한다고, 그리 순해서 어떻게 험한 세상 헤쳐나가며 살거냐고 당신에게 구박도
참 많이 받았지요. "당신같이 어수룩한 사람 혼자 두고 가려니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마지막까지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온 김에 고객상담실에 들러 이사한 곳으로 주소도 바꾸어 놓고, 유아용품 코너
몇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옷이 없네요. 마음에 드는 상품은 턱없이
비싸고 매대상품이라고 나온 것들은 모두 이월상품에 후즐근하고...

팬티도 각각 4개씩, 상의 런닝도 4개씩을 사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다니다
발품을 판 끝에 겨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랐는데 팬티 하나에 8000원을 달라고
합니다. "어휴~~ 저는 이렇게 비싼 것은 못사요"하고 나오려니 "그러면 잠깐만요,
여기 50% 세일하는 것도 있어요" 하며 붙잡네요. 한번 튕긴 덕분에 팬티 8장을
절반값 이하인 28,000원(한개당 3500원)에 사고, 상의는 매대상품으로 지금 입고
있는 것보다 한치수 큰 것 두장(재윤이는 몸집이 있어서), 그리고 재명이는
호리호리하여 같은 치수로 두장해서 32,000원(한개당 8000원)을 사가지고 왔더니
장모님이 잘 사왔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홀로서기를 계속 해야 합니다. 생전에 당신과 함께 다니며 어깨너머로
익힌 흥정법과 물건 고르는 방법을 생각하며 잘 해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하 킴스클럽에 들러 장모님 드실 윌과 마침 빵을 세일하기에 녀석들 내일 먹을
간식거리 빵과 음료를 골라 샀더니 큰애에게 빌린 십만원이 금새 바닥나 버립니다.

봉급은 제자리인데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세 자식들 건강하게
잘 뒷바라지하며 키우려면 앞으로 돈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양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내가 마지막 버팀목인데, 당신이 남겨준 우리 희망둥이 세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씩씩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이 남편으로 선택한 행운의 남자였으까요...

2008.7.8.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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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이 며칠이야? 너무 힘들어~~~"
"만약 내가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번거롭게 산소호흡기를 사용하지 말아줘~"
"사람들이 쉬어야 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피해야 되는데...."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 그리고 불쌍한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
"당신을 두고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해~"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해 주고 가려고 했는데 줄 장기가 없네... 내 몸은 화장해서 그냥 강에 뿌려줘"
"열심히 다니던 절(불교)에서 나를 따라 교회를 함께 다녀주어 고마워...나 죽으면 종교는 당신 뜻대로 해!"
"서사장님에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꼭 전해줘야돼. 알았지?"
"당신에게 너무 많은 짐만 지어주고 가네... 동규아빠 미안해!"
"당신 믿고, 이제는 나 정말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정확히 1년,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지 1년이 흘렀다.

무정한 세월....
그렇지만 나는 흔들림없이 간직한 꿈을 이루고 집사람이 부탁한 자식들과 장모님을 지키기 위해 꿋꿋히 살아나간다.

아내는 1년 6개월동안 암투병 생활을 하면서, 3분의 2는 회사생활을 하며, 3분의 1은 병상에서 생활하면서 늘 나와 함께 있으면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 이야기, 쌍둥이들 이야기, 큰애가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으면 하는 희망, 암센터내 다른 환자들 걱정...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암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되고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이 엄습해 오기 시작하자
서서히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다.

영정사진이 없이 하늘나라로 가면 내가 사진을 찿아 허둥댈까봐,
나와 가족 몰래 영정사진도 일찌감치 찍어두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쌍둥이자식들을 두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기막히게도 영정사진을 찍어야 하는 여인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오늘따라 영정사진 속 웃고 있는 모습이 더 없이 애처롭기만 하다.

꼼꼼히 친척 생일과 전화번호, 계좌번호,
그리고 제사날도 적어놓고 갔다.
지저분한 내 내의나 속옷도 다 버리고
2년 동안이나 입을 내의와 양말도
미리 사서 옷장 속에 넣어 두고 갔다.

내가 복분자주를 좋아한다고
하늘나라로 가기 3개월전 첫 수확한 고창 복분자를 무려 5킬로그램이나 우편으로 주문하여
자신을 생각하며 두고두고 먹으라고 유방암 말기 투병중인 그 아픈 몸으로 직접 담구어놓고 갔다.

왜 하늘은 나와 우리 가족,
특히 아직 어린 쌍둥이 자식 재명이와 재윤이에게
엄마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아내이자 어미를 이렇게 일찍 데려간 것일까?

이토록 큰 빈자리를
어찌 나 혼자서 감당하라고...

김승훈 200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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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는 사랑하는 아내를 보낸 1주기 제사였다. 벌써 집사람이 하늘나라에 간지 1년이
되었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양력으로 하면 아직 12일이 남았지만
그날이 쌍둥이자식들 생일인지라 이를 피하기 위해 집사람 제사는 음력으로 지내기로 했다.
회사 사람들이 집사람 기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찿아와주고, 제수준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내미는것은 사람은 갔지만 생전에 남겼던 삶의 흔적이 너무 강했음이리라.

1년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은 막내 재윤이가 충격 탓인지 시력이 급격히 떨어저 안경을
쓴 것 이외에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달리던 엔진도 멈추면 녹이 스는 법, 슬픔에 젖어있으면
있을수록 삶이 좌표를 잃고 우왕좌왕 방황하기 쉽기에 일을 더 의욕적으로 벌이며 산다.

요즘 40대와 50대의 이혼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적인 변화를 부부 서로가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 나는 결혼후 장손이면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다보니 명절때 고향에 가는 것이 고민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시골을 내려가면
장인장모님이 쓸쓸하고, 그렇다고 안내려갈수도 없고... 결국 집사람과 대화를 통해 1년
설날과 추석 두번 명절 중에서 설날은 우리가 사는 집에서 지내고, 추석은 바로 전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니 시골에 내려가기로 하고 19년동안 그 약속을 지켰다. 내 집안이
소중하면 처가집 집안도 소중하기에 상호 존중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찿을 수 있었다.

부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협력관계다. 나와 집사람은 맞벌이부부였기에 서로
역할분담을 하고 내가 집사람 가사를 많이 도와주려 노력했다. 퇴근후 자식들 숙제와
집안 청소는 내가 도맡았다. 집사람이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고 왔기에 집에 와서는 편히
쉬게 배려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알파걸이라고 사회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예전에는 직장 여성들은 집에서는 가사와 육아에, 회사에서는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해야만 했다. 가사와 육아는 때론 업무시간까지 침범하는 일이 잦아 여성
직장인들은 늘 좌불안석이고 눈치를 보아가며 힘들게 일을 해야 했다. 당연히 갈 수 있는
휴가도 상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결재를 받고 가야만 했다.

직장에서 여성들의 고충을 알기에 집에서는 내가 조금만 힘을 들이면 집사람이 편하겠다
싶어 직장 마치고 오면 편히 쉬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하도록
격려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여자라는 이유로 꿈을 접고 사는
일이 없이 그 꿈을 마음껏 펼치고 살도록 해주고 싶었다. 대인관계에서 탁월한 강점을
살려 회사 불교연구회 부회장, 회사 초대 여성협회 부회장, 노조 대의원, 여성중앙위원,
각종 모임의 총무 등 마음껏 능력과 끼를 발산하고 살게 배려해 주었다.

가정에서 여자가 남자를 보필하는 것을 내조라고 하는데, 나는 이와는 반대로 집사람이
나의 도움으로 인해 품고 있던 꿈을 실현하고, 평소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도록 하는
외조를 해주고 싶었다.

대화는 서로가 가진 생각의 틈을 좁혀준다. 부부가 대화를 자주 하다보면 이혼이란
극단적인 불행은 사전에 상당부분 막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믿고 일생을
약속한 부부사이라면 소중한 상대를 위해 내가 잠시 참고, 희생을 함으로써 배우자가
행복하고 주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금의 어려움쯤이야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다던 일도 많고 의욕이 넘치고 그릇이 너무도 컸던 집사람, 그 꿈을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음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2007.10.30.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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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토요일 옆 동으로 이사를 하고 오늘 출근하기 전에 동사무소(지금은
주민자치센터로 이름이 바뀌어 있음)에 들러 주민등록 전입신고도 하고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에 바뀐 주소도 기록하고 전세계약서에 확정일자
날인도 받았다.

주민등록 전입신고 기재사항 이름에서 나, 큰애, 쌍둥이자식 이름을 쭈~욱
써내려가는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4년전 전입신고 때와 비교하니
소중한 한사람 아내 이름이 빠져 있다. 4년전에 전입신고를 했을 때는 아내
최혜숙 이름을 내가 직접 썼는데 이번에는 쓸 수가 없었다. 아내 이름을 적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지 전입신고를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착잡하고
미안하기만 했다. 꼭 집사람 혼자만 전에 살던 아파트에 남겨두고 나와 세
자식들만 새로 이사가는 집으로 몰래 옮겨가는 것만 같다.

동사무소 행정을 보는 여자분의 낯이 익다. 1년 6개월전 집사람 사망신고를
하러 갔을 때 창구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사망신고를 하는데 사망 일시,
사망사유, 사망 장소, 신고자, 사망자와의 관계 등을 쭈욱 적고 벽제
화장장에서 발급받은 화장증명서류를 함께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여자분도 그때 기억이 난 것인지, 내내 머리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기에 나도 필요한 말만 하고 수속을 마치고 얼른 동사무소를 빠져나왔다.
가장인 내 밑에 아들만 셋, 게다가 어린 초등학생 쌍둥이까지 있으니 내
사연을 알고 있는 그 여자분이 보기에도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사하면서 짐을 정리하다보니 1992년에 집사람 방송통신대 동창들 부부들과
함께 가을단풍놀이에 가서 내장산 정상에서 찍은 액자사진이 나왔는데
장모님이 그 사진을 안방에 걸어두지 그러냐고 넌즈시 내 의사를 묻기에
그러겠다고 하고 안방에 걸어두었다. 장모님은 딸자식, 내가 사별한 아내에
대한 마음이 멀어질까봐 신경이 쓰이시는 모양이다. 그것이 딸자식, 그것도
한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미의 애끓는 마음이겠지..

하루 하루 참고 살 뿐이지, 내가 어찌 집사람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까지
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사진을 보면 자꾸 생각나고, 행복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과 유방암 투병생활 중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내 마음이 한없이 저려오고 죄책감이 밀려오는데...

보고싶어도, 생각나도
그저 참고 사는 것을....

2008.6.23.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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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몇시간 후면 정들었던 지금의 아파트에서 단지내 조금 떨어진 옆 동으로
이사를 한다. 지난 2004년 6월 30일 이사하여 만 4년에서 딱 10일 부족한
기간동안 내 삶 가운데서 가장 가슴아팠고 고통스러웠던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굴곡의 삶을 보낸 곳이기에 이 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된다.

그 어려움 속에서 세 자식들을 키웠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책자 발간,
활발한 강의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희망의 보금자리임과 동시에 결혼하여
지금껏 함께 살았던 내 사랑하는 아내이자 내 인생의 소중했던 길벗, 아니
인생동지가 2005년 5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기전까지
1년 6개월동안 투병생활을 함께 하던 곳이다. 집안을 둘러보면 아직도 곳곳에
집사람의 손떼와 메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마치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는 듯한 체온이 느껴진다. 이름만 부르면 곧 대답할 것 샅고,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아서 하늘나라로 가기전 사용했던 물품 대부분을 아직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꼭 내게 다시 돌아와 다시 그 물건을 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어쩌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현관에서 "지금 몇시요? 당신 미쳤소?"
하며 눈을 부릅뜨며 야단을 칠 것만 같다. 안방 서랍을 열면 다이어리에유방암
투병생활을 하면서 쓴 글이며, 약 처방전, 국림암센터 진료비 계산서와 병원
의무기록지 사본, 서울대 유방암센터장 노동영 교수님과 나눈 이메일이며,
항암치료에 좋은 약품, 항암제에 개발에 대한 기사 등을 스크랩한 자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모두가 살기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몸부림을 쳤던 흔적이기에 내 차마 치울 수가 없었다.

집사람 손떼가 묻은 장롱과 차단스도 아직 그대로 있다. 결혼 10주년이었을 때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집사람은 장롱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많은데 무슨 장롱이냐고 그 돈으로 먼저 빚부터 갚고 나중에
결혼 20주년이 되면 내가 그때는 꼭 사주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내가
집사람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집요한 설득 끝에 정 사고 싶으면
사라고 허락을 했을때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니 집사람
말을 들어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 결혼 20주년을 1년 5개월 남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버렸으니 만약 그때 사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면
아마 나는 또 다른 회한을 가슴 한켠에 평생 간직하고 미안함으로 살았을 것이다.
함께 20년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나에게 회한을 남겨주지 않게 하려고
그때 그렇게 사겠다고 고집을 피웠나... 그럴줄 알았으면 내 빚을 내서라도
더 좋은 장롱으로 그냥 기분좋게 살줄껄....

안방 들어가는 문 옆에는 쌍둥이 녀석들 키를 잰 표시가 남아있다. 4년동안
키도 많이자랐고, 체중도 많이 늘었고 고집도 많이 늘었다. 큰애 동규는
고등학교를 졸업후 대학에 진학했고.....

이제 밤 12시가 넘었으니 이사가 8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밤 12시 20분이
넘어가는데도 잠이 오지를 않는다. 집사람과 그동안 이 집에서 웃고, 울며,
부디끼며 살았던 지난 기간들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 이별의 아픔이 나를
잠못들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몇시간 후면 정들었던 이 집을 뒤로 하고 나는 이사를 해야 한다.
지난 과거 아픈 추억과 고통을 훌훌 털고 새로 이사하는 집에서는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며 살리라! 여기서 겪었던 아픔과 고통, 절망, 후회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고 살리라! 새로운 각오로 두 눈 부릅뜨고 새로이 오게 될
희망과 기회의 미래를 준비하며 열심히 노력하며 살리라! 종자돈도 모아 집도
장만하고, 열심히 시간을 아껴 글도 쓰고,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내근로복지기금 회계실무', '사내근로복지기금 진단' 책자도 집필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개정판도 올해 안에 내리라! 사랑하는 희망둥이인
세자식도 반듯하게 키워내며 내 미래를 꼭 희망으로 도배질하리라!

슬픔이여 이제는 안녕~~
아픈 추억이여 잘 있거라~~

2008.6.21.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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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며칠전 활동하고 있는 카페에 부부의 신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올라왔다.

요약하면 이혼후 싱글맘으로 있는 사람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알고지내는 친구가
만나자고 전화가 걸려와 반가운 마음에 나가보니 그 친구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하더라는
것이다. 남편을 잘 만나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잘 살것 같던 그 친구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고 한다.
"신랑이 사업하다가 망해서, 생활비조차도 받기 어려워서 애들 셋하고 살려다보니 위장이혼
이것밖엔 달리 할 수 있는 길이 없었어 "
그 친구집의 명의가 신랑이 아닌 친구 명의로 되어 있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고 친구는
그 집을 처분하고 1억원 넘게 들고 나왔다는데 그걸로 전세 싼거 얻고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면서 애들 키울거라고 하며 이어 충격적인 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말이 위장이혼이지, 어차피 도장 찍은 것... 별로 신랑하고 살기도 싫었어~
나 혼자서 그 돈으로 애들 셋 다 잘 키우고 지금 교제하고 있는 맘에 맞는 남자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실은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낸 남자를 만나고 있어"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딘가 한방 맞은 것처럼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과연, 친구의 남편이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떨까? 평소 그 친구가 정말 현실적이었던 것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글을 읽으면서 4년전 비슷했던 나의 과거 기억이 떠올랐다.
집사람도 주식투자에 실패하여 많은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나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혼해 줄 것을 요구했었다.
"미안해, 빚이 많아서 도저히 갚을 방법도 없고 자신이 없고, 그냥 있으면 우리집 파산을
당하고 당신도 직장에서 얼굴을 들고 회사를 다닐 수도 없고, 우리 가족 모두 뿔뿔이
흩어저 살 수 밖에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 밖에는 내가 가족을 위해 더 해줄
방법이 없으니 자기는 걱정말고 나라도 이혼하고 나가서 애들 셋하고 잘 살라고..."

나와 이혼하면 집사람이 택할 선택은 너무도 뻔했다.
"우리가 결혼을 한 것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당신이 주식투자를
한 것이 우리 가족 모두 잘 살아보자고 한 것이었지 당신 혼자 영화를 누리자고 한 일이
아니잖소!  신혼 초에 서로가 한 약속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죽든 죽기 전에는 절대 헤어지지
말자던 그 약속대로 우리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봅시다. 열심히 살다보면 혹시 행운이
뒤따를지도 모르지 않소"

그후 집사람과 나 둘이서 개인회생을 신청하여 이행하던 도중 집사람은 빚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유방암을 얻어 1년 6개월을 투병하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결혼하면서 우리 부부는 죽기 전에는 헤어지지 말고, 나중에 뒤에 남은 사람이 먼저
간 사람을 마지막까지 하늘나라로 잘 보내주자고 약속을 했는데 나는 그 약속을 너무도
빨리 지켜야 했다. 다시는 집사람을 내 생전에는만날 수도, 볼 수도 없기에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과 지켜주지 못한 안타까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이 크게 남아있다.  

사랑의전화 복지재단이 발간한 '2007년 사랑의전화 상담백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화상담을 한 5,149명중 1위에 부부문제(22.4%)가 차지할 정도로 부부위기가
심각하다. 2위는 가족문제(19.0%), 3위가 이성문제(12.8%), 4위가 인생문제(12.8%),
5위는 성문제(12.3%) 순이었다고 한다. 부부문제 중에서도 남녀모두 배우자의 외도에
관한 상담(31.7%)이 가장 많았고, 이어 성격차이(23.3%), 성생활(12.2%) 순이었다.

부부는 살면서 자칫 서로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간과하기 싫다. 건강하고 성공한 삶
뒤에는 건전한 가정과 부부관계가 기본이자 필수불가결 요소이다. 부부관계에서
상대의 학력이나 재물, 물질, 미모가 우열의 척도가 될 수 없다. 부부관계는 일방이
아닌 공동책임이다. 함께 섬기고 노력하여 함께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살다보면
남의 떡이 커보이듯 다른 부부와 비교하게 되고 부족한 점도 눈에 띄고, 단점도 크게
보이게 된다. 100년도 채 함께 살지 못하면서 1000년을 살 것처럼 교만을 부리며
무시하고 군림하려 들어서도 안된다.

부부는 유행가 가사처럼 헤어지면 남이 되는 무촌지간이 된다. 그만큼 가까우면서
깨지기도 쉽기에 지키고 유지하는데 그만큼 더 신경을 쓰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배우자를 두고 외도를 하는 것은 부부의 기본인 신뢰관계를 깨뜨리는 행위이므로
여하한 명분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다. 배우자 또한 나와 같은 소중한 인격체이므로
같이 사는 동안에는 부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존경해주고 가급적 배우자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하고 장점은 칭찬해주고 단점은 눈을 감아주는 지혜로
서로 부족함을 채워주며 살면 참 좋을 것 같다.

2008.6.16.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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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3개월전 주일 예배시간에 한소망교회 류영모 담임목사님은 완전한 용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용서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불현듯 지난 19년전 혼수문제로 집사람과 고모님이 다투던 일이 떠올랐다.
작은고모님은 우리 집안을 위해 많은 희생을 하셨다. 집이 어려울 때 독일에
간호원으로 나가서 봉급 일부를 집으로 송금하였고 할아버니는 그 돈으로 적금을
들어 마을 간척사업 재원으로 활용하셨다.

고모님이 결혼을 하실 때 집에서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할머니는 집사람이 혼수로 마련해 준 이불을 고모님께 주신 것이다.
작은고모가 결혼할 때 이불 한채 제대로 해주지 못한 미안한 어미의 마음에서
손주며느리에게서 받은 귀한 혼수이불을 고모님께 선물로 주었는데, 고모님 댁에
인사하러 갔다가 우연히 이를 본 집사람이 서운하다고 할머니에게 이야기하여 이후
작은고모님과는 무려 18년간을 발길을 끊고 지냈다.

집사람이 하늘나라로 가기전 3개월 전에 고모님이 집사람이 입원해 있던
국립암센터를 방문하여 18년만에야 눈물로 서로 화해를 했지만 그 긴 기간
미워하고 속상해하며 살았던 과거 고통스런 아픔의 시간은 어디서 보상을 받는단 말인가?

나를 잘 아는 정성진 형님이 1년전 나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김승훈씨는 참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과거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고 현재
집사람이 유방암 말기라는 엄청난 고난 앞에서 한도 많고 원한도 많을 것 같은데
항상 긍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거부한다고,
내가 싫다고하여 현재 실패가 지난 과거 원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는 주워 담을 수는 없다. 대신 앞으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지난 과거의 혹독했던 인고의 시간이
나에게 인내와 용서와 화해하는 삶을 사는 지혜를 깨우쳐 주었다.

집사람이 좀 더 일찍 고모와 화해했던들, 그만큼 고통과 스트레스는 덜 하였을텐데
그 많은 시간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아온 시간은 어디서 되찿고 보상받을 것인가?
우리네 삶은 유한하다. 할수만 있다면 미워할 시간, 원망한 시간, 다툴 시간을
줄이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고 즐겁게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

용서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작은 일로 얼굴 붉히고 화를 낸 자신이 부끄럽게
느끼게 되는 그동안 그저 잠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다.

김승훈 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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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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