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처음으로 김병준대표 권유로 쎄니팡 주주가 되었다.

당시는 전대표님이 개인 주식을 팔아 그 자금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오너리스크가 오너가들이 회사를 내세워 거액 대출을 받아서

개인자금으로 유용하거나 횡령 또는 주식 띄우기를 이용하여

차익을 실현하고 튀는 방법(먹튀)을 이용해 개인주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데 반해 쎄니팡은 출발부터가 달랐다. 지금까지도

쎄니팡은 은행 부채가 없는 기업이라는 원칙을 고집스레

고수해오고 있다.

 

쎄니팡 투자층은 정말 다양하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일치하는

하나는 주변의 권고이다. 쎄니팡이 아직 본격적으로 뜨지 않아서

재무제표도 적자이고, 비상장이데 홍보도 하지 않으니 이미 투자한

지인들의 추천이 가장 효과적이다.

 

2015년부터 내 주변과 우리 부부 지인들을 중심으로 쎄니팡이

자금이 필요할 때마다 지인들에게 연락하여 쎄니팡이란 회사가

있는데 미래가치가 있으니 투자해보는 것이 어떠나며 투자를

귄유해서 지인들이 한 두명씩 투자를 하면서 주주층을 안정적으로

넓혀갔다. 그때 대부분 사람들은 재무제표를 요구했다. 매출이

얼마나? 이익은 나느냐? 대표가 누구냐? 등 외형을 중시했다.

쎄니팡은 사업 초기여서 아직 매출이나 실적이 없으니 독점적인

원천특허(고압질소를 이용한 수도배관세척)와 향후 폭발적인

성장성 및 수익성을 지닌 미래가치에 호소할 수 밖에 없었다.

남에게 그것도 절친이나 오랜 인연으로 맺어진 지인들에게 

투자 권유를 한다는 것은 내 명예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를

전부 걸어야 하기에 정말 조심했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 권유에

사기를 당하는 것은 아닌지 색안경을 쓰고 보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내 번화번호를 수신거절로 등록했다.

 

2015년 하반기에 자식이 다니던 연대 의대생 몇명이 모여 소위

투자클럽을 만들어 투자 종목을 토론하다가 내가 투자한 쎄니팡을

거론하며 수돗물은 사람에게 필수이고, 쎄니팡이 가진 원천특허인

'고압질소를 이용한 수도배관세척'이 실재로 효과가 있고 세척이

된다면 SOC투자이니 안정적이고 수익률도 괜찮아 대박이 날거라는

결론을 내고 당시 의대생 몇명이 마통을 뚫어 수천만원으로 과감하게

쎄니팡에 투자를 시작했다. 당시 의대생들이 지금은 전문의가 되고,

군의관이 되고 공보의, 개업의가 되어 국내외 각 병원으로 흩어져

주변 동료 의사들에게 쎄니팡을 소개하여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주주로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에피소드로 투자클럽에는 끼지 못한

의대생 중에서 그들이 투자한 종목 '쎄니팡' 회사 이름을 듣고

방송사에 다니는 자기 아버지를 설득해 주주가 된 의대생과 의대생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 아버지는 자식이 곁눈질을 잘한 덕분에 본인과

자식은 초기에 주주가 되어 지금 백만장자가 되어있다. 아들 본인의

병원 개업자금과 아버지 노후자금까지 모두 해결했으니 효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15년 하반기부터 투자를 시작한 또 다른 축은 내가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박사과정 원우들과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인연을 맺은 공기업 직원들, 그리고 이들을

통해 쎄니팡 사업을 알게된 지인 공무원 등 주변 사람들이었다.

다들 잘 나가는 공기업 직원, 대기업 간부였고, 고위 공무원,

컨설턴트들이라 여유자금으로 노후관리도 하고 자식들에게 미리

증여를 해준다는 마음으로 수년 뒤를 보고 과감하게 투자했던

분들이다.

 

이렇게 2015년~2017년까지 우리 부부 권유로 쎄니팡에 투자한

초기 투자자들은 비교적 돈에 여유가 있고 직업도 전문직이나

공무원 등 안정적인 사람들이었기에 재정적인 면에서도 쎄니팡

사업면에도 큰 우군이 되었다. 초기 주주들이 쎄니팡의 미래가치를

보고 다시 주변 친척들이나 주변 지인들을 알음알음으로 점조직

식으로 소개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쎄니팡 주주 중에 지분율이

많은 사람들은 단타가 아니라는 점이고 노후 연금으로 생각하고

투자 및 장기간 보유하고 있기에 주가 출렁임 또한 크지 않고

시장에 나오는 매도 물량 또한 많지 않을 것이다.

 

쎄니팡 미래가치를 보면 주가는 보수적으로는 수십만원에서,

세계 각국으로 사업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 수백만원까지 갈 수

있기에 여유있는 자금으로 투자한 초기투자자들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주가 추이를 느긋하게 즐길 뿐이다. 쎄니팡 초기 주주들 중에는

증자에 액분을 거쳐 주식수가 증가하여 이미 백만장자가 된 사람도

있고 미래에 억만장자(1200억원 이상)까지 나올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몇년 뒤에 쎄니팡 사업이 폭발적으로 확대되면 건물주와

고급 아파트를 소유하면서 자유로운 해외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들은 쎄니팡이 무명이었고 어려웠을 때 리스크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들로 쎄니팡이

성공하면 그에 상응하는 부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몇년이 흐른 뒤 어느 초기 투자자는 강남 고급 고층아파트에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아침에 고급 수제커피를 손에 들고 부지런히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내려다보며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을 것이고,

어느 초기 투자자는 소원대로 돈 걱정 없이 마음대로 럭셔리한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어느 초기 투자자는 평소

소원대로 건물주가 되어 발가락으로 5만원권을 세다가 잠드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2월의 첫 시작일이다. 2월에는 쎄니팡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스리랑카와 본계약 체결이 지연되어 일정은 다소 늦어지겠지만

본계약 추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시장에 나오는

매도물량도 쎄니팡 주가를 흔들어 매집하려는 딜러들을 50주,

100주, 200주, 500주 등 소수 단타 물량들이다. 그동안 경험으로

보면 쎄니팡은 단타에는 맞지 않다. 오히려 손해를 보고 떠난

사람들이 많다. 대주주들이나 기존 주주들 중에서 오히려 이런

출렁임 때 지분을 늘려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쎄니팡이 2월에는 인계철선을 넘어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투자는 본인의 선택이고 그 결과 또한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꿈은 꾸고 실행에 옮기고 참고 기다리는

자의 몫이 될 것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업에는 늘 생각지 못한 복병이나 변수가 따른다.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인 쎄니팡이 스리랑카 국가를 상대로

상수도배관세척 공사를 작업하려니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보좌하는 인력도 없고 통역도 없으니 김병준대표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뛸려니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할 일일 것이다.

국가 정책사업이니 사업이 결정되기 전까지는 중요한 정보는

책임이 따르니 스리랑카 측에서도 당연히 넘겨주지 않을 것이니

답답한 것은 쎄니팡이다.

 

혹자는 이런 중요한 계약 진행 정보를 왜 미리 알리 못했느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르지만 세계에서 최초로 진행하는 국가

상수도배관 전체를 세척하는 국제입찰이니 스리랑카 상하수도부

공무원들도 얼마나 고심하고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고 돌다리도

두르려가며 신중하게 일을 추진하겠는가?

세계에서 최초의 일이고 앞으로 수 많은 세계 각 나라들이

자신들이 만든 매뉴얼과 추진 프로세스를 똑같이 따라서 계약을

추진할텐데 퍼스트 주자로서 감당해야 할 심적 스트레스와 업무

압박감은 매우 클 것이다. 그래서 더 보안을 유지할 것이고.

 

다만, 확실한 팩트 하나는 스리랑카 타당성보고서에서 질소세척

이외에는 답이 없다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병준대표가 1월 29일 오후 9시에 밴드에 올린 글을 보면

스리랑카 상하수도부 장관이 코로나19에 확진되었으나 건강하고,

스리랑카 정부 정책사업인 전국 전체 상수도관망 질소세척(유수율 감소)

정비 제안사업 진행에 대한 업무 추진을 수도청장에게 위임하였고,

29일에 수도청 긴급회의가 열려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1. 각 부처 5인의 전문위원회를 구성, 국제입찰 자료를 전달했다.

(상하수도부 2, 재무부 1, 환경부 1, 법무부 1)

2. 전국 지역 수도국에 서류를 전달했다.(콜롬보 수도국 약 17,000km,

갈레 수도국 약 2,052km, 전국 9개지역 수도국, 전국 전체 상수도관망

75,000km)

 

또한 스리랑카 타당성조사 보고서에 이미 모든 내용이 삽입되어 있으며

각 부처 5인의 전문위원회 위원들도 그동안 쎄니팡의 질소세척에

자문와 환경과 법률절차 및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결국은 1~2주정도 지연이 되겠지만 쎄니팡이

국제입찰에 참여하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이런 본계약 지연을 빌미로 쎄니팡 주식을 구하지 못한 딜러들은

쎄니팡 주가를 힘하게 흔들 것이다. 참고 기다리면 더 큰 반등으로 

보답할 것이다. 사업에는 늘 리스크가 따르지만 계약을 하는데 본질

또는 주체가 변하지 않았다면 흔들릴 사항이 아니하는 내 생각이다.

이런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은 떠나고, 새로운 부의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계속 들어올 것이다. 이게 부의 속성인데 어쩌겠는가?

쎄니팡을 8년째 투자하며 지켜본 결과 쎄니팡은 존버하고 기다리며

내 일을 하고 있으면 쎄니팡 주식가치는 조그만 외풍은 있지만 계속

올라가더라는 것.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요즘, 쎄니팡이 스리랑카 수도배관세척 체결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쎄니팡 주가가 급등하고 쎄니파에 투자했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쎄니팡에 투자했다가 중도에 실망하고 쎄니팡 주식을

처분한 사람들간 희미가 엇갈리고 있다.

 

지방 대도시에 사는 A씨는 지인의 권유로 2019년 12월 쎄니팡이

유증을 실시할 당시 주식을 구입했다. 그 후 2020년에 쎄니팡

해외 계약이 연기되면서 주가 또한 유증가 밑으로 내려가자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되지도 않는 주식을 사게 해서 사기쳤다고

비방하고, 사기꾼이라고 소문내고 다녔다고 한다.

 

지방이다 보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는데 목소리가 큰

A씨 때문에 사우나를 가도 자기네끼리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하며

왕따시켰다고 한다. 결국 그 지인은 작년 8월, A씨의 주식을 유증

당시 매입가 3500원으로 도로 되사주었다고 한다.

 

5개월도 안되어 쎄니팡 주식이 당시 유증가 3500원을 훨씬 뛰어넘는

24,000원까지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 A씨는 지금 배가 아파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다고 한다. 함께 사기꾼이라고

비방하고 다니던 주변 사람들도 이제는 피해다니고, 그저 부러운

시선으로 지인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그 지인은 어쩔 수 없이

되사준 주식 덕분에 쎄니팡 주식이 늘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고.

 

쎄니팡이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앞으로는 이처럼 놀랄 일이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날

것이고 쎄니팡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간

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쎄니팡 주식이 얼마까지 오를 것인지는 신 외는 아무도 모른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 주변에서 쎄니팡으로 희비가 엇갈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 케이스를 몇사람 소개하고자 한다. 

 

지방 대도시에 사는 지인 A씨는 우리 부부 권유로 일찌감치

쎄니팡에 투자를 했다. A씨의 친척 중에 시누이가 있었는데

지방대학 정문 부근에 원룸 40개를 가진 건물을 가지고 제법

여유롭게 살면서 주식투자에 빠져 매일 컴퓨터 모니터 3대를

켜놓고 그 앞에서 단타를 하면서 주식 고수라고 뻐기며 제법

주식투자로 돈도 쏠쏠이 벌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화자찬을 했다고 한다.

 

A씨가 쎄니팡 투자를 권하자, 시누이는 A씨 말을 잘 듣는 편이라

사려고 하는데 그 남편이란 자가 길이길이 날뛰며 반대하며

게다가 점잖게 훈수까지 두더란다.

"처수씨, 그런 이름도 없는 비상장기업에 투자하면 안되요.

대부분 사기이고 곧 망할 회사예요. 내 오랜 주식투자 경험상

이야기해주는 것이니 가지고 있는 주식도 빨리 파세요"

 

개미들은 정보력과 자금력 면에서 결코 외인투자자와 국내

기관투자자를 이길 수가 없다. 특히 단타위주 개인들은 짧게는

운 좋게고 몇번은 먹을 지 몰라도 그 자신감이 오히려 탐욕이라는

독이 되어 더 크게 일을 벌이다가 결국 원전까지도 다 털어먹는다.

 

결국 A씨의 친척도 방 40개짜리 건물이 통째로 경매로 넘어가고

(방마다 4000만원씩 은행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에 썼다가 모두

날렸다고 한다) 무일푼이 되어 남편은 지금은 어느 지방 대도시

공단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고, 시누이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쎄니팡에 투자했고, 하지 않았고에 따라 극명하게 명암이

엇갈라고 있다. A씨는 쎄니팡 주식을 일부 처분하여 가게를 차려

사업이 잘 되어 서빙하는 사람을 추가로 써야 할 처지이고,

쎄니팡을 무시하고 투자를 하지 않았던 A씨의 친척은 패가망신하여

후회하며 A씨를 부러워하고  있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 본업과 강점은 사내근로복지기금인데 요즘에 티스토리에

유입되는 키워드가 사내근로복지기금보다는 쎄니팡이 훨씬

더 많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그만큼 쎄니팡이 올해들어 본격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있어 갈수록 핫(?)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니

오랫동안 쎄니팡을 지켜보고, 투자해왔고 물심양면으로 응원해

온 나로서는 감사하고 행복하다.

 

예전에는 쎄니팡은 투자해놓고 가슴을 조이며 기약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가 무사히 잘 지나가기를 지켜보아야 했던 조그만 회사였는데,

김병준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심장이

벌렁거리며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또 돈이 필요해서 그러나

통장 잔고부터 확인하던 그런 고난과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쎄니팡이란 회사가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나 보다.

 

쎄니팡이 세척효과가 탁월하고 경제적이고 편의성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춘 세계에서 유일한 신공법 세척방법임에서 국내 수피아들이

그러한 사실을 속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자기네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쎄니팡을 시기하고, 사기 공법이고, 돈도 없어 곧 망할 회사라고

음해하고 거기에 더해 국내 다른 지자체들에게 쎄니팡에 세척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고 방해하던 세력들 때문에 무지 마음고생을 했다.

김병준대표가 국내에서는 수피아들 때문에 해도 해도 안되니

외에 눈을 돌려 해외시장을 개척하러 나갔는데 국내 수피아들은

그 해외 국가에까지 와서는 '국내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한 공법이라고,

되지도 않는 공법이다'라고 방해공작을 했다는 김병준대표의 전언이다.

이런 징글징글한 국내 수피아와의 기나긴 '물의 전쟁'도 조만간

쎄니팡이 스리랑카와 정식으로 스리랑카 국가 전체 상수도배관

세척 본계약을 체결하면 모두 끝나고 수피아들은 이제는 닭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꼴 나겠네.

 

닭은 어느덧 봉황이 되어 하늘로 날라가 온 세상을 휘저으며

스리랑카며 몽골, 태국, 필리핀, 중국, 몰디브,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각국에서 화려한 러브콜을 받고 있으니 그동안 쎄니팡이

망해서 특허권을 거저 손에 넣으려고 괴롭히던 국내 수피아들은

이제 배 아파서 어찌 사누? 게다가 국내 지자체들까지 쎄니팡의

힘과 효능, 게다가 방해세력들의 실체까지 알았으니 그동안

누리던 국내시장 밥그릇까지 쎄니팡에게 다 빼앗기게 생겼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게 처음부터 정직하게 살고, 마음을 바로

쓰고 상생하며 살았어야지. 그랬으면 쎄니팡이 지금처럼 독종이

되지 않았을테고, 쎄니팡 주주들도 독개미가 되지 않았겠지.

다 자업자득이고, 사필귀정, 고진감래다.

 

쎄니팡 주가가 앞으로 얼마까지 올라갈 것인가???

시위를 떠난 화살같은 쎄니팡 주가!

신 외는 그 누구도 쎄니팡이 얼마까지 오를지는 모른다.

그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체 조용히 지켜볼 뿐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1978년 6월,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신분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광주시 월산동파출소에 갔었다.

그때는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려면 파출소에 가서

다섯 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어야했다. 이것이 나중에

범죄나 행정관청에서 서류를 발급받을 때 본인 인식 등에

활용되어지게 된다.

 

내 손가락 지문을 처리하던 당시 50대 중반으로 되어 보이는

나이가 제법 들어보이는 중년의 파출소 순경님이 내 지문을

유심히 보시더니 나에게 웃으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학생, 50대 후반부터 운이 트이고 큰 갑부가 되겠어."

 

나는 장남에 장손으로 할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초등학교

5학년 말부터 시골 집에서 나와 진도읍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4월 초에는 다시 광주로 전학해서 계속 자취를

하면서 지냈다. 고향에서는 아버지가 소송에 휘말려 생활비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납부금을 제 때에 내지 못해 매번

이름이 불려져 학생들 앞에 불려나가 언제까지 납부금을 낼

것인지를 말해야 했다. 그런 생활고는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3월 초에는 사설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코피가 터져 의자에서 고개를 젖히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다시 깨어보니 그동안 코피가

계속 흘러 목을 타고 흘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악성빈혈에 시달렸다. 당장 먹고 살 생활비마저 집에서

송금이 1~2개월 늦어지니 빈혈약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교육비가 저렴한 국립대학교를 택했고, 다행히 대학

1학년 2학기부터는 선배가 소개해준 입주가정교사를 하면서

민생고와 학비 걱정을 덜었다.

 

그런 힘든 시기에 나에게 위안이자 희망이 되어주었던 말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파출소 나이 지긋했던 순경분이 했던

말이었다. '왜 50대 후반부터 운이 풀리고 큰 갑부가 될까?

기왕이면 더 일찍 운이 풀리면 좋을텐데....'

그런데 그분 말처럼 20대 중반까지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일이 풀리지를 않았다. 아내를 유방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남겨진 세 자식들과 5년을 보내다가 그후 재혼을 했다.

그러나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4년 9월, 김병준대표가 나를 찿아와 회사에 운영자금이

1000만원이 급히 필요하다고 쎄니팡에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대신에 쎄니팡 주식을 주겠다고 했을 때, 넷째동생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나도 21년간 다니던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일반퇴직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구로동에 창업하여 쓰리맨(맨땅에 맨손으로 맨몸으로)으로

고군분투하던 때였다. 평소에 자주 만나 쎄니팡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이 정말 전화위복의 반전 기회가 될 수도

있고 50대 후반에 큰 운이 트여 갑부가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막연하게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이렇게 쎄니팡과의 투자 인연은 시작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필요한 인맥들을 하나 둘씩 김병준대표에서 연결시켜 주었고

그 이후 쎄니팡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20년 가까이 붓고 있던

주택청약저축도 깨고, 개인연금저축도 해지하며 돈을 빌려주고

쎄니팡에 투자를 했고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사람들은 지금은 나를 대주주라고 부러워하지만, 2014년과

2015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쎄니팡 고압질소세척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 언제 회사가 부도날지, 자칫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었던 비상장기업 주식이었다. 나도 '사기'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수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내 돈을 투자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의 우리 부부가 겪어야 했던 마음 고생과 상처는 컸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쎄니팡주식 평가액만 보면 이미 갑부가 되었다.

그러나 주식은 어디까지나 평가액이고 팔아서 실재로 내 손에

온전히 들어와야 내 돈이다.

 

지금은 쎄니팡 주식만 가지고 있는 '쎄니팡푸어'일 뿐이다.

그러나 1978년 광주시 월산동파출소 순경님의 예언과도 같이

나는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와 쎄니팡 덕분에 실재로 50대

후반이 훌쩍 넘은 환갑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갑부의 꿈과 희망이

현실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해서 2011년에 경영학박사학위

과정에 도전하여 2016년 8월 5년 6개월만에 경영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면서 살아온 결실이다. 

 

이제는 내가 쎄니팡을 만나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자료와

경험을 담은 '쎄니팡 신화' 책을 쓸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쎄니팡 주가가 19000원을 넘어섰다는 채팅창 글을 보면서

큰 부자가 될 사람은 정해져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5~6년 전, 쎄니팡이 앞으로 괜찮은 회사가 될 것이나 투자해놓는

것이 어떠냐고 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쎄니팡이 상장기업입니까?"라고 물었고,

"연 매출액은 얼마입니까? 이익은 나는 회사인가요?"라고 묻고

그 다음은 쎄니팡 3년치 재무제표를 보자고 했다.

쎄니팡은 이 세 관문에서 모두 해당되지 않아 다들 투자를

접었다.

 

그런데 당시에 이야기를 들어보고는 아이템이 좋다고 하면서

일부 여윳돈을 투자해놓은 정말 소수의 사람들은 지금

몇 만주에서 많게는 수십만 주의 쎄니팡 주식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금 주가로 환산하면 그들은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다.

 

최악의 사람은 소액을 투자했다가 주변에서 사기라고 곧 망할

회사라는 소리를 듣고는 다시 현금으로 돌려달라고 요구해서

내가 그 주식을 취득했던 금액으로 도로 되사준 경우도 있다.

굴러들어온 복을 스스로 걷어찬 셈이다.

큰 부자가 될 사람들은 정보를 듣고, 판단하여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고 자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리스크가 따른 만큼 상대적으로 투자수익률도

큰 법이다.

 

초기에 입성한 주주들 중에 마통까지 뚫어 과감하게 쎄니팡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지금 수십만주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지금 강남의 건물주를 꿈꾸고 있다. 다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말하는데 쎄니팡은 예외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큰 부자가 되는 케이스를 많이 배출하게 될 것이다.  

 

어느 지인은 오늘 주가를 보면서 전 가족이 파티를 벌였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지인은 내 말을 듣고는 쎄니팡 주식을 꾸준히

가족들 이름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는데 4인 가족 모두 최하

1만주에서 많게는 5만주씩을 가지고 있으니 사업마저 접은

암울한 코로나19 상황시국인데도 다들 모이면 함박웃음이고

집안 분위기도 덩달아 화기애애해졌다고 한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흔히들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한다.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할 때

정년퇴직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회사 대표이사나 재직하고

있는 후배들이 떠나는 선배들에게 송별사로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진리이다.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나면 안정적이고

고정적이던 근로소득 수입이 끊기니 수입보다는 지출이 늘어나는

구조가 되어 그 다음은 쩐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퇴직 이전에

노후자금을 두둑히 마련해둔 사람들은 재취업에 신경쓰지 않고

여행을 다니고,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어울리며 골프를 치고,

등산을 다니고 품격있는 식사를 하면서 재테크 정보를 교류하며

산다. 이들을 '금퇴족'이라 부르는데 여유롭고 품격있는 제2의 삶을

산다.

 

반면에 노후자금을 만들어놓지 못한 사람들은 정년퇴직을 하고서

곧장 재취업 시장문을 두드리는데 재취업 시장문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기다리고 있는 곳은 단순 노무직에 급여도 정년퇴직

이전에 회사에서 받던 급여의 30%~40%도 안된다. 그나마 이런

곳도 없어서 못 간다. 회사 재직 때 억대 연봉을 받던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와서 "혹시 연구소에 알바 필요하지 않느냐? 최저임금으로

일을 할테니 자신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회사를 정년퇴직한 60세 부터 삶의 질이 갈리는 것이다. 더 빨리

회사를 퇴직한 사람은 50세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이전 직장의

어느 지인이 나에게 연락이 왔기에 "0부장, 이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퇴직하기 전에 퇴직 이후 사업구상이나 재취업 자리를

단단히 해결해놓고 나오세요"하고 당부했다. 그 지인도 어느덧

퇴직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면 모든 현실이

다시 세팅되고 관계들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사람은 늦복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 늦복의 상당 부분을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 지방에 사는 어느 지인은 6년 전, 내 말을

믿고 쎄니팡에 투자를 두었는데 그동안 쎄니팡 주식 가격이 올라

일부를 처분하여 두 자식 결혼도 시키고, 작년에는 식당까지

개업하여 요즘 배달로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하루 매출이

쏠쏠한 모양이다. 추가로 서빙하는 사람을 한 명 더 써야겠다고

한다. 이 지인의 사례를 보면서 늦복은 자신이 만든다는 것에 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지인과 통화하다가 나에게 서운하다고 말한다.

"작년 12월에 쎄니팡이 4500원에 유증할 때, 그때 왜 나에게

강하게 유증에 참여하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불과 20일 전에 쎄니팡이 유증하는데 혹시 참여해볼 생각은

없는지 이야기했을 때는 "나는 비상장주식은 거래 않는다"

"쎄니팡이 뭐하는 회사예요? 상장기업이예요?"하고 시큰둥하게

반응하던 사람들이 요즘 쎄니팡 주식이 10,000원에도 매물이

없다는 소식에 이제서야 안달이 났다.

 

스라랑카 계약이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비아냥대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쏙 들어갔다. 이제는 이야기가 180도 바뀌었다.

"얼마면 쎄니팡 주식을 살 수 있나요?"

"지금이라도 사면 안되나? 어디서 사야 되나요?"

 

비아냥이 시샘과 부러움, 조바심으로 바뀌었다.

불과 20일만에 변화된 현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문제는 늘 결단력이다. 20일 전에는 재면서 쎄니팡 주식을 사지

않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사지 못하고 있다. 매수 기준이

여전히 20일 전 4500원 유증가에 꽂혀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와 계약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데, 리스크가 하나

둘씩 제거되어 가는데 주식가격이 예전 유증가 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리가 있나? 주가는 실시간으로 살아서 움직이고

요동치는 생물인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강남교보문고에 나가보면 수 많은 책들이 있다.

이 많은 책들 중에 독자에게 선택되어 읽히는 책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독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책들은 뒤 서가에 밀리고,

그래도 찾는 독자가 없으면 서가에서 퇴출된다.

 

내 경험으로 보면 자본주의는 약자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고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소위 부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해보면

그들은 지금 일군 부를 자신들이 정당하게 노동을 하고, 사업을 해서

모은 돈과 근검절약해서 쓰고 싶은 욕망을 억제해가며 모은 돈으로

발로 뛰며 정보를 모아 투자를 해서 획득한 결과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는 이들의 시각이 호의적이지 않다.

자신들에 비해 열심히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쓰고 싶은대로 쓰고 살았던 사람들에게 왜 자신들이 힘들게 모은 부를

나누어 주어야 하느냐는 거부감이 강하다. 이런 심리현상은 각종 선거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소위 진보정당들에게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심지어는 그들이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빨갱이라는 사람이

선거에 나와도 당선시킨다. 내가 사는 강남갑구에서 북한 탈북자이자

북한 전 고위공직자였던 태영호(개명 이전 이름 태구민)씨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만 보아도 일 수 있다. 

 

결론은 자본주의에서는 각자도생하는 방법 밖에 없다. 요즘

강남교보문고에 나가보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책들이 재테크

도서들이다.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강사, 책쓰기 등등. 주식에 대한

책들이 많다. 부동산은 몫돈이 있어여 하고, 비트코인은 위험하고,

강사와 책쓰기는 오랜 시간과 지식, 경험이 있어야 가능하니 누구나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주식이다. 

 

주식은 개인들은 자본력과 정보력 차이 때문에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 특히 상장주식은. 그리고 괜찮은 주식은 이미 올랐다.

비상장주식은 위험하고 회수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괜찮은 주식을 사전에 투자하여 IPO가되면 시세차익을 얻는 방법이다.

그 괜찮을 주식을 발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이다. 문제는 정보이다.

쎄니팡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가족들이나 친구, 친척, 회사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개받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들이

보기에도 성공가능성이 있기에 권유를 하는 것이리라.

 

나도 6년 전, 처음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함께 다니는 사람, 친한 친구,

친한 전 직장 동료 등이었다. 그때 투자한 소수 사람들은 성공했다.

투자 권유는 잘못되면 관계가 끊길 수도 있기에 리스크가 따른다.

그때 마음을 졸이며 쎄니팡을 지켜보아야 했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위기때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결코 약자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동정을 베풀지 않는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