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6월, 당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신분으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광주시 월산동파출소에 갔었다.
그때는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려면 파출소에 가서
다섯 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어야했다. 이것이 나중에
범죄나 행정관청에서 서류를 발급받을 때 본인 인식 등에
활용되어지게 된다.
내 손가락 지문을 처리하던 당시 50대 중반으로 되어 보이는
나이가 제법 들어보이는 중년의 파출소 순경님이 내 지문을
유심히 보시더니 나에게 웃으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학생, 50대 후반부터 운이 트이고 큰 갑부가 되겠어."
나는 장남에 장손으로 할아버지의 교육열 덕분에 초등학교
5학년 말부터 시골 집에서 나와 진도읍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4월 초에는 다시 광주로 전학해서 계속 자취를
하면서 지냈다. 고향에서는 아버지가 소송에 휘말려 생활비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학교 납부금을 제 때에 내지 못해 매번
이름이 불려져 학생들 앞에 불려나가 언제까지 납부금을 낼
것인지를 말해야 했다. 그런 생활고는 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3월 초에는 사설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코피가 터져 의자에서 고개를 젖히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정신을 잃었는지 다시 깨어보니 그동안 코피가
계속 흘러 목을 타고 흘렀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악성빈혈에 시달렸다. 당장 먹고 살 생활비마저 집에서
송금이 1~2개월 늦어지니 빈혈약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교육비가 저렴한 국립대학교를 택했고, 다행히 대학
1학년 2학기부터는 선배가 소개해준 입주가정교사를 하면서
민생고와 학비 걱정을 덜었다.
그런 힘든 시기에 나에게 위안이자 희망이 되어주었던 말은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파출소 나이 지긋했던 순경분이 했던
말이었다. '왜 50대 후반부터 운이 풀리고 큰 갑부가 될까?
기왕이면 더 일찍 운이 풀리면 좋을텐데....'
그런데 그분 말처럼 20대 중반까지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일이 풀리지를 않았다. 아내를 유방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남겨진 세 자식들과 5년을 보내다가 그후 재혼을 했다.
그러나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4년 9월, 김병준대표가 나를 찿아와 회사에 운영자금이
1000만원이 급히 필요하다고 쎄니팡에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대신에 쎄니팡 주식을 주겠다고 했을 때, 넷째동생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는 나도 21년간 다니던
KBS사내근로복지기금을 일반퇴직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구로동에 창업하여 쓰리맨(맨땅에 맨손으로 맨몸으로)으로
고군분투하던 때였다. 평소에 자주 만나 쎄니팡 사업 아이템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이 정말 전화위복의 반전 기회가 될 수도
있고 50대 후반에 큰 운이 트여 갑부가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막연하게나마 위안으로 삼았다.
이렇게 쎄니팡과의 투자 인연은 시작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던
필요한 인맥들을 하나 둘씩 김병준대표에서 연결시켜 주었고
그 이후 쎄니팡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20년 가까이 붓고 있던
주택청약저축도 깨고, 개인연금저축도 해지하며 돈을 빌려주고
쎄니팡에 투자를 했고 지인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사람들은 지금은 나를 대주주라고 부러워하지만, 2014년과
2015년 당시에는 지금처럼 쎄니팡 고압질소세척 이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아서 언제 회사가 부도날지, 자칫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었던 비상장기업 주식이었다. 나도 '사기'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수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내 돈을 투자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의 우리 부부가 겪어야 했던 마음 고생과 상처는 컸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쎄니팡주식 평가액만 보면 이미 갑부가 되었다.
그러나 주식은 어디까지나 평가액이고 팔아서 실재로 내 손에
온전히 들어와야 내 돈이다.
지금은 쎄니팡 주식만 가지고 있는 '쎄니팡푸어'일 뿐이다.
그러나 1978년 광주시 월산동파출소 순경님의 예언과도 같이
나는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와 쎄니팡 덕분에 실재로 50대
후반이 훌쩍 넘은 환갑이 지난 지금에야 겨우 갑부의 꿈과 희망이
현실에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중이다. 내 몸값을 높이기 위한
투자에도 게을리 하지 않고 계속해서 2011년에 경영학박사학위
과정에 도전하여 2016년 8월 5년 6개월만에 경영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난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면서 살아온 결실이다.
이제는 내가 쎄니팡을 만나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자료와
경험을 담은 '쎄니팡 신화' 책을 쓸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것 같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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