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게 되면 명절은 어디서 보낼거예요?"
"설과 추석 명절 중 한번씩은 우리집(처가)과 시골집에서 보내려고
합니다. 추석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니 설은 우리집서,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면 되겠군요"
 
1887년 8월 집사람과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집사람이 당돌하게 나에게
묻기에 나는 내 의견을 말했고, 결혼후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
22년간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집사람은 손위 처남과 손아랫 처남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도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장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명절 두번 모두 남편따라 시댁으로 내려가면 친정부모님이 적적할 것 같아
끊고 맺는 확실한 성격에 미리 단도리를 해두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사람과의 약속도 약속이고, 이미 하늘나라로 올라간 사람과의
약속도 약속이기에 이번 설명절에도 나는 올해도 시골 고향을 내려가지
않고 세자식들과 장모님을 모시고 살며 집을 지키고 있다.
 
무정한 사람같으니라고... 나를 만난 첫자리에서 나에게 그런 다짐을 받았으면
함께 설을 보내며 맺어진 부부의연 사랑하며 백년해로 오래도록 잘 살아야지
나만 혼자 두고 이렇게 일찍 훌쩍 가버리면 나는 어찌 하라고....
 
덕분에 설명절 연휴 4일동안 2월에 열리는 한국생산성본부와 CFO아카데미
교육원고 작업을 할 수 있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내린 폭설로
귀성길 고생하지 말고 힘들게 세 자식 키우고 살려면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생전에 그런 약속을 받아두지않았나 생각하고
위안을 삼는다.
 
다음카페 국사모(국악을 사랑하는 모임) 운영자님이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전체메일로 보내준 박병천님의 넋풀이를 듣고
있으니 그 애절함에 가슴이 미어지고 저려온다. 넋풀이를 부르는 박병천님도
작년에 생을 달리했지만 박병천님은 이렇게 음반이라도 남아있어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몇번이고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나 당신은 목소리 하나 남겨놓지를
않았으니 그 맑고 고았던 음성을 어디서 다시 들을 수도 있을까?  
 
오늘따라 KBS에서 방영된 천추태후에서 남편인 폭군 광종이 폐홍을 앓고
있으면서 부인과 피붙이 어린 자식을 지키주기 위해 애쓰다 믿었던 최지몽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하자 더 이상 지켜줄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황주원군을 불러
황제자리를 선위해 주는 조건으로 부인과 어린 자식의 신변을 지켜줄 것을
다짐받고 황위를 선위하고 죽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광종이 죽기전 했던 말이 내 가슴을 울린다.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진즉 성군이 되었을텐데 왜 이리 늦게
만났단 말이오. 당신에게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의 남편으로서 나를
기억해 줄 수 없겠소."
 
2009.1.2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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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는 집사람이 내곁은 떠난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세월 참 무심하기도 하지...벌써 집사람이 내 곁을 떠난지가 2년이 되었다니...

집사람을 보내고 그동안 앨범을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사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바쁘기도 했지만 앨범을 보면 자꾸만 아내와의 추억이
떠오르고 지난 아픔이 다시 살아날 것 같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는데
오는 17일 방송되는 Q채널 '선물' 다큐멘터리를 찍는 과정에서 애들 어릴적
사진이 필요하다고 하여 그제 밤 늦게 부랴부랴 세자식들 사진을 챙기느라
앨범을 펼쳐보게 되었다.

집사람의 어릴적 사진, 나와 교제하면서 찍은 사진, 결혼 사진, 신혼여행 사진,
신혼집에서 큰애를 얻었을 때 사진, 애들 어릴때 목욕사진, 여행 사진들을
속의 행복했던 시절을 보고 있으니 그리움이 복받쳐 온다. 사람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진다지만 우리 부부는 어찌 이다지도 일찍 헤어지게 되었는가?
세 자식, 특히 어린 쌍둥이 자식과 연로하신 장모님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병상에 누워 마지막으로 나에게 "우리 쌍둥이들 잘 부탁해",
"우리 엄마 잘 부탁해!"하며 내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하던
모습이 다시 눈가에 어른거리며 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것이 모정이고,
먼저가는 불효여식이 어미에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효도라는 것을 알기에...

무정한 사람! 이렇게 일찍 갈거면 차라리 나와 만나지 말고 더 좋은 사람
경제적으로 더 여유있는 사람과 만나 하늘에서 주어진 수명 누리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다가 가지 어쩌다 가진 것도 없고 부족한 나를 만나 사내 애들만
셋, 게다가 쌍둥이자식까지 낳아 이토록 고생만 하다 갔는지... 내 당신에게
갚아야 할 빚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이렇게 훌쩍 떠나버리면 나는 어이하라고...

지난 10월 18일 Q채널 다큐멘터리를 찍는데 청아공원의 집사람이 안치된
곳에서 한참을 있었더니 김승희PD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느냐고 짖굳게
질문을 한다.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지난 21년 4개월전 집사람을 처음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애들 셋을 낳아 키우며 행복하면서도 힘들게 살아왔던, 그리고 집사람 유방암
말기판정, 지긋지긋한 유방암 투병생활, 끝내 아내와의 사별, 싱글대디로 애들 셋을
키우며 살아가는 지금의 모든 과정이 그저 꿈만 같다. 꿈이라면 깨어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건 돌이킬 수도 없으니...

그렇지만 슬픔에 빠져있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남겨진 나와 아내의
분신과도 같은 세 자식들이 자라고 있고, 집사람과의 약속, 내가 꼭 이루어야 할 꿈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리라.

2008.11.11.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후 6시 20분. 내 휴대폰 벨이 연신 울린다. 우리 집이다.

장모님 : "난데, 오면서 떡집에 들러 동규엄마 제사상에 놓을 떡좀 사가지고 오소!"
나 : "네. 알겠습니다."

장모님은 내가 당연히 통근버스를 타고 오시는 줄 안다.
그런데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통근버스를 타지 못했다.
택시를 타든지 아님 일산가는 직원차 편에 편승을 하든지...
아시는 선배님 자리에 전화를 했다.  선배님이 센터장님실에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일찍 가시면 태워달라고...
한참 후에 온 전화는 7시 40분경이 되어야 퇴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영등포에 나가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조금 기다렸다 선배님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매한가지일 것 같아 선배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6시 50분부터 선배님 사무실에 올라가 기다리는데 도통 회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니 7시 40분이 다 되어 회의가 끝나고 그제서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서강대교를 지나 강변북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7시 50분이 되니 집에서 또 전화가 걸려온다. 쌍둥이 목소리인데 장모님께서 내가
늦으니 애를 시켜 전화를 한 것 같다.

재명 : "아빠 지금 어디세요?"
나 : "응, 집에 가는 길인데 30분 정도 늦겠구나!"
재명 : "알았어요"

일분 일초가 바늘방석이다. 성격 급하신 장모님의 성화가 눈에 선하다.
차라리 6시 45분에 곧장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출발할껄~~ 후회가 밀려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자유로에서 삼중 추돌사고가 나는 바람에
길이 온통 차들로 꽉 막혀 있다. 백석역에 내리니 8시 20분이다. 허겁지겁 인절미에
약식을 사들고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오니 8시 55분이다.

집에 오니 처형과 동서, 처남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처형은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내고 오늘 집사람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장만을 도와주셨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처형에게 도움을 청하면 항상 말없이 도움을 주시곤 한다.

우리집은 나와 쌍둥이자식들은 기독교, 장모님과 큰애 동규, 처형, 처남은 불교,
손위 형님은 뚜렷한 종교가 없으시다. 장모님이 차려놓으신 제사상과 상위에
놓인 집사람 영정사진을 보니 갑자기 참았던 그리움이 밀려든다. 영정사진을
보며 혼자 주절거려 본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당신 두번째 맞이하는 제사네. 참 세월 빨라,
당신이 나와 우리 가족을 떠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기 제사라니...
남겨진 세 자식 데리고, 장모님 모시고 좌충우돌 1인3역, 4역 정말 정신없이
살다보니 요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네.

당신에게 집안 살림 다 떠맡겨 놓고 편하게 살다가 당신이 유방암 말기 판정 받고
그제서야 허둥지둥 살림 하나하나 넘겨받아 꾸리며 남겨진 빚 갚아가며 살다보니
마음 편히 쉬어본 날이 없었지. 당신이 내게 남기고 간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다리 쭉 뻗고 쉴 겨를이 없었지. 누군가는 그랬지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산 자는 어떻게든 산다고..."
당신이 나를 떠나고 나서 내가 그 짐을 다 넘겨받아 헤치며 살아나가다보니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어.

결혼때 우리 부부는 꼭 백년해로 하자고 그토록 굳게 맹세했었는데,
어이하여 하늘이 우리 부부를 이다지도 빨리 생과 사로 갈라놓았는지
부부사별이라는 운명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지만 살아서 받아야 하는 고통이
이다지도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다면 차라리 그 짐을 나 혼자 다 받아 감내하고
당신은 빚 걱정, 병원비 걱정, 힘든 암투병의 고통없는 곳에서 살게 주어야
겠다고 마음먹으니 그제서야 당신을 홀가분하게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었어.

우리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닐 거야!
그저 잠시, 당신이 주고간 선물인 세 자식을 훌륭히 키워 사회에 내보내 훌륭한
리더로 성장해 갈 그 때까지 아주 잠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네.
다시 만나는 날, 그때 나는 아마 훌륭히 성장해 우리나라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해
활약하고 있는 세 자식을 보며 웃는 모습으로 당당히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열심히 후회없이 살아갈테니 꼭 지켜봐줘...

2008.10.18.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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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늦은 토요일 밤,
밖에는 당신을 그리는
나의 애타는 그리움을 식혀주는 듯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칩니다.

이번주에는 사무실 여직원도
두명이나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당신 생전에는
매년 8월 초 휴가는
항상 우리 차지였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떠난 이후
그 날을 사무실 여직원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필요한 날은
마찬가지 남도
필요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장모님은 오늘 아침
쌍둥이에게 말하십니다.
"올해는 수영장도 못가보고
여름 휴가 지나갔네.
쌍둥이들 서운해서 어떻해?"

우리 쌍둥이들 애비 마음을 읽은 듯
"할머니! 우리는 괜찮아요"

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 흩어지지 않고
함께 사는 것만도 감사해야지요"

말을 해놓고 오늘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장모님이 얼마나 섭섭해 하셨을까?
실은 장모님이 콘도를 가고 싶으셨을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하늘나라 가기 3개월 전
나중에 나 없으면 나 생각하고
마시라고 당신이 그 아픈 몸으로
절리고 떨리는 그 손으로 직접 담군
복분자주를 다섯잔이나 마셨습니다.
그만큼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다섯잔을 마시면 취해서
잠이 쉬 올 줄 알았는데
기억이 더 뚜렸해지는 것을 보니
오늘은 잠을 이루는데
꽤나 뒤척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복분자주가 후두를 타고 넘어가는데
내 가슴이 뜨거워지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는데...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정말 힘들 때는
당신이 생각나지 않은데,
한 고비 넘겼거나
여유가 있거나,
쌍둥이자식들이 좋은 성적 받았을 때,
집안에서 웃음이 넘치고
평강을 느낄 때면
그때는 어김없이
당신이 생각납니다.

이 행복,
이 웃음,
이 평강,
당신과 함께 했었으면...

2008.8.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LG광고에 등장한 문구가 하나 있었다.
'사랑만 하기에도 인생은 짧습니다.'

1987년 8월 한 여인을 만나 열렬히 사랑에 빠졌고,
끈질긴 구혼끝에 결혼하여 18년 7개월간 후회없는 사랑을 했습니다.
친정가족을 위해 가게를 열었다가 큰 손해를 보고 접고
주식투자에 손댔다가 실패하여 고통속에 지내다가
유방암으로 굵고도 짧은 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여인이 떠난 지금,
이제는 그녀를 처음 만나 나를 떠나가까지
19년 3개월간 함께 했던 추억으로 살아갑니다.
더 잘해주지 못했던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주어진 인연을 지키지 못한 나를 자책하며 살아갑니다.

그 여인이 너무 힘들어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많이 건네지 못했고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하지 못했고,
애썼다, 고생했다 더 많이 안아주고 등을 토탁거려주지 못했던
안타까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언제까지 사랑하는 아내가 내 곁에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시간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사랑하기에 많은 기회가 주어진줄 알았습니다.
부부라는 미명하에 내가 힘들고 거추장스런 일,
아쉬운 부탁은 그 여인이 도맡아 했습니다.
부부는 벽이 없어야 하는데 스스로 남편이라는
권위로 벽을 만들고 군림하여 들었습니다.

의견충돌이 있었을 때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오만함으로 화해하는데 너무도 소중하고 많은 시간을
그냥 허비했습니다.

그여인에게 생전에
힘들게 했던 일,
마음 아프게 했던 일,
상처주었던 말,
다 치유해주고
용서받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도 많았는데

"당신이 내 인생 최고였다,
당신을 만나 후회없이 살았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을꼭 하고 싶었고
당신을 힘들게 했던 몇배로
꼭 기쁘게,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당신은 그만 너무도 일찍 내곁을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람처럼 와서
잠시 머무르다
연기처럼 사라진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 여인이 남긴
마지막 부탁이자 그녀가 분신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세 자식을 돌보며 그 속에서
그여인의 모습과 흔적을 찿으며
살아가렵니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만 더 일찍 사랑의 지혜를 알게 되었다면
이런 회한은 덜 남기며 살았을텐데..."
 
정말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인생은 짧다는 것을.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는 어리석게도 사랑하는 한여인을 보내고야 알았습니다.

2008.7.2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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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당신이 2005년 5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유방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일 때
나는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조용히 묻고 내 스스로 답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약 우리 부부 중에 한사람을 꼭 데려가야 한다며 당신과 나, 둘 중에
누가 남겠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주저없이 내가 남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옳았음을 나는 지금도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부부 중에서 사별을 한다면 먼저 죽은 자만 불쌍하고 그래도 살아남은
자가 복 받은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장모님도 늘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나 홀로 남아 살아야 하는 자의 앞길이 세 자식을 키워야 하고, 집도 없이
월세살이에 빚투성이고 개인회생까지 받은 상태라면 그래도 복 받은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 누구에게도 이제는 손을 벌릴 수 없습니다. 손을 벌려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은 냉소와 조롱 뿐입니다. 요즘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무사히 넘길지,
당장 부족한 돈은 어디서 조달하고 해결해야 하나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갑니다.

오늘 장모님이 사무실에 전화하여 쌍둥이들이 다니는 학원 영어선생님이 전화가 왔다고
빨리 전화해보라고 하시기에 퇴근길에 들려보니 방학때 쌍둥이들에게 특강을 하라는
권유였습니다. 처음에는 방학때 힘들다고 특강 하지 않겠다고 하던 녀석들이 마음이
바뀌어 재윤이는 1학기말 시험에서 국어를 망쳤다고 영어와 논술 특강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재명이도 재윤이가 하겠다고 나서니 "그럼 저도 영어와 논술 할래요" 누가
쌍둥이자식이 아니랄까봐 두 녀석 경쟁이 치열합니다.
 
두 녀석 기본 학원비에 특강 두 과목씩을 수강하면 65만원나 되며, 특강은 선착순
마감이니 빨리 신청하라는 말에 "특강 신청은 애들과 상의하여 모레 금요일까지
결정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하며 얼른 학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교육비부담이 갈수록
만만치 않을텐데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이 부족하면 서운하더라도 눈 딱 감고 과감하게 지출을 줄이면 곧 해결이 되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와 냉소입니다. 이런 것들이
더 큰 마음의 상처로 남습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당신이 돈과 빚,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내가 지켜보는 것보다는
그래도 어려서부터 외로움과 오래참음에 익숙해져있는 내가 이런 고통과 수모를 받는
것이 낫고 그래야 내 마음도 편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이 나를 선택하여 남기신
모양입니다. 혼자서 버텨내야 하는 외롭고 힘든 삶을 이렇게라도 당신에게 하소연해야
 후련해질 것 같습니다.

나는 꼭 이겨내고 승리할 것입니다. 20년간 고통받았던 말더듬도 치료한 나입니다.
대신 당신은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여보! 그동안 힘드셨죠? 고생 많았어요" 그냥
이렇게 말해주면 됩니다. 그 말 한마디면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로 시퍼렇게 멍들고
휑하니 뚫려있을 내 마음속 상처가 일순간 모두 치유될 것만 같습니다.

2008.7.1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우리 쌍둥이자식들이 참 많이 컸습니다.
당신이 2년전 사놓고 간 팬티가 이제는 작아 꼭 낀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당신이 하늘나라로 간지도 벌써 1년 8개월이 훌쩍 지나갔군요.
무정한 세월!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산다고, 혼자 남겨진 나는 죄인된 심정으로
이 악물고 두주먹 불끈 쥐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쌍둥이들이 한참 뛰고 놀 시기인지라 활동량이 많아 땀을 비오듯 흘리기
때문에 하루에도 두세번씩 옷을 갈아입히곤 합니다. 막내 재윤이가 당신을 꼭
닮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옷 입는 것도 유난히도 까다롭고 깔끔을 떨기도
합니다. 날씨도 더운데 요즘 녀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장모님이 무척 힘들어
하십니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가니 장모님이 쌍둥이들 런닝이며 팬티가 없다고 하시며
비슷한 사이즈로 사오라고 넣어주시는 런닝과 팬티 하나씩을 들고 부랴부랴
뉴코아아울렛으로 갔습니다. 당신이 건강할 때는 쌍둥이들 옷을 사러 늘 함께
다니던 낯익은 곳인데 요즘은 참 낯설기만 합니다. 전에는 둘이서 함께 다녔지만
이제는 나 혼자서 보고 고르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 남자가 물건값도 잘 흥정하지
못한다고, 그리 순해서 어떻게 험한 세상 헤쳐나가며 살거냐고 당신에게 구박도
참 많이 받았지요. "당신같이 어수룩한 사람 혼자 두고 가려니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마지막까지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온 김에 고객상담실에 들러 이사한 곳으로 주소도 바꾸어 놓고, 유아용품 코너
몇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옷이 없네요. 마음에 드는 상품은 턱없이
비싸고 매대상품이라고 나온 것들은 모두 이월상품에 후즐근하고...

팬티도 각각 4개씩, 상의 런닝도 4개씩을 사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를 다니다
발품을 판 끝에 겨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랐는데 팬티 하나에 8000원을 달라고
합니다. "어휴~~ 저는 이렇게 비싼 것은 못사요"하고 나오려니 "그러면 잠깐만요,
여기 50% 세일하는 것도 있어요" 하며 붙잡네요. 한번 튕긴 덕분에 팬티 8장을
절반값 이하인 28,000원(한개당 3500원)에 사고, 상의는 매대상품으로 지금 입고
있는 것보다 한치수 큰 것 두장(재윤이는 몸집이 있어서), 그리고 재명이는
호리호리하여 같은 치수로 두장해서 32,000원(한개당 8000원)을 사가지고 왔더니
장모님이 잘 사왔다고 하십니다.

앞으로 홀로서기를 계속 해야 합니다. 생전에 당신과 함께 다니며 어깨너머로
익힌 흥정법과 물건 고르는 방법을 생각하며 잘 해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하 킴스클럽에 들러 장모님 드실 윌과 마침 빵을 세일하기에 녀석들 내일 먹을
간식거리 빵과 음료를 골라 샀더니 큰애에게 빌린 십만원이 금새 바닥나 버립니다.

봉급은 제자리인데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세 자식들 건강하게
잘 뒷바라지하며 키우려면 앞으로 돈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양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내가 마지막 버팀목인데, 당신이 남겨준 우리 희망둥이 세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씩씩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는 당신이 남편으로 선택한 행운의 남자였으까요...

2008.7.8.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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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이 며칠이야? 너무 힘들어~~~"
"만약 내가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면 번거롭게 산소호흡기를 사용하지 말아줘~"
"사람들이 쉬어야 하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피해야 되는데...."
"쌍둥이 재명이와 재윤이, 그리고 불쌍한 우리 엄마를 잘 부탁해~"
"당신을 두고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해~"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해 주고 가려고 했는데 줄 장기가 없네... 내 몸은 화장해서 그냥 강에 뿌려줘"
"열심히 다니던 절(불교)에서 나를 따라 교회를 함께 다녀주어 고마워...나 죽으면 종교는 당신 뜻대로 해!"
"서사장님에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꼭 전해줘야돼. 알았지?"
"당신에게 너무 많은 짐만 지어주고 가네... 동규아빠 미안해!"
"당신 믿고, 이제는 나 정말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정확히 1년,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지 1년이 흘렀다.

무정한 세월....
그렇지만 나는 흔들림없이 간직한 꿈을 이루고 집사람이 부탁한 자식들과 장모님을 지키기 위해 꿋꿋히 살아나간다.

아내는 1년 6개월동안 암투병 생활을 하면서, 3분의 2는 회사생활을 하며, 3분의 1은 병상에서 생활하면서 늘 나와 함께 있으면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 이야기, 쌍둥이들 이야기, 큰애가 무사히 대학에 들어갔으면 하는 희망, 암센터내 다른 환자들 걱정...

처음에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암세포가 온 몸으로 전이되고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이 엄습해 오기 시작하자
서서히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나하나 하기 시작했다.

영정사진이 없이 하늘나라로 가면 내가 사진을 찿아 허둥댈까봐,
나와 가족 몰래 영정사진도 일찌감치 찍어두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쌍둥이자식들을 두고, 죽음을 받아들이며 기막히게도 영정사진을 찍어야 하는 여인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오늘따라 영정사진 속 웃고 있는 모습이 더 없이 애처롭기만 하다.

꼼꼼히 친척 생일과 전화번호, 계좌번호,
그리고 제사날도 적어놓고 갔다.
지저분한 내 내의나 속옷도 다 버리고
2년 동안이나 입을 내의와 양말도
미리 사서 옷장 속에 넣어 두고 갔다.

내가 복분자주를 좋아한다고
하늘나라로 가기 3개월전 첫 수확한 고창 복분자를 무려 5킬로그램이나 우편으로 주문하여
자신을 생각하며 두고두고 먹으라고 유방암 말기 투병중인 그 아픈 몸으로 직접 담구어놓고 갔다.

왜 하늘은 나와 우리 가족,
특히 아직 어린 쌍둥이 자식 재명이와 재윤이에게
엄마의 사랑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우리 가족에게 꼭 필요한 아내이자 어미를 이렇게 일찍 데려간 것일까?

이토록 큰 빈자리를
어찌 나 혼자서 감당하라고...

김승훈 200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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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토요일 옆 동으로 이사를 하고 오늘 출근하기 전에 동사무소(지금은
주민자치센터로 이름이 바뀌어 있음)에 들러 주민등록 전입신고도 하고
주민등록증과 면허증에 바뀐 주소도 기록하고 전세계약서에 확정일자
날인도 받았다.

주민등록 전입신고 기재사항 이름에서 나, 큰애, 쌍둥이자식 이름을 쭈~욱
써내려가는데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 4년전 전입신고 때와 비교하니
소중한 한사람 아내 이름이 빠져 있다. 4년전에 전입신고를 했을 때는 아내
최혜숙 이름을 내가 직접 썼는데 이번에는 쓸 수가 없었다. 아내 이름을 적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지 전입신고를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착잡하고
미안하기만 했다. 꼭 집사람 혼자만 전에 살던 아파트에 남겨두고 나와 세
자식들만 새로 이사가는 집으로 몰래 옮겨가는 것만 같다.

동사무소 행정을 보는 여자분의 낯이 익다. 1년 6개월전 집사람 사망신고를
하러 갔을 때 창구에 앉아 있던 사람이다. 사망신고를 하는데 사망 일시,
사망사유, 사망 장소, 신고자, 사망자와의 관계 등을 쭈욱 적고 벽제
화장장에서 발급받은 화장증명서류를 함께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여자분도 그때 기억이 난 것인지, 내내 머리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기에 나도 필요한 말만 하고 수속을 마치고 얼른 동사무소를 빠져나왔다.
가장인 내 밑에 아들만 셋, 게다가 어린 초등학생 쌍둥이까지 있으니 내
사연을 알고 있는 그 여자분이 보기에도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이사하면서 짐을 정리하다보니 1992년에 집사람 방송통신대 동창들 부부들과
함께 가을단풍놀이에 가서 내장산 정상에서 찍은 액자사진이 나왔는데
장모님이 그 사진을 안방에 걸어두지 그러냐고 넌즈시 내 의사를 묻기에
그러겠다고 하고 안방에 걸어두었다. 장모님은 딸자식, 내가 사별한 아내에
대한 마음이 멀어질까봐 신경이 쓰이시는 모양이다. 그것이 딸자식, 그것도
한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어미의 애끓는 마음이겠지..

하루 하루 참고 살 뿐이지, 내가 어찌 집사람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까지
잊을 수 있으랴! 이렇게 사진을 보면 자꾸 생각나고, 행복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과 유방암 투병생활 중 뒷바라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내 마음이 한없이 저려오고 죄책감이 밀려오는데...

보고싶어도, 생각나도
그저 참고 사는 것을....

2008.6.23.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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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몇시간 후면 정들었던 지금의 아파트에서 단지내 조금 떨어진 옆 동으로
이사를 한다. 지난 2004년 6월 30일 이사하여 만 4년에서 딱 10일 부족한
기간동안 내 삶 가운데서 가장 가슴아팠고 고통스러웠던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굴곡의 삶을 보낸 곳이기에 이 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착잡하고 만감이 교차된다.

그 어려움 속에서 세 자식들을 키웠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책자 발간,
활발한 강의활동을 펼칠 수 있었던 희망의 보금자리임과 동시에 결혼하여
지금껏 함께 살았던 내 사랑하는 아내이자 내 인생의 소중했던 길벗, 아니
인생동지가 2005년 5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기전까지
1년 6개월동안 투병생활을 함께 하던 곳이다. 집안을 둘러보면 아직도 곳곳에
집사람의 손떼와 메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마치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는 듯한 체온이 느껴진다. 이름만 부르면 곧 대답할 것 샅고,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아서 하늘나라로 가기전 사용했던 물품 대부분을 아직도 그대로
남겨두었다. 꼭 내게 다시 돌아와 다시 그 물건을 창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어쩌다 술을 먹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현관에서 "지금 몇시요? 당신 미쳤소?"
하며 눈을 부릅뜨며 야단을 칠 것만 같다. 안방 서랍을 열면 다이어리에유방암
투병생활을 하면서 쓴 글이며, 약 처방전, 국림암센터 진료비 계산서와 병원
의무기록지 사본, 서울대 유방암센터장 노동영 교수님과 나눈 이메일이며,
항암치료에 좋은 약품, 항암제에 개발에 대한 기사 등을 스크랩한 자료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모두가 살기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치열하게 몸부림을 쳤던 흔적이기에 내 차마 치울 수가 없었다.

집사람 손떼가 묻은 장롱과 차단스도 아직 그대로 있다. 결혼 10주년이었을 때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집사람은 장롱을 바꾸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갚아야 할 빚이 많은데 무슨 장롱이냐고 그 돈으로 먼저 빚부터 갚고 나중에
결혼 20주년이 되면 내가 그때는 꼭 사주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내가
집사람 고집을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집요한 설득 끝에 정 사고 싶으면
사라고 허락을 했을때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니 집사람
말을 들어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줄 모른다. 결혼 20주년을 1년 5개월 남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버렸으니 만약 그때 사라고 허락하지 않았으면
아마 나는 또 다른 회한을 가슴 한켠에 평생 간직하고 미안함으로 살았을 것이다.
함께 20년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나에게 회한을 남겨주지 않게 하려고
그때 그렇게 사겠다고 고집을 피웠나... 그럴줄 알았으면 내 빚을 내서라도
더 좋은 장롱으로 그냥 기분좋게 살줄껄....

안방 들어가는 문 옆에는 쌍둥이 녀석들 키를 잰 표시가 남아있다. 4년동안
키도 많이자랐고, 체중도 많이 늘었고 고집도 많이 늘었다. 큰애 동규는
고등학교를 졸업후 대학에 진학했고.....

이제 밤 12시가 넘었으니 이사가 8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밤 12시 20분이
넘어가는데도 잠이 오지를 않는다. 집사람과 그동안 이 집에서 웃고, 울며,
부디끼며 살았던 지난 기간들에 대한 추억과 아쉬움, 이별의 아픔이 나를
잠못들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몇시간 후면 정들었던 이 집을 뒤로 하고 나는 이사를 해야 한다.
지난 과거 아픈 추억과 고통을 훌훌 털고 새로 이사하는 집에서는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피며 살리라! 여기서 겪었던 아픔과 고통, 절망, 후회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고 살리라! 새로운 각오로 두 눈 부릅뜨고 새로이 오게 될
희망과 기회의 미래를 준비하며 열심히 노력하며 살리라! 종자돈도 모아 집도
장만하고, 열심히 시간을 아껴 글도 쓰고,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사내근로복지기금 회계실무', '사내근로복지기금 진단' 책자도 집필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개정판도 올해 안에 내리라! 사랑하는 희망둥이인
세자식도 반듯하게 키워내며 내 미래를 꼭 희망으로 도배질하리라!

슬픔이여 이제는 안녕~~
아픈 추억이여 잘 있거라~~

2008.6.21.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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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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