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이 잘 풀리고 잘 나갈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가장 기뻐해주는 사람은

배우자와 부모이고

그 다음으로는 자식이다.

 

그 이외 동료나 친구, 선후배

심지어는 친지나 친척들도

은근히 질투하고 배가 아파한다.

 

가족이 가장 끝까지 내곁에 남는다.

남에게 잘해주어보아야 대부분 소용이 없다.

그글도 그들 가족에게 돌아간다.

 

최근 살아가면서 경험하고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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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아침 모처럼 용왕산을 올랐다.

11일 후에는 정들었던 이곳을 떠난다니 살때

한번이라도 더 오르고 싶었다.

막상 떠난다고 하니 한번이라도 더 걷고 싶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경치를 마치 연속사진을

찍듯 찍어 내 가슴과 뇌리에 보관한다.

 

지난 6년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 용왕산을 오르내리며

힘들고 외로웠던 시기에

아픔도, 슬픔, 분노도 산을 걸으며 가슴 속에서 삭이고

정화시켜 일상의 덤덤함으로 내보냈다.

용왕산은 말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이른 아침,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며

눈은 단풍을 즐기며

발은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걷는 이 행복은

어디에 비길 수 있겠는가!

 

지난 초가을에 주워 모아놓은 도토리를

오늘은 모두 산에 있는 제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목동에서 힘들고 괴로웠던 추억도

하나, 둘, 아니 모두 내려놓고 가야지.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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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은 아내 대학원 전공시험일.

어제 저녁부터 설겆이는 내 당번이다.

지금 열공 중인데 좀이 쑤시는 모양이다.

거실과 주방을 왔다갔다,

침대로 드러누웠다가 다시 벌떡 일어나 책상 앞으로...

30년 넘게 손을 놓은 공부를 하려니 얼마나 힘들꼬?

 

2년전 내가 박사과정을 수료를 3개월 앞두고

아내 손을 잡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에

등록시켰다. 아내는 대학원 후배가 되었다.

아내는 조용히 살려고 있는데 갑자기 끌려나와 팔자에 없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연신 불만이다.

하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꼬?

 

사람은 죽는 날까지 배워야 한다.

이왕이면 함께 배웠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지론.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과 성처를 가지고 산다.

그것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치유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어제 어머니 산소를 고양시 푸른솔공원에 안치했다.

어릴적부터 나를 바라보는 가족과 친척들의 시선에서

미안함과 죄스러움, 애처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뒤로는 내 어머니 묫자리 때문에 집안 일이 안 풀리고

집안 식구들 일이 안 풀린다는 푸념도 내 귀에 들렸다.

 

상처는 내가 드러내고 치유해야 한다.

어머니 묘도 개장하여 이장을 하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집안 식구들을 만나

듣기 시작하면서 의문점들이 하나 하나 풀리기 시작했다.

이장을 하는 과정에서 집안 일이 풀리지 않은 것도

어머니 묘 때문이 아님을 다들 눈으로 생생히 보았고,

어머니 묘가 명당이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그동안 받았던 억울한 누명에서 깨끗히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어릴때 그렇게 많이 울었단다.

아침에 울면 저녁때까지 하루 종일 울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다섯살 이전 기억이 없다.

어머니 얼굴을 아무리 기억하여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26개월째이면 희미한 기억이 날만도 한데.....

 

아내는 나에게 최면심리치료를 권한다.

아마도 세살때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윈 충격이

너무 컷을 거라고.....

내 곁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과

어머니를 찾아도 더 이상 내 눈에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를 찾으며 밤낮으로 울었던 충격이

트라우마가 되고 말더듬이 되었을거라고.

이제 마지막으로 최면심리치료를 통해 꿈에서라도

꼭 한번 뵙고 싶었던 어머니 모습을 뵈야

나의 마지막 치유가 될거라고.

나도 꼭 최면심리치료를 받아보고 싶다.

상처의 치유는 내 몫이이까.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어머니를 고양시 고봉산푸른솔공원 모셨다.

54년 8개월전 돌아가신 어머니.

나는 얼굴도 본 적이 없고,

아무리 생각해보려,

기억을 해보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은 어머니.

어머니 시신은 온전하였다.

 

그동안 혹시나 수맥이나

나무뿌리로 인해 훼손이 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했다.

아담하신 체격,

54년 8개월이 지났음에도 어머니 시신은 온전하였다.

장례도우미분 말이 어머니께서 묻히셨던 묘가 명당이었다는

말에 비로소 안도하였다.

 

아버지나 친척분들에게 탐문하여 어머니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와는 동갑,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조부모께서 서둘러 결혼시키셨고,

고등학교 3학년때 새신랑이라고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받으셨 아버지는 나를 낳고 고등학교 졸업 후 군입대......

군에서 신상명세서에 창피하여 미혼이라 기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신

우리 아버지....

그리고 나를 낳고 연년생으로 내 동생을 임신하여 나와

막내시동생이 동갑이어서 한 집안에서 세 자식을 키우기가

부담이 되어 내 동생을 유연하다 잘못되어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는 어제 처음으로 이장을 앞둔 어머니 묘 앞에서

"여보 미안하오"를 외치며 어머니와 내 동생을 끝까지

지키지 못함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어제 그토록 그리웠던 어머니,

꿈에서도 한번 뵙고싶던 어머니를 서울 근처 납골당에 모셨다.

어머니를 납골당으로 모시고나서 아버지께 앞으로는 자식인

제가 어머니를 잘 모시겠습니다고 전화를 드렸다.

이제는 어머니가 그리울 때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이 있기까지 나를 믿고 응원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006년 11월 10일, 아내 장례식장에 왔던 부동산에 성공한

사촌 숙부를 만나 부동산 동향을 물으면서 지금 아파트를

사야 할 때인지를 물었다. 그 숙부는 손사레를 쳤다.

"아파트요? 서울 부동산 부자들은 대부분 부동산을 처분했고

일부가 막차로 팔고 떠나는 중입니다. 절대 사지 마세요"

 

지난주, 서울 부동산빌딩이 급매물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부 신문에서는 앞으로 더 오를거란다.

 

묘하게 10년 전과 너무나도 상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온다.

지도층은 모럴 헤저드에,

경기는 하강 중이고,

가계부채와 국가부채는 상승 중이고,

청년실업은 늘어만가고

국론은 보수와 진보로 분열되어 진흙탕 싸움.

 

경주 지진 이후 계속되는 여진들,

우리나라에 큰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불안한 경고가 이어지고,

지난 지진이 있었던 지역 부근에는 원전이 밀집되어 있고.

갈수록 악화되는 남북관계에

미국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설상가상 여기에 미국이 금리를 올린다면.....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쉬는 날자를 잡아 동생이 근무하는 쎄니팡 정수기를 달았다.
살고 있는 집이 20년된 단독주택인데 쎄니팡은 질소를 이용하여
수도배관과 난방배관을 세척해주면 수도관에 끼인 녹물과
보일러 배관에 끼인 이물질을 제거하여 깨끗한 수돗물을
마실 수 있고, 보일러 난방효과를 40% 높일 수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수도배관 세척과 정수기 설치만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정수기시장.....
웅진과 청호 얼음정수기에서 발암물질과 이물질이 나왔다고
뉴스에 보도되는 바람에 정수기 시장이 된서리를 맞았다.
이제는 직수형 정수기가 대세인가보다.
월 19,800원 수수료에 수도배관 세척을 무료로 해주고
중도 해약을 해도 위약금이 없다니,
무엇보다 동생이 하는 사업이라 눈 딱 감고 우리집과
시골 아버지집에 내가 비용을 들여 설치를 했다.
가족이 무엇인지.......

 

시공장면을 직접 보니 집 수도계량기를 풀어 질소개스 주입장비를
설치하고 고압으로 질소를 주입시킨다. 내시경으로 시공전과
시공후를 직접 보여주는데 그동안 이런 물을 마시고
쌀을 씻어 식사를 하고 얼굴을 씻고 샤워를 했다니.....
주방이며,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시커먼 녹물이 쏟아져 나온다.
살짝 후회가 된다. 진즉 할걸~~~

 

두시간 시공작업을 마치고 철수하니
이제 슬슬 용왕산 산책이나 나가야겠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은 혼자서 용왕산 둘레길을 갔다.

오늘은 휴식을 취하자는 행복나무의 유혹을 뿌리치고

한번 쉬면 내일도 쉬고 싶다고 집을 나섰다.

아직도 용왕산에는 밤과 도토리를 줍은 사람들이 더러 보인다.

내 입에서는 알수없는 %$*@#&* 소리가 나온다.

난 어쩔 수 없는 꼰대다.

 

도토리를 주머니 가득 주웠다.

낙엽까지 헤집지는 않고

신사답게 길가에 떨어진 것만 주웠다.

운좋게 토실토실한 알밤도 하나 주웠다,

이 알밤은 행복나무 갖다 주어야지.

 

정상을 지나 100미터 내려가면 가파른 곳이 있다.

작년에 거기에서 나무에서 노는 청설모를 보았지.

사람들이 안보는 사이에 주머니 가득 주운

도토리를 아래로 던졌다.

 

두번째 돌면서는 더 많이 주웠다.

신경쓰고 바닥을 보니 더 많이 보인다.

아싸~~~

한쪽 주머니가 아래로 쳐진다.

이건 운동하러 온건지,

도토리를 주우러 온건지 나도 햇갈린다.

 

정상 올가가기 전 30미터 부근에서 구린내가 난다.

왠 구린 냄새?

둘러보니 누가 은행열매 껍질을 한바구니 버리고 갔다.

어제 누군가 거기서 쭈구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만지던데

은행알만 쏙 빼가고 냄새나는 껍질은 산에 버리고 갔네~~~

이런 얌체같은 사람같으니라고~~~

다시 내 입에서는 %$*@#&* 소리가 나온다.

 

화를 억누르고 정상을 지나 도토리를 다시 던지려고

아래를 보니 얼레~~~

여기도 누가 낙엽을 헤집어놓은 흔적이 있다.

도토리를 던지는 것을 포기하고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털레털레 걸어왔다.

집에 도토리를 모아서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청설모를 보았던 그 장소에 던져주기로 했다.

그때는 더 이상 도토리를 주워가지 않겠지. 

작년에도 그랬었지.

 

그냥 모른체 지나치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

오늘도 역시 내가 꼰대임을 재차 확인한 날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추석연휴 내내 아내와 함께 집 근처 용왕산을 올랐다.

둘레길을 도는데 20분정도 걸린다.

굴곡이 있어 제법 산을 걷는 묘미를 느낄 수 있고

한시간 정도 걸으면 등에서 땀이 난다.

그나마 집 근처에 이런 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지금 용왕산에는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1년 내내

곱게 키운 열매를 머금고 있다. 용왕산에 사는 다람쥐와

청솔모들의 겨울 식량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도토리를 주민들이 낙엽까지 치워가며

깡그리 수거해가고 있다. 어제는 화려한 명품 등산복을

차려입은 일개 가족이 와서 낙엽을 헤치가며 떨어진

도토리를 가져온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서

의기양양하게 내려간다. 그걸 가져가서 뭐에 쓰겠다고......

시장에서 2000원이면 도토리묵을 실컷 사먹을 수 있을텐데...

 

더 가관인 것은 멀쩡한 나무들을 발로 차며 나무에 달린

도토리를 강제로 떨어뜨리게 한다는 것.

결국 지나가며 들이라고 일부로 큰소리로 말했다.

"다람쥐와 청솔모들이 먹고 살게 도토리를 그냥 두면 안되나?

사람과 자연이 공존을 해야지. 인간의 욕심이 너무 지나쳐.

알만한 사람들이, 도토리가 얼마나 된다고?"

 

옆에서 따라오는 아내가 한마디 한다.

"어휴~ 누가 꼰대 아니랄까봐 또 잔소리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새벽에 아내가 잠자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여보! 밤에 너무 신기한 꿈을 꾸었어.

당신과 같이 아버님과 어머님 산소를 갔는데

아버님 묘는 짙은 초록색인데 어머님 묘는 짙은 고동색이었어.

당신은 동작이 굼떠서 아직 올라오지 안았는데

아버님 산소 앞에 세워진 장승이 앞으로 3/1쯤 기울어져 있었고

아버님이 나를 애기야~~ 하시면 온화한 목소리로 부르시는 거야.

그리고 어머님 묘 위에서 하얀 나비 한마리가 홀연히 나오더니

훨훨 하늘로 날아가는 거야~~"

 

어머니의 제사를 내가 다시 모시기로 하고,

10월중순에 어머니 묘도 이장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

주변에서 무슨 꿈을 꾼 것 없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보통 제사나 이장을 결정하거나 실행하면

조상들이 어떤 모습으로든 꿈에 나타난다고......

 

다른 사람들은 돌아가신 조상들이 꿈에 나타난다는데

나는 지금껏 조상에 대한 꿈을 거의 꾼 적이 없다.

오죽하면 제발 꿈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제발 한번만

뵙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고 또 빌었지만 지금껏 한번도

내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평소 예지의 능력이 있는

아내가 내 대신 꿈을 꾼 것일까?

아내는 손윗 처형이 돌아가실 때도 나에게 "언니가 방금 임종했다"고

말하여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두시간 뒤 부음소식을 들었다.

가톨릭에서 사도신경 중에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라는

문구가 있다. 영혼들과의 통공..... 나도 지난 2년 전 추석에 고향

진도에 갔다가 팽목항에 조문차 들렀는데 팽목항 입구에서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며 머리가 혼미해지고 몸에 힘이 쭈욱 빠지며

눈에서 눈물이 저절로 나왔던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쌍둥이자식과 같은 나이이니 내 자식처럼 여겨지는 

학생들이 아까운 삶을 마감했으니 같은 부모의 심정이었으리라.

 

아내가 평소 꿈 해몽을 잘해주시는 친척분과 통화를 하니

어머니의 영혼이 편하신 것 같다, 좋은 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기분이 조금은 홀가분해진다.

15개월된 어린 자식을 홀로 두고 먼저 가신 어머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제는 그 자식이 장성하여 중년이 되었고,

결혼과 사별, 우여곡절을 거치며 다시 재혼하여 잘 살고 있고

제사도 다시 모셔오고, 산소도 이장하여 볕이 잘 드는

납골당에 모신다고 하니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신걸까?

 

아니 그렇게 믿고싶다.

그런데 꿈이 왜 나에게 오지 않고 아내에게 갔을까? 

어머니가 나보다는 며느리가 더 좋으셨던 걸까?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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