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

13년전 오늘인 1997년 11월 10일은 우리 쌍둥이자식들이 태어난 날이었다. 쌍둥이를 임신했던 탓에 출퇴근은 항상 자가용으로 내가 모시고 출퇴근을 했다. 11월 10일날도 출산예정일이 2주가 남아있어서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며 언제 출산휴가를 내야 될지 날짜를 꼽고 있었다. 그때는 출산휴가가 지금처럼 길지가 않았기에 미리 휴가를 내놓으면 하릴없이 집에서 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날짜를 까먹기 때문이었다. 진짜 어미의 손길이 필요한 건 애들이 세상에 나온 이후이니까...

일산에서 출발하여 올림픽대로를 들어서 양화대교 밑을 지나는데 아내는 하혈을 한다고 조짐이 이상하다고 곧장 병원으로 가자고 하여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곧바로 여의도성모명원으로 직행하여 입원을 시켰다. 담당 의사가 당시 이름이 있는 김수평박사였는데 양수막이 터졌다며 쌍둥이인지라 조금만 늦었어도 산모와 태아 모두 위험할 뻔했다고 하셨다.

아내는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당시 아내 나이 39살, 큰애가 89년 2월생이니 늦둥이에 쌍둥이를 양수막이 터진 상태에서 자연분만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아침 8시 30분에 입원하여 애들을 낳은 시간은 저녁 6시를 넘어 어수룩할 때였으니 그동안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고, 내 속은 얼마나 탔는지.... 형인 재명이는 2.75킬로 호흡이 약하여 나오자마자 곧장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고, 동생인 재윤이는 3.25킬로로 건강했다. 낳을때부터 0.5킬로그램 차이가 난 몸무게는 이제는 3킬로나 차이가 난다.

이렇게 힘들게 쌍둥이들은 낳고 나서, 일주일만에 우리나라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분유값과 기저귀값은 배로 뛰고..... 나와 아내는 이마트에 가서 번갈아가며 50개들이 기저귀를 사나르던(당시는 환율이 급등하여 한사람 앞에 기저귀는 하나씩 밖에 팔지를 않았다) 일이 생각난다.


# 둘

4년전 2006년 11월 10일은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날이다. 공교롭게도 하늘나라로 간 날도 쌍둥이들이 태어난 날이자, 태어난 시간과 비슷한 저녁 7시 부근이었다.

2005년 5월초에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1년 6개월간 암투병에 힘들어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매일 링거 몇개씩을 몸에 꼽고 살았다. 아내는 평소 혈관이 잘 보이지를 않았는데 항암제를 맞고부터는 그나마 가느다란 혈관마저 살 속으로 숨어버려 초보인 간호사들은 몇번이나 찔렀다 뺐다는 반복하여 간호원들이 주사기를 새로 꼽는 시간을 제일 끔찍하게 생각했다. 식사량보다 더 많은 항암제에 진통제를 먹어가며 고생하는 것을 보니 회복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면 이제는 놓아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빚 걱정없는, 항암제를 맞지 않아도 되는 하늘나라로 보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와 아내의 이생에서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나 보다. 1987년 8월 22일날에 만나, 8개월간의 뜨거운 연애 끝에 88년 4월 23일 결혼을 하여 세 아들을 낳고 살았는데, 딸이었음에도 친정집을 부양하며 힘든 삶을 살았다. 국립암센터 노정실 유방암센터장님도 "최혜숙씨는 이대로 하늘나라로 보내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사람이다"라고 아쉬워 할 정도로 참 예쁘고 똑똑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산 여인이었고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뛰어난, 나에게는 정말 과분하고 아까운 여인이었다. 아마 하늘나라에서도 큰 직분을 맡아 정신없이 바쁘겠지...

세월 참 빠르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도 야근! 회사 식당에서 가서 저녁 식사를 한다. 밥이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딱딱하고 입맛이 없지만 그래도 먹어야 한다.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내가 먼저 쓰러지면 안되지~ 싸울려면 에너지를 계속 공급받고 비축해 두어야 하기에 저녁 식사가 내키지는 않지만 밥 한 공기를 뚝딱 다 비운다.

지난 금요일부터 심하게 앓아 온 홍역이 오늘로 5일째인데 이제는 제법 면역력이 생겼는지 견딜만 하다. 그래! 나약하게 피하지 말고, 세상의 모든 어려움이 왜 나에게만 집중적으로 밀려오느냐고 쌍둥이자식들이 애비의 절박한 마음도 못알아준다고 야속해하고 원망하며 의기소침해 있지 말고 당당히 다가오는 고난과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 돌파해 나가는 거다. 원인없는 결과가 없듯이 지금의 모든 여건을 만든 사람은 남이 아닌 다 내 탓이고, 가장인 내 책임이 아닌가?

내가 처한 현재의 상황이 별로 내세울 것이 없어서 협상에서 칼날을 쥐어야 했고 그  바람에 상처를 입었지만, 다음에 오는 협상에서는 내가 반드시 칼자루를 쥐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고야 말리라. 근로복지공단 연구용역이 끝나는 연말 이후, 사내근로복지기금 결산실무와 사내근로복지기금 예산실무,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전략, 사내근로복지기금 진단실무 네 권의 도서집필을 마치고, 사내근로복지기금 회계프로그램까지 완성시킨 6개월 이후의 내 모습을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자신감을 잃고 넘어져 있는 쌍둥이자식들도 내 사랑과 격려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예전의 밝고 자신감이 넘치던 모습으로 회복시키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선봉에 서있는 나부터 열정과 자신감을 회복하고 어려움과 맞서며 도전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몸으로 보여주는 거다. 나에게는 아직도 시간과 기회가 많다. 지난 시절 혹독했던 실패를 교훈삼아 치밀한 계획과 용의주도한 준비로 이제는 성공신화를 하나 하나씩 내 손으로 써내려가리라!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당신에게 많은 빚만 남겨놓고 가서 미안해. 빚만 주렁주렁하고 아들만 셋인 당신에게 어느 여자가 시집을 오려고 할까? 착한 당신에게 내가 정말 큰 짐만 남겨놓고 가게 됐네. 정말 미안해!"

아내가 하늘나라에 가지 전 사흘전에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이 이제는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김차장님 같은 연배에는 적어도 아파트 한 채에 어느 정도 노후를 준비해 놓았어야 되는 시기 아닌가요?"
"연수입은 얼마나 되는 겁니까?"
"그리고 빚은 얼마나 남은 겁니까?"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라리 솔직히 돈이 없으니 안된다고 했더라면...
"전라도 남자가 왜 경상도 여자와 결혼하려 하느냐?"
"품기에는 그릇이 너무 크다. 고생을 많이 하게 되니 단념해라"라는 말이 오히려 더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목요일 밤부터 금요일과, 토요일 밤 내리 3일간 잠을 설치며 그 후유증 때문에 지독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40대 이후 여성들의 결혼의 제일 큰 전제조건이 경제력이라는 어느 앙케이트 조사결과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경제력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내 삶에서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애비는 힘든데, 쌍둥이들은 3일째 학원수업을 가지 않았다고 문자메시지가 온다. 엎친데 덥친 격이다. 얼마나 심신이 지쳐가는지 지난 토요일 설악한화콘도에서 열린 '2010년 한화콘도 우수법인사 초청행사'를 가는 도중 잠시나마 이 세상의 끈을 놓는 상상까지 했었다.

오늘 한소망교회에 도착하여 장경동목사님이 설고하시는 저녁예배 시간이 일러 잠시 북카페에 들러 펼쳐든 책이 '기도의 힘'이었다. 읽어내려가는 도중 내 눈을 사로잡은 성경귀절이 있었고 나는 비로소 마음의 자유함을 얻게 되었고 4일간의 길었던 고통과 방황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성경귀절은 마가복음 14장36절이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엊저녁 내내 가위에 눌린듯 쫓기는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아직도 술이 덜 깨는 것 같다. 어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막내 전화를 받고 인구조사 참가에 따른 봉사확인서를 출력하러 사무실에 들러 인쇄하여 집에 도착하니 밤 1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오늘은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종일 강의가 있어 졸린 눈을 비비며 사내근로복지기금이야기를 써놓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밤새 엎치락 뒤치락 잠을 설쳐야 했다. 이것 저것 아무리 보아도 내 세울게 없는 내 처지~ 내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에 자리에 앉아있던 시간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생각지도 않게 너무도 일찍 찿아온 자리. 모든 어려움 다 이겨내고 천천히 그리고 당당히 시작하고 싶었는데...

요란한 휴대폰 알람에 잠에서 깨어 확인한 메일에 힘이 풀린다. 대충 쌍둥이들을 깨워 머리를 감도록 하고 그 시간에 어젯밤 쓴 블로그 사내근로복지기금이야기를 다시 검토한다. 오타는 없는지, 문맥에 모순을 없는지, 몇번을 읽어보고 이상이 없으면 카페에 올린다.

서둘러 아침을 챙겨먹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백마역 앞에 마침 백석역으로 가는 082번순환버스가 서있다. 이후 백석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 경복궁역까지 서서 간다. 잠을 설치고 계속 야근에 이틀간 연이어 과음을 해서일까 깜박 한눈을 팔다가 하마터면 경복궁역을 그냥 지나칠뻔 했다. 내가 오늘 왜 이러지?? 마치 혼이 나간 것만 같다.

9시부터 8시간을 꼬박 서서 진행하는 강의, 하나라도 내가 아는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해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오늘따라 전화도 많이 걸려오고, 문자메시지도 불이 난다. 어제 대전지방노동청에서 강의하면서 알게된 근로감독관님 한 분이 사내근로복지기금에 대해 문의를 한다. 쉬는 시간마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빼서 마신다. 오후 5시 45분, 강의를 마치고 곧장 여의도 사무실에 들러 이틀간 휴일에 작업꺼리를 챙긴다. 두번째 글을 읽으니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고 내 가슴이  아려온다. 좋은 사람. 돈이 왠수지...
 
쌍둥이들이 이번주 내내 학원을 오지 않았다는 학원 원장님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밤 9시, 일을 하다말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선다. 왜 이리 불행과 고난이 한꺼번에 나에게 몰려오는 걸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나 너무 너무 힘든데... 쓰러질 것만 같은데.... 눈을 감고 있으면 그냥 눈물이 난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시월의 마지막날, 교회를 다녀와 오후 3시부터 1시간정도 낮잠을 잤다. 연일 야근을 했던 탓인지 정신없이 잠을 자다가 휴대폰 벨소리에 잠을 깼다. 번호를 보니 모르는 번호...벨소리가 딱 한번 울리고 끊어지는 걸 보니 잘못 걸려온 전화이거나 스팸전화겠지. 11월 하순 자동차보험 만기를 두고 왠 화재보험사들에서 전화가 많은지.... 별로 달갑지 않다.

한번 깨니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산적한 일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자리를 박차고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회사 사무실로 향한다. 집 컴을 쌍둥이들이 만진 이후 아래아한글이 깨져서 한글작업을 할 수가 없고 또 집에서는 왠지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일 성과가 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집에 있으면 장모님도 불편하신 듯 거실에서 TV를 못보시고 방으로 들어가 작은 아나로그 TV를 보신다. 쌍둥이들은 학교 모둠숙제를 한다고 교회를 다녀오자마자 두 녀석 모두 밖으로 나가고 집안은 조용하다.  

토요일, 내책쓰기클럽 안수경님이 시월의 마지막날에 열리는 금난새 음악회 초대권을 주었지만 갈 형편이 아니라서 사양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함께 갈 상대가 없어서 사양했다. 이제는 그런 자리에 혼자서 다니기도 왠지 부담스럽다. 대부분 인인들이나 부부동반으로 참석하는 분위기이니 싱글인 내 자신이 그런 자리를 스스로 피하게 된다.

일산에서 여의도까지 가는데 자유로도 꽉 막힌다. 야외로 데이트나 놀러나갔다가 귀가하는 사람들이다. 휴~~ 나도 언제쯤이나 저런 여유를 부리며 살려나? 밀린 자유로에서 좌우를 둘러보니 자가용 안에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 커플들이나 중년의 부부들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가을 들어 유독 저런 모습들이 자주 내 눈에 띄는 걸 보니 내 마음이, 아니 내 옆구리가 많이 허전한가 보다.^^

평소보다 15분정도 더 걸려 사무실에 도착하여 밤 12시까지 꼬박 밀린 일을 처리했다. 이번 이사회에 올릴 회사 규정 개정도 손을 보고, 사내근로복지기금카페에 올려진 회원들 질문에 대한 답글도 작성하여 올리고, 모 사내근로복지기금의 기금분할 및 신규설립에 대한 프로젝트도 처리하다보니 금새 시계가 자정을 가리키고 있다.

자정이 넘어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오는데 비로소 '아하~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밤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일 속에 파묻혀서 보낸 시월의 마지막 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 화요일이 아내 4주기 기일.... 참 시간도 빨리도 지나간다. 오전에 장모님을 모시고 농협하나로마트를 다녀왔다. 아내 제사상에 올릴 과일이며, 고기류, 나물류를 준비한다. 사과, 배, 포도, 감(감은 시골에서 보내주었는데 너무 작아서 마음에 들지 않은지 새로 사셨으면 하는 눈치셔서 샀다), 밤, 곶감...

메론이 있기에 메론은 안사느냐고 물으니 사고는 싶은데 돈이 많이 나올까봐 그냥 두자고 하신다. 메론 하나에 6800원. 크고 좋은 것으로 하나 고르시라고 했더니 표정이 밝아지신다. 평소 까다로웠던 딸자식이었던지라 과일이며 음식을 장만하고 준비하는데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라고 푸념하신다. 아내가 와서 "엄마는 이것을 나보고  먹으라고 준비했어"하고 야단칠 것만 같단다.

토요일은 화장실 청소를 깨끗히 하고, 일요일에는 안방도 대청소를 하며 깨끗히 치웠다. 안방에 쌓아둔 신문이며 업무관련 인쇄물, 노동부와 국세청에서 받은 예규들, 타 사내근로복지기금 상담한 자료들, 스크랩을 하다 둔 오려낸 신문조각들이 많이 쌓여있었는데 자료들은 대충 분류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책을 쓰고 연구용역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자료들은 정리하여 한 곳에 가지런히 정리를 해두고, 스크랩을 하다만 자료들은 당장 할 시간이 없으므로 베란다로 치워두었다.
 
아무래도 연구용역과 책 집필이 다 끝나야 집안에 있는 자료들이 정리가 될 것만 같다. 아내가 생전에 이런 지저분한 모습을 보았더라면 당장 호통을 치며 빨리 치우라고 난리가 났을텐데, 아무래도 아내가 하늘나라로 간 이후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 생활이 점점 느슨해져가는 것 같다. 또 다른 면에서는 시간이 부족한 점도 있겠지...

저녁때는 안방 매트도 걷어내 바닥도 닦고, 이불도 털고, 주방이며 거실도 구석구석 걸래로 깨끗히 청소를 한다. 쌍둥이들이 이제는 알아서 애비를 도와줄 나이도 되었건만 눈치코치 없이 지들 일만 하고 있다. 꿀밤을 한대씩 때려주고 싶지만 자발적으로 도와주고 지들이 할 때까지는 꾹 참고 내가 할 생각이다. 쌍둥이들도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면 애비가 청소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때는 지들 집안청소를 하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이 길일은 길일인 모양이다. 아파트에도 이사를 가고 새로 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여기저기 모임도 많다.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 반창회에, 대학때 활동했던 써클의 선후배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자 고향 마을친구들 모임날이기도 하다.

멀리 남쪽바다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친구들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향수병을 달래고자 두 달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부부동반으로 만나 그간의 친구들 근황도 들으며 웃고 떠들썩하게 소줏잔도 기울이고, 고스톱도 치곤 한다.

모처럼 마을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하는 날인데도 나는 오늘 사무실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연구용역을 받은 '중소기업의 선진기업복지제도 도입지원방안' 중에서 내가 분담한 '사내근로복지기금 회계처리실태 및 개선방안'을 오늘까지 중간보고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의도, 우리 사무실도 오늘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가끔 내가 컴 자판기를 두드리는 소리만 사무실의 고요한 적막을 깨운다.

정부 돈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 한번 맡은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프로처럼 철저히 마무리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내 브랜드네임이 높아지고, 내 자신의 전문성 또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가는 걸 느낀다.

일 마무리를 해놓고 아마 집에 늦게라도 가면(자정을 넘어야 할 것 같지만...) 오늘 만나지 못한 보고 싶은 친구들 얼굴과 그리운 얼굴을 생각하고 떠올리며 혼자서 소줏잔을 기울일 것 같다.

이 가을, 가수 이용이 가장 1년 중에 가장 바쁘다는 10월의 마지막 밤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때 나는 누구랑 무얼 하고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10월의 마지막날이 일요일이네??? 우리 쌍둥이들과 한참 씨름하고 있겠군.ㅎㅎㅎ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발표한 서울 화곡동 모 중학교 30대 유부녀 여고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15세 남자 제자와 수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가 남자의 휴대폰에 찍힌 문자메시지를 본 아이 엄마의 신고로 경찰에 불구속기소되었다가 처벌할 근거가 없어 곧 풀려났다는 충격적인 보도기사를 읽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세 아들을 둔 애비로서, 요즘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1학년짜리 아들쌍둥이를 때문에 좌불안석이고 녀석들이 행여나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지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서있는 마당인데 이런 기사를 접하니 맥이 풀리고 교사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 "서로 좋아서 한 것이었고, 댓가는 없었다"는 말에 처벌한 근거가 없어 풀려났다니 할 말이 없다. 사랑은 국경도 나이도 초월한다지만, 그래도 상대는 이제 갓 15살인 중학교 3학년 제자가 아닌가?

세상에는 불문율과도 같은 도덕과 규범이 있다. 도덕적으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교사가, 가정을 가진 상황에서 자식같은 제자와 그런 성관계를 갖고 싶었을까? 자식 또래의 제자를 상대로 그리도 성적인 욕망을 채우고 싶었을까?

어쩌다 우리나라가 도덕적으로 이리도 문란하게 되었나? 어쩌다 이런 사람들이 교사가 되었고,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가뜩이나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성인물 때문에 집에서 쌍둥이들이 숙제한다고 컴 앞에만 앉아 있기만 해도 행여 스팸성 성인물을 접하게 되지는 않을지 마음이 좌불안석인데....

'성관계=결혼'이라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는 내가 답답한 걸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애와 결혼에서는 보수, 골통이라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서로 부부라는 관계로 맺어지지 않는 육체관계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상대에게 순결을 강요하기 이전에 나부터 순결을 지켜야 함이 옳지 않을까?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큰애 면회를 다녀왔다. 8월 초에 부대배치를 받았으니 벌써 세번째(내가 두번, 동서가 한번) 면회이다. 말이 최전방사단이지 교통이 좋아져 차로 가면 1시간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위병소에 도착하여 10분정도 기다렸을까 이등병인 큰애가 고참 상병의 인솔하에 밖으로 나온다. 언뜻 보니 한달전보다 많이 말랐다. 조그만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가방 속에는 건빵과 군에서 먹는 부식이 들어있다.
"왜 훈련하느라 배가 고팠을텐데 먹지 않고 가져왔느냐?'
"**형이 군에 있을 때 이모가 **형에게 건빵이 먹고 싶다고 가져오라고 했는데 안가지고 왔다고 서운해 하는 말이 생각나서요. 이모에게 드릴려고요"
"짜식, 그래도 유해발굴작업 하느라 800고지 산을 매일 오르내리며 힘들었을텐데..."
"저도 배고프면 먹었어요. 조금씩 아껴 놓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훈련할 때 먹는 건데 할머니 한번 드셔보라고 가져왔어요"
"뭔데???"

한눈에 보니 전투식량이다.
"야~ 그건 네 식사잖아. 먹지 그랬지?"
"할머니께 보여드리고 드시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 이렇게 잘 먹고 지내니 걱정 마시라고..."
큰애는 태어나서 줄곧 장모님이 키우셨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를 지극히 챙기며 할머니가 군에 가서 잘 먹고 지내는지 걱정하실까봐 잘 먹고 지낸다는 것을 보여드릴려고 일부러 아껴두었다 가지고 나온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훈련하느라 배고팠을텐데 할머니 생각하며 배고픔을 참았을 큰애를 생각하니 마음이 쨘하다.
"할머니 걱정마세요. 저 건강히 생활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아침마다 웃통벗고 구보도 하고 그리고 800고지 산도 이제는 한시간안에 올라갈 수 있을만큼 건강해요" 


헤어지면서 나와 장모님이 건네주는 돈을 한사코 거부한다.
"저도 월급 받아요. 지난달에도 월급 칠만 몇천원받아서 필요한 것 쓰고, 아프리카난민 구호기금으로 3만원 내고도 사만원이나 남았어요. 이 돈은 할머니께서 도로 쓰세요."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자식들은 군에 가서도 한달이면 몇십만원씩 집에서 용돈을 타다 쓴다는데 애비가 주는 용돈도 마다하고 매달 받는 쥐꼬리만한 이병 봉급으로 아프리카 난민 기부까지 하고 있으니...

어미 없이도 너무도 번듯하게 잘 자라준 우리 큰아들.... 너무 고맙다. 아빠도 힘내어 열심히 살께. 그리고 아빠도 내년이면 어느 정도 빚 정리가 되니 어서 돈 모아서 네가 제대하는 그날 우리 함께 살 보금자리 꼭 장만하자꾸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추석때 3년만에 고향을 내려갔더니 시골집에 있는 TV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올해 10월말까지 내가 42인치 LCD TV로 사드리겠다고 전 가족들 앞에서 덜컥 공언을 해버렸다. 우리집에는 3년전에 구입한 42인치 LCD TV가 있는데 올 2월달에 아버지가 전립선암 수술을 위해 올라오셔서 보시고 마음 한켠으로는 서운하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집은 장모님 때문에(장모님이 2007년 5월에 양쪽 눈을 백내장 수술을 하시는 바람에 TV를 편하게 보시라고 LCD TV로 교체해 드렸다) 바꾸었지만 아버지께는 사드리지 못해 자식으로서 너무 죄송했다. 나를 자식으로 둔 것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아버지이신데... 내가 남겨진 빚을 갚아나가느라 빠듯하게 살고있는 중이라 마음처럼 선뜻 선물을 해드릴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내년에 어느 정도 빚 정리가 되면 바로 마련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이었는데, 이번 추석에 집에 가보니 셋째 동생이 올 여름에 집 안방에 벽걸이 에커컨을 장만해드린 것을 보고 맏이인 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마침 10월달에 이틀 강의가 계획되어 있고 또 주머니 사정이 어려우면 다음으로 선물계획을 연기해 버릴 것만 같아 여러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선언을 하게 되었다. 어제 강의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교육원 사장이 간절한 내 의중을 읽으셨는지 바로 강사료를 입금해 주셨다.

막내에게 전화를 하니 마침 시골에 머무르며 농사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하기에 막내 계좌로 돈을 송금해주며 바로 구입해서 설치까지 마쳐달라고 당부를 했다. 나야 불편하고 어려우면 조금만 참고 살면 되지만 어버이는 돌아가시면 끝이겠구나, 살아계실제 하나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드리고 챙겨드리고 잘해드려야겠구나 생각하니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큰애와 쌍둥이자식들에게도 아빠가 지난 추석때 시골 할아버지께 사드리겠다고 약속한 LCD TV를 오늘 강사료를 받아 선물해 드렸다고 말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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