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애와 함께 논산훈련소(연무대) 입소대대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2시 50분, 입소식 시간 1시 30분에는 다소 여유가 있었다. 이런 지루함을 배려한 것일까? 일찍 도착한 입소생과 가족친지들을 위한 위문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이어 입소식 준비를 위해 연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면을 통해 부대 소개와 5주차 교육 소개가 있었다. 이어 가족간 헤어짐의 의식을 마지작으로 입소생들 연병장으로 집결(이 시간 이후부터는 부대배치, 첫 휴가 때 까지는 당분간 가족과 만나지 못한다)

13: 20 사전 예행연습 실시
- 경례연습(우렁찬 목소리로 충성! 구호)
- 국기에 대한 경례 연습(구호가 없음)
- 반동준비 연습(군가 부를 때 사용)
- 방행전환 연습(좌향좌, 우향우 - 부모 친지에게 인사할때 사용)

13:30 입소식 실시

1. 연대장님께 대한 경례

2. 국기에 대한 경례

3. 애국가 제창 - 1절

4.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5. 연대장님 인사말
- 현 연무대는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하사한 이름임
- 28연대와 29연대는 1952년 창설
- 비데와 드럼세탁기가 설치된 막사가 준공됨.
- 당부하는 말(자랑스럽다. 여러분 스스로를 격려하자 "oo야 힘내지! 꼭 승리하자!.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연대장님 인사말 중 열중쉬어

군악대 모습

연대장님 인사말

6. 군가 제창(진짜 사나이)

7. 부모님께 경례


8. 연대장님께 경례(입소식 끝)

환송나온 부모 친지, 애인, 친구들을 향해 마지막 열병 실시



이렇게 입소식은 끝났다. 입소생들은 이제 격리된 훈련시설로 집결하여 관물을 지급받게 된다.
연병장에서 이동하여 바로 옆 관물을 수령받기 위해 집결한 모습. 이 모습이 논산훈련소에서 입소생들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예전 우리가 군 입대시 살벌한 분위기와는 달리 요즘은 입소식도 부드러웠고, 훈련소 내부 시설도 훌륭했으며 교관과 조교들도 많이 친절해지고 밝은 표정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5주간 기본교육 잘 마치고, 군생활 잘 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국군 화이팅!!!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큰애가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했다. 오늘이 초복날, 일산에서 출발하여 논산훈련소까지 가는 길은 찜통 그 자체였다. 차 에어컨을 틀어도 더위에 별로 시원하지도 않다. 차도 작년에 중고차를 인수했는데 장거리를 다녀올 때마다 고장이나  일으키지 않을지 조마조마하다.

일산에서 오전 8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사전에 네이버에서 지도를 보고 갈 행로를 잡았다. 집 -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 서해안고속도로 - 당진IC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 - 공주IC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 - 논산IC에서 빠져나와 동안대로 - 동산교차로를 타면 거리는 편도 약 220.36킬로미터가 나온다.

가는 도중 큰애의 진로에 대한 이야기며,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평소 나에게 거리감을 두고 지내던 녀석인데 군입대를 하려니 속에 덤고 있던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많이 드러낸다. 처형(큰애의 이모)에데 전화가 걸려와서 통화를 하는 도중 어젯밤에 엄마 꿈을 꾸었다고 한다. 통화를 마치고 물었다.

"어제 엄마 꿈을 꾸었니?"
"네"
"엄마가 뭐라고 하든"
"엄마가 유방암이 완치되셨다고 하셨어요"
"...... 엄마가 네가 다 커서 군입대를 하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보고 많이 흐믓해 하시겠다"

논산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려고 갈비집에 들어가 갈비를 시키려고 하자 냉면을 먹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고기라도 먹여서 보내야 애비가 마음이 편하지 않겠니?" 해도 막무가내이다. 내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는 녀석인지라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다른 입소생들은 다들 아빠와 엄마, 동생이나 여자친구들이랑 왔는데 나는 애비 혼자이다. 큰애가 커서 이렇게 입대하는 모습을 하늘나라에서 아내가 지켜보고 있겠지.

입소식을 하기 위해 정해진 소지품(현금 3만원 이내, 주민등록증, 입영통지서)을 제외한 나머지를 맡기고 헤어지려 할 때 현금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고 하자 8000원이 있단다. 3만원을 채워주려 하자 돈을 쓸 일이 없다고 애비의 마지막 호의도 거절해 버린다. 평소 워낙 근검절약하는 애라 돈을 허튼데 쓰지 않은데, 그래도 애비가 쥐어주는 3만원이라도 받으면 돌아오는 애비 마음이 덜 답답할텐데....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할 때는 밤 늦게까지 잠도 자지 않고, 아침이면 일어나지 못하고 비실비실대는 모습을 보고 속이 상해 빨리 군입대라도 했으면 했는데 막상 삼복 더위 때문에 훈련받으며 고생할 큰애를 생각하니 마음이 쨘하다. 나는 지금보다 더 혹독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군생활도 하며 살았건만 그래도 자식을 고생스런 자리로 보내놓으니 안쓰럽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이별행사를 하라는 사회자의 말에 큰애를 꼬옥 껴안고 말했다.
"사랑한다.규야! 네 뒤에는 쌍둥이들과 가족이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 제대해라"
"네, 할머니를 잘 부탁드려요"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나 : "윤아! 할머니 방에서 바느질상자 좀 가져오너라"
재윤 : "바느질 하시게요"
나 : "응, 어제 보니 시장바구니 손잡이가 너덜너덜하더구나"

곁에서 바느질 하는 걸 지켜보던 막내 재윤이 왈~
재윤 : "어쩜 아빠는 바느질 실력이 이렇게 좋으세요"
나 : "응, 아빠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 옷이나 양말이 떨어지면 아빠가 직접 바느질을 해서 기워입곤 했지"
재윤 : "아빠 바느질 실력은 뛰어나세요"
나 : "아빠 바느질 솜씨는 네 엄마도 인정했는걸. 아빠에게 이런 달란트가 있어 가족들을 위해 쓰게되니 아주 행복하구나~"

어제 농협하나로마트를 다녀오다보니 시장바구니 손잡이가 너덜너덜하는 걸 보고 오늘 생각이 나서 배란다에서 기우고 있었더니 쌍둥이자식들이 옆에 와서 내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결혼후, 내가 바느질을 할 줄 안다고 하니 아내가 믿지를 않았다. 그래서 잠시 실력발휘를 했더니 자기보다 바느질 솜씨가 더 낫다며 그 다음부터는 옷이 떨어지거나 자식들 신발주머니나 가방끈이 떨어지면 기우는 것은 모두 내 차지가 되어 버렸다.

손재주는 타고 나는 걸까? 어려서부터 가족들에게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 살았다. 손으로 만드는 것도 칭찬을 들었고, 글씨도 잘 쓴 덕분에 학교 선생님을 대신하여 수업시간 칠판 판서는 내 몫이었다. 서예도 대학 1학년 말에 처음으로 배웠는데 당시 서예학원 원장님이 초보자인데도 예사 실력이 아니라고 계속 배우라고 꼬셨지만 딱 3개월 배우고 그만두었다.

1979년 12월, 9월초부터 4개월간 가정교사를 해서 받은 당시로서는 제법 큰 돈으로 내 2학년 1학기 대학 학비를 남겨놓고 남은 돈으로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웅변, 서예, 합기도 학원에 딱 3개월 다녔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바느질을 하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섬세해진다. 그저 길 따라 한 올, 한 올 집중하여 순서대로 해야 한다. 글을 쓰고 자립심을 키우며 검소한 생활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홀로 살아야 했던 자취생활, 군생활, 아내와의 사별, 자식 셋을 키우고 사는 싱글대디의 삶을 아시고 나에게 이런 달란트를 미리 주신 걸까???

그래 옷, 신발주머니 뿐만 아니라 마음 속 상처나 외로움도 다 나에게 가져와라, 이 애비가 흔적도 없이 다 꿰매줄테니...^^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이리 와서 누워봐요. 내가 머드팩 해줄께"
"남자 무슨 머드팩??? 싫어"

"내가 오이팩 해줄까?"
"에이, 나 시간없어~~"

오늘 거울을 보니
거울 속 내 얼굴이 부석부석하고
머리카락 또한 부쩍 희어지고 많이 빠진 것 같다,
'아내가 머드팩, 오이팩 해준다고 할 때 그때가 행복했지'


# 두~울

하루 네번씩, 1회에 덱사라는 진통제를 7개씩 복용한다.
한끼 식사랑보다 더 많은 양의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 하루를 버틴다.

깊은 밤, 병상 옆에서 쪽 잠을 자는 나를
깨우지 않으려고 시도하다가 나에게 들킨다.
그러면 나는 막 나무란다.
"화장실 가려면 나를 깨우라고 했잖아~~
그러다 넘어지면 다리 부러진단말야.
항암제를 맞느라 가득이나 약한 다리인데~~"

비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퇴근후 국립암센터 유방암 병동으로 달려가
병실에 누워있는 아내 곁에서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며,
그날 집과 학교에서 쌍둥이들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긴장을 풀지 못하고 쪽잠을 자던 그때가 행복했지'


# 세~엣

하루종일 우울한 병실에 누워있을 아내를 생각하서
기분전환을 시켜주기 위해 강의 때 써먹던
유머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6인실 병실 안이 잠시나마 웃음이 넘쳐났다.
내가 퇴근하고 가면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 없는냐고
병실내 환자들이 은근히 기대를 했다.
대부분 아줌들이라 찐~한 Y담을 더 좋아했다.

지금은 모두들 퇴근하고 텅빈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아 밀린 업무를 하고 있다.
이제는 혼자라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

병상에 있던 아내를 위해 매일 인터넷을 뒤지며
유머를 찿던 그때가 행복했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월요일, 모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와 조합측 관계자들과 저녁식사 약속이 있었다. 그 회사의 13년간 숙원사업이었던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을 단 8일만에 마치고,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에 도움을 주어 감사의 의미로 마련된 자리였다.

요즘에는 가급적 술약속을 하지 않는다. 내 나이 50을 넘다보니 이제 나에게는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가야할 시간이 더 적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소중하고 물릴 수 없는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궁리를 하게 된다. 그렇지만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과의 자리는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석을 하는 편이다. 실무에서 일하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의 생생한 현장경험과 애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등 우군이 되어주어야 기금실무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만족도가 높아지고 기금제도에 애정을 갖게 되고 기금제도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식사장소는 일식집, 내 돈으로는 가기 어려운 곳이다. 그날도 소폭에 폭탄주를 겯들여 한참을 마신 것 같다. 우라나라 술 문화는 섞는 문화이다. 술도 맥주와 소주, 양주 등 몇가지 술을 섞어야 하고, 술잔도 서로 돌려야 한다. 노조관계자와 술을 마시면 그 날은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한다.

밤 9시 45분, 1차로 자리를 마치고 여의도백화점을 빠져나와 일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내버스에 올라탄다. 쌍둥이들이 기말고사가 끝났기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니 애비가 자식들 얼굴은 보고 재워야지. 오랜만에 술을 마시니 그것도 폭탄주를 대여섯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올라온다. 술도 자주 마셔야 느는데, 마시지를 않으니 요즘은 한두잔에도 곧 취기가 올라온다. 돈이 없으면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법, 주머니 사정이 허락되면 택시를 타고 빨리 귀가하고 싶었지만 요즘은 최악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지. 영등포역에서 내려 일산행 870번 좌석버스에 몸을 싣는다. 영등포역에서 순환하는 곳이니 자리는 넉넉하다. 당산역까지 가면서 버스안은 승객들로 꽉 찬다.

당산역을 마지막으로 버스는 고양시까지는 논스톱이다. 고양시에 들어서자마자 이제는 승객들이 내리기 시작한다. 행주산성 입구, 화원 앞을 지나 능곡 기차역과 능곡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이 버스도 어쩜 우리네 삶의 모습과 똑같을까?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집착, 욕망, 꿈 등을 하나 둘씩 내려놓기 시작한다. 젊었을 때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을 정도로 넘쳐나던 혈기도, 기개도, 꿈도 시간이 지나면서 버거움과 포기로 이어진다. 이상과 현실이라는 괴리감을 깨닫고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운이 따르지 않았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포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내 옆자리에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던 청년도 목화연립 앞에 이르자 벌떡 일어나 내린다. 그리도 곤히 자던 청년이 자기 내릴 정류장 앞에서는 정확히 깨서 내리는 그 의지가 너무 신기하다~ 삼화연립 앞에서는 경의선 열차 통과때문에 한참을 서 있다. 그렇지 삶에서도 내 의지는 반하여 기다리고 뜻을 접어야 할 때가 있었지. 아무리 살아보려고 발버둥쳐도 일이 풀리지 않고, 아내를 살려보려고, 효능좋은 항암제를 써보고 싶어도 이미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돈을 구할 수가 없어 가슴을 치던 때가 있었지.

삼성당과 섬말다리, 신주택입구, 화훼단지는 내리는 승객이 없어 그냥 통과한다. 어느새 일산병원...일산병원 맨 윗층에는 생을 마감하는 말기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 아내도 2006년 10월 31일부터 11월 10일까지 그 곳에 입원하여 이 세상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눈을 감기 5일전까지도 재활을 꿈꾸며 재활시설을 둘러보았었지...나처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지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유방암말기 판정을 받고서도 포기라는 단어를 비웃으며 눈을 감기 3일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살았던 당찬 여인이었다. 그런 열정과 도전이라는 공통점이 우리를 부부로 엮어주었겠지.

일산병원부터는 출입구가 붐빈다. 내가 내리는 마두1동사무소에서 한 무리의 승객이 내리고 나니 이제 버스 안 좌석은 3분의 2가 비어 있다. 버스는 남은 승객마저도 모두 내려주고 차고지로 들어가 나처럼 내일을 기약하며 하루의 고단한 삶을 마치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이야기 하나

아침 휴대폰 알람 소리에 맞추어 6시 20분에 눈을 뜬다.
재명이부터 깨워 머리를 감긴다.
녀석들은 하루라도 머리를 감지 않으면 세상이 뒤집히는 줄 안다.
큰애가 그러더니 쌍둥이들도 그대로 닮아간다.
원래 자식은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들만 닮는다는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요즘 잠이 많이 부족하다. 10분간을 뒤척이다가 두번째 알람시간에 맞춰 재윤이를 깨운다. 6시 40분이 되어 그제야 일어나 이부자리를 갠다.
아침식사를 뜨는 둥 마는 둥 통근버스 시간에 맞추어 출근을 서두른다.
집에서 보는 신문 두 개도 챙기고, 오늘은 회사 업무가 끝난 후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미래예측전문가과정 교육이 있으니
노트북도 가져가야 한다.

습관적으로 업무가방외에 그 옆에 있는 검정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한참을 가다보니 아뿔싸~ 노트북 가방이 아니라 교회갈 때
들고 다니는 교회가방이다. 가방 안에는 성경책과 교회 주보,
한소망매거진, 노트가 들어있다.


# 이야기 둘

오후 4시 40분, 재명이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막내 재윤이가 글쎄 참고서란 참고서는 혼자서 몽땅 싸들고 먼저
도서관으로 잽싸게 가버렸단다. 전화기도 끊어버리고...
으이그~~ 얄미운 녀석 같으니라구~
참고서들이 한권씩이라 이런 일이 생길까봐 사전에 서로 참고서를
공부하는 날까지 사이좋게 약속하여 지정해 놓았건만 기말시험이
코 앞에 닥치니 마음이 급했나 보다~~
재명이는 집에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대충 사태를 수습시키고 우체국 통장정리를 위해 신관으로 들어가려고
신관 입구에서 신분증을 댔는데 통과음인 "삑"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상하다 싶어 눈을 내려보니 글쎄 회사 신분증이 아니라 지하철을
탈 때 대는 티머니카드를 대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안내하는 젊은 여직원이 막 웃는다.
창피하다~~~


# 이야기 셋

오늘 오후 4시에 모 기업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를 만나기로
일주일전에 약속을 했던 것 같다.
그동안 시간 나는대로 며칠간 자료를 준비했다.
드디어 출발 20분 전에 확인 전화를 했다.
"***씨 오늘 만나기로 했죠?"
"차장님! 오신다는 날이 7월 2일 오후 3시 아녜요?
"그런가요????"

내가 요즘 왜 이러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1
어제 화요일, 미래예측 전문가과정 교육이 끝난 시간이 밤 10시... 김남중 지원팀장이 내일 새벽 3시에 월드컵축구팀 경기가 있으니 오늘은 아예 여기서(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함께 고스톱도 치면서 이야기를 하며 있다가 축구경기를 보고 찜질방에서 샤워하고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아마 부담없는 쏠로였다면 당근 하룻밤 연구원들과 함께 호프를 한잔 하면서 월드컵경기 응원도 하고  교육이야기도 하며 오랜만에 고스톱도 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겠지.  그러나 나는 챙겨야 하는 쌍둥이들이 있고, 내가 진행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빠듯한 일정을 생각하니 얼른 가방을 챙겨 종종걸음으로 강의장을 빠져 나온다.

#2
지난주 금요일(18일), CFO아카데미 주관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영실무 및 운영사례' 이틀 종일교육을 마치고 갈등이 생긴다. 비영리회계 카페 정모가 사당역 부근에서 열리고, 대명콘도 박부장이 오후 강의 때 강의장을 방문하여 교육이 끝나면 저녁이나 함께 하고 가자는 요청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계속 야근, 강의진행 등으로 5일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아왔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가 카페지기로 있는 다음카페 사내근로복지기금동아리 야외정모가 멀리 여수에서 예정되어 있어 교육을 끝내자마자 아침에 차를 두고 온 회사 사무실로 곧장 발걸음을 돌린다. 모임자리에 가면 중간에 쉽게 자리를 일어설 수가 없고, 친한 지인들끼리 술 한잔 하고 가라는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 그럴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참석을 하지 말아야지....

#3
20일 일요일 저녁 8시 40분, 사내근로복지기금카페 야외정모를 무사히 마치고 버스가 서울역에 도착했다. 이번 야외정모는 참석인원만 113명이었고 서울에서 45인승 버스 두 대가 출발을 했다. 이틀 동안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서울역에 내리니 긴장이 풀리며 피로감이 엄습해 온다. 이럴 때는 술 한잔 마시고 그냥 푹 자버려야 하는데....

용평리조트 최부장이 용평리조트 행사 진행팀과 저녁이나 먹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한다. 저녁을 먹으면 또 시간이 길어지고, 낮에 바다낚시를 하면서 과음한 최부장이 또 해장술을 한잔 하자고 들텐데.... 그냥 피곤할텐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푹 쉬라고 하고 종종걸음으로 경의선 열차를 차기 위해 발걸음을 돌린다.

싱글대디인 나는 하고 싶은 일도, 마시고 싶은 술도, 때론 자유스럽게 살고 싶은 욕망도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자식들에게는 아비 뿐만 아니라 어미 역할까지 해야 한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유난히 그 빈자리가 커보이고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불편해지는 것이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내 생전에는 아내는 처갓집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처갓집 제사도 모셨고, 장인 장모님도 모시고 살았고 처갓쪽 가족모임은 모두 우리집에서 했다. 명절이면 처남이나 처형, 처 이모와 이모부, 심지어는 처의 이종언니부부(처 큰이모 큰딸)도 우리 집으로 모여 명절을 보내곤 했다.

자연히 우리집 행사에도 다들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이사때면 처남이나 동서와 처형도 우리집에 와서 짐도 날라주고 전기배선이나 현관보조키 달기 등을 해주곤 했다. 특히 손위 동서는 엘리베이터 회사에도 근무하였고 지금도 엘리베이터 관련 벤처기업에서 이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전기나 전기배선 쪽은 기술과 경험이 많아 우리집 전기관련 문제의 해결사였다.

그러다보니 아내는 집안에 수리할 사항이나 고칠 사항이 생기면 나보다는 형부(나에게는 손위동서)를 찿았고 내 차지까지는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아니 나에게 전기나 배선 일은 아예 미덥다고 맡기려 하지 않았다. 그런 생활을 하며 살아온지 23년째... 이래뵈도 내 어릴 적에는 내가 손재주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집안의 손이 가는 잔일이나 수리는 내게 부탁하여 내가 곧잘 해결해주곤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내 손재주는 바느질만 빼고는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그렇지만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집에 이사 등 큰 일이 있을때마다 다들 와서 도움을 주는 편한 생활이 익숙하고 이를 즐기고 살았는지 모른다.

내 바느질 솜씨는 여자인 아내도 인정을 했다. 하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대학을 마칠때까지 자취생활과 군생활(비록 장교였지만)을 합하면 13년 6개월을 객지생활을 하고 살았으니 바느질이며 취사, 반찬을 만드는 일, 요리, 집안 수리나 전기기구의 간단한 수리 등 어지간한 문제는 스스로 자급자족을 해야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도 이 세상에 없고 지금도 장모님은 내가 모시고 있지만 처갓집 가장 역할은 막내처남이 수년전부터 제사를 모시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넘어갔고 명절에도 모임은 처남집에서 하고 있다. 이번 집 이사를 하면서 현관입구 번호키를 기존에 달려있던 키를 그대로 쓰려고 했더니 장모님이 글씨가 작고 눈에 익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석을 대면 자동으로 열리는 기능이 없어 불편하다고 반대하시며 이전 아파트에서 쓰던 키로 바꾸어달라고 하신다. 손윗동서가 달아보려고 저녁 늦게 와서 2시간이나 시도를 했지만 장비도 부족하고(특히 현관 철문에 구멍을 뚫어 번호키 본체를 고정시키는 일) 시간에 쫓겨 금요일 밤 11시에 미완성의 상태로 두고 월요일에 와서 고쳐주겠다고 하고 가버렸다.

'이제부터는 내가 홀로서기를 해야겠구나!' 마음을 먹고 있던 차였던지라 철물점에 들러 구멍을 뚫는 드릴 바이트날을 구입해서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30분만에 조립을 완료했더니 장모님이나 쌍둥이자식들이 놀라는 표정이다. "자네도 이런 일을 다 할 줄 아는가? 고맙네", "아빠! 아빠가 이걸 하셨다. 와~ 우리 아빠 대단하시다" 내친 김에 거실에 벽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못을 박아 시계도 달고, 가족사진 액자도 달고, 내 공부하는 식탁 위 전등도 이전 전등으로 교체하고... 그동안 숨겨놓은 내 실력을 발휘했더나 가족들이 모두 놀란다.

'짜식들~ 이 아빠를 뭘로 보고.... 아빠도 한번 하면 한다는 사람이란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월 차임 연체시 연 20%의 연체료를 지불키로 한다'

"김차장님! 죄송합니다. 집주인이 이 문구는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요"
"당연한 거죠. 괜찮아요. 저는 월세는 항상 그 이전에 송금을 해주니까요...그런데 월세를 더 일찍 넣으면 깎아주어야 하는 것 아니예요"
"그런 말은 없고, 늦으면 연체이자를 물리겠다니 제 날짜를 지켜달라는 뜻이겠지요'
"알았습니다"

내 지금껏 결혼하여 세번의 내집살이를 빼고 16년 임차생활을 하면서 8번의 아파트 전세와 월세 계약서를 썼었는데 집주인이 월 임차료를 제 날짜에 지급하지 않으면 연 20% 연체이자를 물리겠다는 문구를 넣어달라고 주장하여 계약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제 이사 당일날에는 접 세입자와 집주인이 방충방에 구멍이 난 것을 가지고 부동산중개인 사무실에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모습도 목격했다. 과연 누가 구멍을 냈느냐로 언성이 높아졌는데 전 계약서에 보니 '집주인이 방충망을 새로 교체해준다'는 문구가 발견되어 게임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전세입자가 그럼 잔금을 빨리 달라고 하니 방충망값 50,000원을 주면 송금해주겠다고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는다. 결국 전세금 잔금에서 50,000원을 빼고 송금했다.

집주인은 나보다는 나이가 14살이나 어린데 부동산 중개인 말로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무지 까다롭다고 한다. 나에게도 지금 사는 아파트를 담보를 1억 2000만원을 대출받았으니 월세는 지정 계좌에 제 날짜에 잘 입금시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알았다. 연 20% 고리 연체이자를 물린다는데 연체를 하라고 해도 안할란다~~'

불편한 것을 말해도 씨알도 안 먹힌다. 세입자가 살면서 고치란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사중인 아파트에 집주인이 다녀간 모양이다. 장모님이 '수도꼭지가 불량이니 고쳐달라', '화장실을 실리콘에 곰팡이가 끼어 지저분하니 좀 수리해 달라', '변기가 상태가 좋지 않으니 수리해달라' 등 몇가지를 부탁했으나 수도꼭지 하나만 고치라고 그것도 겨우 35,000원을 주며 출장비는 세입자가 부담하라고 말하며 자리를 뜨더란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수도꼭지를 고치려고 얼른 이마트를 사러 갔더니 가장 싼 것이 35,000이었다.
 
전 가족을 소집했다. "우리 이번 집주인 제대로 만났다. 오늘 전 세입자가 이사를 가면서 방충망에 구멍을 냈다고 50,000원을 변상해주고 갔으니 앞으로는 알아서 행동해라. 특히 쌍둥이들! 집 망가뜨리면 분명히 원상복구 해놓으라고 할 것이나 미리 조심하며 살자. 그리고 이 집에 더 이상 돈 들이지 않는다. 불편해도 2년만 참고 살자!"

오기가 생긴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포장이사비에, 부동산중개수수료에 도시가스 교체, 정수기 교체 등 이래저래 돈도 깨지고, 시간도 빼앗겨 화가 나던 참이었는데... 그래~ 두고보자! 2년 뒤에는 내집마련의 꿈을 꼭 이루고 말꺼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일요일 정발산을 오른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오전까지 1년 6개월동안 베란다에 쌓아두었던 신문 스크랩을 마치고 나니 허리가 끊어질 것 처럼 아프고 눈도 쓰라리다. 장모님도 일요일 아침에 깨끗히 치워진 베란다를 보시더니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네"하신다.

그동안 신문 때문에 참 많이도 시달리며 살았다. 그냥 버리던가 아님 매일 조심씩이라도 했었으면 이런 고통을 받지는 않았으련만 게으르고 미련한 내자신이로고... 몸과 마음이 힘들고 외롭고, 울적할 때마다 나는 정발산을 오른다. 정발산은 내 지친 심신과 영혼을 정제해주는 곳이다.

저녁 해는 떨어져 날은 어둑어둑한 시간이건만 뻐꾸기 한마리가 애처롭게 울어댄다. 저 뻐꾸기는 밤이 되었는데도 왜 저리도 목이 터져라 울어제길꼬? 낮에 떠난 님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일까? 황량하고 거친 도심 속에서 떠나간 짝을 찿는 외침일까? 저 뻐꾸기도 나처럼 짝이 먼저 하늘나라에 간 걸까?

2주전까지만 해도 코끝을 진동하던 아카시아 향기도 이제는 다해서 바닥에 시들어진 꽃잎만 무성히 쌓여있다. 그래 花無十日紅이지~ 핀 꽃도 언젠가는 지고, 사람도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법이지.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너무 일찍 헤어졌기에 아픔과 슬픔은 크다. 함께 했던 시간에 더 잘해줄껄~ 지난 시간을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자명종시계의 시계바늘은 얼마든지 과거로 되돌릴 수 있지만 시간만은 되돌릴 수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성공한 자와 실패한 자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 시간이다.

헬쓰장에서 20분 정도 운동을 한다. 땀 냄새를 맡고 덤비는 산모기 때문에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오늘따라 손수건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불편하다. 평소 별 쓸모없이 생각되던 물건들도 없으면 아쉬운 법이다. 서둘러 반대편으로 내려가 마두약수터에서 세수를 한다. 아직도 수질이 식수에 부적합이다. 부적합 판정글씨를 보니 더 갈증이 난다. 아람누리 공연장을 지난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이곳은 김기인 전 KBS국장님이 주말농장을 했고 김장용 배추를 얻기 위해 자주 왔던 곳이다.

아람음악당에서는 슈만 실내악시리즈1 '슈만과 클라라의 연가' 공연이 열리고 스피커를 타고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온다. 일산에 이런 훌륭한 문화시설이 자리잡고 있는데도 아직 한번도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으니 나도 어지간한 문치인 셈이다. 아까 약수터에서 흘러나온 물이 꽤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흐른다.

롯데백화점 앞 육교를 건너는 순간 고요함과는 완전 딴판인 화려한 네온싸인과 더불어 욕망과 사람들의 말초를 자극하는 소비와 향락문화가 즐비해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호수공원을 지나는 길바닥에는 안마방을 선전하는 찌라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미관광장은 청소년들이 자주 놀러오는 곳인데 경찰은 길거리에 이런 낮뜨거운 전단을 마구 뿌리는 사람들을 단속않고 뭘하고 있는 걸까? 호수공원에는 어둑어둑한데도 산책과 운동을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내 눈에는 부부가 함께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가장 부럽다. 호수공원을 반바퀴 돌고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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