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을 모시고 일산칼국수를 갔다. 최소한 월 2회 닭칼국수를 드시지 못하면 병이 난다고 하실 정도로 닭칼국수 애호가이시다. 장모님은 음식솜씨가 좋으신데 원래 음식솜씨가 좋은 사람은 남이 해준 음식은 잘 안 먹는다. 내 형편이 어려워 자주 외식을 하지 못하지만 우리 식구가 어쩌다 외식을 할 때마다 장모님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느라 음식점 선정에 애를 먹는다.

그런데 장모님이 유일하게 잘 가시는 곳, 외식장소로 의견일치가 되는 곳이 닭칼국수로 유명한 일산칼국수이다. 칼국수에 닭고기와 바지락을 넣는데 국물 맛이 괜찮으면서 양도 넉넉하고 또 다른 외식에 비해 저렴하여(1인당 6000원) 자주 이용하게 된다. 

아내 암 진단 이후 5년간 2007년 추석을 제외하고는 추석과 설에 고향을 거의 내려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아버지 암 수술이후 경과도 볼 겸 아버지를 뵈러 내가 추석 때 고향을 내려간다니 혼자서 아내 차례상을 차릴 걱정에 마음이 울적하신가 보다. 큰애도 군입대를 해버리고 쌍둥이들이 있다지만 아직은 심부름이며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를 못하니...

쌍둥이들이 저녁 늦게 수업이 끝난다고 저녁에 먹을 김밥을 만들어 보내주고 오면서 일산칼국수에 외식이나 가자고 말씀드리니 반대하지 않고 나서신다. 오후 5시 30분, 아직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보니 평소 북적이던 칼국수집이 기다리지 않고 입구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가족단위로 외식을 오다보니 어린애들이 많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어린애들, 뛰어다니는 애들, 자식들이 뛰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를 막고 누워있고 넵킨으로 장난을 쳐도 젊은 부모들은 말릴 생각을 않고 있다. 오히려 천방지축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자식들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건 아닌데, 귀한 자식일수록 더 엄하게 키워야 하거늘....

그런데 장모님이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뒤 신발을 벗어놓는 곳을 가리키며 "어머, 저 애들도 쌍둥이인 모양이네"하신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이제 막 두살정도 되어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있는데 체격도 비슷하고 많이 닮았다. 녀석들도 우리 재명이와 재윤이처럼 꼭 닮은 일란성쌍둥이였다. 그런데 녀석들이 남의 신발을 가지고 노니 엄마가 다가와 나를 가리키며 쌍둥이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애들아, 자꾸 이러면 저기 할아버지가 이놈하며 맴매하신다."

헐~~ 나보고 할아버지라니??? 내가 벌써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정도인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이봐요, 젊은 쌍둥이엄마! 나 할아버지 아니라우~'하는 무언의 항변만 내 입가를 맴돌고 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되돌아보니 추석에 고향을 가지 않은지가 꽤 오래 되었다. 결혼 후 아내와의 약속(설은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고)에 따라 아내가 유방암판정을 받기 전인 2004년까지는 추석명절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고향을 다녀왔는데 2005년과 2006년은 아내 투병생활로 국립암센터에서 보냈고, 2008년과 2009년은 아내 제사상 사건으로 내려가질 않았다.

사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뵈면 상처하고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것만 같고 2007년 제사상 사건으로 장모님이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차려주는 차례상이 최고라고 그냥 집에서 추석차례를 지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바람에 2008년부터 연 2년 주저 앉았다.

아내 제사상 사건은 2007년 추석에 일어났던 한바탕의 헤프님이었다. 할아버지 기일이 추석이다보니 우리집은 추석차례상과 할아버지 제사상이 겸해서 준비한다. 할아버지 제사상이 주가 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부님과 증조모님, 거기에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밥까지 올려지다보니 아내 제사밥을 차릴 공간이 없어 아버지께서(사실 아버지는 며느리 제사밥까지 제사상에 올리면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사전에 둘째 동생에게 아내(큰형수) 제사상을 부탁하셨고, 이를 모르는 어머니가 둘째 작은어머니에게 큰며느리가 신경이 쓰인다고 하자 아내 생전에 사이좋게 지냈던 둘째 숙모께서는 그럼 우리가 쌍둥이엄마 제사밥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나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아내 제사밥을 차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추석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작은아버지 집에를 다녀왔다가 아버지께서 동생집에서도 제사밥을 차렸다고 다녀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면서도 아침 일찍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 제수씨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이후 시골을 다녀와서 조용히 넘어갔던 이 헤프닝이 한참 뒤에 장모님과 어머님이 통화하면서 큰며느리 제사밥을 시댁이 아닌 동생집과 작은아버지 집에서 이중으로 차리게 해서 미안했다고 이실직고를 해버리는 바람에 장모님께서 발끈하셔서 "그래도 장손며느리였는데 시댁 제사상에 오르지도 못하는 그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딸 은경이(집에서 부르던 아내 이름) 제사밥은 내가 직접 차릴테니 자네도 명절에 시골 내려갈 생각은 하지 말게" 엄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중간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제사밥을 올려야 할 대상이 많은 우리집인지라 연로하신 장모님 화가 풀리실 동안은 그냥 장모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올해 3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전림선암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하시는 동안 큰아들인 내가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자주 찿아뵙지도 못해 죄송하여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추석명절을 보낼 수 없었다. 마침 시골을 편하게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회사 게시판에 9월 21일 아침 7시 20분발 용산-목포 KTX 표가 딱 한장이 나와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고향에 가면 내 형편은 모르는 친척들은 다들 '왜 재혼을 하지 않느냐?', '언제 재혼할거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 재혼을 채근하고 독촉할텐데 내려가도 마음은 편치 않을 것 같다. 또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큰아들 면회를 다녀왔다. 연천에 있는 5사단 301대대를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사람에게 처음이란 단어는 설레임을 준다. 큰애들(첫째 자식)의 입대 후 첫 면회인데다 두 달 동안 애비 품을 떠나 훈련받는라 고생했을 자식을 만난다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는지... 장모님은 일주일 전부터 큰애에게 먹일 과일이며 비타민, 부탁한 비염약(평소 비염이 있었는데 입대후 다시 비염이 도진 모양이다) 등을 챙기셨다. 결혼하면서 줄곧 장모님을 모시고 살다보니 큰애를 낳자마자 큰애는 장모님이 키운지라 장모님과 큰애와의 사이는 부모와 자식간 사이 이상으로 각별하고 정이 돈독하다.

큰애가 자라면서 고민을 아빠나 엄마에게 말하기보다 장모님에게 먼저 말하여 역으로 장모님이 나와 아내에게 "큰애에게 신경좀 쓰라"고 말씀을 하여 우리 부부를 난처하게 하고 한편으로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여튼 논란훈련소에 입소하는 날 집을 떠나면서 눈물의 헤어짐을 가졌던 장모님은 면회를 가기로 결정한 일주일 내내 큰애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들떠 계셨다. 

아침부터 서둘러 밥을 챙겨먹고 떡집에 들러 떡을 사고, 차에 가득 주유를 하고, 네비에 소대장이 일러준 '대광리역'을 찍고 일산에서 서울외곽순환소속도로를 진입하여 두시간 40분만에 301대대 위병소 앞에 도착했다. 1985년 6월 30일에 군 전역을 하고, 예비군훈련을 받느라 군부대를 입소하여 훈련을 받기는 하였지만, 내 분신과도 같은 자식이 근무하는 전방 군부대를 민간인 신분으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ROTC장교로 군생활을 하였으니 병사 신분으로 근무하는 자식의 애환과 고충을 다는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군대가 민주화되고 체벌이 사라지고 보급품이나 시설이 개선된 상황에서 근무를 하니 아마도 내가 근무하던 당시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근복무를 하고 있는 것만은 자명한 일이다.

면회를 신청 후 30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선임당직자의 인솔로 걸어오는 두 명의 병사 모습이 보였다. 11개월 전에 25사단에서 군을 제대한 처조카 민규가 장난스레 "군기가 바짝 들어 제식동작을 하고 올 규 모습이 궁금해요"라는 말에 나도 호기심 반, 입대한지 두 달만에 대하는 자식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기대 반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병사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이윽고 가까이 가다오는 병사 모습에서 눈에 익은 큰아들 모습이 확연히 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복을 입고 절도있게 걸어오는 늠름한 모습은 입대전 매일 늦잠을 자고 아침에 깨워야 겨우 일어나 부시시한 얼굴로 아침 식사를 했던 큰아들의 게을렀던 모습을 어느 곳에서도 찿을 수가 없었다. 

당직사관의 배려로(원래 열쇠회관 이용은 면회신청시 사전에 예약한 경우에 허용이 된다고 한다)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열쇠회관으로 나와 점심식사를 하며, 이후 3시간 30분 동안 장모님과 민규 셋이서 그동안 밀렸던 대화를 실컷 나누도록 해주고 나는 차 안으로 와서 밀린 잠을 보충했다. 열쇠회관 내에서도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건강한 규 모습을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고 두 발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모님처럼 나도 큰자식의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큰애가 "선임병이 논산훈련소 출신이 우리 부대에 온 것을 이제껏 딱 세번 봤다. 너도 참 지지리도 복쪼가리가 없는 놈이구나"라고 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마치 논산훈련소 출신 병사는 다들 후방으로 빠지는데 너는 누가 손을 써주지 않아 최전방으로 배치받았구나!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일순간 아내가 살아있었더라면 정말 우리 아들이 최전방으로 배치받지 않았을텐데 하는 자괴감이 든다.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군 훈련병의 부대배치가 공정하게 이루어졌으리란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승훈아! 내가 그동안 알아봤는데, 너 쌍둥이들 다 키워놓고 60넘어서 결혼해라!. 요즘 여자들이 착하기만 하는 남자는 싫단다"

자주 만나는 선배님이 작년 가을에 나를 중매해 보겠다고 일방적으로 선포하였다. "너 같은 놈은 착하겠다. 직장 든든하겠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빚도 다 갚을테니...쬐금만 기다려봐라~ 내가 좋은 소식 줄테니...."

그 선배가 2주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실토를 하였다. "세상 여자들 틀리더라~ 전에는 착한 남자 없냐고 채근대더니 막상 이야기를 꺼내니 착한 것은 기본이고, 돈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지, 애가 셋이라니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라. 애들 다 대학 보내놓고 결혼시켜 놓으면 그때나 생각해 보자더라. 너도 천상 60살 이후에나 결혼해야 되겠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제 자리 그대로인데 많은 바람들이 내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나를 흔든다. 조용히 지나가는 바람이 있는가하면 때로는 나를 심하게 흔드는 폭풍우도 있고, 나를 흠뻑 적시는 홍수까지 동반케 한 바람도 있었다. 그들은 외부 현실적인 잣대를 가지고 수없이 나를 잰다. 재산은 얼마나 되나? 연봉은? 아파트는? 학력은? 직장은? 자식은 몇명이고 지금 몇살인가? 성격은? 부모는 살아계시고 무얼 하시는가? 부모 재산은 많은가? 왜 싱글남이 되었나? 등등....

2030때만 결혼 때 스펙이 있는 줄 알았더니 4050 재혼 때는 그보다 몇배나 더 까다로운 스펙이 존재하고 있음을 이제야 어슴프레 느끼게 된다. 나는 '사랑'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애틋하고, 미안하고, 신뢰와 대화를 생각하며 가슴이 설레곤 했는데 참 순진한 생각이었음을 올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스쳐지나갔던 메가톤급 폭풍 두개가 나의 이런 순진했던 사랑관을 송두리채 뒤흔들어 버렸다. 애초부터 큰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물징과 조건으로 재단하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냉정함으로 내 삶을 바라보며 재설계하는 계기가 되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중년(대부분 이혼을 겪었거나 혼기를 놓쳐 4050이 되어버린)들은 이제 더 이상 고생을 하려 들지 않는다. 자식들에게 희생하려 들지도 않는다. 물질적인 풍요와 자신만의 간섭받지 않는 시간을 배려받으려는 요구와 비중이 훨씬 높아져 버렸다. 한마디로 돈 많고,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있어도 대학을 들어갔거나 결혼하여 자녀교육에서 홀가분한 상태, 그러면서도 여자들 일에 간섭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뒷바라지 해줄 수 있는 성격좋은 싱글남을 원하는 것 같다.

60살 이전에는 부담없이 만나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뜻이 맞으면 한 달에 두세번쯤 만나 성적인 부족함을 채워주는 파트너로 지내다 그래도 괜찮으면 60살 이후에나 결혼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요즘 결혼관과 삶의 가치관을 누가 탓할 수 있겠는가?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고  끔찍하다는데~~~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우리집 청소당번은 항상 내 차지이다. 특히 화장실은... 오늘도 늦은 밤, 욕조 위와 내부, 세면대 위가 지저분하여 팔  걷어붙이고 청소를 마쳤다.

큰애도 그렇고, 쌍둥이들도 학교에서는 교실이며 복도, 화장실 청소를 곧잘 하면서도 집에서는 화장실이 지저분하고 냄새가 나는대도 손도 까닥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병원에서 뇌 MRI를 찍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려나?

거실 청소는 간혹 녀석들이 하지만 유독 회장실 청소는 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조금만 냄새가 나도 코를 막고 얼굴을 찡그리고 야단법석을 떠는 녀석들인데, 대체 이유가 뭘까? 한때는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녀석들이 결국은 청소를 하겠지, 그래도 사람인데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면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겠지 하며 멸날 며칠을 그냥 두고 지켜 보았지만 하지 않았다. 급기야 내가 먼저 두 손 들고 말았다.

나와 쌍둥이들 치열한 눈치싸움에 지친 장모님께서 먼저 락스로 청소를 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녀석들에게 넌즈시 물어보았다.
"명아윤아~ 도대체 너희는 왜 화장실 청소를 않니?"
"화장실은 냄새나고 지저분하잖아요?"
"너희는 안쓰니? 너희도 쓰면서 지저분 하다고 그러니?"
"....."
"그리고 제일 지저분하게 쓰는 사람이 너희들이잖아? 소변을 볼 때 변기에다 흘리는 통에 아빠가 매일 아침에 청소하고 그러잖아?"
"저는 덜 그래요, 윤이가 심하지?"
"나만 그런게아니고 명이형도 그러잖아? 오늘 아침은 안그랬어?"
"으이그~ 좌우지간 너희들 때문에 지저분하니 너희가 더 청소를 잘해야 하는거 아니니?'
"그래도 저희는 싫어요?"
"그럼 누군가가 화장실 청소는 하는데 어떡하지? 지저분하게 그냥 둬?"
"거실이나 방은 청소를 해도 화장실은 못하겠어요"

끙~~ 철없는 자식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날이 언제나 올꺼나? 하기는 할까?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큰애가 논산훈련소에 입대한지 한달이 지났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늦게까지 인터넷을 하고 아침이면 늦잠을 자는 바람에 큰소리도 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이 거슬려 빨리 군대라도 갔으면 했는데 막상 애비 곁을 떠나 군입대를 하게 되니 옆구리가 허전하다. 아내가 내 곁을 떠났을 때와는 또 다른 허전함이다.

뭐랄까? 아내가 떠났을 때는 진짜 친한 친구이자 삶에서 의지했던고 내 반쪽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면 큰애는 내 몸과 마음이 큰애와 함께 논산훈련소에 가있는 것만 같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라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날씨가 더우면 나도 함께 같고, 비가 내리면 나도 함께 비를 맞지 것처럼 느껴진다. 어미가 유방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탓인지 음식도 까다로운 녀석인데 군대 밥(일면 짠밥)이 입에 맞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다리에 혈관종 수술을 해서 오래 걷기가 불편하여 행군을 하면 힘들텐데, 숫기가 없어 여러사람 앞에 잘 나서지도 않은 녀석인데 잘 적응하는지.... 이럴줄 알았으면 군입대 하던 날 내가 우겨서라도 갈비라도 시켜서 먹여서 들여보낼껄~~~ 다음주가 마지막 훈련주간인데 오늘 편지가 훈련소에 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가 되겠네.

# 둘

재명이는 모범생스타일이고 성격이 논리적이다. 눈치가 빠르고 동작이 잽싼 막내 재윤이에게 늘 당하고 산다. 일이 생기면 항상 야단맞는 것은 재명이 몫이다. 애비 눈에는 이것도 속 터지는 일이다. 다른 녀석들처럼 눈치도 있고 세상을 요령껏 살 줄 알면 좋으련만 너무 고지식하고 야단을 치면 울어버리니....

재윤이가 덩치가 큰 탓에(쌍둥이들은 동생이 체격이 크다) 동생 재윤이에게 자주 맞는 모양이다. 큰애가 군대를 가기 전에 재명이가 재윤이 때문에 힘들어한다며 재명이는 논리적으로 잘 설득시켜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다. 쌍둥이녀석 둘 성격을 딱 절반씩 섞어놓으면 좋으련만, 동생에게 자꾸 맞고 채이며 사는 재명이가 안타깝고, 언제까지 애비가 재윤이를 불러 형을 때리지 마라, 형을 놀리지 마라하고 야단치고 다독거리며 정리를 해주어야 하나~~
 
# 셋

재윤이는 막내다. 막내는 막내티를 낸다. 집안을 어질러 놓고, 문제를 일으켜놓고 쏙 빠져나가는 것은 막내이다. 이런 책임감이 부족한 막내 때문에 뒷 정리를 하지 않았다고, 치우지를 않았다고 야단맞는 것은 재명이고 막내는 조용히 이를 즐긴다.

그렇지만 재윤이는 창의성이 뛰어나고 생각이 유연하다. 그리고 집중력이 뛰어나 마음만 먹으면 성적을 올리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으리라 본다.

세 자식들도 자라면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하고 애비 곁을 떠나겠지. 애비 품안에 있을 때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 많이 해보고, 좋은 추억 많이 쌓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이 애비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이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침 기상시간에 휴대폰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집안 구석구석과 가방, 어제 입었던 옷을 살펴보았지만 휴대폰이 없다. 어디갔지? 전화를 걸어보아도 받지를 않는다. 평소 진동으로 해놓았으니 집안에 있다면 벨소리는 울리지 않더라도 진동음은 들릴텐데 이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어젯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택시안에서도 동생과 통화를 했었는데... 택시에 내리면서 택시에 두고 내렸나? 아님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에 길에 떨어뜨렸나? 

어제 마셨던 술이 너무 과했다. 돌려가며 8명이 돌려가며 폭탄주를 마시다보니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흐미~~ 내가 너무 달렸나? 동생도 오라고하여 선배님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나름대로 성과가 있어서 좋았는데 휴대폰을 분실해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휴대폰에는 금붙이(금 반돈)에 티머니까지 달려있는데, 요즘 금값이 그야말로 금값인지라 누군가가 주웠다고 해도 돌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 금붙이나 티머니야 다시 사면 된다지만 휴대폰 안에 친척들과 친구,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 등 수많은 소중한 연락처들을 잃어버렸으니 이를 어이 할꺼나? 큰애가 올해 초에 연락처를 다운받아 놓은 적이 있었는데 군입대를 해버리는 바람에 당장 연락도 되지 않고, 나중에라도 활용할 수 있으면 다행이련만.... 

8월 23일에 회사에서 사원가족들 대상으로 갤석시S 휴대폰을 할인판매한다는데 일주일을 앞에 두고 이 무슨 낭패인가? 휴대폰이 없는 답답한 일주일을 어찌 보낼꺼나? 당장 학원에서 문자메시지로 오는 쌍둥이녀석들 성적이며, 쌍둥이녀석들이 다음주는 개학을 하는데 그러면 급히 연락할 일도 많아지고 한소망교회 일이며,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관련 연락할 사항도 많은데.... 휴대폰을 분실하게 만든 술이 원망스럽고 휴대폰을 분실한 자신이 실망스럽고 속상하다. 나도 우리 사무실 사무국장님처럼 이참에 저녁에는 금주를 해버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일부터 이틀간 쌍둥이자식들이 한소망교회 청소년여름 캠프를 떠난다. 2박 3일이지만 토요일에 미래에셋증권에서 실시하는 '미래에셋 하계금융 인터쉽' 초청 세미나를 예약해 두었기에 토요일 아침에는 데리러 가야 한다.

들떠있는 두 녀석을 데리고 대하마트를 가서 필요한 음료수며 과자를 사서 챙겨준다. 침낭까지 두개를 준비하여 모두 챙겨주고 나니 밤 10시 40분.... 잠을 자지 않고 장난치는 녀석을 반 강제적으로 재우고 그제야 내 책상에 앉는다.

이틀전 쌍둥이들이 온라인 교육프로그램을 설치하다가 무얼 잘못 만졌는지 컴에 문제가 생겼다. 아무 이상없는 물건도 쌍둥이들 손에만 가면 고장이 난다. 집에 있는 우산도 멀쩡한 것이 없다. 무얼 하나 사주어도 호기심이 왕성해 일주일 이상 가지를 않는다. 큰애가 있으면 곧장 컴을 복구시킬텐데 큰애가 군입대를 해버리니 당장 아쉽다. 큰애가 집에 있을 때는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모습이 영 거슬렸는데, 역시 사람은 서로 떠나 살아보아야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나보다. 

SK브로드밴드에 인터넷 고장신청을 했다. 낮에 회사에서 신고를 했을 때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 사이에 A/S 책임을 두고 서로 미루기를 하기에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는데(휴대폰과 결합한 인터넷망 가입은 SK텔레콤이고, 순수한 인터넷망을 가입하는 건 SK브로드밴드라는 설명에 어차피 같은 회사 일인데 왜 일을 핑퐁치느냐고 싫은 소리를 해주었다) 당장 내가 아쉬우니 다시 통화를 할 수 밖에... 간단한 응급처리를 해보았지만 SK브로밴드 회사에서는 장애가 없는데, 우리 집에서 수신이 되지 않는걸 보니 아파트 내부에서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내일 출장수리를 오겠단다.

인터넷을 하지 못하니 무지 무료하다. 오늘 밤은 열대야이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우리집은 에어컨이 없다. 나야 그럭저럭 더위를 참는다지만 연로하신 장모님께는 너무 미안하다. 냉장고에서 복분자주를 꺼내 거푸 두 잔을 비운다. 시원한 복분자주가 목을 타고 내려갈 때는 시원했는데 빈 속에 들이키니 금새 속에서 열기가 올라온다. 아내는 하늘나라로 갔지만 자기를 생각하며 마시라고 담궈둔 복분자주는 남아있다. 부부인연이 어찌 이리도 고약할꼬~~ 복분자주 한 잔을 마저 더 하고 신문스크랩을 한시간 하고 잠자리에 든다.

재명이 녀석이 내 자리에서 자고 있다. 자고 있는 녀석 옮기기도 이제는 힘이 든다. 그냥 내가 알아서 피해서 빈자리에서 자야지.... 아까부터 옆 502동에서 개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자정을 넘기니 더 요란하다. 너무 시끄러워 베란다 유리창문을 닫는다. 좁은 안방에서 셋이 잠을 자려니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등에서는 땀이 맺히고 숨이 턱 막힌다. 다시 일어나 베란다 유리창문을 연다. 개짖는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고 영 신경이 거슬린다. 우리 동 아랫층에서는 드디어 남자의 화난 고함소리가 들려오고 아파트 아래에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들린다. 나도 창문을 열고 "야~ 개새끼야!!!"하고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아무리 좋아하는 애완견이라지만 밤 자정이 넘도록 저렇게 짖어대도록 방치하여 소음공해를 유발하고 아파트 주변 주민들을 잠 못이루게 하고 짜증나게 하는 건 이건 엄연한 민폐이다. 그 개 한마리 대문에 501동, 502동, 503동, 504동 많은 주민들이 밤잠을 설쳤으니... 열대야에 덥기는 하지, 개 짖는 소음까지 더해 왕짜증스런 밤, 잠 못이루는 밤을 보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큰아들이 논산훈련소에 입대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큰애방을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잠자리에 들면서도 큰애방을 둘러보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다. 함께 있을 때는 밤에 늦게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지 않아 답답했고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막상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나니 시원함보다는 허전함이 앞선다.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아 자주 다투고 나를 힘들게 했었지만 화해하고 논산훈련소에서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는 눈물을 감추며 "아빠 사랑해요"하고 울먹이던 모습을 보니 나도 마음이 찡했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수준에 빨리 오르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내고 안달을 했던 내 지난 모습이 생각난다.

못나도 내 자식이고, 잘나도 내자식인 것을.... 큰애가 군입대를 하며 나보고 자신의 방을 쓰라고 했다. 좁은 안방에서 쌍둥이 동생들과 함께 자는 모습이 안타깝고 동생들이 방에 들어와 이것저것 만지는 것이 싫다고.... 나는 그냥 지금처럼 안방에서 동생들과 잠을 자겠다고 했다. 늦둥이 쌍둥이 동생들이 생기는 바람에 큰애를 너무 일찍 떨어뜨려 혼자 자게 했던 것이 큰애를 외롭게 했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느껴 쌍둥이들과는 최대한 함께 지내고 싶었다.

큰애 방에 들어와 있으니 참 낯설다. 큰애는 의무감으로 키운다는데 마치 나와 큰애 사이에 커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것도 자신의 방에 다른 가족이 들어오는 것도 싫어했던 큰애의 성격탓에 큰애 방에 자주 들어가지를 않아서 그런 걸까? 자식이라도 자주 대화하고 자주 안아주고 방에도 들락거리고 함께 하는 시간도 많이 가져야 친밀해지는 것 같다.

2007년 대학 1학년때 기숙사에 있느라 1년 떨어져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때는 고된 훈련도 없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오거나 가서 만날 수 있었지만 군대는 그런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먹는 것도 까다롭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군대에 잘 적응해 나갈런지 걱정이 된다. 날씨는 연일 34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되는데 몸 건강히 훈련은 잘 받고 있는지 어느덧 마음 한켠에는 큰애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차지하고 있다.

자식이 집을 나가면 집에 들어와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편히 잠자리에 드는데, 당분간은 큰애방을 들여다보며 큰애의 체취를 맡으며 허전하고 보고싶은 마음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며칠전부터 목 뒤에 뾰두락지가 나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만지다보니 자꾸 커지는 것 같다. 무슨무슨 법칙처럼 커지니 더 자주 신경이 쓰인다. 보여야 짜든지 말든지 할텐데, 보이지를 않으니 대략난감이다.

이럴 때는 사람 머리 뒤에도 눈이 달렸으면 좋으련만, 아니지 머리 뒤에도 눈이 달리면 당장은 뒤를 볼 수 있게 되어 편하겠지만 또 다른 불편함이 따르겠지... 사람은 몰라서 편한 것도 있기 마련이지. 사람 마음은 알 수가 없어 편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경우가 생긴다면, 내 등 뒤에서 나를 흉보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인간관계가 훨씬 더 힘들어지겠지. 잠을 잘 때도 어느 한쪽 눈은 무거운 머리에 눌려서 아프고 잠도 제대로 자기가 힘들겠지.

아내가 있었으면 아마도 진즉에 단박에 확 짜버렸겠지. 평소 손매가 매서운 사람이라 이런 종기야 걸리면 단칼에 해결해 버리는데. 거~ 참 이상하다. 다람들은 본인 일은 스스로 알아서 다 잘 하는데 본인 종기는 정말로 짜기가 어렵다. 하여튼 지금은 목 뒤 뾰두락지가 꽤나 신경이 쓰인다.


# 둘

샤워를 한다. 아내가 있었으면 SOS 신호를 보내면 얼른 와서 얼굴 찡그리지 않고 내 등을 밀어줄텐데, 자식들을 부르면 얼굴에 얼굴을 찌푸리고 마지못해 와서 건성으로 민다. 평소에 다툴 때나 지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들고 다닐때는 힘도 넘치더니만... 에효~ 관둬라. 싫다는 애들을 시키면서 이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이 애비 혼자서 때타올로 밀란다.


# 셋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를 한다. 이번 달에는 유난히도 굵직굵직한 일들을 많이 잘 처리했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가 평온해 보이지만 발로서는 수도 없이 왕복운동을 하듯 미친듯 뛰어다닌 덕에 그래도 현상유지는 하고 산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친 나를 격려해주고, 힘들어 할 때 위로해주고, 야근을 하거나 세미나를 마치고 밤 늦게 귀가하는 날에 오늘도 고생 많았다고 반가이 나를 맞아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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