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근무시간에 휴대폰진동음이 울린다.
발신번호가 '아부지'로 되어있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면서 아버지를 부를 때는 '아버지'보다는 '아부지'로 부르는 것이 더 좋았고 정감이 있었다. 내가 쓰는 휴대폰의 이름입력어 중 사람이 아닌 단어가 딱 세개 있는데 '우리집', '울마눌', '아부지' 중 하나이다.

나 : "아부지세요?"

아부지 : "응, 승훈이냐? 지금 사무실이냐?"

나 : "네"

아부지 : "가만, 쌍둥이들 생일이 11월 10일 아니냐? 사돈어른 이야기를 들으니 이모가 어제 생일잔치를 준비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 : "쌍둥이들 생일이 원래 양력으로 11월 10일이예요. 그런데 하필이면 애엄마 기일과 날짜가 겹치다보니 애엄마 기일은 음력으로, 쌍둥이들 생일은 양력으로 치르고 있고요"

아부지 : "그러냐? 사돈어른이 검정쌀을 부탁하셨다고 그래서 오늘 한가마 찧어서 보낸다. 그리고 얼마되지는 않지만 돈도 부쳤으니 쌍둥이들에게 필요한 것 사주거라"

나 : "아부지도 힘드시면서 무슨 돈이 있으시다고 돈을 부치세요"

아부지 : "가까이라도 있으면 가서 녀석들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 싶다만 쉽지가 않구나"

나 : "죄송해요. 제가 오히려 돈을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부지 : "네가 열심히 살고 있으니 됐다. 이만 끊는다"

서둘러 전화를 끊는 아부지. 내 밑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느라 그동안 알토란같이 일군 땅을 모두 팔고 지금은 신용불량까지 몰리신 우리 아부지. 그런 아부지께서 쌍둥이들에게 생일을 축하한다며 돈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시니 갑자기 목이 맨다. 당신도 어려운데....

시골을 내려가지 못한 것이 벌써 2년이 넘었구나. 학교 진학이며, 취직, 결혼 등 부모에게 걱정끼쳐드리지 않고 잘 헤쳐나가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던 아부지였다. 그러나 믿었던 큰 자식이 경제적인 어려움, 아내의 사별, 남겨진 세 자식을 데리고 혼자 사는 기막힌 모습이 많이 안타까우신 모양이다. 당신도 젊어서 아내와 사별을 했는데 큰아들인 나도 똑같이 아내와 사별하고 사는 모습에 마음 아파하시며 이제는 쌍둥이엄마 잊고 빨리 새로운 사람 만나라고 하시는 우리 아부지. 2주전 막내가 6학년 전교에서 1등을 했다고 알려드렸더니 기뻐하시던 우리 아부지.

아부지! 저 꼭 재기하렵니다. 지켜봐주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내를 유방암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 요즘은 무슨 암소리만 들어도 귀가
쫑긋해진다. 이제 암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기 때문이다. 항상 건강한
사람도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병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

요즘 일주일이면 3일을 세미나 때문에 밤 12시 가까이 되어야 들어오고
카페에 올릴 글이며, 교육원고 작업을 하느라 집에서 밤 늦도록 하는 일이
많다보니 부쩍 몸에 신경이 쓰인다. 따로 시간을 내어 규칙적으로 운동할
기회가 없으니 가까운 거리는 차를 두고 자주 걷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점점 흰머리가 늘어가는 내 모습, 이마가 넓어져 가는
모습에 놀란다. 하긴 내가 보아도 5년이란 세월동안 부쩍 많이 변해버렸다.
내 어릴 때는 머리가 새까맞다고 할 정도로 머리숫도 많고 피부도 어머니
피부를 그대로 빼어 닮아 뽀얗고 하예서 고모님들이 매우 부러워했었지.
"승훈아! 네 피부는 어쩜 이렇게 곱니? 고모랑 피부를 바꾸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쌍둥이자식들 피부는 아내보다는 다행히 나를 닮은 것 같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혹독한 시련 앞에서 장사없다고 큰 풍파를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지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내가 쓰러지면 어린 자식들 어찌 클 것이며, 뒷바라지를 누가
할 것인지를 생각하니 이를 악물고 살게 되었다.

남들은 6시간 자면 나는 4시간을 자면서 시간을 아껴가며 배우러다니고,
글을 쓰고 강의 교재도 준비하며, 올해 출간을 목표로 하는 책 원고작업도
진행한다. 요즘은 어찌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보통은 새벽 한시나
두시가 훌쩍 지나가기도 한다. 외모를 가꾸는 것은 나에게는 아직은 사치가
아닌가 스스로 위안해 본다. 이런 모습이라도 몸이 건강하고 가족들을 내
힘으로 돌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야지.

어쩌다 속이라도 거북해지고 불편해지면 무슨 큰 병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긴장이 된다. 나마저 아프면 안되기에 이제는 건강도 챙기며 일의 강약을
조절해가며 살아야지.... 이런 마음을 가졌다가도 막상 일을 시작하면 금새
자정을 넘기기 일쑤이니...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회사 내에서나 밖에서 내 처지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묻는 말이다. 그럼 난 "네,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라고 짧게 대답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또 실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번주 일주일도 일 속에 파 묻혀 정신없이 그리고 치열하게 보냈다.
한국인사관리협회에서 새로이 요청받은 강의 준비에,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사내근로복지기금 운용실무' 강의, 근로복지공단 주관으로 수원에서 열린
'선진근로복지제도 사업주초청 세미나' 때문에 금요일 오후에는 수원을
다녀왔고, 월요일과 금요일 이틀은 퇴근후에 지하철을 다고 강남역 인근에
있는 성공을도와주는가게에 가서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에서 실시하는
미래예측기본과정과 전문가과정을 세시간씩 수강하고, 틈틈히 시간을 내어
글 쓰고, 카페관리하고... 일이 없는 날은 일찍 퇴근하여 쌍둥이자식들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마중나가서 데려오고....

오히려 아내와 함께 살 때보다 더 일에 미쳐 시간을 보낸다. 금요일 세미나를
마치고 밤 10시 20분 강남역에서 9700번 직행좌석을 타고 집에 들어오면 밤
11시 40분. 그제서야 '아~ 이번주가 지나갔구나'를 느끼며 컴에 앉아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는 것으로 금요일 하루를 마감한다.

태어나 딱 한번 뿐인 삶! 후회없이 살아보고 싶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어느 지인이 언젠가 나에게 불쑥 물었다.
"너무 힘들게 사시는 것 같아요. 힘들지는 않으세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저는 이해가 않되네요. 저는 그냥 대충 편하게 삽니다"
나는 즐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회사일은 기본이고, 세미나에 참가하여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또 내가 강의를
진행하며 내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러기
위해 강의 원고를 쓰고, 카페나 블로그에 내 주변이야기도 써서 올리고,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쌍둥이자식들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학원앞으로 마중도 나가고, 휴일에는 정발산을 넘어
호수공원을 도는 걷기운동을 하며 건강도 챙기고, 일요일에는 쌍둥이들과
주일예배도 다녀오고 장모님 모시고 일주일치 우리 가족이 먹을 시장을 보고,
가족들과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이 모든 일과들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고 이런 일상속에서 나는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한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한치 양보도 없이 서로 경쟁하는 쌍둥이들을
지켜보며 바르게 자라주는 모습 속에서 싱글대디인 나는 미래의 희망을 본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점심시간 식사를 일찍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서 글을 쓰는데 사무실 다른
직원 전화벨이 울린다. 사무실 직원들은 교환이 아닌 개인별 직통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본인이 없을 경우 대신 당겨받아야 한다. 그전에는
창피하지만 당겨받는 방법을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를 않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문명의 기기들이 부담스럽고 가까이하기가 두려워진다는데
나도 벌써 그런 나이가 되어가나 싶어 배우리가 마음먹었다.

근무시간에는 직원들이 자리에 있어 문제가 되지 않은데, 점심시간이나 출근시간
전에는 내가 혼자 자리에 있을 경우에는 당겨받아야 했기에 한달전 사무실
여직원에게 한번 전화를 당겨받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원리가 너무도 간단했다.
샵표시(#)를 두번 누르면 되는 것을....

사람은 처음부터 자신이 스스로 장벽을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상대의 마음은 확인해보지도 않고 내가 지레 짐작하여
마음속으로 온갖 소설을 쓰며 오해를 만들고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
수로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할 때는 꼭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내가 있을 때에는 한 울타리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아내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고 나에게 나에 대한 평가나 내가 고쳐야 할 점, 장점, 회사의
분위기 등을 알려주곤 했는데 제일 소중한 커뮤니케이션 통로 하나가 사라진
셈이다. 마치 깜깜한 밤을 라이트 두개를 켜고 달리다가 한쪽이 고장나 한개로
가야하는 불편함 이상으로 답답하고 삶이 위축됨을 느낀다.

삶에서 큰 위기가 닥치고,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 만은
없는 일, 이제는 변화를 수용하여 딛고 일어서 내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씩
상황을 바꾸고 고쳐가며 적응해 살아가야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모습 속에서
이전에 가졌던 자신감과 행복함도 하나 둘 다시 회복해 가는 중이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하루종일 시장도 보고, 아내 차례상에 올릴 음식도 준비하며 보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아내가 내 곁을 떠난지 어언 3년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나와 우리 가족들 뇌리에서 아내의 흔적과 소중했던
추억들이 하나 둘씩 점점 지워지고 멀어져 가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예전에는 항상 추석 전전날에는 시골을 내려가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수음식을 아내가 직접 준비하곤 했었는데... 사내들만
북적이는 틈새에서 아내 혼자서 그 많은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안쓰러워
나도 팔을 걷어부치고, 동생들도 불러서 이것 저것 일을 시키곤 했었지.

그 자리를 이제는 고향집이 아닌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나, 자식들이 아내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 있으니 사람의 운명이란 것이 어찌 이다지도
얄궂은지....

저녁에 마지막으로 송편과 약식을 사가지고 온 후 밤 8시에 간편한 복장으로
집을 나선다. 정발산을 올라 야외 헬쓰장에 들렀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이면
운동하는 사람들로서 북적여 운동기구 앞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는데
오늘은 너무도 한산하고 날씨까지 싸늘하여 을씨년스럽다.

이어 호수공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명절 전날인데도 호수공원에는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밤이 깊어서인지 새장안의 단정학도, 공작도, 닭도
우리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걷기 트랙위를 중년의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다. 생전에 나는 아내에게 호수공원을 함께
걷자고 제안을 했는데 걷기를 싫어하는 아내는 싫다고 했다. 함께 운동을
했으면 아마도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거나 더 행복한 생활을 한 후 나이가
들어 걸렸을지도 모를텐데.....그때는 암이 정복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호수공원에 올 때마다 호수공원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아내와 함께 이 길을
손을 잡고 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배여온다. 오늘따라 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보름달이 되기 하루전의 둥그런 달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항상 따스했던 아내의 손이 오늘은 더욱 그립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빠! 아빠 신발이 찢어졌어요"
토요일, 아파트 베란다 밖 1층 정원에 있는 대추나무에 열린 대추를 따서 아내
추석 제사상에도 올리고 처남과 동서집에도 이번 추석명절에 쓰라고 보내주려고
대추나무에 올가가 대추를 한참 따고 있는데 밑에서 대추를 받아담기 위해
바구니를 가지고 있던 큰애가 불쑥 말한다.

정확히 40년전, 나도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을에 아버지를 따라 논일을 도우러 가는데 앞서 가시는 아버지의 고무신 뒤가
찢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부지, 신발 뒤가 떨어졌어요" 했더니 아버지는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것을 들키신 것 같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응, 그러냐"하시며 넘기셨다.

내가 신고있는 신발은 2년전 손윗 동서가 거래처 아는 사람이 신발세일을 하는데
싸다고 동규가 생각나 한컬레를 더 사서 집에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애들이 이런 메이커가 아닌 신발을 신겠는가? 집에 처박혀 있는 것을 보니 멀쩡하여
처박아두기는 아까워 내가 신기 시작했다. 신으면 큰애 발이 나보다 두치수는 커서
신발을 신으면 발이 신 안에서 노는 것 같다. 7개월전에는 그나마 신발과 밑창
고무를 연결하는 본드가 떨어져 걸을 때마다 밑창이 홀딱거려 다시 강력본드를
붙였는데도 다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길을 걸을 때는 표시가 안났는데
나무에 오르기 위해 나무가지를 타니 신발틈새가 벌어진 것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버렸다.

40년전,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생각나 가슴이 미어진다. 시간이 흘러
나도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키우다보니 그때 아버지께서 돈이 없으셔서 뒤축이
떨어진 고무신을 신고 다닌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식들은 아빠가 돈도
버니 당연히 밖에서 아빠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사먹고, 입고 쓰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다 사먹고, 쓰고 다니는 줄 안다. 그러나 부모는 본인보다도 자식들을
생각하여 더 쓰지 못한다.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입히고 먹이기 위해
악착같이 아끼고 저축하며 산다.

편하게 즐기며 살고 싶고 옷도 좋은 것으로 사서 입고다니고 싶지만 참고 산다.
그 돈으로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었을 때, 기뻐하며 웃을 자식들 얼굴을
떠올리며 사고 싶은 마음을 대신한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큰애도
나중에 결혼하여 자식이 생기고 자식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오늘 나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겠지?

이번 추석명절에 고향을 내려가는 것을 포기했는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더해지고 마음이 착잡하다. 아버지게 걱정만 끼쳐드리는 못난 자식이 아버지를
환하게 웃게 해드릴게 될 그날을 기다리며 현재의 위기를 넘기 위해 오늘도 나를
채찍질 한다. 10월에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설립 및 신고사례' 책자를 반드시 펴내
아버지께 꼭 보내드려야겠다. 명절에 내려가지 못하는 자식의 불효를 대신하여....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장모님을 모시고 큰애와 대화동 농협하나로마트 시장을 보러가는데
라디오에서 가수 방미의 '올가을엔 사랑할거야"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코메디언 방미를 가수 방미로 전환시켜준 노래였지.... '날보러와요'는
외국 번안곡이라 히트는 했지만 가수로 별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이 노래는
가을에 노총각, 노처녀들의 쓸쓸한 마음을 그대로 담아서인지 꽤 히트를
쳤었는데....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처럼 이미 가수에서 발을 뗀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이런 노래가 다시 라디오방송을 통해 다시 들려지는 것을 보니 예술의 힘은 참
대단하고 생명력이 길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아마 가을만 되면 이 노래는 혼자인
또는 홀로된 사람들의 고독과 외로움을 달려주기 위해 자주 불려지겠지.

'..... 나홀로 가는 길은 너무 쓸쓸해 너무 쓸쓸해.
창밖에 눈물짓는 나를 닮은 단풍잎 하나
아~~ 가을은 소리없이 본체만체 흘러만가는데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
아~ 그래도 다시 언젠가는 사랑을 할꺼야 사랑할거야~"

'애타게 떠오르는 떠나간 그리운 사람'이란 가사에서 그만 몸이 굳어진다.
이 노래는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진 아픔과 언젠가는 예전의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을
회복하기 위해 다시 사랑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혼자인 사람들은 그렇지않아도 쓸쓸하고 우울한데 이런 노래까지 들으면
더 옆구리가 시리고 허전하다. 사람의 체온이란게 참 이상하다. 사람의 체온은 항상
36.5도로서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생명이 위험하다. 사람의 체온이 떨어질 경우 나머지
사람이 체온을 나눔으로서 어려움에 처해진 사람을 회복시켜주는 것을 드라마에서
자주 본다. 사랑은 서로 체온을 나누는 것과 같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되고 안정감을 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사랑을 나누어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행복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혼자가 되면 외롭고 좋았던 순간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그러나 사랑했던 사람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별을 한 사람은 다시 사랑을 한다는
것이 두렵다. 무엇이랄까? 마치 불을 붙일 쏘시개마저 다 태워버린 마음...
노래는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왜 이리도 가슴이 답답하고 휑할까?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주 어느 지인과 식사를 하고 차 한 잔을 할 자리가 있었다.
10월 중에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고 싶은데 콘도를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어렵게 꺼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편이 나와 비슷했다. 맞벌이로 와이프가 직장을
다니는데 지금껏 자식 한명을 장모님이 맡아서 키워주셨다고 한다.
아리가 혼자이니 안되겠다 싶어 더 늦기전에 자식을 하나 더 낳자고 해도
와이프가 극력 반대한다고 한다.

'아이는 지금 있는 하나로도 족하다. 내 자신의 삶도 중요하다. 이제 아이를
낳으면 또 언제 그 아이를 키울 것이며 그동안 희생하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나도 직장에서 관리자도 승진을 해야 할 시기이고 승진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과를 내어 평가도 좋게 받아야 하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아이를
가지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고 내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에 더 이상 말을
붙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자식이 더 이상 자산도 아니요, 보물도 아니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돈도
벌어야 하고, 직장에서는 승진도 해야 하는데 자식은 이를 가로막는 비용의
주체요, 걸림돌로 인식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자식이 부모에게 손자들을 키워달라고 부탁하면 손자라고
선뜻 맡아주고 키워주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지인과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만약에 내 자식들이 자라서 결혼하여 나에게 손자를
봐달라고 부탁한다면 나는 어떡할 것인가?

10년, 20년뒤에 내가 혼자서 산다면 나는 아마도 십중팔구 글을 쓰거나 강의를
하고 있을텐데 어떤 답변을 해줄 것인가? "아빠도 아빠 삶이 소중하니 봐주기
어렵다?", "그러려무나" 이 둘의 선택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겠지. 아내 생전에
쌍둥이들은 자주 우리 가족이 모여 사는 꿈을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가 크면 5층짜리 집을 지을 거예요. 그래서 1층은 형아 사무실로 쓰고,
2층은 엄마아빠 집과 형과 우리 쌍둥이네 자식들이 놀 수 있는 공동 놀이방을
만들고, 3층은 형아네가 쓰고, 4층과 5층은 우리 쌍둥이들이 각각 살거예요'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제와 어제, 연이틀 회사 사무실 이관형대리 모친상이 있어 현대아산병원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슬하에 5남2녀의 자식이 있는데, 문상객을 맞는 7명의 자식과 사위들,
그리고 그 아래에 줄지어 서있는 손자들의 모습이 참 다복해보였다.

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는 말을
애경사에 다녀보면 실감이 난다. 자식은 키울 때는 힘들고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장성하여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때는 뿌듯함과 대견함을 느끼게 된다.
자식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기에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어제 장례식장에서 어느 직원이 딸만 둘 있는데 하나를 더 낳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하면서 오늘 문상객을 맞는 다복한 자식들 모습을 보니
하나 더 낳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 한다. 다만 큰애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애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터울이 너무 커서(내년에 낳으면 정년퇴직을 할
나이에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고 한다) 낳아도 키울 일이 걱정이라고 다시
얼굴이 어두워진다.

선진국은 애를 낳으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가며 키운다는데 우리나라는
모조리 부모들 몫이니... 게다가 엄청난 사교육비 부담은 허리를 휘게 만든다.
나도 외벌이로 자식 큰애와 쌍둥이자식 셋 뒷바라지를 하려니 너무도 힘들다.
혜택을 주는 것은 고작 연말정산시 자녀소득공제(국가), 다가구전기료 감면(한전),
형제10%할인(학원) 뿐이니 국가에서 아무리 저출산재앙 운운하며 자식을 낳으라고
난리를 쳐도 이런 열악한 보육 및 교육환경에서 누가 선뜻 자식을 낳아 키우려
하겠는가?

다복한 모습에 대비되는 키울 때의 고통과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있어야 저출산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이번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왔다. 1층 베란다 앞 정원에도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과일나무도 해걸이를 하나보다. 작년에는 대추는 씨가 말랐고, 감이 많이 열렸는데
올해는 반대로 감이 씨가 말랐고 대추는 가지가 휘도록 많이 열렸다. 감이든 대추든
번걸아 가면서 많이 열려주니 텅빈 마음이 위안이 된다.

가을이 되니 더 많이 힘들어진다. 계획한 일들이 내 의도대로 되어주지 않을 때, 하긴
모든 일이 내 의도대로 되어주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테지....  아내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지도 않았을테고,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을테고, 그럼 아내가
유방암에도 걸리지도 않았을 테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쪼들리더라도 미리 암보험도
많이 들어놓고 병원비 걱정없이 암치료에만 전념하게 만들었을텐데.... 그리고
무엇보다 주식투자는 못하게 말렸을텐데....

어제 미래예측기본과정에서 아시아미래인재연구소 최윤식소장님이 소장님이 진행하는
미래예측과정 교육에서 나에게 '미래례측기법을 이용한 주식투자'라는 과정을 맡아서
해보라고 하신다. 아~~ 이가 갈리는 주식, 우리 부부를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은
왠수같은 이 주식투자를 앞으로 어찌 요리해서 강의를 진행할까 고민이 된다.

가을이 되니 신경이 더 예민해진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아무래도 힘들어서일까?
예전에는 그냥 별일아니게 넘어가던 큰애의 삐닥해진 행동이 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안타깝게 한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집은 끝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내마음을
항상 억누른다. 애비가 세미나를 끝내고 밤 11시 30분에 집에 들어오면 "다녀오셨어요"
하고 나와서 반갑게 인사하던 녀석이 이틀째 식사시간 이외에는 제 방문을 꼭 닫고
제 방에서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사람은 어리석은 동물이다. 삶과 시간, 돈, 권력이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착각하며
만용을 부린다. 부부가 사별하고 나서야 배우자의 소중함을 깨닫듯 소중한 것을 보내고
잃교 나서야 사람들은 후회를 한다. 삶과 미움, 오해 이 모두가 부질없고 일순간인 것을....
삶이 그저 잠시 허용된 것이라 생각하면 미움도 서운함도 그리 오래가지 않은 것을,
가족간 미워하고 상처받고 살면 그만큼 자신이 힘들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미움도 털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일분 일초라도 빨리 털고 마음 편히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을 왜 모르는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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