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만나 결혼해 살았던 시간이 앞으로 가는 시간이었고,
추억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면,

당신과 헤어진 이후 시간은 거꾸로 가는 시간이고,
당신과의 추억을 지워가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내일이면 설명절이 시작됩니다.
당신과 신혼 초에 약속했던 대로
설은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함께,
추석은 우리 시골 고향집에서 지내자고
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작년 설에도,
이번 설에도 나는 시골을 내려가지 않습니다.

장남에 장손인 내가 시골을 안내려간다고 하니
아버지가 많이 서운해 하셨지만
나는 장모님을 마지막까지 잘 모셔달라는
사랑하는 당신과의 생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우리가 떠나면 혼자서 며칠간
집에 계실 장모님을 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을 떠난 그 다음날부터 전화를 하면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를 부리시는 장모님을
오래 홀로 집에 계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설이면 처남이나 처형,
막내이모님들이 모두 우리집에 모여
윷놀이며 고스톱을 치곤 했지요.
당신은 항상 고스톱자금을 빳빳한 신권으로
미리 바꾸어 놓는 용의주도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없으니
이제는 우리집에서 모임도 갖지 못합니다.
다들 바쁘기도 하겠지만
당신같은 강한 카리스마와
흡인력을 가진 사람이 이제는
없음이겠지요.

또 명절 3일을 어찌 보내야 하나?
명절이면 온 처가집 식구들이 모여 함께 놀던
그 시절이 자꾸 생각납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그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내 머릿 속에서 지워질까요?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당신과 다시 만나 사랑의 추억을
다시 쌓을 수 있을까요?

2008.2.5.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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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모 중앙일간지에 배우자 뒷조사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통화 내역을 직접 훔쳐 보는 것은 이제는 고전적인 방법에 속하고,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통화 내역서를 떼어 보기도 하고, 정보통신(IT) 기술을 동원하여
배우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각종 조회 서비스에 가입하여 문자메시지의 경우는 인터넷으로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인하는 서비스를 몰래 신청해 온라인에서 감시한다고 한다.

e-메일이나 싸이월드, 메신저 등 배우자의 온라인 행적은 비밀번호를 알아내 엿보기도 하는데,
상대방에게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자신의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개통해 배우자의 차량에
설치해
행적을 추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고 심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가 있다. 배우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래 사용한 경우 상대방이 원하면
주민등록법에 따라 처벌받게 되며 동의를 얻지 않고 위치 추적을 한 경우에는 2005년 신설된
"위치정보 보호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미행과 감시는 처음에는 호기심과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배우자가 이러한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나를 감사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상대가 받게되는 마음의 상처는 매우 크다.
부부관계는 신뢰가 생명인데, 신뢰관계가 금이 가게 되면 심하면 별거나 가정파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지금 부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랑하며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어제는 결혼기념일이었다. 집사람은 생전에 기념일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했다.
가족 생일, 결혼기념일, 집사람과 맨처음 만났던 날... 일년에 이 날은 잊지않고 내가 꽃과 선물을
사주곤 했다. 어제도 통근버스를 타고 내려 집 근처에서 아무리 꽃집을 찿았지만 없었다.
예전에 있던 백마3단지 입구 꽃집도 장사가 안되었는지 오늘 가보니 가방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는 꽃을 사가지고 와도 건내줄 집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다.
배우자는 내 의지로 내가 선택한 사람이다. 부부간 사랑의 근간은 상호 신뢰이다.
부부는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신뢰를 잃지 않도록 상호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배우자를 믿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것인가? 부부간은 촌수가 없는 동격이다.
촌수가 없다는 것은 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생각하면 깨어지기도 쉽다는 뜻이리라.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서 점 하나를 더하면 "남"이 되기도 하고,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빼면 "님"이 되기도 한다.

그 점이 바로 사랑이며, 사랑의 종착역은 결혼이다.
부부의 사랑과 결혼을 지탱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서로간의 믿음이다.

헤어지고 나서 "그 때 잘해줄껄" 후회하지 말고,
지금, 같이 살 때 후회없이 아껴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김승훈 200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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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무실 직원이 장인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 요즘 마음고생이 심하다.
오늘 식사를 하면서 불현듯 내뱉는 말이 내 폐부를 찌른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장인어른을 보고 있으니 지난 시절에 맏사위로서
잘못한 일과 서운하게 해드린 일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평소 잘 다투셨습니다. 장모님은 다투시면 항상 저희 집으로
피신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잠시후에 장인어른이 꼭 오십니다. 그럴 적마다
장인어른에게 서운하게 해드린 일이 자꾸 떠오릅니다."

아직 정정하게 활동하실 예순일곱의 연세인데 약 한달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폐암수술을 하였으나 수술후 경과가 좋지않아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어 지난주 금요일부터 뇌사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아내와의 사랑과 만남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백년해로까지는
갈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한지 18년 7개월도 채되지 않았는데
허무하게 막을 내릴 줄 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전에 집사람 고집에는 늘상 지고 살았는데,
눈을 부릅뜨기라도 하거나 언성이 높아지려고하면 그냥 꼬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집안 청소며 화장실 청소, 이부자리 펴고 개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쌍둥이자식들 숙제봐주기 등 심부름이나 청소는 알아서 척척 해주며 살았는데
막상 너무도 일찍 내 곁을 훌쩍 떠나고 나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이내 후회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아내와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으면
더 기쁘게 해줄껄!
하자고 했던일 다 들어주고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줄껄!
내몸이 부서저라 일해서 금전적인 고통을 덜어줄껄!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은 모두 내탓이다.
아내를 먼저 보낸 것은 모두 내탓이다.
이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아내와의 사랑을 어이하랴!

2008.1.28.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서울제2교육관에서
당신의 졸업증서를 받아와
이제야 당신 영정 앞에 바칩니다.

당신이 생전에 그토록 받고자 했던 대학졸업장!
풍족하지 못했던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만을 포기할 수 없어
1981년도에 진학한 한국방송통신대학!
영광의 대학 졸업장을 받는데
무려 26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지난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후 아르바이트로 취직하여
그대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마지막이자 평생 직장이 되어버린
KBS에서도 사람이 만든 성차별과 학력차별 때문에
수없이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온 당신입니다.

학점을 모두 받고서도
결혼과 큰 애 출산 때문에,
직장에서 나와 놀고있던 오빠 완구가게 마련해주고 운영하느라,
지난 1990년 개봉동 물난리때 가게가 침수되어
모든 희망을 잃고 이사하고,
1997년에는 쌍둥이자식을 낳고 키우느라
이 땅의 뭇 여인네들 처럼
당신 자신이 아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느라
기한내에 졸업시험을 치르지 못해
제적처리가 되었고
졸업을 포기해야 했지요.
그리고 내가 신경을 쓸까봐
여지껏 나에게는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만 애를 태운 당신입니다.

그러나 학점을 모두 이수하였으나
졸업시험만 치르지 못한 수료생들의 사정을
딱히 여긴 교육당국의 배려로 졸업논문으로 대체되어
다시 졸업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병 중인 지난해 3월에 듣고
당신은 이제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들떠서 나에게 전화를 주었지요.

작년 5월 유방암 말기 투병 중인
아픈 몸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졸업논문을 만들었습니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되어
10일 간격으로 지독한 항암제를 맞아가며
떨리는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쳐내려 갔습니다.
밀려드는 통증은 진통제를 먹어가며
암세포가 시신경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와
논문작성에 매달렸지요.
한페이지를 작성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암세포도 당신의 뜨거운 열정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결코 희망과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당신이었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런지...

작년 8월, 드디어 졸업논문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기뻐 눈물을 흘리며
"내가 졸업식 때까지 살 수 있을까?"하기에
나는 단호히 말했지요.
"그럼! 어떻게 받게되는 졸업장인데
당연히 살아서 당당하게 받아야지!"

그렇게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을 불사르며 고생한 노력으로 취득한
대학 졸업증서를 주인공인 당신 대신
오늘에야 제가 받아 당신 영정 앞에 바칩니다.

학위번호 : 방송대2006학056xx 최혜숙

김승훈

2007.4.5.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밤 늦게 집사람이 아꼈던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은 지방에 근무하는데 직원 몇사람과 술 한잔하는데 집사람 이야기가 나와
생각이 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누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니
내 목소리라도 들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 전화를 했으며 시간이 흐르면 누님이
잊혀질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생각난다고 울먹인다. "형님! 잘 사십시오!"
하며 전화를 끊는다. 아내가 아꼈던 후배 몇 사람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았던 후배였다.
본인도 나에게 자기가 가장 누님에게 사랑받았던 후배였던 것 같다고 말한다.
후배 전화를 받고보니 사랑하는 아니 이제는 사랑했던 아내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주변에 너무도 많은 사람들을 두고 갔고 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두고 갔다.
사람을 믿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도 아닌것 같다. 사람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주고 갔다. 아직도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지 못하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아내는 인맥관리를 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진심으로 대했고, 한번 내사람이다
생각되면 앞뒤 이해타산 따지지 않고 설사 불이익이 있더라도 끝까지 챙겼다.

지금은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계시는 분이 있다.
그분과 사귄 것은 25년전, 한참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몰리고 그분과 친분관계를
쌓으려 많은 사람들이 그분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분과 식사를 하려면 한달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학력문제로 보직을 내놓고 주위의 차가운 시선과 냉소를 보내며,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모두 떠났을 때, 유일하게 집사람
혼자 그분을 지키고 말 상대가 되어 드렸고 매일 책상도 닦아 드렸다. 나중에 다시
명예회복이 되었을 때 다시 몰려든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 않고 가장 먼저 여직원인
집사람부터 찿았다. 집사람이 아프다고 하자 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시는 의사에게 직접
전화해서 병실을 만들어 달라고 간청하여 입원조치시키고 진찰받도록 해주고, 입원비도
2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쾌히 내 놓으셨다. 아내가 작년 11월 눈을 감았을 때 가장
애통해 하며 가족을 빼고는 3일 내내 영안실을 지켜주신 유일한 분이시다.

사람들이 그분이 어려움에 처하자 모두 그분 곁을 떠났을 때 당신은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분은 분명 재기하실 분이다. 나는 그분 능력을 믿는다. 사람은 기쁨은 같이
해 주는 사람보다 어려울 때 함께 해 주는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나이는 집사람보다 15살이나 더 연상이었지만 집사람 충고를 받아들여 그 어려운
시기를 숨 죽이며 견디어 냈고 그후 다시 화려하게 재기했고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사장으로 재직하고 계신다. 그 누구도 그 분이 다시 재기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나
아내는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사람을 사귀고, 사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만남을 소중히 여겼고 진심으로 대해주었고, 상대의 장점을 인정해준 채워지지 않는
그 빈자리를 아쉬워 한다. 유애리 아나운서가 장례식장에서 나에게 했던 말
"최혜숙씨는 사람을 남기고 간 것 같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승훈, 2007.3.23.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내가 자주 가는 국악카페를 들렀다가 카페를 들렀다가 구음시나위에 발길이 머물렀다.
소리에 박병천, 대금에 박환영, 아쟁은 이태백님이다.

박병천님은 지난달 11월 20일 타계하였으나 '인생은 짧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처럼
비록 박병천님은 갔지만 그분이 남긴 많은 작품은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 이시간에도
생생히 들을 수 있다.

박병천님은 중요무형문화제 진도씻김굿의 굿음악 예능보유자였다. 박병천님의 소리에
대해서는 "박병천의 소리와 장단은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였다.
박병천님은 시골 외갓집 마을 출신으로 어릴적 시골 마을에서 죽은 사람의 혼백을
위로하는 씻김굿을 할 때 자주 뵈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아~ 무정한 저 세월아~ 오고가지 말아라. 이시간도 다 늙는다'
'엊그저께 곱던 얼굴, 오늘보니 다 늙었네'
'엊그저께 검던 머리, 이제보니 다 희어졌네. 세월아~ 세월아~ 무정한 저 세월아~~~'

애절한 대금과 아쟁소리와 함께 박병천님의 恨을 토해해는 구음소리가 어울려 내 가슴
속을 파고 들며 마치 온 몸을 헤집는 것처럼 한 여인을 향한 사모와 그리움, 아쉬움의
마음을 다시 요동치게 한다.

꼬부랑 할아버지와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록 백년을 해로하자고 약속했던 여인!
그 약속을 지키지도 못하고 나와 세 자식, 그것도 눈에 밟혀 마지막까지도 나에게
잘 부탁한다던 어린 쌍둥이 자식을 나에게 덩그러니 맡기고 뭐가 그리 급한지
먼저 훌쩍 가버린 여인!

젊은 나를 첫눈에 단박에 나를 사로잡게 만들었던 맑고 고운 눈과, 목소리를 가졌던 여인!
가냘픈 여인의 몸에서 발산된다고 믿기에도 어려운 넘치는 카리스마와 열정으로 삶을
후회없이 살다 간 여인!
가진 사랑을 가족에게 300프로 진하게 쏟고 갔던 내가 사랑했던 아내였던 여인!

내 곁을 떠난지 1년 하고도 한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곁을 떠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아직도 부르면 대답하며 곧장 내 곁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직장이 같아 다른 부부들보다 붙어있는 시간이 두배로 많아서 였던가,
집에서도 보고, 직장에서도 보고,  출퇴근도 항상 함께 하며 오손도손 함께 사는 모습을
하늘이 시샘해서였던가....
2007.12.2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람이 하는 착각 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자기 곁에 늘 함께 있어줄 것으로 믿는 것이 있다.

나도 작년 사랑하는 아내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만 해도
집사람과 백년해로를 하면서 오래도록 함께 살 것으로 생각했다.
18년 넘게 살면서 이러한 것을 단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 시한부삶 선고를 받고서도 다시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나리란 믿음은 시종일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먼저 가 버린 뒤에야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나와 함께 내곁에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남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있을 때 이전보다 더 잘 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자식을 키우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집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애들을 데리고 살며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다.
오늘 그동안 부모님께 잘해드리지 못한 죄책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이 교차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런 이유없이 내손으로 부모님께 이십만원을 부쳐 드렸다.
인터넷뱅킹을 통하여 송금하려니 받는 사람에게 표시하고 싶은 말을 일곱 글짜로
쓰라기에 그냥 '항상 건강하세요'라고만 썼다.

물론 명절이나 생신 때에 아내가 선물이며 돈을 부쳐드렸지만
내 손으로 감사함과 속죄의 마음으로 송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내 곁에 계실 것만 같은 부모님!
항상 내 곁에서 못한다고 불평하고 잔소리만 했던 아내,
항상 내 곁에서 싸우고 말썽만 피우는 자식들,
항상 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회사 동료들,
항상 출근하여 일할 수 있는 직장....

소중한 이런 것들이 내 곁에 항상 머물러 주지는 않는다.
떠나고 나서, 보내고 나서
그제서야 소중함을 느끼고 후회하고 애통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랑은,
지금 현재 자리에서,
주어진 것을 소중히 지키고 가꾸며 나누어야 한다.

김승훈 2007.1.31.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서 2006년 코스닥 횡령배임사고를 분석해보니 업체수는
20% 증가(2005년 15개 업체에서 2006년 18개 업체), 금액도 20% 증가
(2005년 934억원에서 2006년 1122억)했으며, 평균 사고금액은 62억원이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사람이 인재(人材)가 아니고 인재(人災)에 해당된다.

어제 신문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에서는 이혼을 임원 결격사유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S그룹도 마찬가지이다. 가정사를 잘 돌보지 못하는 종업원에게는
기업의 운영권한도 맡기지 않는다는 게 사내규율이다. 또 다른 대기업인 H그룹의
경우는 그동안 직원들의 사생활에 크게 게의치 않고 능력만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최근에 이 추세가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기업에서는 높은 지위로 올라갈수록 엄격한 자기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책임과 권한이 막강해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신뢰를 생명처럼 관리한다.
기업에서 횡령사고 등 불미스런 사고가 나면 그 기업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다.
신뢰는 쌓기까지는 수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잃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평소에 사소한 것이지만 위기상황에 대비하여 이상징후를 포착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가정은 가장 작고 기본적인 공동체이다. 가정과 회사는 분리하여 생각할 대상이
아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수신제가(修身齊家)' 후에 '치국평천하' 할 것을
지적한 것처럼 가장 작고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 하나도 화목하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 더 큰 조직, 회사를 잘 관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가정을 화평케 하는 것도 많은 노력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가족의 평안과 행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때론 자기 욕심을 절제하고 공통분모와
접점을 도출해내기 위해 구성원인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회사에서는 한없이 관대하던 사람이 집에만 가면 군주처럼 군림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해 가정법률상담소에서 이혼신청가정에 대해 그 원인을 조사해보니,
가정폭력, 배우자의 외도, 생활고 등 여러가지 사유 중에 많은 항목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사람과 계속 살아도 도무지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절망감'
이었다고 한다. 가정에서 가장 가깝다는 배우자와 가족들에게 신뢰와 비전,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밖에 나가 큰 일을 맡아 관리할 수 있겠는가?

지난 3년전 집사람이 나에게 이혼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본인의 투자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본인 채무를 나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으며 나라도 남은 가족 데리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혼을 하면 집사람이 선택할 길은 너무나 뻔했다.
"내가 싫어졌다면 모르지만 그런 일로 이혼할 수는 없소. 나와 헤어져 당신이 나와
살 때보다 더 잘 살고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이혼해 줄 수 있지만 더 불행해
진다면 결코 응할 수 없소. 희노애락을 같이 하기로 약속하고 부부가 되지 않았소?
투자도 당신 혼자 잘 살겠다고 한 것이 아닌데 왜 그 책임을 혼자서 지고 가려고
하시오?"

당시 집사람 요구대로 이혼을 했더라면 지금처럼 금전적인 고통은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혼 때 언약했던 어떤 어려움이 와도 변치않고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노라던 약속을 저버리게 되고 나는 일생동안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어려움이 와도 그 길을 같이 걷는 것이 부부이며 가족이라는 판단에서 끝까지
이혼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그 사건 1년후 유방암을 얻은 집사람의 투병생활을 거치며
집사람을 내 손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거두어 하늘나라로 보내주었다.
이후 집사람  빚을 비록 내가 대부분 떠 안았지만 지금도 내가 내린 결정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이나라, 몸으로 직접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김승훈 2007.1.18.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당신이 하늘나라로 가기전에 같이 근무했던 부서원 박상섭부장과
윤경인씨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여 나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 당신 상 중에 너무 도움을 많이 주어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했건만 시간이 없다고 차일피일 미루다 1년 하고도 20일이 지난
어제야 겨우 마련된 자리여서 내가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나갔습니다.

여의도 별관 뒤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인근 커피숍에 가서 담소를 나누는데,
봉투를 하나 내밀더이다. 작년 당신 발인할 때 같이 참석했던 부서 동료들
네명(박상섭, 윤경인, 신석용, 신승원)이 남겨진 쌍둥이들을 보고 쌍둥이들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자고 뜻을 모아 1주기때 전해주자고 그동안 1년간
통장에 넣어둔 돈이라며 나에게 봉투를 하나 내밀더이다.

식사도 내가 계산하려는데 했는데 극구 말려 내지 못했지, 커피값도
윤경인씨가 얼른 치렀지 결국 입만 달고 다닌 셈이어서 바늘방석인데
봉투까지 받으니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이다. 아마 당신이 있었다면
계산서를 빼았어서라도 계산했을텐데...

당신이 회사를 떠났는데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것도 고마운데 또
봉투까지 받으니 당신의 그림자가 이토록 컸고 짙은 줄 미처
몰랐었습니다. 박상섭부장이 빚정리는 대충 되었느냐고, 용기 잃지
말고 잘 살라고 하며 쌍둥이자식들 안부도 묻기에 잘 자라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봉투 속에는 네명의 직원 이름과 함께
1,020,219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보통 직원들 경조사 때에도 5만원을 하기가 부담스러운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선뜻 내놓은 당신이 근무했던 부서의 동료들이
눈물나도록 고마웠습니다. 부서 일이나, 체육행사, 직원들 애경사에
팔 걷어부치고 앞장서서 일하던 당신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고,
당신하고 일 할 때가 정말 좋았고 그립다고 하더이다.

당신의 육신은 비록 나를 떠났지만 당신이 뿌린 열정과 사랑의 씨앗은
아직도 1년이 지났는데도 내 가슴에 그대로 살아 있으며 나와 우리 자식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2007.12.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호수공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산  대하마트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마트 앞에는 장두감이 먹음직스럽게 진열되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장두감은 대봉이라고도 합니다.
장두감을 보자마자 사랑했던 아내가 생각납니다.

매년 늦가을이면 당신은 순천이 시골집인 친구에게 부탁하여
장두감 두박스와 단감 두박스를 주문하곤 했지요.
내가 과일 중에 유독 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겨울내내 두고 익으면 하나씩 꺼내 먹으라고
결혼하면서부터 작년까지 무려 18년 동안을 줄곧
장두감을 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가장인 내가 잘 먹고 건강해야 한다고
한사코 말리는 데도 당신의 황소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겨울에 먹는 대봉감은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함께 먹자고 해도, 당신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사코 마다했지요. 같이 먹으면 줄어드니 나에게만
주려는 그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습니까?

나중 유방암투병하면서 그제야 대봉감을 받아먹는
당신을 보며 지난 18년 동안 우겨서라도 지금처럼
당신과 함께 먹지 못한 나를 많이도 자책했습니다.

작년에는 당신이 생각나서 대봉감을 일체 사지 않았습니다.
오늘 마트 앞을 지나오면서 당신 생각이 나서
대봉감 한박스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당신에게 주지 못했던 장두감을 이제는 익으면 우리
쌍둥이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당신의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들,
당신에게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후회와 아쉬움을
큰애, 쌍둥이자식 세자식들에게 쏟아 주렵니다.
2007.12.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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