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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고명딸은 두 살이 지나도 걸음마를 떼지 하고 말도 제대로 못했다. 그저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 늦으려니 생각했던 부모님은 그녀가 신생아 황달 때문에 뇌성마비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중략) ‘울릉도 트위스트’로 유명했던 가수‘이시스터즈’
멤버였던 그녀의 어머니(김희선)는 그 후 은퇴를 하고 딸을 뒷바라지하며 지냈다.(중략)
 
어머니가 가수 활동을 그만두고 돌봐야 할 만큼 어린 시절 정유선씨는 지금보다 훨씬 더
몸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든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자기소개를 하기 위해 휘청거리고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교단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일그러진
얼굴로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놀려댔지만, 그녀는 끝까지 자기소개를 마쳤다.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펑펑 울어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녀는 절대 자신의 장애를 숨기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운동회가 되면 “너는 안 뛰어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자신만 특별하게
대하는 것이 싫었다. 걷는 것도 힘든 그녀에게 달리기는 버거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항상
결승선까지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그녀는“그래도 꼴찌는 거의 한 적이 없었다”며 웃어 보였다.
곁에서 딸의 손을 잡고 토닥거리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그런 딸애의 모습을 볼 때면 전 항상 두 번 울었어요. 장한 마음에 울고, 안쓰러운 마음에 또
울었죠. 유선이는 항상 적당히 하는 법이 없어요. 밤새도록 연습을 해야만 겨우 남들만큼 할
수 있었으니까요. 고등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배운 응급처치 연습을 한다면서 저를 앉혀 놓고
하루 종일 붕대로 감았다 풀었다 하면서 어찌나 귀찮게 굴었는지 몰라요(웃음).”

“공부 잘하지, 요리 잘하지, 제가 남편보다 부족한 게 있나요? 오히려 저희 부모님의 결혼반대가
더 심했어요. 남편이 교포라서 미국에서 살아야 하고, 나이가 저보다 여섯 살이나 더 많다고요”
 
“첫째인 하빈이가 ‘엄마는 왜 남들과 다르게 말하냐’고 물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마는 어렸을 때 뇌에 작은 상처가 생겨서
 그런 거라고 설명했죠.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갖고 있다고요. 그 말을 듣더니‘많이 아프냐’며
고사리 손으로 제 머리를 만지더라고요.”
 
하빈이는 공립학교를 다닐 때 버지니아에 있는 학생들의 상위 1% 안에 들어 영재반
(Gifted Talente)을 다닐 정도로 공부를 잘한다. 아이를 갖기 전, ‘혹시 아이의 건강이 좋지
않으면 어쩌나’‘나중에 아이가 나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 어쩌나’하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마지막 결론은 단 하나였다. 나를 키워준 어머니처럼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세상의 편견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엄마는 저런데, 아이는 멀쩡하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는“어릴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고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옅어지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엄마를 당당하게 소개하고 티 없이 밝은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다시 기운을 냈다.
 
요즘 그녀는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가고, 강의 준비를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강의는 일주일에 한 번뿐이지만, 2시간 40분 강의를 위해서 그녀는 나머지 6일을
꼬박 준비해야 한다.
 
하루 종일 바쁜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인지 궁금했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수업 준비까지 마쳐놓은 다음, 새벽 2시쯤에 맥주 한잔을 마시는 순간”
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저절로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란다.
 
“돌이켜 보면 내 발목을 붙잡았던 걸림돌들이 모두 내 인생의 디딤돌이 돼준 것 같다”,
 
- 중앙일보 2009.1.17.

 
뇌성마비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에서
4년째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있는 정유선 교수(38)와 그녀를 오늘에 있게 한 그녀의 어머니
김희선씨의 감동적인 기사를 읽는 내내 그동안 겪었을 마음고생과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집사람이 유방암으로 하늘나라로 가던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쌍둥이들이
나에게 와서 눈물을 글썽이며 "아빠 학교 선생님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리지
마세요. 친구들이 엄마없는 애라고 놀려요"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도 어려서 심한 말더듬을 앓았었다. 수업시간에 발표나 읽기를 할 때 말이 나오지가 않아
얼굴을 찡그리고, 말을 더듬었을 때 나를 향했던 그 많은 친구들의 웃음과 조롱이 큰 상처가
되어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았던 적이 있었다. 만약 말더듬이라는 장애물 앞에서
뛰어넘지 못하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뇌성마비의 장애물을 성공의 디딤돌로 활용하고 극복한 정유선교수와,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끊임없이 심어주고 곁에서 지켜준 어머니 김희선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노력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남들보다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는 길은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는 수 밖에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에 정유선씨의 당당한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또한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이 없었는지 다시 한번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며 장애를 가진 사람을 품어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나도 세 자식을 밝고 건강하게, 어려움과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고 당당히 도전하여
이겨낼 수 있는, 역경을 디딤돌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열정맨으로 키워낼 것을 다짐하게 된다.
2009.1.18.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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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연습을 안 하면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을 안 하면 주위가 알고, 사흘 연습을 안 하면
모두가 안다고 하잖아요. 힘들 때일수록 연습에만 매달렸습니다. 오직 볼을 치기 위해
집중하다보면 힘든 생각이나 쓸데없는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어지거든요."

"다들 아시는 것처럼 저도 힘든 시절을 겪었습니다. 당시에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제는 제가 그분들의 사랑에 대해 보답할 때라고 생각해요."

"기부는 결국 작은 관심과 실천이잖아요. 막연하게나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참고해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단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선수로서의 생활을 충실히 한 후 앞으로 시간을 갖고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정식으로 하는 LPGA 첫 도전인 만큼 신인왕을 노리고 있습니다. 평생에 한 번 있는
타이틀이니 놓칠 수 없잖아요. 세계 무대는 넓고 좋은 선수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더 분발해서 선의의 경쟁을 펼쳐 보일 겁니다."

"골프선수로서 세계 랭킹 1위와 명예의 전당 입성도 제 목표예요. 그러나 무엇보다 존경받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ADT챔피언십 때 소렌스탐을 보면서 존경받는 선수란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가족에게도 충실한 줄리 잉스터처럼 인자한 인상으로도 남고 싶어요. 많은
사람에게 베풀면서 주위의 고마운 분과 더불어 즐겁게 살아가고 싶거든요. 뛰어난 골퍼이자
'인간 신지애'로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이 제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 헤럴드생생뉴스 2009.1.2.


프로 데뷔 첫 해인 2006년 시즌 3승으로 다승왕, 상금왕, 신인왕, 최저타수상, 대상 등 5관왕
수상, 이듬해 2007년엔 25년 묵은 KLPGA 시즌 최다승(5승) 기록을 넘어 9승 달성, 시즌상금
6억원 돌파 등 우승과 상금 관련 국내 최연소 기록을 경신했고, 작년 2008년에는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여자오픈, 미즈노클래식, 우승상금 100만달러가 걸린 ADT챔피언십까지
석권하며 LPGA투어 비회원 사상 첫 3승을 거두고 한국, 미국, 일본, 유럽투어에서 모두
퀄리파잉스쿨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투어에 직행한 최초의 선수, 국내 대회에서 7승을 포함해
올해만 11승 달성, 3년 연속 상금왕에 국내무대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상금 7억원 돌파...

3년째 무서운 기세로 국내 여자골프계를 평정하며 여자골프계의 역사를 갈아치우고 있는
올해 21살의 프로 여자골퍼 신지애 선수의 우승 비결은 혹독한 연습이다. 손과 손목 힘을
기르기 위해 아령과 완력기를 하루에 400번 반복했고 매일 100번씩 타이어를 때렸다.
연습장 앞 20층 아파트 계단을 매일 7번씩 반복하여 뛰어서 오르내려 '무쇠다리'가 되었다.

신지애 선수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신체적인 열악한 조건(키 156㎝, 작은 손)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연습에 매달리며 극복했다. 드라이버샷 연습을 하루에 1000회 이상 반복했고
퍼팅 연습을 7시간 동안 내리 했다. 비거리 270야드에 이르는 호쾌한 드라이버샷과 홀 바로
옆에 꽂히는 정교한 아이언샷은 이러한 혹독한 연습으로 얻어진 선물이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인해 큰 시련(2003년 중학교 3학년때 교통사고로 어머니가 사망하고,
두 동생은 중상을 입고 입원. 이로 인하여 200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합숙소를 나와 프로 전향)과 절박한 가정형편은 신지애를
멀리있는 명예보다 먼저 눈앞의 돈을 택하게 했고 동생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은 최고가 되고자 하는 꿈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고, 연습에 몰입하도록 하여
자신감과 자신만의 전매특허인 과감한 퍼트로 승화시켰다. 연습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신지애 선수는 고등학교 동창의 딸이다.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을 고난이었고, 자랄 때의
가난으로 인해 꿈을 접고 상처도 많이 받았었텐데 매년 불우청소년 장학금이나 불우이웃돕기에
억대의 기부를 하며 선행을 묵묵히 실천해가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지난해 9월엔 경기 용인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2400만원어치의 쌀과 지원금을
건네며 "금액이 많지 않아서 죄송하다"고 말했다는 신지애 선수는 분명 이 시대 역경을 연습을
통해 승리로 바꾼 진정한 인간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기부천사의 모습이다.
2009.1.3.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힘들지만 아직까지 밥은
굶지 않고 잘 견뎌왔어요.”

남들은 손으로 글을 쓰지만, 황원교(49) 시인은 입으로 쓴다.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컴퓨터 자판을 톡톡 건드려 한자 한자 쳐넣는다. 20년 전 교통사고로  경추
4, 5번 사이의 척수가 끊어졌다. 어깨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단 5분간, 한 손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지체없이
목에 칼을 꽂고 싶었단다. 그러나 1996년 등단한 데 이어 시집을 두 권 냈다.
이번엔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바움)를 펴냈다. 58편의 이야기로 270쪽을
채우기까지 그는 몇 번이나 고갯짓을 했을까.

죽는 게 낫겠다며 곡기를 끊었다가 병세가 악화돼 공연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도
했다. 아들의 수족 노릇을 하던 어머님이 병수발 7년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인생관이 달라졌다.
“세상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며 자포자기하듯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정신이 들더군요. 이러다가 나도 정말 풀잎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가겠구나….”

컴퓨터를 들여놓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었다. 어머님을 여읜 이듬해인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000년엔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머님 무덤에 시집을 놓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관절염을 앓는 칠십대 중반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밥을 떠먹인다. “목구멍에서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마세요.’란 말이 곧장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145쪽)


그에겐 아내가 있다. 10여 년 전 자원봉사자로 찾아와 그가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던 유승선씨. 그녀는 7년의 봉사 끝에 수녀가 되겠다던 꿈을 접고 그에게 왔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결혼 후 유방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한다.
아버지는 그런 며느리를 위해 유방암에 좋다는 방울토마토를 손수 기른다. 제 몸도
성치 않은 아버지와 아내이건만, 그를 위해 자다가도 두세 번은 일어나 자세를 바꿔준다.
욕창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

내년쯤엔 소설을 한 편 내어 놓을 요량이다. 산문집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또 기나긴 시간, 그의 입은 자판을 콕콕 누르고 있겠다.


- 중앙일보 2008.12.24.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내 몸, 내 안위부터 챙긴다.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 불편은 2차적인 문제이다. 자신의 불편과 아픔이 더 크고
더 아파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분명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경을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삶에 대한 진지함과 경건함이 느껴지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이용하여 산문집 270쪽을 채우기 위해 10년이 걸렸으며,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저는 아직 밥은 굶지 않았으니..."라는
장애를 뛰어넘어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변을 더 걱정하는 황원교 시인의
기사를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들 때문에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닻을 올려 안전한 포구를 떠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안고
출발하여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황원교 시인이 이를 악물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으로 산문집 270쪽을 채우고
있었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지냈고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키지 못하고, 방황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당장의 편안함과 즐거움에 익숙하여 도전과 변화를
거부하고 살았던 삶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보다
진지하게 임하자.


2008.12.26.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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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값어치를 따지지 않고 찾아서 하는 성실함, 고객뿐 아니라 주변 직원에게까지
최선을 다하는 친화력이 고비마다 빛을 발한 것이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기회라도 그게 내 앞에 왔을 때 어떻게 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적성 운운하며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어떤 때는 '이런 걸 하라고 엄마가 공부시키지는 않았는데'라는 자괴감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외부 고객 못지않게 내부 직원과의 융화가 중요하더라”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누가 뭘 시키더라도 ‘4년제 대학까지 나와놓고는 내가 고작 이런
아르바이트나 해서야 되겠어’라는 생각은 안 했다”
“항상 성심성의껏 일하는 자세가 오늘을 있게 한 것 같다”

최근 경제위기로 취업길이 막혀 고통받는 후배들에게
"‘힘들다’고 말하기에 앞서 ‘너 스스로 그만큼 노력했는가’를 먼저 질책하라"
“후배들은 물론 나 스스로도 ‘힘들다’고 느낄 때 항상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며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는 결국 길이 열리게 돼 있다”고 조언한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여름. 하나은행 월곡지점에 번듯한 서울의 4년제 여자대학
전산통계학과 졸업반이었지만 경기침체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일단 비정규직
대학 출신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이서원(33·당시 23세)씨는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8년 하나은행 본점 차세대 인수지원부 과장에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 한파로
공채 출신 정규직 은행원들조차 속속 사표를 쓰고 쫓겨나가던 시절에 들어온 아
르바이트생이 계약직·정규직을 거쳐 책임자급(과장)까지 오른 것이다.

아르바이트 신분일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 서서 차 심부름하고
설거지하면서 한 달에 쥔 돈은 50만~60만원이 전부. 훨씬 나이가 어린 여상 출신 정규직
행원들 월급의 반의반도 안 되는 적은 돈이었만 그저 묵묵히 내 일, 네 일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항상 누구한테나 웃었다. 실적은 물론 고객들로부터 평판도 좋아 비슷한 또래의
4년제 대학 졸업 공채들보다 승진이 더 빨랐다. 고객 만족을 인정받아 받는
‘이달의 우수 행원상’인 별도 아홉 번이나 받았다. 하나은행 6800여 명의 행원 중 별 9개를
받은 사람은 100명도 안 된다.
 .
이 과장은 98년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초과근무를 밥 먹듯이 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시급이 나왔지만 늦게까지 일했다. 돈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었지만 선배들이
퇴근할 때까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했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남이 알아주는 일은 더욱
아니었지만 “아무리 아파도 은행에 와서 아팠다”고 회고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99년 4월 계약직으로 채용됐다. 금융회사 경력이 최소 2년 이상
필요했지만 지점장이 강력하게 추천해 준 덕분에 이례적으로 1년도 안 돼 기회를 잡았다.
당시 하나은행에선 보람은행과의 합병으로 많은 사람이 명퇴했다. 하지만 이 과장에겐
거꾸로 새롭게 기회가 열린 셈이다.

계약직 창구직원으로 일할 때 이 과장은 ‘푼돈’을 가져오는 고객도 다 기억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이렇게 고객을 기억하니 예금할 일이 있으면 일부러 그를 찾았다.
특별히 상담 기술이 좋지 않아도 실적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밝은 성격과 친화력은 조직생활에서 항상 큰 경쟁력이었다. 그는 계약직 채용
이후 정식 업무교육이나 연수 없이 곧바로 창구에 앉다 보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은행업무가 끝나고 정산을 하면 늘 계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 언니들이 그를
위해 항상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주고 노하우를 알려줬다.
 
<중앙일보 2008년 12월 11일>

흘린 땀은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아무리 큰 장애도, 불가능하게만 느껴지던
일들도 하고자 하는 열정과 도전 앞에서는 길이 열리고 일이 풀리게 된다.
혹독한 IMF구제금융하에서 은행 아르바이트로 들어가 온갖 어려움을 참으며 오직
자신의 성실함과 노력, 친화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정규직 행원보다 더 일찍 과장
직위에 오른 이서원과장의 입지전적인 성공사례를 보며 아직도 세상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열심히 일한만큼 대우받는 공정한 곳임을 느끼게 한다.

지난 IMF금융위기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는 요즘이다. 위기와 기회는 항상 공존하며,
어려울수록 위축되지 말고 나도 어려우면 남들도 똑같이 힘들다는 마음으로 희망을
포기하지 말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

가까운 내부 동료들을 감동시키며 그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인 그녀의 생존전략과
성실함, 땀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2008.12.11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나는 식품영양학 전공에다 국내 박사예요. 그런 사람이 하버드 나온 교수보다 더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어요. 그것도 몇십만 부씩…. 고현정(탤런트)도 아닌데, 이 나이에
시청률을 30%까지 끌어올렸고요. 회장님, 사장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 암환자…
누가 내 강의를 듣든 다들 몰입하세요. 사람들이 그 비결이 뭐냐고 묻는데, 나는 독서에서
나온 생각하는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브랜드와 스토리를 생각하는 힘이 있으면 엿장수도 부자가 될 수 있지만,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대학을 나와도 아무 데도 쓸 곳이 없는 사람이 되는 시대입니다.”

“문제에 기반을 둔 교육을 시작할 겁니다. 교수는 강의하고, 학생은 리포트를 제출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발표하고 교수와 함께 토론해서 해답을 찾는 방식이지요. 1~2학년 때
교양과목에서 고전 5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할 겁니다. 예를 들어 이번 가을 학기
교양과목에 ‘키워드로 읽는 오늘’이란 강좌를 만들었는데요. 자연과학·인문학·법학 등 각
분야 교수가 돌아가며 강의를 합니다. 여러 각도에서 사회적 이슈를 풀어가다 보면
중앙SUNDAY에서 제시한 ‘다빈치형 인재’가 나오지 않을까요.”

“우리 학교가 여자 대학인 것은 맞아요.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대한민국 여자가 아니라
세계 속의 인간을 가르치는 총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었어요. 노동력 중심의 사회에서 근력이 강한 남성이 존중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앞으로 열리는 융합시대에선 달라요. 여자라고 해서 남자보다 못할 게 없어요.”

“총장 취임 후 우리 학교 멘토를 맡고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20명과 돌아가며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여성들을 사원으로 쓸 때 무엇이 문제냐.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어요.
여대생이 취업할 때 핸디캡이 뭔지 알아야 하잖아요. CEO들은 ‘책임감이 좀 떨어지고 이기적’
이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조직을 위해 몸을 던지지 않는다는 거죠. 남자들은
‘부하를 위해 내가 죽겠다’고 달려드는데, 그러니까 밑에서 ‘보스’ 하고 따라가는데, 여자들은
‘난 몰라요’ 하니까 부하들이 여자 상사 모시기 싫어하고, 힘들어한다는 겁니다. 신입사원일
때는 우수한데 이사급, 임원급으로 올라가는 확률이 낮다는 것, 그 이유가 뭐냐? 바로
팀워크 부족이라는 겁니다.”

“권리는 똑같이 요구하면서도 ‘난 여자니까’ 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이것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해결책도 역시 교육밖에는 없더군요. ‘뭐든지 훈련이다.
방위보다 특수부대가 센 것은 훈련의 강도가 세서 그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팔기(취업시키기)
위해선 특수부대 요원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OK, 남자가 여자보다 더 훈련을 받은 것은
축구하고 군대 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교수들에게
‘축구 하고 군대 가는 여대생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교수들이 농담하는 줄 알고 웃더군요.
나는 진담인데….

한 총장의 ‘악바리 근성’은 유명하다. 두 자녀를 낳았을 때 산전·산후 휴가를 하루도 쓰지 않았다.
둘째 딸을 낳았을 때는 1월 9일 출산 후 3월 2일 정상 출근했다. 한 총장은 “내 얼굴이 부어서
엉망인 것을 보고 교수들이 일주일만 더 쉬라고 했지만, 수업을 다 마치고 퇴근했다”고 한다.
“내 사전에는 결석, 휴강, 결강이란 단어가 없어요.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는 오후 6시 집에
가서 저녁 먹이고 숙제 봐주고, 다시 밤 9시 학교에 갔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에 퇴근했지요.
다시 6시30분 기상…. 그렇게 하루에 4시간 반 자는 생활을 하니까 책을 10권, 11권씩 쓸 수
있었던 겁니다. 옛날 사진들 보면 머리를 뒤로 묶은 것밖에 없어요. 마흔다섯까지 드라이를
해본 적이 없어요. 머리카락 한 오라기 빗는 시간도 아까워….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이벌 대학은 어디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웃으며) 이화여대란 대답을 원할 텐데, 나는 이대가 좋은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이대가 많이,
많이 앞서 갔으면 좋겠어요. 이대를 견제하고, 교수 뺏어오고, 좋은 프로그램 베껴서 장사하고,
그러면 소경이 자기 닭 잡아먹는 거예요. 대학 운영을 백화점식, 뷔페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다른 것을 해야 해요. 자기 특성화를 해야 해요. 그래야 우리나라도 잘됩니다.”

<중앙SUNDAY 2008.12.7.>


숙명여대 한영실(51) 총장. KBS TV 건강 프로그램(비타민 ‘위대한 밥상’)에 고정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스타 교수’ 반열에 올라 올해 숙명여대 총장까지 올랐다. 메스컴이 낳은
최고의 '스타교수' 출신이지만 그가 내 뱉는 한마디 한마디 말에는 자신만의 삶의 철학이
담겨져 있고 강렬한 신념을 느낄 수 있다.

한총장이 강조하는 키워드 '융합과 변화, 그리고 특성화'는 진정 학교나 회사 뿐만 아니고
개인들 생존이나 발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개인들은
'특성화'대신 '전문성'으로 바꾸어주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의 요건이 되지 않을까.
한영실 총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실험이 조직에, 교직원에게,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교육계에 어떤 변화의 바람과 결과를 가져올 지 사뭇 기대되는 바가 크다.
2008.12.7.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김명민의 연기 인생에 분수령을 이룬 작품을 연출한 PD들은 연기자 김명민을 어떻게
볼까? 김명민의 연기 인생에 중요한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김명민이라는 배우를
재발견하고 도약의 기틀을 마련해준 것이 바로 '
불멸의 이순신'이고, 그가 대단한
배우임을 입증한 것이 '
하얀거탑'이다. 그리고 김명민의 대중의 가슴속에 훌륭한
배우라는 것을 확연하게 심어준 것이 '베토벤 바이러스'다.(중략)

과연 '불멸의 이순신'의 이성주PD, '하얀거탑'의 안판석PD, 그리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PD는 연기자 김명민을 어떻게 말할까.

"김명민의 목소리가 너무 좋아 이순신 역에 캐스팅했다. 김명민이란 배우 때문에 드라마가
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김명민은 동료 연기자 뿐만 아니라 연출자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연기자다. 그러한 노력이 연기의 스펙트럼을
무한정 확장시켰다고 본다"<'불멸의 이순신'의 이성주PD>

"김명민의 눈빛이 좋아 캐스팅을 했다.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이라는 인물을 기가 막히게
소화해냈다. 정말 놀랄 정도로, 기대 이상으로, 어떻게 저렇게 잘할까 싶게 너무 잘했다.
진짜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작업을 하는 내내 들었다. 김명민씨는 일단 연기에 열심히
임하는데다가 머리가 비상하고, 배우로서 꼭 필요한 감성이 발달해 있다"
<'하얀거탑'의 안판석PD>

"김명민씨는 완벽을 추구하며 완벽에 다가가는 연기자다.
개인 스태프랑 농담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계속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다. 생활 전부를 드라마에 쏟아 붓는
사람이고, 치열하게 준비하며 연기에 임하는 연기자이다"<'베토벤 바이러스'의 이재규PD>

오늘의 김명민의 원동력은 바로 상상을 초월한 노력과 훈련, 준비라는 사실이 그와 작업한
세PD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 마이데일리 2008.11.22

오랜 무명생활로 힘들어서 연기를 포기하고 이민을 떠나려고 했던 배우, 김명민이 이제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최고의 연기파 배우 그것도 연기로 관객과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대단한 연기자로 성장했다. 그 비결은 다름아닌 치밀한 준비와 노력, 그리고
훈련이라는 사실을 그와 함께 작업한 세PD가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세PD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실물경기가 바닥이고, 공장은 멈추어 섰고,
종업원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모두가 위기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침체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위기의 시기에 잘나가는 기업과 사람이 있다. 그런 기업과 사람들의
비결도 김명민의 성공비결과 별반 다르기 않을 것이다. 어려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래변화를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고, 열정으로 훈련과 혼신의 노력을 집중하는 자는
결국 살아남는다. 나는 오늘을 내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훈련하는데
부끄럼없이 보냈는가? "당신은 오늘 하루를 후회없이 보냈습니까?"라고 누가 질문한다면
자신있게 "네!"하고 대답할 수 있는가?


2008.11.2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30일 오후 3시, 서울대기초교육원 302동 대형 강의실에 국민배우 이순재(73)씨가
나타났다. '관악초청강연'의 연사로 나선 것이다. 학생들의 환호성과 휘파람이
쏟아졌다. 200여 좌석이 모자라 계단에 앉고 섰다.
이씨는 서울대 철학과 1954년 입학했다. 학생들은 '50년후배'들이었다.

" '대발이 아버지' 이미지 가지고 5~6년은 우려먹을 수 있더라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나이 먹으니까 재수 좋으면 '아버지 역', 재수 없으면 '할아버지 역'이야.
고정된 이미지에 함몰되면 배우는 끝이에요"
'함몰되지 않는 배우',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배우는 백지상태로 스탠바이하는 항상 창의적 여지를 남겨 주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말은 최근 행보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씨는 70년대 들어 더욱
다양한 빛깔을 내고 있다. 2006년 시트콤 '거침없는 하이킥'에서 모든 권위의
틀을 깨뜨렸다. 야동을 보고 들키는 할아버지 역할을 통해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곧바로 사극 '이산'에 출연해 '영조' 역을 소화했다. 이어서 '엄마가 뿔났다'
에서는 최고령 키스신을 통해 황혼의 로맨스를 연출했다. 지금은 '베토벤 바이러스'
에서 오보에 연주자를 맡고 있다. '고착되지 않는 자기 변신', 그 자체가 강한 충고였다.

이날 강연의 제목은 '이순재, 나는 왜 아직도 연기를 하는가 였다'(중략)
"어떤 젊은 후배가 '이 드라마 끝나면 CF가 들어오겠지'라고 말해, 가서 대본이나
제대로 외우라고 했다"라는 말도 했다.
진지함은 '기본의 강조'로 이어졌다. 그는 "한류는 지속되고 있지 않다. 재미 본
친구가 배용준밖에 더 있나. 그건 내용의 빈곤, 질의 빈곤이다. 상업성에 몰입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학교를 나온 여기 학생들은 나가서 구석구석에 가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제대로 해야겠죠. 제대로 하려면 기본을 단단하고 반듯하게 다질 필요가
있습니다. 52년 연기자의 긴 여정이 실은 '탄탄한 기본'에서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 중앙일보 2008년 10월 1일 -  

이순재님의 52년 연기 비결은 '함몰되지 않는 배우'가 되지 않기위해 부단한 변신과
자기관리 노력이 있었고, 그 밑바탕은 '탄탄한 기본'이 뒷받침 되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요인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변칙과 임기응변은 그저 잠시이고 당면한 위기를 넘기더라도
위기는 계속된다. 적당히 현실과 안락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요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너무 심하여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다. 어떤 이는
그저 조용히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지만 조용히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하고 기본을 탄탄하게 다지면서 다가오는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힘든 시기, 나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에 집중하고 어디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가를 냉철히 살펴보아야 한다.
힘든 때일수록 나의 핵심역량에 투자해야 하고 자기계발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2008.10.12.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외환위기 이후 기업현장에서 상시 구조조정이 고착화하면서 기업들은 행복해졌지만,
노조라는 방패막이조차 없는 화이트칼라 샐러리맨들만 죽어난다는 하소연이었다.

문득 지난해 이맘쯤인가 읽었던 '화이트칼라의 위기'라는 제목의 책을 떠올려본다.
작가는 '회사는 잘되는데 왜 화이트칼라의 근로여건은 갈수록 나빠지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한 뒤 '화이트칼라 노동착취'에서 답을 얻어냈다. '비즈니스는 전투이며
그 전투를 감당하지 못하는 직원은 총알받이로나 써야 한다'는 책구절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다.

평균수명이 갈수록 길어지는 반면 직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점점 낮아지는 요즘
세태를 가리켜 '2050시대'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CMI연구소측은 "20대에
경제활동을 시작한다고 가정할 때 평균수명을 고려해 최소 50년은 유효한 경제수명을
만들어야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경영혁신 지원 전문사인
이 연구소가 제시한 '경제수명 늘리기 10계명'을 읽어보니 숨이 턱턱 막힌다.
①도전 :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도 없다. 지금이 마지막이면 기회라고 여겨라...    
⑤인맥 :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를 잡아본 사람을 만나라. 성공적인 인맥 구성을
위한 현명한 시간 운용이 필요하다. ⑥전문성 : 남들과 다른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라.
20대부터 50년을 일하는 시대에는 전문성이 있어야 새로운 시작도 쉽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샐러리맨 현실을 반영하듯 '샐리던트'
라는 말도 생겼다고 한 친구가 전한다. 자격증 취득이나 어학공부 등을 위해 아침
저녁으로 학원에 다니는 직장인들이 많다보니 '샐러리맨+스튜던트(학생)'의 개념이란다.

직장 환경은 갈수록 살벌해지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발빠르게 적응해가는게 한국
샐러리맨들의 강점이 아니겠는가.(후략)

- 문화일보 2005.9.20. 김병직 경제부 차장


요즘 9월 금융위기설에 우리나라가 순채무국으로 전락하기 일보 직전이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처분하고 우리나라를 떠날 경우 우리나라가 제2의 IMF구제금융이
오는 것 아니냐는 경고와 우려가 여기저기에서 나오고 있다.

10년 9개월전, IMF구제금융 신청으로 기업이 줄지어 도산되고 샐러리맨들이 대거
거리로 내몰리던 당시의 암울했던 상황이 떠오르며 샐러리맨들은 그 후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생존에 대비와 자기계발에 어느 정도 힘쓰고 준비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2008.9.3.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그동안 외설시비로 많은 논란과 시비의 불러 일으켰던 문화일보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이원호 작가의 강안남자 2,000회를 기념하는 인터뷰가 있었다.
2002년 1월 2일 연재를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7년째이다.

'강안남자' 2,000회를 맞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연재를 시작할 때 솔직히 여기까지 오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독자들을
어디로든 끌고갈 자신감은 있었다. 연재하면서 즐거움이라면, 역시 뜨거운
관심이다. 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밤 늦게 전화를 걸어 강안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 고위직 관료는 이야기가 조금만 늘어져도 즉각 지적해준다.
이런 관심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물론 노무현 정권 당시 소설이 문제가 되고,
모 국회의원이 '강안남자'를 확대한 패널을 흔들며 비난했을 때 내 자신이
비하되는 듯 해 괴로웠다. 하지만 나는 대중작가이다. 대중소설은 찬반 논란을
일으켜야 한다. 이같은 좋은 일과 나쁜 일들로 인해 대중소설가로서의 목표가
달성됐다."

7년을 이어오면서 소재고갈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없었다. 삶은 변화무쌍하고 사람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 주변의
이야기를 써달라며 소재를 제공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중심은 나의 경험과
취재다. 여성의 인체 구조를 익히고, 여성의 심리를 알기 위해 여러 책을 섭렵했고,
메모했다. 그 노트만 몇 권에 이른다. 물론 룸살롱이나 카바레 등에 가고,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 소설 속 장소를 방문해 풍물을 익혔다. 또 섹스에 관련해
유명한 사람들을 수소문해 직접 찿아가 취재하기도 했다. 10장 넘게 메모해도 겨우
두줄 인용될 정도다. 취재에 꽤 많은 돈이 들어간다."

"내 작품은  해피 엔드다. 나는 그 속에서 희망을 말하려 한다. 부질없는 삶이지만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그래도 또 내일의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그런 희망을
말하고 싶다.

- 문화일보 2008년 8월 13일자  하루 100장 쓰는 '1인 소설공자' 작가 이원호
인터뷰 기사 중에서


강안남자를 읽다보면 어떤 때는 성행위를 묘사하는 대목이 너무 적나라하여
얼굴이 화끈거리고 내 자신 스스로 읽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여서 이 소설을 쓰는
작가가 누구인지 내심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자신을 대중소설 작가로 당당히 말하는 이원호 작가! 대중소설은 찬반 논란을
일으켜야 한다는 소신,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메모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원정 방문하여 풍물을 직접 익히고, 섹스와 관련하여
고수를 수소문하여 찿아가 취재하여 소설에 반영시키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열정과 뚜렷한 목적의식, 그리고 프로기질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작가의 노력으로
강안남자를 읽는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꼈으리라!

"삶은 변화무쌍하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말을 음미하며 앞으로 이원호 작가가
펼칠 무궁한 상상력과 열정과 도전으로 이어나갈 손끝을 기대해 본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본문

미 경제주간지 비지니스위크지는 14일 지난 20년간 효율적 '브레인스토밍'
(자유토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6,000여개 팀을 조사한 전문가 유레카 랜치의
말을 인용, '빅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공식과 3대 원칙을 소개했다.

◈ '빅 아이디어' 산출 공식

비즈니스위크지에 따르면 브레인스토밍 성공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자극 ▲다양성 ▲재미 ▲드려움 ▲협력 ▲개방성 등. 랜치는 이 중 자극과
다양성, 두려움 등 3가지를 주요 변수로 보고, '빅 아이디어 산출 개수 =
자극 × (다양성 ÷ 두려움)'이라 는 공식을 만들었다. 특히 다양성은 가장
강력한 변수로 아이디어 창출에 터보엔진처럼 기하급수적인 영향을 미친다.
랜치는 "빅 아이디어는 업무와 관련된 전혀 상관없는 외부 자극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면서 "바보처럼 보일까 봐, 비웃음을 살까 봐 주저하게 하는 두려움을
없애고, 다양성을 인정할 경우에만 대담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 '빅 아이디어' 를 위한 리더십 3대 원칙

그러나 효과적인 브레인스토밍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필수라는
게 비즈니스위크의 분석이다.
첫번째는 구성원의 지속적인 학습을 유도하는 것. 매달 최소 3권의 학술잡지와
저서, 학술세미나 자료를 읽은 뒤 내용을 요악하게 하면 구성원들이 새로운
사고에 훨씬 자유롭게 반응한다고 잡지는 전했다.
둘째는 반대의견과 합의불일치를 독려하는 것이다. 신선한 사고를 점화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를 초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조직의 '문제요인(death threat)'을 적도록
하는 등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잡지는 덧붙였다.

- 문화일보 2006.6.15. -


위 글은 집사람이 입원하여 암투병하던 시기, 국립암센터 병실에서 집사람
병상을 지키며 밤 늦게 신문스크랩을 해두었던 내용이다.

우리는 회의를 주재하거나 또는 각종 회의에 참여하여 '빅 아이디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구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라고 주문하지만
주문에 그치는 경우를 경험한다. 랜치가 발표한 공식에 의하면 다양성을
크게 인정하고, 비웃음을 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적게 갖도록 배려할 때
'빅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바로 회의이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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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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