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고작 스물한 살 때 체코 프라하에서 민박집을 운영해 유럽 여행객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박아름씨(23). 박씨는 원래 민박 사업을 하기 위해 체코까지
갔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도로서 유학을 떠났던 2005년 당시에는 바이올린 연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동양인 유학생일 뿐이었다.
"처음 원룸을 얻어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는데 저녁 때 바이올린 연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이웃들의 항의가 빗발쳐 경찰까지 찿아왔고, 학교 연습실도 사용 허가를
얻기가 어려워 스트레스가 심했죠."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그는 단독주택에 들어가기로 했다. 발품을 팔아서 찿아보니
330㎡가 넘는 펜트하우스 수준의 이층집을 한국 돈으로 300만원이면 1년 동안
빌릴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몇주가 흐른 어느 날,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박씨는 3명의 한국인 여성 관광객을 만나면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 기차를 놓친 이들은 숙소를 찿지 못해 박씨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넓은
집에서 혼자 살았던 박씨는 이들을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타국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반가운 나머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이 분들은
원래 이틀 예정으로 체코에 왔는데 일주일이나 머물다 갔어요. 그로부터 며칠 후
또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이 분들에게 소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민박집이 아니라는 그의 설명도 소용없었다. 바로 그 다음날 집으로 들이닥친 그들을
내칠 수 없었고, 이를 계기로 박씨는 민박을 운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분의 방이 3개나 됐고, 여행객들이 잠만 자고 갈 수 있도록 하여 용돈을 벌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었다. 당장 그는 이케아(유럽의 조립식 가구 브랜드)로 달려가 침대
두 세트를 들여놓고 인터넷 사이트에 민박을 한다는 글을 올렸다. 한 방에 여러 명이
묵는 경우 일인당 20유로(약 2만 8000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기조차 제대로 장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입소문은 빨랐다. 몇 주도 지나지
않아 하루에 10명이 넘는 여행객들이 몰려왔던 것이다 나중에는 예약이 밀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준비가 부족했던 그는 버는 돈으로 그 때 그 때 침대, 소파, 식기를 장만하여 점점
민박집의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1층에 있던 방 3개는 여행객들에게 내주고, 하늘이
보이는 2층의 넓은 방은 자신이 사용했지만 이도 포기하기로 했다. 2층까지 새 가구를
들여 신혼여행객을 위한 스위트룸으로 꾸몄다. 원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숙박비는 110유로(약 15만원)을 받기로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민박을 시작한지 한 달 반 만에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한국 돈 280만원을 주고 비슷한 크기의 집 한 채를 더 빌려
본격적인 민박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프라하에 있는 수많은 한인 대상 민박집 중에서 두번째로 손님이 많았을 정도였죠.
두 집에서 총 30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었는데 늘 꽉 찼으니까요"
러시아 유학생 한 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청소를 전담하게 하고,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30인분의 한식 요리를 혼자서 해냈다. 삼겹살, 쇠고기, 오이무침,
조기구이, 미역국 등 반찬도 푸짐하게 했다. 김치도 직접 담갔다. 일주일에 40포기가
넘는 양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늘어나고 사업이 커져가는 재미에 푹 빠져 힘든지도
몰랐다고 한다.
"유럽 여행객들은 보통 20~30대가 많은데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감각으로 집을 꾸미고 함께 어울리다보니 손님들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중략)
운도 따라주어 2006년 그가 민박집을 운영할 때는 마침 독일월드컵이 열렸을 때였다.
바가지요금에 질린 여행객들은 독일에 경기만 보러가고 체코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방학이었던 여름성수기는 가히 대박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관두고 온 가족이 민박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나를 모델로
삼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이미 많은 민박집이 있었지만 잘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요."
그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손익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투자한 만큼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여행객들을 친구나 가족처럼 대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았던 게
오히려 좋은 소문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이런 호응이 지나쳐 방송국이나
출판사, 관련 기업에서 다양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바로 이때 그는 민박집을 접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주변의 지나친 관심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연히 시작한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하고 싶어요. 철저하게
준비해서 나만의 사업체를 다시 한번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2007년 1월 그는 음악 명문인 프라하 컨서바토리를 수료했지만 이제 음악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한다. 민박집 운영을 했던 1년동안 그는 1억원이 넘는 학비와 레슨비를 스스로
해결하고,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큰 수확은 사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고 말한다.
"이상하게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행복한 거예요. 음악 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이 주시던
용돈으로 예쁜 옷을 살때보다 말이죠.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사업체를 늘려나가는 게 바로
내 길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1년동안 책 쓰는 일에만 매달렸다. 체코에서 민박집을
운영했던 경험과 손님들에게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여행정보를 함께 담았다고 한다.
(후략)
- 이코노미플러스 2008년 3월호 -
한편의 드라마같은 젊은 여성 박아름씨의 체코 민박운영 성공체험을 나는 이전까지
다른 스크랩이야기와는 달리 글을 비교적 길게 소개해야만 했다. 문맥을 생략하면
그 과정이 단절되어 생생한 느낌과 감동이 반감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연히 찿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만약
뜻하지 않게 만난 한국인 여성 관광객 3명을 친절하게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재워주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면, 밀려드는 여행객에서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던들 그녀는 지금쯤 평범한 음악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 수입범위 내에서 차근차근 집이며 집기를 장만하고 차근차근 영역을 넗혀간
재무전략이나 손익에 집착하지 않고 여행객을 친구나 가족처럼 대하여 아끼지않고
지원해 주었던 고객관리전략도 주효했던 것 같다.
사람이 사업을 시작할 때 못지않게 떠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을 때, 언론과 주변에서 러브콜을 보낼 때 그녀는 과감히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
우연히 찿아온 성공을 자신이 유능하고 잘나서 성공한 것으로 너무 과신하다보면
무리가 따르게 되고, 시장은 포화되고 과잉과 중복투자로 실패에 이르는 것은 지끔껏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3년전 들은 공병호 박사의 강연내용이 생각난다. 앞으로 블루오션은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체험에 관한 실전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다양한 실전경험, 그리고 이를 체계화하기
위한 메모 습관, 치밀한 계획과 준비, 절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김승훈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박아름씨(23). 박씨는 원래 민박 사업을 하기 위해 체코까지
갔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도로서 유학을 떠났던 2005년 당시에는 바이올린 연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동양인 유학생일 뿐이었다.
"처음 원룸을 얻어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는데 저녁 때 바이올린 연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이웃들의 항의가 빗발쳐 경찰까지 찿아왔고, 학교 연습실도 사용 허가를
얻기가 어려워 스트레스가 심했죠."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그는 단독주택에 들어가기로 했다. 발품을 팔아서 찿아보니
330㎡가 넘는 펜트하우스 수준의 이층집을 한국 돈으로 300만원이면 1년 동안
빌릴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몇주가 흐른 어느 날,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박씨는 3명의 한국인 여성 관광객을 만나면서 뜻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 기차를 놓친 이들은 숙소를 찿지 못해 박씨에게 통역을 부탁했고, 넓은
집에서 혼자 살았던 박씨는 이들을 기꺼이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타국에서 한국인들을 만나 반가운 나머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이 분들은
원래 이틀 예정으로 체코에 왔는데 일주일이나 머물다 갔어요. 그로부터 며칠 후
또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전화가 온 거예요. 이 분들에게 소개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민박집이 아니라는 그의 설명도 소용없었다. 바로 그 다음날 집으로 들이닥친 그들을
내칠 수 없었고, 이를 계기로 박씨는 민박을 운영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분의 방이 3개나 됐고, 여행객들이 잠만 자고 갈 수 있도록 하여 용돈을 벌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이었다. 당장 그는 이케아(유럽의 조립식 가구 브랜드)로 달려가 침대
두 세트를 들여놓고 인터넷 사이트에 민박을 한다는 글을 올렸다. 한 방에 여러 명이
묵는 경우 일인당 20유로(약 2만 8000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기조차 제대로 장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입소문은 빨랐다. 몇 주도 지나지
않아 하루에 10명이 넘는 여행객들이 몰려왔던 것이다 나중에는 예약이 밀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준비가 부족했던 그는 버는 돈으로 그 때 그 때 침대, 소파, 식기를 장만하여 점점
민박집의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1층에 있던 방 3개는 여행객들에게 내주고, 하늘이
보이는 2층의 넓은 방은 자신이 사용했지만 이도 포기하기로 했다. 2층까지 새 가구를
들여 신혼여행객을 위한 스위트룸으로 꾸몄다. 원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숙박비는 110유로(약 15만원)을 받기로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민박을 시작한지 한 달 반 만에 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결국 한국 돈 280만원을 주고 비슷한 크기의 집 한 채를 더 빌려
본격적인 민박업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
"프라하에 있는 수많은 한인 대상 민박집 중에서 두번째로 손님이 많았을 정도였죠.
두 집에서 총 30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었는데 늘 꽉 찼으니까요"
러시아 유학생 한 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해 청소를 전담하게 하고,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30인분의 한식 요리를 혼자서 해냈다. 삼겹살, 쇠고기, 오이무침,
조기구이, 미역국 등 반찬도 푸짐하게 했다. 김치도 직접 담갔다. 일주일에 40포기가
넘는 양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늘어나고 사업이 커져가는 재미에 푹 빠져 힘든지도
몰랐다고 한다.
"유럽 여행객들은 보통 20~30대가 많은데 코드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감각으로 집을 꾸미고 함께 어울리다보니 손님들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중략)
운도 따라주어 2006년 그가 민박집을 운영할 때는 마침 독일월드컵이 열렸을 때였다.
바가지요금에 질린 여행객들은 독일에 경기만 보러가고 체코에서 숙박을 했기 때문에
방학이었던 여름성수기는 가히 대박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직장을 관두고 온 가족이 민박사업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나를 모델로
삼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이미 많은 민박집이 있었지만 잘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거든요."
그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손익에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투자한 만큼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여행객들을 친구나 가족처럼 대해 무엇이든 아끼지 않았던 게
오히려 좋은 소문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이런 호응이 지나쳐 방송국이나
출판사, 관련 기업에서 다양한 러브콜이 이어졌다. 바로 이때 그는 민박집을 접겠다는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주변의 지나친 관심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우연히 시작한 사업이 큰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이제는 제대로 하고 싶어요. 철저하게
준비해서 나만의 사업체를 다시 한번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2007년 1월 그는 음악 명문인 프라하 컨서바토리를 수료했지만 이제 음악에 대한 미련은
없다고 한다. 민박집 운영을 했던 1년동안 그는 1억원이 넘는 학비와 레슨비를 스스로
해결하고,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보다 더 큰 수확은 사업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고 말한다.
"이상하게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행복한 거예요. 음악 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이 주시던
용돈으로 예쁜 옷을 살때보다 말이죠. 손님들과 소통하면서 사업체를 늘려나가는 게 바로
내 길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1년동안 책 쓰는 일에만 매달렸다. 체코에서 민박집을
운영했던 경험과 손님들에게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여행정보를 함께 담았다고 한다.
(후략)
- 이코노미플러스 2008년 3월호 -
한편의 드라마같은 젊은 여성 박아름씨의 체코 민박운영 성공체험을 나는 이전까지
다른 스크랩이야기와는 달리 글을 비교적 길게 소개해야만 했다. 문맥을 생략하면
그 과정이 단절되어 생생한 느낌과 감동이 반감될 것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연히 찿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아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다. 만약
뜻하지 않게 만난 한국인 여성 관광객 3명을 친절하게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서 재워주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면, 밀려드는 여행객에서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던들 그녀는 지금쯤 평범한 음악도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또한 무리수를 두지
않고 수입범위 내에서 차근차근 집이며 집기를 장만하고 차근차근 영역을 넗혀간
재무전략이나 손익에 집착하지 않고 여행객을 친구나 가족처럼 대하여 아끼지않고
지원해 주었던 고객관리전략도 주효했던 것 같다.
사람이 사업을 시작할 때 못지않게 떠날 때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정도 입지를
굳혔을 때, 언론과 주변에서 러브콜을 보낼 때 그녀는 과감히 아름다운 퇴장을 했다.
우연히 찿아온 성공을 자신이 유능하고 잘나서 성공한 것으로 너무 과신하다보면
무리가 따르게 되고, 시장은 포화되고 과잉과 중복투자로 실패에 이르는 것은 지끔껏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3년전 들은 공병호 박사의 강연내용이 생각난다. 앞으로 블루오션은 평범한 사람들의
성공체험에 관한 실전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다양한 실전경험, 그리고 이를 체계화하기
위한 메모 습관, 치밀한 계획과 준비, 절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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