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힘들지만 아직까지 밥은
굶지 않고 잘 견뎌왔어요.”
남들은 손으로 글을 쓰지만, 황원교(49) 시인은 입으로 쓴다.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컴퓨터 자판을 톡톡 건드려 한자 한자 쳐넣는다. 20년 전 교통사고로 경추
4, 5번 사이의 척수가 끊어졌다. 어깨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단 5분간, 한 손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지체없이
목에 칼을 꽂고 싶었단다. 그러나 1996년 등단한 데 이어 시집을 두 권 냈다.
이번엔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바움)를 펴냈다. 58편의 이야기로 270쪽을
채우기까지 그는 몇 번이나 고갯짓을 했을까.
죽는 게 낫겠다며 곡기를 끊었다가 병세가 악화돼 공연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도
했다. 아들의 수족 노릇을 하던 어머님이 병수발 7년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인생관이 달라졌다.
“세상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며 자포자기하듯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정신이 들더군요. 이러다가 나도 정말 풀잎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가겠구나….”
컴퓨터를 들여놓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었다. 어머님을 여읜 이듬해인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000년엔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머님 무덤에 시집을 놓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관절염을 앓는 칠십대 중반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밥을 떠먹인다. “목구멍에서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마세요.’란 말이 곧장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145쪽)
그에겐 아내가 있다. 10여 년 전 자원봉사자로 찾아와 그가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던 유승선씨. 그녀는 7년의 봉사 끝에 수녀가 되겠다던 꿈을 접고 그에게 왔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결혼 후 유방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한다.
아버지는 그런 며느리를 위해 유방암에 좋다는 방울토마토를 손수 기른다. 제 몸도
성치 않은 아버지와 아내이건만, 그를 위해 자다가도 두세 번은 일어나 자세를 바꿔준다.
욕창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
내년쯤엔 소설을 한 편 내어 놓을 요량이다. 산문집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또 기나긴 시간, 그의 입은 자판을 콕콕 누르고 있겠다.
- 중앙일보 2008.12.24.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내 몸, 내 안위부터 챙긴다.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 불편은 2차적인 문제이다. 자신의 불편과 아픔이 더 크고
더 아파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분명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경을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삶에 대한 진지함과 경건함이 느껴지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이용하여 산문집 270쪽을 채우기 위해 10년이 걸렸으며,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저는 아직 밥은 굶지 않았으니..."라는
장애를 뛰어넘어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변을 더 걱정하는 황원교 시인의
기사를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들 때문에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닻을 올려 안전한 포구를 떠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안고
출발하여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황원교 시인이 이를 악물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으로 산문집 270쪽을 채우고
있었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지냈고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키지 못하고, 방황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당장의 편안함과 즐거움에 익숙하여 도전과 변화를
거부하고 살았던 삶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보다
진지하게 임하자.
2008.12.26.
김승훈
굶지 않고 잘 견뎌왔어요.”
남들은 손으로 글을 쓰지만, 황원교(49) 시인은 입으로 쓴다.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고 컴퓨터 자판을 톡톡 건드려 한자 한자 쳐넣는다. 20년 전 교통사고로 경추
4, 5번 사이의 척수가 끊어졌다. 어깨 아래 전신이 마비됐다. 목숨만 붙어있을 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단 5분간, 한 손만이라도 쓸 수 있다면 지체없이
목에 칼을 꽂고 싶었단다. 그러나 1996년 등단한 데 이어 시집을 두 권 냈다.
이번엔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바움)를 펴냈다. 58편의 이야기로 270쪽을
채우기까지 그는 몇 번이나 고갯짓을 했을까.
죽는 게 낫겠다며 곡기를 끊었다가 병세가 악화돼 공연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도
했다. 아들의 수족 노릇을 하던 어머님이 병수발 7년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인생관이 달라졌다.
“세상도 싫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다며 자포자기하듯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정신이 들더군요. 이러다가 나도 정말 풀잎 위의 이슬처럼 사라져가겠구나….”
컴퓨터를 들여놓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입에 물었다. 어머님을 여읜 이듬해인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2000년엔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어머님 무덤에 시집을 놓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관절염을 앓는 칠십대 중반의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에게 밥을 떠먹인다. “목구멍에서 ‘아버지, 차라리 제게
밥을 주지마세요.’란 말이 곧장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145쪽)
그에겐 아내가 있다. 10여 년 전 자원봉사자로 찾아와 그가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줬던 유승선씨. 그녀는 7년의 봉사 끝에 수녀가 되겠다던 꿈을 접고 그에게 왔다.
공교롭게도 아내는 결혼 후 유방암 판정을 받아 병마와 싸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한다.
아버지는 그런 며느리를 위해 유방암에 좋다는 방울토마토를 손수 기른다. 제 몸도
성치 않은 아버지와 아내이건만, 그를 위해 자다가도 두세 번은 일어나 자세를 바꿔준다.
욕창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
내년쯤엔 소설을 한 편 내어 놓을 요량이다. 산문집이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또 기나긴 시간, 그의 입은 자판을 콕콕 누르고 있겠다.
- 중앙일보 2008.12.24.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그래서 내 몸, 내 안위부터 챙긴다.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 불편은 2차적인 문제이다. 자신의 불편과 아픔이 더 크고
더 아파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둘러보면 분명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역경을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삶에 대한 진지함과 경건함이 느껴지고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을 이용하여 산문집 270쪽을 채우기 위해 10년이 걸렸으며,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더라고요. 저는 아직 밥은 굶지 않았으니..."라는
장애를 뛰어넘어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주변을 더 걱정하는 황원교 시인의
기사를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린다.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들 때문에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닻을 올려 안전한 포구를 떠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안고
출발하여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황원교 시인이 이를 악물고 장애인용 마우스 스틱으로 산문집 270쪽을 채우고
있었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어떻게 지냈고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키지 못하고, 방황하며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당장의 편안함과 즐거움에 익숙하여 도전과 변화를
거부하고 살았던 삶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보다
진지하게 임하자.
2008.12.26.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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