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사랑하는 아내를 보낸 1주기 제사였다. 벌써 집사람이 하늘나라에 간지 1년이
되었다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양력으로 하면 아직 12일이 남았지만
그날이 쌍둥이자식들 생일인지라 이를 피하기 위해 집사람 제사는 음력으로 지내기로 했다.
회사 사람들이 집사람 기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고, 찿아와주고, 제수준비에 보태라고
봉투를 내미는것은 사람은 갔지만 생전에 남겼던 삶의 흔적이 너무 강했음이리라.
1년전과 비교하여 달라진 것은 막내 재윤이가 충격 탓인지 시력이 급격히 떨어저 안경을
쓴 것 이외에 크게 변한 것이 없다. 달리던 엔진도 멈추면 녹이 스는 법, 슬픔에 젖어있으면
있을수록 삶이 좌표를 잃고 우왕좌왕 방황하기 쉽기에 일을 더 의욕적으로 벌이며 산다.
요즘 40대와 50대의 이혼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사회적인 변화를 부부 서로가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한데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문제는 대화로 풀어야 한다. 나는 결혼후 장손이면서 장인 장모를
모시고 살다보니 명절때 고향에 가는 것이 고민이 되었다. 우리 부부가 시골을 내려가면
장인장모님이 쓸쓸하고, 그렇다고 안내려갈수도 없고... 결국 집사람과 대화를 통해 1년
설날과 추석 두번 명절 중에서 설날은 우리가 사는 집에서 지내고, 추석은 바로 전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니 시골에 내려가기로 하고 19년동안 그 약속을 지켰다. 내 집안이
소중하면 처가집 집안도 소중하기에 상호 존중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찿을 수 있었다.
부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협력관계다. 나와 집사람은 맞벌이부부였기에 서로
역할분담을 하고 내가 집사람 가사를 많이 도와주려 노력했다. 퇴근후 자식들 숙제와
집안 청소는 내가 도맡았다. 집사람이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고 왔기에 집에 와서는 편히
쉬게 배려해주고 싶었다. 지금은 알파걸이라고 사회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예전에는 직장 여성들은 집에서는 가사와 육아에, 회사에서는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을 해야만 했다. 가사와 육아는 때론 업무시간까지 침범하는 일이 잦아 여성
직장인들은 늘 좌불안석이고 눈치를 보아가며 힘들게 일을 해야 했다. 당연히 갈 수 있는
휴가도 상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결재를 받고 가야만 했다.
직장에서 여성들의 고충을 알기에 집에서는 내가 조금만 힘을 들이면 집사람이 편하겠다
싶어 직장 마치고 오면 편히 쉬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하도록
격려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여자라는 이유로 꿈을 접고 사는
일이 없이 그 꿈을 마음껏 펼치고 살도록 해주고 싶었다. 대인관계에서 탁월한 강점을
살려 회사 불교연구회 부회장, 회사 초대 여성협회 부회장, 노조 대의원, 여성중앙위원,
각종 모임의 총무 등 마음껏 능력과 끼를 발산하고 살게 배려해 주었다.
가정에서 여자가 남자를 보필하는 것을 내조라고 하는데, 나는 이와는 반대로 집사람이
나의 도움으로 인해 품고 있던 꿈을 실현하고, 평소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도록 하는
외조를 해주고 싶었다.
대화는 서로가 가진 생각의 틈을 좁혀준다. 부부가 대화를 자주 하다보면 이혼이란
극단적인 불행은 사전에 상당부분 막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믿고 일생을
약속한 부부사이라면 소중한 상대를 위해 내가 잠시 참고, 희생을 함으로써 배우자가
행복하고 주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지금의 어려움쯤이야 참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다던 일도 많고 의욕이 넘치고 그릇이 너무도 컸던 집사람, 그 꿈을 이제는
내가 더 이상 도와줄 수 없음이 너무나 아쉽고 안타깝다.
2007.10.30.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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