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결혼 20주년기념일입니다.
88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8년 4월 23일 여의도 가든예식장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의 이상향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당신을 만나 너무 행복했습니다.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행복했고
세상이 온통 장밋빛이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구입한 고강동 아파트에, 철산동
사원아파트까지 결혼하자마자 아파트도 2채나 생기고 마침 불어닥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몸에 받으며 부모님 공경할 줄
알고, 재치 넘치고, 리더십이 강한 평생 동반자를 만나니 지난 30년간의 어려움과
외로움, 고난을 하늘이 이제야 한꺼번에 보상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1989년은 우리 부부에게 최고의 해였던 것 같습니다. 큰아들 동규가
결혼 이듬해인 1989년 2월에 태어났고, 나는 대리로 승진했고, 당신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출발하여 계약직을 거쳐 꿈에 그리던 업무직
직능전환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업무직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1993년 기획실 과장으로 승진했고, 일주일만에 현재 직장으로 전직을 했습니다.
생각했던 일들이 너무도 잘 풀려 잠시 우쭐대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함께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계획성있고, 절제된 삶에서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큰형님을 위해 차린 완구가게의 실패, 이후 경제적인
고통을 겪으며 당신이 병을 얻고, 당신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면서 깨달았습니다.
당신만을,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만 이기적으로 살았다면 지금의 경제적인 고통이나
이별하는 아픔은 아마 겪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혼자서만 잘사는 것이 아닌
가족들 특히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들을 챙기며 함께 살려고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기에 내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신의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막내처남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당신의 지난시절 힘들게 내렸던 결정과 마음 씀씀이가 이해가 됩니다. 당신은
어쩌면 내가 품고 살기에는 너무나 큰 그릇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가족 당신과
행복했던 지난 시간만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나보다 절대 먼저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할겁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유방암으로
투병할 때 경제적으로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 때의 무기력함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파하는데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이를 깨물고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무기력한 가장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내고나서 가족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일확천금이나 과욕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열심히 산
덕에 빚도 계속 줄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좋아했던 장미 두송이를 당신에게 바칩니다.
20주년이니 20송이를 바치고 싶지만 한푼이라도 더 아껴 하루라도 우리 가족이 발을
편히 뻗고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하는 것이 시급하고 당신이 더 기뻐할 것 같아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동규와 쌍둥이인 재명이와 재윤이 세 자식 훌륭히 키우고 장모님 잘
모시겠다는 당신과의 약속 내 잘 지켜낼 것입니다.
2008.4.23.
김승훈
88올림픽이 열렸던 지난 1988년 4월 23일 여의도 가든예식장에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의 이상향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당신을 만나 너무 행복했습니다. 마치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행복했고
세상이 온통 장밋빛이었습니다. 결혼과 함께 구입한 고강동 아파트에, 철산동
사원아파트까지 결혼하자마자 아파트도 2채나 생기고 마침 불어닥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한몸에 받으며 부모님 공경할 줄
알고, 재치 넘치고, 리더십이 강한 평생 동반자를 만나니 지난 30년간의 어려움과
외로움, 고난을 하늘이 이제야 한꺼번에 보상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1989년은 우리 부부에게 최고의 해였던 것 같습니다. 큰아들 동규가
결혼 이듬해인 1989년 2월에 태어났고, 나는 대리로 승진했고, 당신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한 아르바이트에서 출발하여 계약직을 거쳐 꿈에 그리던 업무직
직능전환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여 업무직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1993년 기획실 과장으로 승진했고, 일주일만에 현재 직장으로 전직을 했습니다.
생각했던 일들이 너무도 잘 풀려 잠시 우쭐대기도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영원히 함께 지속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고 계획성있고, 절제된 삶에서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큰형님을 위해 차린 완구가게의 실패, 이후 경제적인
고통을 겪으며 당신이 병을 얻고, 당신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면서 깨달았습니다.
당신만을, 우리 가족들을 위해서만 이기적으로 살았다면 지금의 경제적인 고통이나
이별하는 아픔은 아마 겪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혼자서만 잘사는 것이 아닌
가족들 특히 장인어른, 장모님, 처남들을 챙기며 함께 살려고 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이었기에 내 마음이 무겁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당신의 그런 희생이 있었기에 막내처남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야 당신의 지난시절 힘들게 내렸던 결정과 마음 씀씀이가 이해가 됩니다. 당신은
어쩌면 내가 품고 살기에는 너무나 큰 그릇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가족 당신과
행복했던 지난 시간만을 기억하며 다시는 이런 아픔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가족을 나보다 절대 먼저 보내는 일이 없도록 할겁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유방암으로
투병할 때 경제적으로 힘이 되어주지 못했을 때의 무기력함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가족이 아파하는데도 그저 속수무책으로 이를 깨물고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무기력한 가장이 되지 않기 위해 이 악물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내고나서 가족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고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일확천금이나 과욕 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열심히 산
덕에 빚도 계속 줄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좋아했던 장미 두송이를 당신에게 바칩니다.
20주년이니 20송이를 바치고 싶지만 한푼이라도 더 아껴 하루라도 우리 가족이 발을
편히 뻗고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하는 것이 시급하고 당신이 더 기뻐할 것 같아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동규와 쌍둥이인 재명이와 재윤이 세 자식 훌륭히 키우고 장모님 잘
모시겠다는 당신과의 약속 내 잘 지켜낼 것입니다.
2008.4.23.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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