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란?

좋은글 2010. 3. 12. 08:52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입니다.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일터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그 일터에서 머리가 셋 달린 龍과 싸우기

위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입니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짓는 사람입니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에..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도 넘게 현관을 쳐다봅니다.  


아버지의 최고 자랑은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입니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좋은 선생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말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

있어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모르는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이중적인 태도를 곧잘 취합니다.  

그 이유는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 하면서도, "나를 닮지 않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분입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웃음은 어머니의 웃음의 2배쯤 농도가 진합니다.

울음은 열 배쯤 될 것입니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웁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봄과 여름을 왔다 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가을과 겨울을 오고갑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예전에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법정스님 유언

좋은글 2010. 3. 11. 21:03
시인 류시화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산이 산을 떠나다'라는 제목의 글에 법정 스님의 유언을 공개했다.

- "절대로 다비식 같은 것을 하지 말라. 이 몸뚱아리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 소중한 나무들을 베지 말라. 내가 죽으면 강원도 오두막 앞에 내가 늘 좌선하던 커다란 넙적바위가 있으니 남아 있는 땔감 가져다가 그 위에 얹어 놓고 화장해 달라. 수의는 절대 만들지 말고, 내가 입던 옷을 입혀서 태워 달라. 그리고 타고 남은 재는 봄마다 나에게 아름다운 꽃공양을 바치던 오두막 뜰의 철쭉나무 아래 뿌려달라. 그것이 내가 꽃에게 보답하는 길이다. 어떤 거창한 의식도 하지 말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리지 말라"

- 법정 스님은 지난해 6월 가까운 사람 서너 명을 불러 절절한 감동의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 또 법정 스님은 생전에 스님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며, 사리도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맑고향기롭게가 공개한 네티즌들이 가려 뽑은 스님의 주요 어록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중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지' 중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다.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중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중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중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이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 중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불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마음의 평안과 삶의 지례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1997년 12월14일 '길상사 창건 법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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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시계를 만드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만든 시계는 무척 정확하고 섬세하여

인기가 높았답니다. 또한 꼼꼼하고 엄격하게

일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시계를 만드는 데 혼을

쏟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만든 시계 때문에 누군가 아주 중요한

약속에 늦게 된다면 큰일이니까요."

 

이런 젊은이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습니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어떤 방법으로 청혼할

것인가?' 며칠을 고민하던 그는 작업실에

들어가 밤을 꼬박 새우며 시계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온갖 기술과 노력을

그 시계를 만드는데 쏟아 부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이었으니까요.

그 여인을 찾아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시계를 조심스레 내놓았습니다.

 

그녀는 그가 준 시계를 살펴보았습니다.

모양새는 다른 시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침, 분침, 시침이 각각 금, 은, 동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시침이 금, 분침이 은, 초침이 동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우리가 시계를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게 시침이잖아요."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초를 이까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분과

시간을 아낄 수 있겠어요?

시와 분은 초가 모여 만들어지잖아요.

그러므로 초는 황금이고, 분은 은이며, 시는

동이라고 생각했어요.

초를 허비하는 것은 곧 황금을 잃는 것과 같지요.

일 초를 아끼는 사람은 황금을 얻는 사람일

거예요.

모든 변화는 초침에 맞추어 움직이니까요.

 

내가 그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의 초침도 온통

당신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답니다.

사랑할 시간은 아주 짧아요. 황금으로 만든 초침이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청년은 진정으로 시간을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고

단 일 초도 그녀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그 시계에 담아 선물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계를 볼 때 흔히 시침을 흘낏 보고 지나쳐

버리지만, 그 시침은 작은 초침이 빠르게 움직이며

만들어낸다는 의미도 한번 쯤 생각해 보며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았으면 합니다.

 

결혼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예물로 시계를

준비하는지 그 의미를 아시나요?

 

시계를 선물한다는 것은~,

앞으로 모든 시간을 님과 함께 하겠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단 일 초라도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님과 함께, 일생의 모든 시간을 같이하겠다는

다짐인 것이지요.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배움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폭삭 늙기 시작한다.

 

둘째,

과거를 자랑하지 마라.

옛날이야기 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 당신은 처량해진다.

삶을 사는 지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대신 그들의 성장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과 함께 즐겨라.

 

 

넷째,

부탁 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늙은이의 기우와 잔소리로 오해받는다.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 마라.

로미오가 한 말을 기억하라.

"철학이 줄리엣을 만들 수 없다면 그런 철학은 꺼져 버려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약간의 심미적 추구를 게을리 하지 마라.

그림과 음악을 사랑하고, 책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이 좋다.

 

일곱째,

늙어 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가엾어 보인다. 몇 번 들어주다 당신을 피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덟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그들에게 다 주는 순간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다.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왕처럼 춥고 배고픈 노년을 보내며

두 딸에게 죽게 될 것이다.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는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지난 2월 14일은~

안중근의사께서 100년 전(1919년)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끝내 유골도 찾지 못하고 유골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곧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어쨌든 영웅 안중근의 총격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뒤에 서울에서는 우리 민족이 앞장서 안중근

규탄 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 뜻이야 어디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보복걱정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조선총독이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끈을 연결하고

있던 충일파들이 진심으로 분노해서 동원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 국민 상당수가 안중근 규탄

대회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물론, 생존 앞에 얼마든지 비굴하고 약해지는 게

보통사람들의 삶의 방법이니 별 수 있었겠습니까?

 

여하튼 안중근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의연한 죽음을

맞으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중근의 형제와 사촌들도 독립운동의 길로

뛰어들었는데... 남아 있던 직계가족들의 삶은 정말

지옥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안중근의 큰아들은 거리에서 누군가가 준 독이든

과자를 먹고 7살의 어린나이에 죽었고...

둘째아들 안중생은 살기위해 어떤 일이든 하려고

했지만~ 이미 일본의 거대한 힘이 미치는 중국

땅에서 어떠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빨간 딱지가 붙여진 요주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형의 죽음을 목격한

안중생의 삶은 가혹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아버지는 영웅으로 중국과 러시아에서

존경을 받았고 심지어 적국 일본 사람들마저 존경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안중생은 먹고 살기위해서 김구의 임시정부도

기웃거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살림도

넉넉할 리 없었을 터이고,,,

안중근의 아들이라 뒷바라지 해줄 여력도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힘은 여전히 거대했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감시도 심했을 터이니...

그런 상황에서 감히 어떻게 동지를 찾고 그들과

어울릴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안중생은 평생을 거지처럼 살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조선총독 미나미 앞으로 끌려가 변절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남산에 지은

절에서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가지고 약국을 차립니다,

이어 미나미 총독의 양아들이 되고 생활비를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안중생의 아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김구 선생께서 격분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팔아먹은 개자식을 잡아 죽이라고 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백범일지 말미에 안중생을 죽이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독립영웅의 아들이 개 같은 삶을 살고 충일파들은

민족지도자가 되는 현실에서 안중생에게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고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슬픈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안중생이 미나미 총독 앞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뻣뻣했더라면 안중생의 아들도 제 아비와 같이 똑같은

막장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백년이 흘러서 안중근의 손자와 증손자는

지금 미국인으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학자가

대낮에 당당하게 고등학교 특강을 다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국사는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버려서 원하지 않으면 배우지 않을 수 있게도 되었고요.

어쩌면 학교장 스타일에 따라 전체학교가 배우지 않을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아이들은 안중근이

안과 의사인지... 치과 의사인지...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알게 될지도 모르는 기막힌 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일합방은 조선인에게 축복이었다는 소리를 일본인이

아닌 우리 한국인에게서 들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일본 법원은 99엔을 던져주어도

잘난 정치권에서는 세종시 문제로 쌈박 질이나 하기에

바쁠 뿐입니다.

 

100년 전 2월 14일 안중근 선생님께서 사형을 당하면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자주독립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을

그 한을 생각하면...

그저 송구해서 고개 들어 하늘을 볼 수도 없을 것 같기만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혈서로 쓴 대한독립문서)

 

 

우리는 지금 이런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반하장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경칩과 함께

봄은 오시나 봅니다.

그렇게 적반하장의 땅에도 봄은 오시나 봅니다.

 

이 글은 연휴 중 삼일절 91주년을 보내며 조선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쳤던 애국지사 안중근님이 떠올라 펌 정리해

보았습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기회는 만드는 것

 

시카고의 가정용품 박람회장은 연일 몰려드는 사람들로

몹시 붐볐지만 헤이다 써로우의 <챈텔 쿡 웨어> 매장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일단 사람들을 매장 안으로만 오게 한다면 제품 설명은

자신 있는데….'

 

곰곰 생각하던 그녀는 모자가게에 들러 아주 우스꽝스런

모자를 하나 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박람회장은 그녀가 쓰고 간 모자 때문에

킥킥거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의 비웃음과는 달리

그날 헤이다는 모자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이 모자를 어디서 구했소?"

 

한 노신사가 그에게 다가오며 물었습니다.

그는 손자에게 그 모자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헤이다는 그 모자를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제품 설명을 들어준다면 모자를 그냥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헤이다는 주방용품에 대한 불만족과 불편함을

지적하면서 만일 이번 박람회에서 자신의 첫 번째 출품이

성공한다면 앞으로 연구를 거듭하여 그녀 자신의 고유

제품을 만들겠다는 뜻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약속대로 자신의 설명을 경청해준 노신사에게

모자를 벗어 공손하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노신사는 그 자리에서 그녀의 제품 중 프라이팬

수백 개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대형 통신판매 회사인 '윌리엄 소노마'의

창업자 척 윌리암스였던 것입니다.

 

그 후 그녀가 썼던 우스꽝스러운 그 모자는 성공적인

기업 챈텔 쿡 웨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운7 기3이라는 말씀처럼 운이

따라야 함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3 또는 2의 기회는

자신이 반드시 만들어야만 행운도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하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초지일관(初志一貫)

 

중국 남송시대 '주자'가 송나라 명신들의 언행을 수록한

'송명신 언행록'에는 '장영'이라는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세 가지 어려운 일이 있다.

첫째는 잘 본다는 것,

둘째는 보고 잘 행하는 것,

셋째는 행한다면 반드시 끝낸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전 과정을 얘기한 것이라

하는데...

-잘 본다는 것(미래의 전망을 잘 세우는 것)

-잘 행한다는 것(전망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일)

-행한다면 반드시 끝낸다는 것(가다가 중지하면 아니

감만 못하다는 말처럼 착수한 일은 끝까지 완수나

완결을 본다)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한 말 같지만 이러한 평범한 진리일수록 실천

하기는 어려운 것이기에 무슨 일이든 처음에 마음먹은

뜻을 굽히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힘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기회를 스스로 만들고,

초지일관 했으며,

진인사대천명한 우리의 영웅들이 동계 올림픽을 통해

탄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동계올림픽 빙속 종목에서 5000m 은매달, 10000m

금매달을 따내 우리 국민들을 감동케 한 이승훈 선수가

단연 으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불과 10개월 전에 쇼트트랙 선수였던 이승훈선수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자 평소 꿈꾸었던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과감히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환

하고 짧은 연습 끝에 이대회에 참가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그때 탈락하지 않았다면 우린 평생 이런

진주를 만나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쇼트트랙 대표팀에서 탈락하자 그는 3개월이나 방황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스케이트로 성공하겠다는 초지일관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종목전환이지 이는 어쩜 핸드볼 선수가

갑자기 농구선수로 뛰는 것과 같은 어쩜 무모한 결정

이라는 평가를 처음에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려움을 피나는 노력으로 뚫고

이렇게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빙판이 좋지 않는 오벌에서 아시아 최초로 1만m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데다가 올림픽기록까지 갈아치웠습니다.

 

이렇게 그는 최선을 다했고 결과를 하늘에 맡겼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크라머 선수가 어이없는 실수도 했습니다.

 

이승훈선수가 자국선수를 한 바퀴 이상 추월했으니

아마 코치도, 선수도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승훈선수와의 시간차를 알려주다가 레인 바꾸는 것을

알려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정상적으로 갔다면 박빙의 승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승훈선수..그는 진정한 대한민국 영웅입니다.

그 어떤 종목의 금매달보다 더 값진~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것,

-초지일관하여 목표를 달성한 것,

-최선을 다 한 후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감동적인 결과를

우리 모든 국민에게 선물하는 진정한 금매달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래로 향해 가는 감동의 질주!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이를 시금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포기하지 말고~ 뚜벅뚜벅 끝까지...

 

우리는 쇼트트랙 여자계주 금매달은 강탈 당했습니다.

호주 심판 '제이스 휴이' 이넘이 역대 경기에서 우리

한국팀에 한 패악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1.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김동성 1위로 골인에도 불구하고 오노의 헐리웃액션을

믿고 실격처리하여 미국이 금매달 (8년 전 기억도

생생한 너무나 원통했던 오노의 헐리웃액션 사건임)

 

2. 2004년 ISU 3차월드컵 대회~

한국남자 단체 1위로 골인에도 불구하고 상대밀치기를

하였다며 실격처리 - 미국이 금매달

 

3. 2006년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안현수 실격 처리

 

4. 2007년 이태리 밀라노 월드컵 1500M~

송격택이 1위로 골인에도 불구하고 손이 오노 얼굴에

닿았다고 실격처리 - 미국이 금매달

 

5. 2008년 ISU2차 월드컵 1000M~

진선유가 1위로 골인에도 불구하고 선수몸이 닿았다고

실격처리 - 중국이 금매달

 

6. 2010년 벤쿠버 올림픽 여자 3000M 단체 결승~

한국팀이 얼굴쳤다고 실격처리 중국팀이 금매달...

 

경기 전에 미국팀의 '전재수' 헤드코치가 말하기를

 

"2년 전부터 '휴이시' 주심은 친 중국 성향을 보여왔는데

미국팀도 판정에 많은 불이익을 봤다. 이번 대회에서도

미국과 한국팀은 조심을 해야 한다." 고 했다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4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구는 올림픽이라는 축제의 정당한

대가를 저 따위 한 넘의 술수에 의해 빼앗기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다면, 그것도 특정인 한 넘으로부터 계속...

이럴 거면 올림픽 정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금매달은 돌이킬 수는 없다하여도 저 넘이 다시는 심판을

볼 수 없도록 우리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야 할 것이라

봅니다.

포기하지 말고~ 뚜벅뚜벅 끝까지...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 시골에 갔다가 수영을 하려고

호수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발에 쥐가 나서 수영은 커녕...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귀족의 아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한 농부의 아들이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귀족의 아들은 자신의 생명을 구해

준 그 시골 소년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둘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키웠습니다.  

 

어느덧 13살이 된 시골소년이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귀족의 아들이 물었습니다.  

 

"넌 커서 가 되고 싶니?"

"의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하고

아이들도 아홉 명이나 있어서 집안일을 도와야 해~"  

 

귀족의 아들은 가난한 시골소년을 돕기로 결심하고

아버지를 졸라 그를 런던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시골 소년은 런던의 의과대학에 다니게

되었고 그 후 포도당 구균이라는 세균을 연구하며

'페니실린'이라는 기적의 약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유명한

'알렉산드 플레밍'입니다.

 

그의 학업을 도운 귀족 소년은 정치가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26세의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정치가가 나라의 존망이 달린 전쟁

중에 폐렴에 걸려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만 잘 먹으면 어렵지

않게 낳는 병이지만 그 무렵에 폐렴은 불치병에

가까운 아주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 플레밍'이 만든 '페니실린'이

급송되어 그의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골 소년이 두 번이나 생명을 구해준

귀족 소년은 다름 아닌 전쟁에서 영국을 구하고

또 민주주의를 굳게 지킨 '윈스턴 처칠'입니다.

 

만약 어린 시절 부유한 귀족의 아들 '처칠'이

시골에서 우연히 알게 된 가난한 농부의 아들

'플레밍'을 무시했더라면 그 시골 소년은 의사가

되어 '페니실린'을 만들 수 없었을 테고 '처칠'은

폐렴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귀족 소년과 시골 소년의 깊은 우정으로

농부의 아들은 의사가 되어 노벨 의학상을 받을

수 있었고, 귀족 소년은 영국 수상이 되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정치가 '처칠'과 의학자 '플레밍'...

이들은 어려서 우연으로 만난 인연이었지만

그 인연을 서로 돕는 우정으로 평생 이어가면서  

서로의 삶에 빛과 생명을 주었던 것입니다.  

 

 

 &

 

 

이제 두 분 다 역사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우정과 사랑도 전설이 된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그들의 이름은 오늘도 어두운 밤하늘에 영롱한

별처럼 반짝이고 있습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 하는 생각...

말처럼 쉬운 것은 아지만 그런 마음들이 강물처럼

교류한다면 비록 두 유명인의 삶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삶도 작은 우정일지라도 보람으로 기록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1981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설립된 청송

교도소는 교화대상에서 제외한 다른 교도소의

고질적인 전과자나 흉악한 범죄자들만을 수용

하는 곳입니다.

그 시절 '청송교도소'라면 '빠삐용 요새'라는

별칭처럼 '날짐승마저도 피해 간다.'할 정도로

누구나 기피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곳에 70이 넘은 운보 화백이 찾아와  

아랑곳하지 않고 그만의 특유한 대화체로

"병신 새끼들아!"라는 욕으로 강연을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운보 화백이 청송교도소에 온 배경에는 삼중

스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삼중스님은 사형수를 교화하기 위하여

청송교도소를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교도소장이 삼중스님에게 부탁이 있다

면서 '삼중스님이 운보 화백님을 잘 아시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삼중스님은 운보 화백과는 안면이 없었던 시절

이라 자신에게 운보 화백을 묻는 이유를 궁금해

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교도소에서도 재소자들의 마음을 교화하기

쉽지 않은데, 이 청송에서는 더욱 더 힘이 듭니다.

따라서 좋은 미술품을 재소자들이 늘 가까이에서

보면서 다소나마 마음의 편안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교도소장의 말에 감동한 삼중스님은 '내가 한번

알아보겠다.'는 답변을 한 후 전혀 만난 적이

없는 화백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청송교도소의 벽에 운보 화백의 그림을 걸고자

합니다.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려는 뜻이오니 그림을 몇 점 기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좋은 뜻에서 시작하면 잘 풀린다는

얘기처럼 삼중스님의 호의는 곳 바로 운보화백과

그 아드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운보 화백의 아들이 삼중스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온 것입니다.

"아버님이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으십니다.

아버님께서 직접 청송교도소로 그림을 가지고

가고 싶답니다."


이 답변 또한 참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 시절 운보 화백의 혈기와 명성은 최정상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절이라서 그런지 운보 화백은 그림

10점을 하루 동안에 그리는 정열을 보였다고

합니다.

재소자들을 위해서 운보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기꺼이 할애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유명한 화백들이 기부한 그림

50점을 기념하는 행사가 청송교도소 앞마당에서

열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간단한 식순에 맞추어 삼중스님은 재소자들

200여 명이 도열한 앞마당에서 금강경을 법문

했습니다.

삼중스님이 법문을 끝낸 후 자리에 앉으려하자

갑자기 운보 자신도 강연을 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식순에 없던 갑작스런 그의 강연의사에 진행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쭈물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도 '나또 하마띠 타고 시타(나도

한마디 하고 싶다)'며 강하게 나오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중스님은 주변의 양해를 구하고 연단에

그의 손을 잡고 올라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첫 마디부터 욕설이 튀어 나왔다는 것이죠.


"벼씨 새끼트라! (병신 새끼들아!)"

이 첫 마디에 연단 옆에 서 있던 삼중스님은

물론, 교도소 관계자들까지 화들짝 놀랐고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재소자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서르의 얼굴을 돌아 보더란 것입니다.


흉악범 200여명이 있는 이곳에서 갑자기 욕을

한 것이니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청송교도소로 내려오는 동안 차안에서 화백의

특이한 대화체에 어느 정도 익숙했던지라 삼중

스님은 욕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들을 수 있어

파랗게 놀란 눈으로 앞마당 재소자들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고 합니다.

잠시 출렁이더니 조금 지나자 모두가 고개를

쳐들고 연단의 화백을 응시하더란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화백이 다음 말을

계속 이어서 하더란 것입니다.


"병신은 나다.

내가 벙어리이니 내가 병신 머저리다.

그렇지만 나는 몸은 병신이지만 정신만은 건강

하다.


그런데 당신들은 몸은 건강하나 정신은 병신이다.

그래서 내가 욕을 한 것이다. 나는 몸이 병신

이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성공한 화가가 되었다.

나는 타고난 재주나 조건을 믿지 않았다.

내 재주를 갈고 닦아서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왜 건강한 몸으로 이런 무시

무시한 교도소에 들어와서 이 지옥에서 죽을

고생들을 하느냐?"며 재소자들을 몰아 세우더란

것입니다.


만약 운보 아닌 다른 사람이 이런 욕을 했다면

어떤 반응이 이었을 것인지... 참석자 모두는

식은 땀이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소자들은 운보 화백의 말에서

뭔가 진실로 자신들을 아끼는 마음을 느꼈던지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숙연하게 듣기만 하더랍니다.


이 기막힌 장면에 참석자들은 모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받은 진실한 선물은

재소자, 교도관, 그리고 참가한 사람들 모두에게

커다란 마음의 출렁임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날 운보 화백은 법무부장관 명의의 공로패를

받았다고 합니다.

공식 행사를 끝낸 후 청송교도소를 나오려하자

이번에도 운보 화백의 고집이 다시 한 번

이어지더란 것입니다.

운보 자신과 같은 처지인 벙어리 재소자를 만나

보고자 하는데 문제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청각장애 재소자들이 먹고 자는 감방 안에 들어

가서 그들을 만나야겠다는 황소고집은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청각장애자가 수감된 감방'이라는 특정 장소를

지적하는 그의 고집에 관계자들이 아주 곤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려보아도 소용이 없자, 삼중스님은

법무부 고위 관리에게 법무처의 특별 허락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보 화백은 청각장애 재소자의 감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삼중스님도 그를 따라 처음으로

청각장애인의 감방 안을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감방 안에 들어 선 화백이 벙어리 재소자를

꽉 껴안더니 볼을 비비면서 울었어요.

'병신된 것도 서러운데 왜 이런 생지옥에서

이리 서럽게 살고 있느냐?' 울음 속에 전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서로 주고받았어요.

볼을 서로 비비면서 우는 통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저절로 나왔어요. 통곡으로 변해 서로

엉켜진 몸 타래를 풀어내는데 한참 걸렸습니다."


진정한 우애의 정을 내비치는 운보 화백의

모습에 삼중스님과 교도관들은 녹아 내렸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삼중스님을 따라 운보

화백도 저 먼 제주교도소까지 다니면서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더 귀중하게 사용했다고 합니다.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끈끈한 정을 보이는

운보 화백에게 확연히 상이한 모습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권력과 재력에 휘둘리지 않는 그의 곧은

기질은 소문 그대로였다고 합니다.


한 번은 법무부 장관의 청탁에 의해 운보 자신의

그림 한 점을 법무연수원에 기부받기를 원하자

단호히 거절하더란 것입니다.


자신의 작품 한 점이 시중에서 3천만 원에 거래

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는 기부를 원했던

법무부장관에게 작품가 5천만 원에 판매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더란 것입니다.



삼중스님이 곁에서 지켜 본 운보 화백의 끈끈한

정은 그의 어머니에게 나왔다고 합니다.


"운보 화백은 참 효자였어요.

청주에 있는 화실에서 내다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어머니를 모셨어요. 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는 그림은 자신의 화실 창문에서 바라본 어머니

묘지의 정경이라고 했습니다."


운보 화백이 청송교도소 강연장에서 내지른

그 외마디 욕소리...

'벼씨 새끼트라!'라는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 오는 것 같습니다.


정신보다 물질이 판을 치는 시대를 살고 있는

현실에서 그 분이 내 질렀던 그 욕 소리는 어쩜

허약한 정신상태에 있는 우리들 모두를 향한

질타의 목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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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느 날,

한 부부가 아내의 신앙 문제로 크게 다퉜습니다.

남편이 참다 못 해 소리쳤습니다.

 

"당신 것 모두 가지고 나갓!"

 

그 말을 듣고 아내는 큰 가방을 쫙 열어 놓고

말했습니다.

 

"다 필요 없어요. 이 가방에 하나만 넣고 갈래요.

당신 어서 가방 속에 들어가세요."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만 의지하고 사는 아내에게 너무했다 싶어서

곧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남편 자체'라고 합니다.

남자의 길에서 여자는 에피소드가 될지 몰라도

여자의 길에서 남자는 히스토리가 된다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가장 받기 원하는 선물은

'든든함'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바람막이가 되어, 아내에게 다른 큰 도움은 주지

못해도 최소한 든든한 맛 하나는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몇 년간 남편의 병치레를 하던 한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며칠이 지난 후에 그녀가 자신의

심정을 말했습니다.

 

"남편이 병상에 누워 있었어도 그때가 든든했어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남편이 아내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은 돈도 아니고 꽃도 아니고 그냥 '든든함'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얘기입니다.

 

아내가 차 사고를 내도~

"도대체 눈이 어디 달렸어!"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그럴 수도 있지. 몸은 괜찮냐?"고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는 게 지혜로운 말이라고 합니다.

 

차 사고로 생긴 '불편함과 불안함과 속상함'으로

아내는 이미 잘못의 대가를 충분히 치뤘기에 그때

남편의 할 일은 불안의 바람으로부터 든든한 바람

막이가 되어주는 게 좋다는 것이죠.

 

아내가 잘못했을 때는~

남편의 든든함을 보여주어 아내에게 감동을 줄

좋은 기회이지, 아내의 잘못을 꼬집어 아내의 기를

죽일 절호의 기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내의 마음에 '캄캄함'과 '갑갑함'을 주는 남편의

제일 행동은 바로 ‘깐깐한 행동’이라고 합니다.

'깐깐함'은 갑갑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혹시

필요할 수 있어도 아내에 대해서는 결코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꽉 막힌 깐깐한 존재'가 되기보다는

'꽉 찬 든든한 존재'가 되는 게 행복의 지름길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꽉 찬 존재가 되려면 무엇보다

'이해심'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러한 아내의 감정과 정서를

읽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외출할 때~

아내가 화장대 앞에 너무 오래 있으면 빨리를

외치며 불쑥 이런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라봐야 소용없어!"

 

이처럼 아내의 정서에 대한 몰이해를 말하면

아내의 감정은 당연히 큰 멍울을 품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내가 자기의 감정을 너무 내세우는 것도 문제

지만 이처럼 남편이 아내의 감정을 너무 내던지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만들 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의 원료는 열정 이라기보다는

이해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해의 깊이가 사랑의 척도라고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 중 일부입니다)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놓고 나니,
함께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 더 자주 해주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함께 거들어 주지 못했고,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더 도움을 주지 못했고,
도움이 되도록 더 능력을 키우지 못했고
억지로라도 끌고 나가서 운동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일부터는 설 명절이 시작됩니다.
함께 시장을 보러 다녔던 자리를 장모님을 모시고 다닙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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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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