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19일(미국 현지시간)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에서 일본계 주민을 강제 수용한 근거가 됐던 대통령령 서명 79주년을 맞아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한 시대에 조상(부모)이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인도적인 수용소에 감금당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한 시대였다. (강제수용 역사를 되돌아보고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했던 정책은) 부도덕하고 위헌적이었다"

 

"(그는 또 수용소에서 풀려난 뒤 명예 회복 운동을 이끌었던 고(故) 프레드 고레마쓰 씨를 거명한 뒤) 이런 가증스러운 정책에 반대해 일어섰던 많은 일본계 미국인의 용기를 찬양한다"

 

(미국은 일본이 1941년 12월 7일 하와이에 있는 진주만을 기습공격해 발발한 태평양전쟁 때인 1942년 2월 19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을 근거로 일본계 미국인을 '적성외국인'으로 간주해 재판 등의 절차 없이 약 12만 명을 수년간 강제수용했다. 전쟁이 끝난 뒤 피해자들이 중심이 되어 벌인 명예 회복 운동이 결실을 보아 1988년 마침내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의 과거사에 대한 반복 사죄는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이미 사죄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현 일본 정부의 태도와 대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위안소 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는 등 한일 과거사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사죄의 뜻을 표명하긴 했다. 그러나 2012년 12월 출범해 7년 8개월여간 장기집권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충분히 사죄했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작년 9월 아베 내각을 계승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의 현 내각도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퇴임 후인 작년 10월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본인 재임 중 내놓았던 전후 70년 담화(2015년 8월)에서 "그 전쟁(태평양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들의 자식이나 손자, 그리고 미래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을 거론하면서 "그것으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 연합뉴스 2021.2.21. news.v.daum.net/v/20210221090243114)

 

미국이 강대국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프로가 존재할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 주는 아마추어 팬들을 비롯해 서로가 좋은 경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료 선수, 스폰서 및 협회에 대한 존중이 뒷받침돼야 프로 골프가 존립할 수 있다"

 

프로골퍼 최경주의 '팬들을 위한 세 가지 약속'

 

1. 프로다운 매너와 에티켓을 갖출 것

2. 갤러리를 또 한 명의 동반자로 인식할 것

3. 최상의 경기력으로 갤러리에게 보답한다는 것

 

10월 8일, 경기도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에서 '출전 선수 워크샵'에서...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Emerson, Ralph Waldo, 1803~1882,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IGM모닝촉촉 V.18/20130809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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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름다운 사랑

좋은글 2013. 6. 18. 15:30

저는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서른아홉 살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은

저의 다리가 되어주는 고마운 남편에게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입니다.

 

저는 한 살 때 열병으로 소아마비를 앓은 후

장애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기에 멋진 글귀로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제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한 방송을

통해서입니다.

 

지난 1983년 우연히 라디오의 장애인 프로그램을

통해 문밖 출입을 못하며 살고 있는 저의 사연이

전파를 탔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지금의

남편이 제 이야기를 듣다가 들고 있던 펜으로

무심코 저의 주소를 적었답니다.

 

남편은 그 다음날 바로 저에게 편지를 했지만

저는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글을 잘 몰랐던 탓도 있었지만

남자를 사귄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답장도 없는 편지를 1년 가까이

1주일이 멀다하고 계속 편지를 보내왔고

저는 여전히 답장 한 통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제 주소 하나만

달랑 들고 무작정 그 먼 곳에서 서울 금호동의

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장애자인 제 사정상 반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먼 곳에서 저를 찾아온

사람이기에 손수 정성껏 식사를 대접 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만나고 제주도로 돌아간 남편은

그날부터 1주일에 한 통씩 보내던 편지를

매일 일기처럼 적어 보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포가 하나 왔는데 종이학

1,000마리를 접어 걷지도 못하는 저에게

1,000개의 날개를 달아 이 세상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남편의 청혼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남편은 결국 직장을 포기하면서 저를 보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왔고, 3년에 걸친 청혼 끝에

저는 남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래서 85년 7월17일,

저희는 마침내 부부가 되었습니다.

 

 

휠체어 아내가 행상 남편에 보내는 글

 

-제 삶의 날개가 되어주는 당신께.-

 

여보, 지금 시간이 새벽 5시30분이네요.

이 시간이면 깨어있는 사람보다 아직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단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더욱 많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이미 집을 나서 살을 에듯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맡기고 있겠지요.

 

그리고는 밤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당신~

이렇게 열심히 뛰는데도 늘 힘겹기만 한 우리생활이

당신을 많이 지치게 하고 있네요.

 

제가 여느 아내들처럼 건장한 여자였다면

당신의 그 힘겨운 짐을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으련만, 평생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저는

그럴 수가 없기에 너무나 안타까워 자꾸만

서러워집니다.

 

자동차에다 건어물을 싣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당신.

 

그런 당신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물 한 방울, 전기 한 등, 10원이라도 아끼는 것이

전부라는 현실이 더욱 서럽게 합니다.

 

불편한 제 다리가 되어주고, 두 아이들에게는

제 몫인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고,

거기에다 16년 동안이나 당뇨로 병석에 누워계신

친정어머니까지 모셔야 하는 당신입니다.

 

긴 병에는 효자도 없다는데 어머니께 딸인 저보다

더 잘하는 당신이지요.

이런 당신께 자꾸 어리광이 늘어 가시는 어머니를

보면 높은 연세 탓이라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속이

상하고 당신에게 너무 미안해 남모르게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답니다.

 

여보,

저는 가끔 깊은 밤잠에서 깨어 지친 모습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생각합니다.

 

"가엾은 사람,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한평생

걷지 못하는 아내와 힘겹게 살아야 할까?" 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울컥

북받쳐 오기도 하지만 자고 있는 당신에게 혹

들킬까봐 꾸역꾸역 목구멍이 아프도록 서러움을

삼키곤 합니다.

 

비를 좋아하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당신을 따라 나섰지요.

 

하루 종일 빗속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게 되지요.

 

그런데 며칠 전 겨울눈이 제법 많이 내리던 날,

거리에서 마침 그곳을 지나던 우리 부부 나이

정도의 남녀가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서로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게 하려고

우산을 자꾸 밀어내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당신이 비를 몽땅 맞으며 물건을

파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제가 느꼈던 아픔과 슬픔은 어떤 글귀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제 가슴을 아리게 했어요.

 

그때 저는 다시는 비 내리는 날 당신을 따라 나서지

않겠노라며 스스로 다짐을 했답니다.

 

그리고 여보,

지난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당신은 결혼 때

패물 한 가지도 못해줬다며 당신이 오래도록 잡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저에게 반지를 하나 사주었지요.

 

그때 제가 너무도 기뻐했는데 그 반지를 얼마 못가

생활이 너무 힘들어 다시 팔아야 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어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신은 그 때 일을 마음 아파

하는데, 그러지 말아요.

그까짓 반지 없으면 어때요.

이미 그 반지는 제 가슴 속을 영원히 퇴색되지 않게

새겨놓았으니 저는 그것으로도 충분하답니다.

 

3년 전 당신은 여덟 시간에 걸쳐 신경수술을

받아야 했었지요.

그때 마취에서 깨어나는 당신에게 간호사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저를 가리키며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은 또렷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었지요.

 

"그럼요, 제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사랑할

사람인데요."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저는 바보처럼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핑도는 눈물을 감추기에

급급했어요.

 

그때 간호사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세요." 라고~

그래요~

여보!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예요.

건강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늘 나의 곁에 있기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어린 시절 가난과 장애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었기에 저는 지금 이 나이에 늘 소원했던 공부를

시작했지요.

 

적지 않은 나이에 초등학교 과정을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야학까지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어머니 저녁 챙겨주고 집안

청소까지 깨끗이 해놓고 또다시 학교가 끝날 시간에

맞춰 저를 데리러 와주는 당신~!!

 

전 그런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보답으로 정말 열심히

공부할 겁니다.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이 다 가는 학교가 너무도

가고 싶어 남몰래 수없이 눈물도 흘렸는데 이제야

그 꿈을 이루었어요.

 

바로 당신이 저의 꿈을 이루어 주었지요.

여보, 저 정말 열심히 공부해 늘 누군가의 도움만

받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거예요.

 

여보! 한평생 휠체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저의 삶이지만 당신이 있기에 정말 행복하답니다.

 

당신은 제 삶의 바로 그 천사입니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늘 감사의 두 손을 모으며

살 겁니다.

 

당신을 죽도록 사랑하는 아내(임영자)가...

 

 

지금은 퇴직하신 조훈부장님이 4년 3개월전 보내주신 글입니다.

부장님! 건강하세요.

보내주신 글 두고 두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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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늙음(황혼)

좋은글 2013. 6. 18. 15:26

늙음(황혼)~!!

 

황혼에도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던

"괴테"는 노년에 관한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

"사람은 늙어가면서 다섯 가지를

상실하며 살아가게 된다.

건강과 돈, 일과 친구, 그리고 꿈을

잃게 된다."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 건강 ♣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 온갖 것이 의미 없다.

건강이란 건강할 때

즉 젊었을 때 다져 놓았어야 한다.

 

이 말은 다 아는 상식이지만

지난 후에야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이제 남은 건강이라도

알뜰히 챙겨야 한다.

 

♣ 돈 ♣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 한다면

이제는 돈을 벌 때가 아니라

돈을 쓸 때이다.

 

돈이 있어야지?

돈 없는 노년은 서럽다.

그러나 돈 앞에 당당 하라.

 

♣ 일 ♣

 

당신은 몇 살부터 노인이 되었는가?

노년의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자.

 

일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죽을 때까지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사랑과 일이다.

 

♣ 친구 ♣

 

노년의 가장 큰 적은 고독과 소외이다.

노년을 같이 보낼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두자.

 

친구를 사귀는데는 시간, 정성, 관심,

때론 돈이 들어간다.

 

♣ 꿈 ♣

 

노인의 꿈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선 신앙생활,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

.

이상- 괴테의 말씀이었습니다.

 

메일을 정리하다가 3년 10개월전에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늘 건강하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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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당당함

좋은글 2013. 5. 28. 16:18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많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들은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오랫동안 식민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지배당한 나라들은 많은 것을 빼앗겼고,

빼앗은 나라들은 그것을 자기 나라로 가져가 마치 자기

조상의 유물처럼 보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866년 프랑스의 강화도 침범으로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약탈당했습니다.

우리가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들은 흘려듣기만 할

뿐입니다.

일제에 의한 문화재 침탈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조차

없다 할 것입니다.

 

지금도 프랑스에는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중동 사람들,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등에서 온 아시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파리의 유명한 지하철 등의 건축물이나 심지어 문화재 등도

식민지에서 끌려온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

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길거리, 지하철 속에서 가난하고 헐벗은 아프리카

사람들과 아시아인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큰 도시에는 '게토'라고 해서 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따로 떨어져 그들끼리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인들이 이곳에서 살면서

체류증을 연장하기 위해 관계 사무실에 갈 때에도 많은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해도 담당 공무원이 보이는 경멸의

눈길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그곳에 가면 이른 아침부터 옛 식민지에서 온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함께 줄을 서게되는데 간혹 친절하며, 타민족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 훌륭한 공무원도 있기는 하지만,

막대기를 들고 줄을 세우고 온갖 험담을 늘어 놓으면서

겁을 주는 공무원이 더 많다고 합니다.

 

아래 일화는 한 유학생이 쓴 글입니다.

 

어느 날 나는 버스 속에서 차별받는 한 아프리카 사람의

당당함을 발견하였습니다.

 

프랑스 버스와 지하철에는 노인을 위한 자리가 우리나라

경로석처럼 마련되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인과 장애인, 상이군인, 임산부,

어린아이를 위한 자리입니다.

이 보호석 위편에는 앉는 사람의 우선권이 적혀 있는데

상이용사가 첫번째이고, 그 다음으로 시각장애인, 기타

지체 부자유자, 임산부, 4세 미만 어린이며, 맨끝에

75세 이상 된 노인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날 내가 타고 가는 버스 보호석에는 한 프랑스 할머니가

앉아 잡지를 보면서 손뜨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외출을 하는지 맵시 있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나는 뒤편에 서서 그 할머니가 읽고 있는 잡지를 내려다

보기도 하고, 창밖을 보면서 내릴 곳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장바구니를 든 흑인 할머니가 차에

올랐습니다.

 

흑인 할머니는 보호석 앞으로 다가가 앉아 있던 백인

할머니가 자신을 보고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백인 할머니가 그대로 앉아 있자, 흑인 할머니는 주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흑인 할머니의 말은 간단하고 명료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보다 내가 더 나이가 들은 것 같구려.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 앉을 권리가 있소.

혹시 일흔다섯 살이 지난 내 나이를 확인하고 싶으면

체류증을 보여 줄 수도 있소."

 

백인 할머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책 보는 일과

뜨개질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흑인 할머니는 백인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

하든지,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든지 하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두 할머니의 대립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 궁금해

내릴 곳을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다 못한 백인 할머니는 주민등록증을 보여 줄 뜻이

전혀 없다는 듯이, 그러니까 나이를 견줄 필요가 없다는

뜻에서 "여긴 내 나라야. 그러므로 당신에게 양보할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흑인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나는 지금 당신의 나라에 와 살지만, 예전에는

당신들이 우리나라에 허락도 없이 와서 살았어요.

세금도 안 내고. 난 세금을 내고, 집세도 내면서 살아요.

그러니까 앉을 권리가 있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백인 할머니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버스는 세느강변을 따라 에펠탑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참다 못한 흑인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당신은 나처럼 서 있을 수 없는 거야.

날 봐, 난 당신보다 훨씬 튼튼한 다리를 가졌어.

내 땅은 내게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는 힘을 주었어.

난 이렇게 늘 서 있을 수 있어.

예와 규칙도 모르면서 문화민족은 무슨..."

 

버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프리카 할머니는 뿌리 깊은 나무 같아 보였습니다.

나도 손에 힘을 주어 더욱 세게 손잡이를 잡고 서

있었습니다.

그 흑인 할머니의 당당함...

흔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상사 당당하지 못하면 멸시를 받기 마련입니다.

36년 간 강압통치의 지배를 하고도 결코 사과도 하지

않는 상대에게 그저 용서와 화해를 말하며 썩소를

날리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광복 6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일왕을 천황이라 부르며

일본 극우들의 논리를 추종하거나 전파에 앞장서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친일파라 부릅니다.

하지만, 친일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친일이든, 친미이든, 친중이든...

국가와 민족을 떠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상호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친일이라는 호칭에 저는 가능한 거부감을 갖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이러한 상생의 친일에 숨어 진심어린 반성이나

사과도 하지 않는 극우 사무라이들과 교류협력하며

우리민족의 한과 자주정신마저 교란하는 친일이 아닌

충일에 앞장서는 꼴통들은 당연히 격리조치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민족자존의 당당함은커녕 알아서 기는...

아니 거기에 붙어 자신들의 탐욕만을 채우려는 민족

반역의 세력은 반드시 멀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배부르고자 당당함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끝으로 '조지 오웰'이 남긴 말을 되새기며 마칩니다.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다."

 

(지금은 이미 퇴직하신 조훈부장님이 2009년 6월 16일에

보내주셨던 글입니다. 늘 당당하셨던 부장님을 생각합니다.

부장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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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刎頸之交(문경지교) ♤

 

춘추전국시대 말기 조(趙)나라 '혜공' 때 이야기입니다.

조나라에는 '염파'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그는 이웃한 연나라와

조나라의 연합군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조나라 군대의 위력을

떨친 공로로 대장군 겸 상경벼슬에 올랐고, 이러한 공적과

관직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앞에 환관의 식객 출신인 '인상여'라는 미천한

인물이 자기보다 높은 재상(경대부)자리에 오르니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라도 크게 망신을 주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인상여'는 그때부터 병을 핑계 삼는 등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조회에도 일절 참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염파' 장군을 피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는데 반대

편에서 '염파' 장군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인상여'는 황급히

수레를 골목길로 피하도록 한 후 '염파' 장군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나와 가던 목적지로 향하였습니다.

 

이에 부하들이 얼굴을 붉히며 '인상여'에게 항의하듯 아뢰기를

"우리가 고향을 떠나 相公을 섬기는 것은 높으신 의로움과

용기를 흠모해서인데 상공께서는 '염파' 장군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어찌 그를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하십니까?

저희는 참으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秦)왕 중 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오?"

"그야 진왕이 더 무섭지요."

"맞소. 지금 천하에 진왕을 누를 나라는 없소. 그럼에도 나는

지난날 두 번씩이나 진왕을 꾸짖고 모욕을 주었소.

이러한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 할 리 있겠소?

 

지금 진 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장군이 건재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만일 나와

'염파' 장군이 다투게 되면 두 사람 다 큰 피해를 당하게 되오.

그리되면 진왕이 군사를 내어 우리 조 나라를 칠 것이오.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사사로운 서열 다툼 때문에 어찌 나라를 위급 지경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단 말이오?

이제 그대들은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이유를 아시었소?"

.

.

 

'인상여'의 이 말을 후에 전해들은 '염파' 장군은 자신의

옹졸했던 소견을 부끄러워하며 그 길로 '인상여'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대문 앞에 이르러 윗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진 채 엎드렸습니다.

"이 몸이 워낙 그릇이 작아 상공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이제 그 죄를 청합니다."

 

문 앞에 '염파' 장군이 와서 죄를 청한다는 말을 들은

'인상여'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달려 나가 염파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다 같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받드는 신하

입니다. 장군께서 저의 뜻을 알아주시니 오히려 저가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술자리에 마주 앉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염파' 장군이 하늘을 향해 맹세를

합니다.

 

"나 '염파'는 이제부터 '인상여'와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이

되겠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을 해와 달에 맹세합니다."

 

이러한 '염파'와 '인상여'의 맹세처럼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치 않고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소중한 벗을 가리키는

말로서 문경지교(刎頸之交, 刎頸之友)라는 말씀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훈부장님이 지난 2009년 6월 18일 보내주신 글입니다. 조부장님은 이미

회사를 종년퇴직하셨지만 글을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부장님은 향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부장님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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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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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12월 25일 서울 창신동 쪽방촌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취재진에게.

 

"최근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선임해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고 있는데 국민께도 큰 부담이 되는 것이고, 다음 정부에도 부담이 되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 2012.12.20 당선 기자회견문에서

 

 "모든 지역, 성별, 세대의 사람을 골고루 등용해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올려 국민 한분 한분의 행복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이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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