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4일은~

안중근의사께서 100년 전(1919년)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끝내 유골도 찾지 못하고 유골이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곧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어쨌든 영웅 안중근의 총격으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뒤에 서울에서는 우리 민족이 앞장서 안중근

규탄 대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 뜻이야 어디에 있었던~

일본인들의 보복걱정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 조선총독이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끈을 연결하고

있던 충일파들이 진심으로 분노해서 동원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우리 국민 상당수가 안중근 규탄

대회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물론, 생존 앞에 얼마든지 비굴하고 약해지는 게

보통사람들의 삶의 방법이니 별 수 있었겠습니까?

 

여하튼 안중근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의연한 죽음을

맞으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중근의 형제와 사촌들도 독립운동의 길로

뛰어들었는데... 남아 있던 직계가족들의 삶은 정말

지옥 이상이었다고 합니다.

 

안중근의 큰아들은 거리에서 누군가가 준 독이든

과자를 먹고 7살의 어린나이에 죽었고...

둘째아들 안중생은 살기위해 어떤 일이든 하려고

했지만~ 이미 일본의 거대한 힘이 미치는 중국

땅에서 어떠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빨간 딱지가 붙여진 요주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과 형의 죽음을 목격한

안중생의 삶은 가혹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비록 아버지는 영웅으로 중국과 러시아에서

존경을 받았고 심지어 적국 일본 사람들마저 존경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안중생은 먹고 살기위해서 김구의 임시정부도

기웃거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살림도

넉넉할 리 없었을 터이고,,,

안중근의 아들이라 뒷바라지 해줄 여력도 없었을

것입니다.

 

일본의 힘은 여전히 거대했고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감시도 심했을 터이니...

그런 상황에서 감히 어떻게 동지를 찾고 그들과

어울릴 생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안중생은 평생을 거지처럼 살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조선총독 미나미 앞으로 끌려가 변절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남산에 지은

절에서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받은 돈을 가지고 약국을 차립니다,

이어 미나미 총독의 양아들이 되고 생활비를 받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덕분에 안중생의 아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김구 선생께서 격분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팔아먹은 개자식을 잡아 죽이라고 까지

말했다고 합니다. 백범일지 말미에 안중생을 죽이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합니다.

 

독립영웅의 아들이 개 같은 삶을 살고 충일파들은

민족지도자가 되는 현실에서 안중생에게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고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슬픈 역사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안중생이 미나미 총독 앞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뻣뻣했더라면 안중생의 아들도 제 아비와 같이 똑같은

막장 인생을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백년이 흘러서 안중근의 손자와 증손자는

지금 미국인으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학자가

대낮에 당당하게 고등학교 특강을 다니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국사는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버려서 원하지 않으면 배우지 않을 수 있게도 되었고요.

어쩌면 학교장 스타일에 따라 전체학교가 배우지 않을

수도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아이들은 안중근이

안과 의사인지... 치과 의사인지...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알게 될지도 모르는 기막힌 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일합방은 조선인에게 축복이었다는 소리를 일본인이

아닌 우리 한국인에게서 들어야 하는 세상입니다.

위안부 할머니에게 일본 법원은 99엔을 던져주어도

잘난 정치권에서는 세종시 문제로 쌈박 질이나 하기에

바쁠 뿐입니다.

 

100년 전 2월 14일 안중근 선생님께서 사형을 당하면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자주독립과 무궁한 발전을 기원했을

그 한을 생각하면...

그저 송구해서 고개 들어 하늘을 볼 수도 없을 것 같기만

합니다.

 

(안중근 의사가 혈서로 쓴 대한독립문서)

 

 

우리는 지금 이런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적반하장의 시대에도 어김없이 경칩과 함께

봄은 오시나 봅니다.

그렇게 적반하장의 땅에도 봄은 오시나 봅니다.

 

이 글은 연휴 중 삼일절 91주년을 보내며 조선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쳤던 애국지사 안중근님이 떠올라 펌 정리해

보았습니다.

(회사 조훈부장님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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