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오십을 넘으니 슬슬  우리 부부의 노후의 생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무얼 할까로 고민을 가끔 하게 된다. 우리 부부 제1의 노후 철칙은 부모도

자식에게 짐이 되지않고 자식들도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기이다.

 

"음식점을 할까?"

"음식점은 베이비부머들이 창업을 하는 바람에 많이 힘들다는데, 그리고 사람을

고용해서 운영한다면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울텐데..."

"그럼 커피점은?"

"인테리어비용이 장난이 아니라는데, 가게를 얻을 경우엔 보증금과 월세부담 또한 

만만치 않고...

요즘은 여기저기 우후죽순 체인형 커피전문점이 생기는 바람에 예전처럼 장사도

잘 안된다는데...."

"휴~~ 그럼 우린 어떤 걸로 정할까?"

 

아내는 간혹 조바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때다 싶어 내가 슬슬 작업이 들어간다.

 

"그럼 우리 퇴직 후에 꿈터를 내면 어떻겠소? 나중에 경제적인 것이 허락된다면 건물을

지어 1층은 우리가 꿈터로 꾸며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나 기업복지 담장자들이 들러

편히 차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며 정보도 교류하고... 2층은 북카페 겸 강의장으로

꾸미면 어떻겠소? 그럴러면 미리 커피향을 좋아하는 당신이 좀 배워보면 어떻소.

바리스타 과정을 한번 다녀옴이..."

 

꿈꾸는 것은 자유이다. 지금 당장 가지지 못하였다고해서 내 미래까지 계획하지

말란 법은 없고 또한 미래에 경제적인 부족함을 짊어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늘

내 건물을 지어 1층에는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과 기업복지실무자들이 

정보도 교류를 하며 쉬어갈 수 있는 꿈터와 2층에는 북카페 겸 강의장을 만들어

사내근로복지기금 교육도 하고 사내근로복지기금연합회를 만들어 제도 발전과

연구를 진행하는 것을 꿈꾸었다. 그리고 생생한 꿈은 꼭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때마침 아내와 영화 '가비'를 보고 난 후 아내가 커피에 대한 적극적인 호기심을 보였다.

기회가 되면 배워보겠노라고 하기에 옆에서 열심히 부채질을 하여 명동에 있는

카톨릭회관에서 하는 12주 바리스타교육과정에 등록하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 오전에

두시간씩 배우는데 아예 내친 김에 바리스타 2급 전문과정까지 배우고 싶어해서 수요일에는

삼성동에 있는 '커핀 그루나루'에서 6시간 진행하는 교육까지 배우도록 격려를 하였지만

그런데 두 군데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 복지카드로 결재하라고 했다.

"저, 교육비를 복지카드로 결제할 건데요?"

"복지카드는 주로 공무원들이 쓰던데? 남편분이 좋은 직장에 근무하시나 봐요?"

 

'복지카드 = 좋은 직장'.... 순간 아내 어깨가 으쓱했다나....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보험사기를 막고 보험이 자살동기로 작용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자살하면 보험금을 주지 않는 무보장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자살하면 아예 보험금을 주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7월 12일,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험사기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발표했다.

 

늦었지만 반영되어야 할 사항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다만, 생명보험료 설계에 자살이 반영되어져 있는만큼 이번 조치로 절감되는 금액만큼은 상응하는 보험료 인하나 공익적인 사업에 반드시 사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생명은 단 하나뿐이기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다른 그 어느 것과도 교환되거나 타협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자살은 그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포장을 한다해도 합리화되거나 정당화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자살이나 자해도 기업복지제도 설계시에도 이용되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기업복지업무를 하면서 자살이나 자해행위와 관련된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1995년에 회사에서 재해보장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관련 사업 규정을 제정해야 했다. 사망시에는 큰 금액의 지원금이 나가게 되다보니 자살이나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자살이나 자해로 인한 사망시는 지원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제한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사람은 살면서 어쩌다 큰 빚을 지게 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다보면 삶을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가족들 얼굴을 떠올리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일어서게 된다.

 

그런데 사망시 회사에서 재해보장지원금이 나온다든가, 보험회사에서 사망보험금이 나온다면 가족들이라도 살게 하자는 생각에 목숨을 버리고 싶은 유혹이 생길수도 있기에 이런 가능성을 아예 없애고자 했던 조치였다.  나도 지난 시절 암 말기판정을 받은 전 아내의 주식투자실패 그리고 사별, 개인회생을 이행하며 인고의 시기를 보냈던 경험이 있기에 그런 충동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한 때 노사간에 자살이나 자해시에 재해보장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조항을 삭제하자고 제안하였으나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 논란이 있을 수 있음을 들어 반대했다.

 

뒤에 입원진료비를 지원하게 될 때도 자해나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입원비도 입원진료비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도록 만들었다. 지원금 지급제한 문구를 삭제시키자는 압력도 많았지만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다.

"왜 죽습니까? 죽을 용기가 있다면 차라리 그 용기를 사는데 써야죠. 그리고 어떻게 조성한 기금인데 스스로를 포기한 사람에게 사용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호통을 쳐서라도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가야 할 것인데.....

어쩌면 자살이라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사회나 직장이 보이지 않게 주는 무언의

억압이나 견디지 못할 어떤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서로서로 돌아보며 배려해주는 마음을 기대해 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회사는 재직시에도 그렇지만 회사를 떠나서도 든든한 방패가 됩니다. 직장인이 이직을 한다면 인사담당자는 당연히 지원자가 전에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봅니다. 만약 그 사람의 옮기기 전의 회사가 도산을 했다면 좋은 평가는 받기 어렵습니다.

 

나는 지금도 할인점이나 슈퍼마켓에 가서 장보기를 할 때 상품을 고르게 되면 이전 근무했던 대상그룹의 '청정원 상품'을 주저없이 고릅니다. 평소 짠돌이라는 말을 듣지만 가격이 다른 회사 상품보다 비싸도 제 선택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때마다 함께 간 가족들이 묻습니다.

"그 직장을 나온지가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전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어요?"

나는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는 법이죠? 전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없어진다면 누가 그 경력을 쳐 주겠어요? 그러니까 전에 다니던 회사도 당연히 잘되어야죠!"

 

제가 대상에 근무한 기간은 군(ROTC)을 막 전역한 1985년 7월부터 1993년 2월까지 7년 8개월입니다. 그후 곧바로 지금의 KBS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이직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지만 시장을 가도 같은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면 나는 꼭 이전 회사의 제품이나 상품을 고집합니다. 다소 비싸도 제 선택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혹여 가족이 다른 경쟁사 제품이나 상품을 구입해오면 다시 바꾸러 가거나 다음에는 사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니 아예 청정원으로 사오게 됩니다.

 

이미 전 직장을 떠난지 20여년이 흘렀고, 임금이나 기업복지는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전 직장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없어지면 내가 수년간 땀과 열정을 바쳐 일했던 그 노력과, 고생, 보람이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회사가 있어야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열정을 바쳐 일했던 회사가 내가 떠나온 뒤에도 지속적으로 성장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두고두고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직장은 그 자체로도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요즘 정년퇴직을 몇달 앞두고 있는 선배님들의 자녀 결혼 청첩장을 종종 받을 때면 회사라는 울타리와 존재가치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들의 혼사 앞에서 부모의 직장이 사회적인 평가와 인증의 또다른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회사에 다닌다는 평판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한 사람의 살아온 모습을 고스란히 남기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기업복지이야기가 200회를 맞았습니다. 2005년 10월 16일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6년 8개월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사내근로복지기금이야기는 2005년 3월 16일부터 시작해서 오늘로서 1767호임에 비해 기업복지이야기는 많이 더딘 편입니다. 두가지 글을 쓰고 관리하기가 부담스러워 기업복지이야기는 일주일에 하나씩 쓰기로 한 것이 2주일이 되고, 어떤 때는 한 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분발하려 합니다.

 

제가 작년부터 사내근로복지기금이나 기업복지제도 교육을 진행하면서 미국 스티브잡스의 100인 원탁회의를 자주 거론하며 왜 CEO들이 임직원들에게 이런 식사자리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습니다. 큰돈 들이지 않으면서 소통효과와 회사에 대한 자긍심이나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이처럼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여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실제 미국 애플사의 전 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매월 한번씩 100인 원탁회의를 개최했다고 알려졌다. 대상은 애플사 내 임직원 중 엄격한 기준으로 100인을 선정하여 그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100인 원탁회의에 선정된 멤버는 애플 내에서 스티브잡스에게 '인정받은 100인' 안에 끼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여기에 끼지 못하는 사람은 100인 멤버에 들기 위해 절치부심 한다고 한다. 스티브잡스 답게 '100인 원탁회의'라는 이름하에 애플 임직원들을 보이지 않게 무한경쟁의 세계로 몰아넣고 열정을 불태우도록 함든 것이다.

 

이틀 전 삼성그룹 사내 인트라넷인 '마이싱글'에 이건희 회장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할 임직원 선발공고가 났다고 한다. 삼성그룹 임직원이라면 성별과 나이, 직급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정해진 양식에 따라 '내가 회장님과 점심을 함께 하고 싶은 이유'란 내용의 응모서를 A4 1장 내외로 작성해서 제출하면 그룹 미래전략실은 응모서 중 진정성과 차별성, 독창성 등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8월 중 총 10명을 선정하여 이 회장과 오찬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고 한다. 식사비는 '무료'인데 벌써부터 삼성그롭내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식사 한끼를 마케팅과 가장 잘 연계시켜 잘 활용하는 사람은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인 워런 버핏을 들 수 있다. 워런 버핏은 함께 식사를 할 대상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는데 여기서 생긴 돈은 자선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고 남의 돈으로 사회에 기부도 하니 한마디로 꿩먹고 알먹기 식이다. 최근에는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의 점심 비용이 40억원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버핏과의 식사 한 끼에 쓰는 사람도 결국은 자신이 낸 돈이 좋은 일에 쓰이고 자신은 세상의 관심과 함께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기에 결국 두사람 모두 윈윈하는 결과이다.

 

삼성에서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당장 관심과 반응이 뜨거우니 앞으로 다른 기업들도 이를 벤치마킹을 시도하고 기업경영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사실 기업의 임직원들에게 CEO는 두렵고 어려운 존재이다. CEO가 임직원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 만큼 스킨십을 통한 소통을 확대시키면서 내부 결속력과 조직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 만점의 방법이다. 기업복지에 수억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홍보효과도 크고 종업원들과 스킨십을 통해 회사에 대한 자긍심을 높여주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런 방법들을 다양하게 활용했으면 좋겠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2주전, 평소 알고 지내던 학교 선배님께서의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선배님은 수년전에 회사를 퇴직하셨는데 생전에 1년에 두번 정도 만나었는데 만날때마다 세상 사는 이야기며 회사를 퇴직한 이후의 근황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알고 지내던 분이라 처음에는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마침 토요일이 꺼어 있었고, 대학원 수업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장례식장이 있어서  토요일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저녁시간에 곧장 문상을 가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장례식을 병원 장례식장을 이용하거나 지방의 경우는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지만 '그래도 가진 재산이 있어야 죽어서도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대접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상주들은 고인을 생각해서 장례식장을 잡는다지만 실은 자신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크고도 넓은 장례식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장례식장의 시설이 좋고 문상객 접견실이 넓은 곳은 상대적으로 이용요금도 비싸서 비용면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곳은 조화도 많지 않고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으면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장례식장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았던 생전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선배님은 평소에 동료나 후배들, 주변사람들을 많이 아껴주고 챙겨주어서 그런지 3일 내내 문상객들이 많이 다녀갔다고 하니 마지막 가시는 모습이 외롭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모 회사의 대표이사가 보낸 큰 조화가 양 쪽에 떡 서있는 모습에서 선배님이 평소에 자식 둘이 있는데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결혼하고 취직까지 해서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문상객들에게 나오는 음료나 음식에서 자녀이 다니는 회사의 로고가 찍힌 컵이며 포장된 젓가락과 밥그릇들을 보며 '그 회사는 직원들 복지를 잘 챙겨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회사에서도 상조물품지원 또는 장례용품지원을 해주자는 요청이 있어 장례식장을 나오면서 종이컵과 젓가락 셋트를 들고 왔습니다.

 

상조물품을 지원해주는 회사에 연락을 해서 알아보니 장레용품 지원비용이 1인당 일백만원에서 일백오십만원 안팍이었습니다. 1년 중 직원들의 본인상이나 배우자상, 부모상, 배우자의 부모상, 자녀상은 빈번하게 챙길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례용품지원 또한 큰 돈을 들이지 않고서도 내부적으로는 직원들의 애사를 챙김과 동시에 직원들의 사기와 자부심를 올려주고 대외적으로도 직원들 복지를 잘 챙겨준다는 회사 이미지를 높여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복지제도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요즘에는 지방에 지점이나 사무소가 있는 경우에는 상조용품을 배달해주는  대행업체까지 있다고 하니 그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실시가 가능할 것입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근무년수가 늘어 가면서 매월 회사로부터 지급 받는 급여와 복리후생의 혜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세상사가 어디 공짜가 있겠는가! 연봉이 늘고, 복리후생제도 혜택이 매년 좋아지는데, 스스로가 과연 밥값은 하고 있는지, 업무적으로는 회사에 제대로 기여하고 있는지 가끔 밀려오는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곤 한다.

 

수년 전에 한국의 한 중소기업인 삼원정공의 초단위경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사람의 1년 연봉과 복리후생비, 교육훈련비, 기타 자기가 받는 혜택을 금전으로 환산하여 이를 다시 휴일이나 공휴일을 빼고 실제 근무일수를 계산하고 일자별, 시간별, 1초로 환산하면 1초당 인건비금액이 산출이 된다.

 

가령 연봉 5000만원에 각종 복리후생 혜택(법정복지비 포함) 1000만원, 퇴직급여 500만원, 교육훈련비 200만원 등 총 6700만원이 들었다면 실근무일수로 나누면 하루당 인건비가 산출이 된다. 실근무일수는 1년 365일에서 법정 주휴일 2일(토, 일) 104일(52주*2일), 법정공휴일 8일(설, 추석, 3.1절,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현충일, 광복절, 성탄절 총 12일 중 주휴일과 중복되는 4일일 제외하면 8일)을 빼고 회사 공휴일 1일(회사 창립기념일)과 여름휴가 3일을 제외하면 249일이 나온다.

 

1일당 총 인건비는 269,076원이 되고(6700만원/249일, 한시간당 총 인건비는 33,634원(269,076/8), 1분당 인건비는 673원(33,634원/50분, *한시간 중 휴게시간 10분 제외), 1초당 인건비는 11원이 된다. 이렇게 본인의 총 인건비를 산출하다보면 자신의 시간당 인건비에 깜짝 놀라게 되고 회사에서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숨이 막힌다고 할지 모르지만 의외로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회사에 대한 고마움이나 본인에 대한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데 회사에 대한 충성심 또한 생길 리가 없다.

 

전 직장에서 일본 어느 경영관련 서적을 보니 회사는 종업원 1인을 채용하면 5배 정도는 부가가치를 올려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한번쯤 자신의 정확한 몸값과 자신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계산해 보는 것도 필요하고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수프에 들어갈 재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수프를 젓는 사람이다. 최선을 다해 사람을 담아 수프를 저어라"

 

지난 4월, 신문에 보다가 우연히 도서평을 보고난 후 구입한 '뉴욕 뒷골목 수프가게'(존 고든 지음, 김소정 옮김. 한국경제신문)를 며칠간 시간을 내어 읽고 있다.

나는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도 같은 말을

다이엔이란 수프가게 요리사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와인 전문가들 중에는 와인의 맛만 봐도 그 와인을 만든 사람의 성격까지 알아내는 사람이 있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와인에 그 사람의 에너지가 녹아있기 때문에요. 두 요리사가 같은 곳에서 같은 재료로 똑 같은 방법으로 요리해도 음식 맛은 달라져요. 아무리 같은 요리법을 가지고 둘이 똑 같은 맛을 내려고 애써봐도 허사죠. 냄비를 젓는 사람이 냄비 안에 있는 내용물에 영향을 미치니까. 이것이 바로 '냄비젓기현상'이죠. 들어보셨죠?"(p.40)

 

필자는 '수프는 문화다', '만드는 사람이 집어넣는 에너지가 만들어낸 물건의 질을 결정한다'를 계속 강조하고 있었다. 특히 '수프는 문화다'라는 부분에서 나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저자는 다이엔의 아들 빌(경영컨설턴트)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수프가 수프를 만든 사람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듯이 기업의 문화도 기업을 이끄는 지도자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수프와 수프가게의 문화는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둘 모두 냄비를 젓는 사람과 그 사람의 가치와 원칙, 냄비를 젓는 사람이 냄비 안에 넣는 재료들을 반영합니다.

'문화는 지도자와 팀원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략에만 초점을 두고 문화를  무시하는 조직이 많지만, 언제나 전략을 결정하는 것은 문화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공한 조직은 부드러움이 약해 보여도 사실은 아주 강력하며 조직 문화에 꼭 필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문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제대로 투자하지 않는 조직이 너무도 많습니다....멋진  열매를 맺으려면 뿌리를 튼튼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고 바라는 열매를 따려면 문화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물론 판매 지수도 비용도 판매 실적도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결과들은 조직의 문화와 팀워크, 생산성, 효율성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지도자라면 바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하고, 바른 문화를 양성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문화는 동기에 영향을 주고 동기는 생산성과 효율에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것은 문화에서 시작합니다. 따라서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위대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p50~51)

 

내가 기업복지세미나, 사내근로복지기금세미나에서 꼭 잊지않고 하는 말이 있다.

 

"그 회사의 기업복지제도를 보면 그 회사의 기업문화를 알 수 있습니다. 기업복지제도를 보면 그 기업 CEO의 종업원을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이는 곧 그 회사의 복리후생이나 기업문화, 경영전략까지 반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업복지제도를 살펴보면 그룹별, 업종별 특성이 매우 강하다. 이는 우리나라가 재벌이라는 독특한 계열집단을 이루어 성장하면서 그룹사끼리는 인력채용이나 교육, 인사제도, 임금전략, 복리후생 등이 동질성 내지는 유사성을 함께 가지고 갈 수 밖에 없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유사한 업종의 경쟁사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본다. 특히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는 임금협상시 같은 업종끼리는 임금과 복리후생에 대한 정보를 서로 교류하며 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일조를 하고 있다고 본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예전에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던 회사의 인사노무 담당 부서의 관리자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노사간 대립이 처음에는 회사와 노동조합의 조직간 대립으로 시작되더니 나중에는 직원들간에 서로 편이 갈리고 종국에는 노-노 갈등인 직원들간의 대립으로도 발전하더라는 것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알고서 치유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해결이 된다는 것이고, 어쩌면 모두가 재직하는 내내 안고 가야할  상처일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회사에서는 노동조합에서 실시하는 선거를 거치면서 입후보를 한 후보자를 중심으로 파벌이 형성되더니 두개 세개의 파벌로 분화되고, 다시 네개의 파벌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선거가 끝난 후면 파벌에 따라 갈린 직원들간, 조합원들간에는 미묘한 감정적 갈등과 장벽이 느껴지고 식사시간에도 그렇지만 차 한잔을 함께 나누는 것도 서로가 서로를 탐탁찮게 대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조직 전체가 서먹서먹해 지더라고 한다. 이도 저도 싫어 중도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도 회사 생활이 불편하기는 매 한가지다.

 

단체행동이나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임금이나 복지증진 등 순수한 이념과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며 출발을 하지만, 전개 되어가는 과정에서 서로가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면서 상대의 전략을 공격하며 비방을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개입되게 된다. 상대방 말 한마디, 글 한줄에서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고 언쟁과 성명이 난무하고 그때부터 지루한 소모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거기서 멈추지 못하면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인의 힘을 빌리게 되어질테고 점점 수습하기 힘든 상황으로 악화되게 된다. 더 악화되어지는 과정을 보면 정작 싸우는 당사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갈등과 대립이 해소된 그 이후이다. 회사는 상황을 수습하고 분위기를 쇄신하여 회사의 기본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데, 그 기간동안에 상처를 받은 직원들, 노사간 대립, 노노간 대립으로 회사에 대한 불신과 동료간의 벽이 높은 종업원들을 함께 이끌어 융합해 가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치유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는 것일 게다.

 

단체행동이나 조직 또는 종업원간 갈등이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회사와 노동조합, 조직대 조직, 개인대 개인의 갈등이지만 결국에는 동료와 동료끼리의 싸움으로 이어진다. 언쟁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고 타협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싸움은 이겨야 끝이 나므로 오직 내편, 네편만 존재한다. 갈등이 있는 조직을 들여다보면 대립하는 회사측과 노동조합, 그리고 중간에 어느 편에도 동조하지 않고 애써 무관심으로 침묵하는 집단으로 갈린다. 침묵하는 집단도 양측 모두의 눈치 아닌 눈치를 보아야 하니 힘이 들고 피곤한 것은 매 한가지이다.

 

회사는 직원들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집중시켜야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다. 종업원들끼리의 반목은 회사에서는 곧 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체행동이나 갈등이 끝나면 회사는 그 기간 중에 종업원들이 입은여러 형태의 상처를 빨리 수습해야 한다. 사내체육행사나 단합대회, 그리고 사내음악회를 개최하든, 동호인회 활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종업원들의 마음과 정서를 한 곳으로 모아야 한다. 기업복지제도가 이러한 조직원간의 갈등을 줄이고 조직의 화합을 이루는데 기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크게 활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누구나 조국을 떠나 지내다보면 조국에 대한 감사함이 저절로 생긴다고 한다. 이번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쌍둥이자식들이 공부하는 중국 허난성 정저우시에 있는 정주국제학교(ZIS) 학부모초청행사를 다녀와서 새삼 내 나라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내가 속해 있는 회사에 대한 감사함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중국 근로자들 한달 급여는 3000위안화 정도라고 하는데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600,000원정도 된다. 우리나라 근로자와 비교하면 많지는 않지만 물가가 상대적으로 싸니 살기에 불편함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남과 비교를 하지 않고, 남이 돈을 많이 받는 것에 대해 시기하거나 질투를 하지 않고 살아가니 대체적으로 국가의 행복지수는 높게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분명 70년대, 80년대와 비교하면 누구나 소득수준이나 생활수준이 크게 나아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급여가 올랐고(물론 물가도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지만) 살고 있는 주거공간도 넓어지고 현대화 되었으며 입고 있는 의복과 음식은 물로 생필품에서도 품질이나 수준이 높아졌다.

 

또 큰 변화는 교통이다. 자가용도 외관이 커지고 기능 또한 좋아지고 가격도 비싸졌지만 대부분 가구마다 차량 한대씩은 보유하고 있다. 대도시는 자가용 대신 지하철을 이용해서 출퇴근이 가능하도록 불편함이 없이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KTX를 이용하면 서울과 지방 대도시도 두세시간이면 오갈 수 있으니 정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셈이다.

 

이번에 다녀온 중국 정저우시는 중국 지도를 보면 심장부에 위치해 있고 황하가 흐르는 농산물 곡창지대이다 보니 바다를 끼고 있는 상하이나 푸저우, 칭다오에 비해 개발이 늦어져서 변방은 예전의 우리나라 80년대초반의 모습, 반면 도심은 현대화되어가는 2000년 초반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저우 신도시는 수천세대의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동시에 건설되고 있어서 마치 신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사장 같았다. 1~2년 뒤에 다시 가면 놀랄만큼 도시가 변해 있을 것 같았고 중국의 무서운 저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있는 4일 내내 황사와 공사로 인한 각종 분진과 매연들로 하늘이 뿌옇고, 호텔은 이제 막 지은 건물이어서 객실 내에는 다 털어내지 못한 공사 먼지로 자욱했다. 학교에서 준비해주신 한국음식을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향신료 가득한 특유의 중국음식이 맞지 않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잠자리와 음식, 대화가 통하는 우리나라가 정말 그리웠다. 그나마 아직은 한국이 기술력이나 1인당소득에서는 중국을 앞서 있으니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것 마저도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따라오는 저들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돌아가 편히 쉴 수 있는 조국과 집이 있고, 내 열정을 다해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너무도 감사했다. 국가나 회사가 주는 복지혜택이 적다고 불평하기에 앞서 내가 먼저 회사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자식을 둘 이상 낳으면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

 

지난 1988년 결혼식을 하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인사를 가자 아버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할아버지도 장남, 아버지도 장남, 나도 장남.... 내 밑으로는 남동생만 넷. 요즘 결혼조건으로는 최악이다.

 

아들만 다섯을 두신 아버지는 아버지 당신 형제자매 일곱과 당신 자식 다섯을 교육시키고 뒷바라지 하느라 시골에서 평생을 일만 하며 보내셨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늘 들로, 염전으로(당시 우리집은 염전을 하고 있었다) 나가서 하루 종일 뙤약볕 밑에서 일을 하셨다. 아버지 발은 늘 염전에서 일을 하셨기에 두터운 각질이 묻어 있었다. 짜디짠 염전 바닷물 덕분에 남들 고생하는 무좀 걱정은 평생 없을 거라고 늘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결혼하자 아내가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 1989년 2월에 큰 애를 보았다. 그 이후 애를 갖지 않았다. 아버지의 압력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식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는 자식 때문에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맞벌이였고 장남이었기에 의무감에서 최소한 자식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1980년대 말, 당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식수는 하나 아니면 둘이었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표어도 있었다. 집집마다 자식을 둘 이상을 낳으면 머지않아 삼천리 금수강산이 초만원이 된단다. 함께 모시고 살던 장모님도 큰애 하나는 키워주는데 둘째는 낳으면 못키워주겠단다. 안팎으로 협공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1997년초, 아내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을 꺼낸다. "나 임신한 것 같은데..." 헐~~~ 이를 어떡해야 하나? 그래도 하늘이 주신 귀한 생명인데~ 11월 10일 쌍둥이들이 태어났다. 태어나고 나서 일주일만에 우리나라가 IMF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한꺼번에 두녀석이 나오니 졸지에 자식이 셋이 되었다. 당시는 가구당 자식수가 더 줄하나가 대세였다. 그런데 셋이라니... 시대흐름에 역행했던(?) 셈이었다. 아내는 회사 인사부와 경리부에 부양가족 신고를 하러가니 회사 담당자가 야만인 보듯 하더라고 무지 챙피했단다.

 

살고 있던 집도 좁아 이사를 가야 했다. 황당했던 일은 회사에 경조비를 신청했는데 자식 한사람에게만 경조비를 적용해 준단다. '둘을 낳았는데 경조비가 왜 하나지?'  회사 경조비 담당자 왈 "쌍둥이는 출산행위가 한번이잖아요?" 요즘같으면 대부분 회사에서는 경조비도 두몫으로 주고 출산장려금도 챙겨주고, 구청에서도 떡케익에 50만원 상당하는 축하금이나 출산장려용품을 주는데 당시는 자식 많은 것이 좁은 국토를 더 비좁게 만드는 죄인같은 기분이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는 내 밑으로 아내, 자식 셋 다섯칸을 잡아 먹었다.

 

작년에 재혼을 하여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더 얻었다. 자식수가 무려 다섯.... 주민등록증본을 떼면 한참 밑으로 내려온다. 다섯 중에 이미 둘은 성인이고 딸은 올해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니 가족수당도 제외되고, 연말정산에서 부양가족공제대상도 아니란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 대학학자금에 용돈, 책값 등 들어가는 돈은 크게 늘어 허리가 휘는데 자식이 많다고 받는 혜택은 거의 없다. 고작해야 다자녀 전기료 감면 정도....

 

이제는 우리나라가 저출산 고령화로 난리법석이다. 국가나 지자체들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한달에 양육수당으로 25만원씩을 매달 준단다. 내가 다니는 한소망교회는 출산장려차원에서 새로 태어나는 셋째 자녀부터는 대학졸업시까지 대학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준다고 발표했다. 그럼 이미 셋째를 낳은 사람은? 이런다고 셋째를 낳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꼬?

 

기업으로서는 직원이 자녀를 출산하면 경조비며, 교육비, 가족수당 등을 직접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자녀 출산이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대학학자금은 자녀당 1년에만 일천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40대와 50대가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는 것도 이런 복리후생비 부담이 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카페지기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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