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둘 이상 낳으면 호적에서 파 버리겠다"
지난 1988년 결혼식을 하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인사를 가자 아버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할아버지도 장남, 아버지도 장남, 나도 장남.... 내 밑으로는 남동생만 넷. 요즘 결혼조건으로는 최악이다.
아들만 다섯을 두신 아버지는 아버지 당신 형제자매 일곱과 당신 자식 다섯을 교육시키고 뒷바라지 하느라 시골에서 평생을 일만 하며 보내셨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늘 들로, 염전으로(당시 우리집은 염전을 하고 있었다) 나가서 하루 종일 뙤약볕 밑에서 일을 하셨다. 아버지 발은 늘 염전에서 일을 하셨기에 두터운 각질이 묻어 있었다. 짜디짠 염전 바닷물 덕분에 남들 고생하는 무좀 걱정은 평생 없을 거라고 늘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결혼하자 아내가 허니문 베이비를 가져 1989년 2월에 큰 애를 보았다. 그 이후 애를 갖지 않았다. 아버지의 압력도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식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는 자식 때문에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맞벌이였고 장남이었기에 의무감에서 최소한 자식 하나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1980년대 말, 당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식수는 하나 아니면 둘이었다.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가족계획 표어도 있었다. 집집마다 자식을 둘 이상을 낳으면 머지않아 삼천리 금수강산이 초만원이 된단다. 함께 모시고 살던 장모님도 큰애 하나는 키워주는데 둘째는 낳으면 못키워주겠단다. 안팎으로 협공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1997년초, 아내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을 꺼낸다. "나 임신한 것 같은데..." 헐~~~ 이를 어떡해야 하나? 그래도 하늘이 주신 귀한 생명인데~ 11월 10일 쌍둥이들이 태어났다. 태어나고 나서 일주일만에 우리나라가 IMF구제금융을 신청했다. 한꺼번에 두녀석이 나오니 졸지에 자식이 셋이 되었다. 당시는 가구당 자식수가 더 줄어 하나가 대세였다. 그런데 셋이라니... 시대흐름에 역행했던(?) 셈이었다. 아내는 회사 인사부와 경리부에 부양가족 신고를 하러가니 회사 담당자가 야만인 보듯 하더라고 무지 챙피했단다.
살고 있던 집도 좁아 이사를 가야 했다. 황당했던 일은 회사에 경조비를 신청했는데 자식 한사람에게만 경조비를 적용해 준단다. '둘을 낳았는데 경조비가 왜 하나지?' 회사 경조비 담당자 왈 "쌍둥이는 출산행위가 한번이잖아요?" 요즘같으면 대부분 회사에서는 경조비도 두몫으로 주고 출산장려금도 챙겨주고, 구청에서도 떡케익에 50만원 상당하는 축하금이나 출산장려용품을 주는데 당시는 자식 많은 것이 좁은 국토를 더 비좁게 만드는 죄인같은 기분이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면 나는 내 밑으로 아내, 자식 셋 다섯칸을 잡아 먹었다.
작년에 재혼을 하여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더 얻었다. 자식수가 무려 다섯.... 주민등록증본을 떼면 한참 밑으로 내려온다. 다섯 중에 이미 둘은 성인이고 딸은 올해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되니 가족수당도 제외되고, 연말정산에서 부양가족공제대상도 아니란다.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 대학학자금에 용돈, 책값 등 들어가는 돈은 크게 늘어 허리가 휘는데 자식이 많다고 받는 혜택은 거의 없다. 고작해야 다자녀 전기료 감면 정도....
이제는 우리나라가 저출산 고령화로 난리법석이다. 국가나 지자체들이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한달에 양육수당으로 25만원씩을 매달 준단다. 내가 다니는 한소망교회는 출산장려차원에서 새로 태어나는 셋째 자녀부터는 대학졸업시까지 대학등록금을 전액 지원해준다고 발표했다. 그럼 이미 셋째를 낳은 사람은? 이런다고 셋째를 낳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꼬?
기업으로서는 직원이 자녀를 출산하면 경조비며, 교육비, 가족수당 등을 직접적으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자녀 출산이 반갑지만은 않다. 특히 대학학자금은 자녀당 1년에만 일천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40대와 50대가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는 것도 이런 복리후생비 부담이 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카페지기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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