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刎頸之交(문경지교) ♤
춘추전국시대 말기 조(趙)나라 '혜공' 때 이야기입니다.
조나라에는 '염파'라는 명장이 있었는데, 그는 이웃한 연나라와
조나라의 연합군의 일원으로 출전하여 조나라 군대의 위력을
떨친 공로로 대장군 겸 상경벼슬에 올랐고, 이러한 공적과
관직에 대하여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앞에 환관의 식객 출신인 '인상여'라는 미천한
인물이 자기보다 높은 재상(경대부)자리에 오르니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라도 크게 망신을 주어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 '인상여'는 그때부터 병을 핑계 삼는 등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조회에도 일절 참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염파' 장군을 피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가 수레를 타고 길을 가는데 반대
편에서 '염파' 장군이 오고 있었습니다. 이때 '인상여'는 황급히
수레를 골목길로 피하도록 한 후 '염파' 장군이 지나간 후에야
다시 나와 가던 목적지로 향하였습니다.
이에 부하들이 얼굴을 붉히며 '인상여'에게 항의하듯 아뢰기를
"우리가 고향을 떠나 相公을 섬기는 것은 높으신 의로움과
용기를 흠모해서인데 상공께서는 '염파' 장군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어찌 그를 두려워하며 피하기만 하십니까?
저희는 참으로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秦)왕 중 누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오?"
"그야 진왕이 더 무섭지요."
"맞소. 지금 천하에 진왕을 누를 나라는 없소. 그럼에도 나는
지난날 두 번씩이나 진왕을 꾸짖고 모욕을 주었소.
이러한 내가 염 장군을 두려워 할 리 있겠소?
지금 진 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장군이 건재해 있기 때문이오. 그런데 만일 나와
'염파' 장군이 다투게 되면 두 사람 다 큰 피해를 당하게 되오.
그리되면 진왕이 군사를 내어 우리 조 나라를 칠 것이오.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사사로운 서열 다툼 때문에 어찌 나라를 위급 지경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단 말이오?
이제 그대들은 내가 염 장군을 피하는 이유를 아시었소?"
.
.
'인상여'의 이 말을 후에 전해들은 '염파' 장군은 자신의
옹졸했던 소견을 부끄러워하며 그 길로 '인상여'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대문 앞에 이르러 윗옷을 벗고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진 채 엎드렸습니다.
"이 몸이 워낙 그릇이 작아 상공의 큰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으니 이제 그 죄를 청합니다."
문 앞에 '염파' 장군이 와서 죄를 청한다는 말을 들은
'인상여'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달려 나가 염파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다 같이 나라의 종묘사직을 받드는 신하
입니다. 장군께서 저의 뜻을 알아주시니 오히려 저가 감격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 술자리에 마주 앉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염파' 장군이 하늘을 향해 맹세를
합니다.
"나 '염파'는 이제부터 '인상여'와 생사를 함께 하는 벗이
되겠습니다. 내 목에 칼이 들어온다 해도 이 마음만은 변치
않을 것을 해와 달에 맹세합니다."
이러한 '염파'와 '인상여'의 맹세처럼 목에 칼이 들어와도
변치 않고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소중한 벗을 가리키는
말로서 문경지교(刎頸之交, 刎頸之友)라는 말씀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훈부장님이 지난 2009년 6월 18일 보내주신 글입니다. 조부장님은 이미
회사를 종년퇴직하셨지만 글을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부장님은 향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부장님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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