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 참~ 이번 추석 때 부모님께 10월말까지 42인치 LCD TV를 사드리겠다고 덜컥 약속을 한 이후 왠 돈 들어갈 일이 이리 많이 생기는지...
 
지난주말 승용차 브레이크 경고등이 들어와 거금 75,000원을 주고 고쳤는데(그것도 85,000원 달라는 것을 3000원 깎고 , 현금으로 계산한다고 7000원 또 깎아서)  이번에는 ABS장치가 고장이란다. 고치는데만 13만원... 카센타 사장님에게 아주 급한 거 아니면 다음으로 수리를 미루자고 했다.

차량 기름은 왜 이리 빨리 닳는지, 지난주에 5만원어치 주류를 한 것 같은데 내 차 주유지시계가 벌써 바닥 근처에 와 있다. 지금 나오는 어느 국산 신차는 경유 연비가 17점 몇 킬로미터라는데 그 엔진을 내 차에다 살짝 얹으면 안될라나?

농협하나로마트 시장을 다녀오는데 장모님이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쌍둥이들 내복도 사고, 가을옷과 겨울옷도 다 새로 다 사야 하는데....은경이가 사놓고 간 옷들이 이제는 다 적어..." 하긴 녀석들이 지난 1년 사이에 참 많이 컸다. 키가 내 턱밑이었는데 이제는 내 눈높이까지 키가 자랐다. 언제 키가 클려나 했는데 지금 한참 크는 시기인지 식성이 너무 좋아 요즘은 밤에 중간고사 공부한다면서 공부는 언제 하는지 우리집 냉장고는 불이 난다. 일주일 식사며 간식거리 대기에도 벅차다. 

2006년 8월, 아내는 하늘나라로 가기 3개월 전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뉴코아백화점을 훑고 다니며 미리 큰 치수로 쌍둥이들 내복이며 바지를 몇벌씩 사두었다. "여보! 나중에 내가 왜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옷을 이렇게 많이 사는지 알게 될꺼야. 아마 나중에 살다보면 내 생각 많이 날껄~" 아내가 그때 사둔 내복이며 티셔츠, 바지로 지난 2년간은 쌍둥이들 옷 사지 않고 그럭저럭 잘 버티고 살았는데 올 1년 사이에 쌍둥이들이 너무도 훌쩍 커버리는 바람에 이번 가을과 겨울에는 새로 옷 장만을 해야 할 것 같다. 옷 값이 장난이 아닌데....

어제 호수공원 산책을 나갔다가 들른 뉴코아백화점에는 최신 유행의 넥타이며, 와이셔츠들이 즐비해있어 나를 유혹한다. 다음주에는 한국생산성본부 강의가 10월에는 회사 연수원과 ***아카데미, 근로복지공단 선진기업복지컨설턴트 강의가 줄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딱 하나씩만 장만하고 싶은데, 지름신이 곧 강림할 것만 같은데, 꾸욱 달랜다. 부모님께 LCD TV를 사드리기 전까지는 참아야 하느니라!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이번 추석을 다녀온 후 나에게는 새로운 미션이 하나 생겼다. 집에 있는 TV가 너무 노후하여 이제는 화질도 좋지않아 TV시청을 하는데 답답하고 내후년이면 TV송출시스템이 디지털로 전환되니 내가 어렵더라도 이번에 LCD TV를 꼭 마련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예 10말말까지 42인치 LCD TV로 바꾸어드리겠다고 가족들에게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이번 추석명절때 시골에서 개최된 '추억의가요 콩쿨대회' 대상이 42인치 LCD TV였는데 내가 노래실력이 뒷받침만 되었더라도 한번 도전해서 마련해 드릴 수 있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음주가무 끼는 타고나지를 않았으니 포기했고, 할 수 없이 내 땀을 흘려서 번 돈으로 TV를 사드릴 수 밖에... 마침 셋째 동생이 이번 여름에 열심히 일을 해서 집에 에어컨을 장만해 준 것이 장남인 나로서는 더 자극이 되었다.

올해 2월말에 전립선암 검사와 수술을 위해 우리집에 다녀가시면서 우리집 거실에 놓여있는 42인치 LCD TV를 보고 아버지께서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많이 서운해 하셨겠지. 자식들 키워놓으니 (전후사정은 알지 못하시니) 지들은 집에 LCD TV를 놓고 잘 살면서 부모는 뒷전이고 자식들 애써 키워놔봤자 아무런 짝에도 쓸모없다고 섭섭함도 느꼈을 것이다.

3년전, 거실에 있던 TV가 고장나 버리자 잘되었다 싶어 거실에는 TV를 놓지 않으려 했는데 때마침 장모님이 양쪽 녹내장 수술을 하신 직후였는데 "내 유일한 낙이 집에서 TV를 보는 것인데 그 낙마저 빼앗으려 하는가?" 하시며 섭섭해 하시는 한마디 말씀에 이왕이면 편하게 보시라고 당시로서는 꽤 무리를 하여 거실에 42인치 LCD TV를 들여놓게 되었다. 그나마 지금은 가격이 3년전보다 3분의1 이하로 떨어져 부담은 줄어 다행이다.

시골에 내려가 지켜보니 부모님께서 아침 저녁으로 TV를 보시며 뉴스도 듣고 오락프로에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뵈니 올해 10월말이 가기 전까지는 꼭 내 힘으로 집에 42인치 LCD TV를 선물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비록 내 지금은 힘들지만, 내 어려움이야 내가 조금만 불편하게 살며 참고 견디면 되는 것,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기쁨을 드리고 내 도리를 하고 싶다. 아내가 살아있었다면 진즉 무리를 해서라도  LCD TV를 사드렸을텐데, 하늘나라에 있는 아내도 내 결정에 잘했다고 기뻐해 주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을 올리기 전에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다.

"아버지, 이번 차례상에 집사람 밥도 함께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2년전 추석차례상에 집사람 밥을 작은아버지댁과 동생집 양쪽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장모님이 많이 속상해 하셨거든요. 그래도 장손며느리였는데 하시면서..."
"알았다. 밥 한 그릇만 더 놓으면 되니 그럼 그렇게 하마"


할아버지 제사상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옆 추석차례상에는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어머니 밥을 비집고 아내 밥이 나란히 놓여져 있다. 결혼후 17년간을 매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내가 직접 시장을 보며 준비해간 제수용품으로 차례를 올리던 할아버지 제사상과 추석 차례상에 이제는 아내 자신의 밥이 놓여져 있다.

제사를 다 지내고 아버지가 조용히 말씀하신다.
"나와 여기에 계신 너희 작은아버지들로 보면 쌍둥이엄마는 며느리이고 조카며느리이다. 여기 상에 밥을 올린 할아버지나 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는 모두 내 위이고, 네 어머니만 해도 여기 작은아버지들은 큰형수이니 괜찮지만 쌍둥이엄마는 내 아래이다. 동서고금에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그리고 시숙부와 시숙모 등 윗 어른이 아랫사람 제사상에 절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 동생 병철이에게 차례상에 큰형수 밥을 올리라고 이야기를 한 거였다. 서울로 가거든 네가 장모님께 잘 말씀드려 오해를 풀어드려라"

윗사람이 아랫사람 차례상에 절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님을 알면서도 적어도 한번쯤은 그동안 고생했던 아내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시댁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 동분서주했던 아내였기에 억지라도 부려서 우리집 차례상에 어엿히 아내 밥을 올려주고 싶었고 술을 하지 못하는 아내였지만 술잔을 올리고 싶었다. 음식을 올리는 제기 또한 아내가 결혼후에 직접 사서 보내준 것이었으니 기분이 착잡하다. 당신이 하늘나라에 간지 3년 10개월만에 이제야 우리집 차례상에 당신의 잔을 내가 직접 올립니다. 

그동안 나와 살면서 세 자식 낳고 힘든 가운데에서 시댁 챙기느라 정말 고생 많았소. 하늘나라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부님, 어머니과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시오. 쌍둥이자식과 장모님 걱정 말고, 내가 잘 모시고 잘 키울테니...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싱글대디칼럼 제210호를 읽은 카페 회원 한명이 쌍둥이들 때문에 속상해서 술을 먹었다는 글을 읽고 나에게 무슨 종류의 술을 먹느냐고 묻는다. 걱정이 된다고...

우리집에는 집에서 아내가 직접 담궈놓은 술이 몇병 있다. 15년 전에 담궈놓은 인삼주와 9년전 담궈놓은 장뇌삼주(당시는 인터넷에서 어렵게 그것도 꽤 비싸게 경매로 낙찰받은 아까운 장뇌삼을 그냥 먹지 왜 술을 담구느냐고 투덜댔다), 그리고 정확히 하늘나라에 가기 4개월 전에 담궈놓은 복분자주... 그중에서 인삼주나 장뇌삼주는 알콜돗수가 너무 높아 부담스럽고(인삼주 계통은 술을 담구면 알콜돗수가 더 높아지는 느낌이 들어 마시기가 부담스럽다) 가장 부담이 없는 것이 복분자주이다.

내가 복분자주를 즐겨마시는 걸 알고는 2006년 8월초 처음에 수확한 초벌 복분자가 제일 약효가 있다고 일부러 고창으로 주문하여 제법 큰 술병에 두병이나 담궜다. 지금도 내 눈에 어른거리는 장면은 유방암 말기, 국립암센터에서도 포기한 상태 힘에 부치는 몸으로 재워놓은 복분자를 직접 꺼내 으깨고 술을 걸러내면서 "여보! 나중에 나 없을 때 나 생각하며 두고두고 먹어~~응?" 하며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을 내 어찌 잊으랴~

자신의 생명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아내는 복분자주를 만들어서 언니(처형)도 한병, 남동생(처남)도 한병 보냈는데 이것이 나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언니와 남동생에게 한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집은 두병을 남겨놓았다. 생전 아내의 말대로, 아내가 생각날 때나 자식들이 내 속을 썩일 때,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는 내 유일한 친구이자 단골메뉴가 되고 말았다.

지난주 토요일, 농협시장에서 아내 차례상에 필요한 제수용품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들은 MBC라디오프로 '지금은 라디오시대' 주제가 첫사랑이었다. 그날도 나는 집에 돌아와 첫사랑이었던 아내를 그리며 복분자주를 마셨다. 점점 술병에 남아있는 술의 양이 줄어들어 앞으로는 자식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만 먹을려고 아끼는 중인데 쌍둥이들이 애비 속도 모르고 자꾸 내 속을 끓이는 바람에 남아있는 술이 줄어드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져 간다.

쌍둥이들을 내게 부탁하고 가면서 속을 많이 끓이고 살 것을 미리 알고 나를 위해 담궈놓고 간 걸까? 이런 것 만들어 놓지 말고 차라리 오래나 살 것이지...큰애 결혼 때, 쌍둥이들이 대학 진학해서 직장에 들어가고 결혼하는 그때까지 아내가 눈물로 담궈놓은 복분자주가 남아있어야 할텐데...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어제 내내,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도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드높은 가을 하늘이 드러났다. 집에서는 장모님이 먼저 하늘나라에 간 딸의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인 나는 고향을 내려가려니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말이 없는 창공은 이 마음을 알려는지...

아내 생전에는 고향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제수음식을 미리 준비하느라 한달전부터 노량진수산시장이며 건어물시장을 발 빠르게 다니며 준비했고, 시골로 출발하기 이틀전에는 과일을 마지막으로 챙겼지. 욕심이 많았던 아내는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릴 음식 절반이상을 미리 챙겨가 올렸지. 매면 추석이면 하늘나라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에게 고생 많았다고, 고맙다고 많이 이쁨을 받고 있겠지...

어제 장모님이 아내가 잠들어있는 자유로 청아공원을 다녀와서 "나는 은경이가 하늘나라에 간지 3년이 안된줄 알았는데 벌써 3년이 지나 4년째가 곧 다가오네"하신다. 손으로 곱아보니 아내가 내 곁을 떠난지 벌써 3년하고도 9개월 10일이 지났구나. 벌써 그렇게 지났구나~ 하긴 아내가 하늘나라에 갈 때 쌍둥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벌써 중학교 1학년이고, 이제는 키가 내 눈높이까지 자랐네... 그 세월을 내 어찌 살았나?

그래도 아내가 자신을 쏙 빼어닮은 쌍둥이아들 윤이를 남겨놓고 가서 윤이를 보면서 윤이를 키우면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을 곱씹으며 위안을 받는다.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가 이도령과 이별하는 대목에서 "이별없이 살아볼꺼나 했더니, 이별이 왠말이요~~"하며 오열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살아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품고 살 수 있지만 하늘나라에 간 사람은 육신의 몸을 가진 이승에서는 다시 만날 수 가 없으니...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이별, 오늘도 나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에 몸부림을 친다. 지난 90년대 초반 추석때 28시간씩이나 차를 운전하며 내고향 진도를 내려가며 고생했던 추억 때문인지 추석때만 되면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그토록 힘들어하던 빚도 차근차근 갚아나가고 있고, 쌍둥이들도 점차 성장해나가는 모습, 큰애가 이제는 늠름한 군인이 되었고, 내가 책을 출간하는 모습도 내 곁에서 지켜보면 좋았을텐데... 뭐가 그리 급하다고 어린 쌍둥이들을 내게 맡기고 내 곁을 빨리 떠났는고?

내일이면 고향으로 출발한다. 오늘따라 하늘이 눈이 부시도록 푸르구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장모님을 모시고 일산칼국수를 갔다. 최소한 월 2회 닭칼국수를 드시지 못하면 병이 난다고 하실 정도로 닭칼국수 애호가이시다. 장모님은 음식솜씨가 좋으신데 원래 음식솜씨가 좋은 사람은 남이 해준 음식은 잘 안 먹는다. 내 형편이 어려워 자주 외식을 하지 못하지만 우리 식구가 어쩌다 외식을 할 때마다 장모님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느라 음식점 선정에 애를 먹는다.

그런데 장모님이 유일하게 잘 가시는 곳, 외식장소로 의견일치가 되는 곳이 닭칼국수로 유명한 일산칼국수이다. 칼국수에 닭고기와 바지락을 넣는데 국물 맛이 괜찮으면서 양도 넉넉하고 또 다른 외식에 비해 저렴하여(1인당 6000원) 자주 이용하게 된다. 

아내 암 진단 이후 5년간 2007년 추석을 제외하고는 추석과 설에 고향을 거의 내려가지 못했는데 올해는 아버지 암 수술이후 경과도 볼 겸 아버지를 뵈러 내가 추석 때 고향을 내려간다니 혼자서 아내 차례상을 차릴 걱정에 마음이 울적하신가 보다. 큰애도 군입대를 해버리고 쌍둥이들이 있다지만 아직은 심부름이며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를 못하니...

쌍둥이들이 저녁 늦게 수업이 끝난다고 저녁에 먹을 김밥을 만들어 보내주고 오면서 일산칼국수에 외식이나 가자고 말씀드리니 반대하지 않고 나서신다. 오후 5시 30분, 아직 저녁식사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보니 평소 북적이던 칼국수집이 기다리지 않고 입구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가족단위로 외식을 오다보니 어린애들이 많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어린애들, 뛰어다니는 애들, 자식들이 뛰고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를 막고 누워있고 넵킨으로 장난을 쳐도 젊은 부모들은 말릴 생각을 않고 있다. 오히려 천방지축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자식들을 흐믓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건 아닌데, 귀한 자식일수록 더 엄하게 키워야 하거늘....

그런데 장모님이 우리가 앉은 자리 바로 뒤 신발을 벗어놓는 곳을 가리키며 "어머, 저 애들도 쌍둥이인 모양이네"하신다.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이제 막 두살정도 되어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있는데 체격도 비슷하고 많이 닮았다. 녀석들도 우리 재명이와 재윤이처럼 꼭 닮은 일란성쌍둥이였다. 그런데 녀석들이 남의 신발을 가지고 노니 엄마가 다가와 나를 가리키며 쌍둥이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애들아, 자꾸 이러면 저기 할아버지가 이놈하며 맴매하신다."

헐~~ 나보고 할아버지라니??? 내가 벌써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정도인가? 갑자기 머리가 멍해진다. '이봐요, 젊은 쌍둥이엄마! 나 할아버지 아니라우~'하는 무언의 항변만 내 입가를 맴돌고 있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되돌아보니 추석에 고향을 가지 않은지가 꽤 오래 되었다. 결혼 후 아내와의 약속(설은 우리집에서 장모님과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고)에 따라 아내가 유방암판정을 받기 전인 2004년까지는 추석명절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고향을 다녀왔는데 2005년과 2006년은 아내 투병생활로 국립암센터에서 보냈고, 2008년과 2009년은 아내 제사상 사건으로 내려가질 않았다.

사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뵈면 상처하고 혼자 사는 모습을 보면 부모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것만 같고 2007년 제사상 사건으로 장모님이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차려주는 차례상이 최고라고 그냥 집에서 추석차례를 지내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시는 바람에 2008년부터 연 2년 주저 앉았다.

아내 제사상 사건은 2007년 추석에 일어났던 한바탕의 헤프님이었다. 할아버지 기일이 추석이다보니 우리집은 추석차례상과 할아버지 제사상이 겸해서 준비한다. 할아버지 제사상이 주가 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증조부님과 증조모님, 거기에 돌아가신 어머니 제사밥까지 올려지다보니 아내 제사밥을 차릴 공간이 없어 아버지께서(사실 아버지는 며느리 제사밥까지 제사상에 올리면 마음이 아프셨을 것이다) 사전에 둘째 동생에게 아내(큰형수) 제사상을 부탁하셨고, 이를 모르는 어머니가 둘째 작은어머니에게 큰며느리가 신경이 쓰인다고 하자 아내 생전에 사이좋게 지냈던 둘째 숙모께서는 그럼 우리가 쌍둥이엄마 제사밥을 올리겠다고 나섰다.

나는 작은아버지 집에서 아내 제사밥을 차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추석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작은아버지 집에를 다녀왔다가 아버지께서 동생집에서도 제사밥을 차렸다고 다녀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면서도 아침 일찍 내가 오기를 기다렸을 제수씨에게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이후 시골을 다녀와서 조용히 넘어갔던 이 헤프닝이 한참 뒤에 장모님과 어머님이 통화하면서 큰며느리 제사밥을 시댁이 아닌 동생집과 작은아버지 집에서 이중으로 차리게 해서 미안했다고 이실직고를 해버리는 바람에 장모님께서 발끈하셔서 "그래도 장손며느리였는데 시댁 제사상에 오르지도 못하는 그런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앞으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내딸 은경이(집에서 부르던 아내 이름) 제사밥은 내가 직접 차릴테니 자네도 명절에 시골 내려갈 생각은 하지 말게" 엄명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내가 중간역할을 잘 하지 못했고 제사밥을 올려야 할 대상이 많은 우리집인지라 연로하신 장모님 화가 풀리실 동안은 그냥 장모님 의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올해 3월부터 6월에 이르기까지 아버지의 전림선암 수술과 방사선치료를 하시는 동안 큰아들인 내가 아버지 곁을 지켜드리지 못했고, 자주 찿아뵙지도 못해 죄송하여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추석명절을 보낼 수 없었다. 마침 시골을 편하게 다녀오라는 하늘의 뜻이었는지 회사 게시판에 9월 21일 아침 7시 20분발 용산-목포 KTX 표가 딱 한장이 나와 편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고향에 가면 내 형편은 모르는 친척들은 다들 '왜 재혼을 하지 않느냐?', '언제 재혼할거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 재혼을 채근하고 독촉할텐데 내려가도 마음은 편치 않을 것 같다. 또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늘 큰아들 면회를 다녀왔다. 연천에 있는 5사단 301대대를 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사람에게 처음이란 단어는 설레임을 준다. 큰애들(첫째 자식)의 입대 후 첫 면회인데다 두 달 동안 애비 품을 떠나 훈련받는라 고생했을 자식을 만난다니 얼마나 가슴이 설레이는지... 장모님은 일주일 전부터 큰애에게 먹일 과일이며 비타민, 부탁한 비염약(평소 비염이 있었는데 입대후 다시 비염이 도진 모양이다) 등을 챙기셨다. 결혼하면서 줄곧 장모님을 모시고 살다보니 큰애를 낳자마자 큰애는 장모님이 키운지라 장모님과 큰애와의 사이는 부모와 자식간 사이 이상으로 각별하고 정이 돈독하다.

큰애가 자라면서 고민을 아빠나 엄마에게 말하기보다 장모님에게 먼저 말하여 역으로 장모님이 나와 아내에게 "큰애에게 신경좀 쓰라"고 말씀을 하여 우리 부부를 난처하게 하고 한편으로 서운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여튼 논란훈련소에 입소하는 날 집을 떠나면서 눈물의 헤어짐을 가졌던 장모님은 면회를 가기로 결정한 일주일 내내 큰애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들떠 계셨다. 

아침부터 서둘러 밥을 챙겨먹고 떡집에 들러 떡을 사고, 차에 가득 주유를 하고, 네비에 소대장이 일러준 '대광리역'을 찍고 일산에서 서울외곽순환소속도로를 진입하여 두시간 40분만에 301대대 위병소 앞에 도착했다. 1985년 6월 30일에 군 전역을 하고, 예비군훈련을 받느라 군부대를 입소하여 훈련을 받기는 하였지만, 내 분신과도 같은 자식이 근무하는 전방 군부대를 민간인 신분으로 방문하니 감회가 새롭다. 나는  ROTC장교로 군생활을 하였으니 병사 신분으로 근무하는 자식의 애환과 고충을 다는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군대가 민주화되고 체벌이 사라지고 보급품이나 시설이 개선된 상황에서 근무를 하니 아마도 내가 근무하던 당시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근복무를 하고 있는 것만은 자명한 일이다.

면회를 신청 후 30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선임당직자의 인솔로 걸어오는 두 명의 병사 모습이 보였다. 11개월 전에 25사단에서 군을 제대한 처조카 민규가 장난스레 "군기가 바짝 들어 제식동작을 하고 올 규 모습이 궁금해요"라는 말에 나도 호기심 반, 입대한지 두 달만에 대하는 자식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기대 반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병사 모습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이윽고 가까이 가다오는 병사 모습에서 눈에 익은 큰아들 모습이 확연히 내 눈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복을 입고 절도있게 걸어오는 늠름한 모습은 입대전 매일 늦잠을 자고 아침에 깨워야 겨우 일어나 부시시한 얼굴로 아침 식사를 했던 큰아들의 게을렀던 모습을 어느 곳에서도 찿을 수가 없었다. 

당직사관의 배려로(원래 열쇠회관 이용은 면회신청시 사전에 예약한 경우에 허용이 된다고 한다)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열쇠회관으로 나와 점심식사를 하며, 이후 3시간 30분 동안 장모님과 민규 셋이서 그동안 밀렸던 대화를 실컷 나누도록 해주고 나는 차 안으로 와서 밀린 잠을 보충했다. 열쇠회관 내에서도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건강한 규 모습을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고 두 발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모님처럼 나도 큰자식의 건강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큰애가 "선임병이 논산훈련소 출신이 우리 부대에 온 것을 이제껏 딱 세번 봤다. 너도 참 지지리도 복쪼가리가 없는 놈이구나"라고 했다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마치 논산훈련소 출신 병사는 다들 후방으로 빠지는데 너는 누가 손을 써주지 않아 최전방으로 배치받았구나!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일순간 아내가 살아있었더라면 정말 우리 아들이 최전방으로 배치받지 않았을텐데 하는 자괴감이 든다.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를 이루겠다고 발표했다. 군 훈련병의 부대배치가 공정하게 이루어졌으리란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 하나

큰애가 논산훈련소에 입대한지 한달이 지났다. 집에 있을 때는 매일 늦게까지 인터넷을 하고 아침이면 늦잠을 자는 바람에 큰소리도 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모습이 거슬려 빨리 군대라도 갔으면 했는데 막상 애비 곁을 떠나 군입대를 하게 되니 옆구리가 허전하다. 아내가 내 곁을 떠났을 때와는 또 다른 허전함이다.

뭐랄까? 아내가 떠났을 때는 진짜 친한 친구이자 삶에서 의지했던고 내 반쪽이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면 큰애는 내 몸과 마음이 큰애와 함께 논산훈련소에 가있는 것만 같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라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날씨가 더우면 나도 함께 같고, 비가 내리면 나도 함께 비를 맞지 것처럼 느껴진다. 어미가 유방암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간 탓인지 음식도 까다로운 녀석인데 군대 밥(일면 짠밥)이 입에 맞는지 모르겠다.

작년에 다리에 혈관종 수술을 해서 오래 걷기가 불편하여 행군을 하면 힘들텐데, 숫기가 없어 여러사람 앞에 잘 나서지도 않은 녀석인데 잘 적응하는지.... 이럴줄 알았으면 군입대 하던 날 내가 우겨서라도 갈비라도 시켜서 먹여서 들여보낼껄~~~ 다음주가 마지막 훈련주간인데 오늘 편지가 훈련소에 있는 동안 마지막으로 보내는 편지가 되겠네.

# 둘

재명이는 모범생스타일이고 성격이 논리적이다. 눈치가 빠르고 동작이 잽싼 막내 재윤이에게 늘 당하고 산다. 일이 생기면 항상 야단맞는 것은 재명이 몫이다. 애비 눈에는 이것도 속 터지는 일이다. 다른 녀석들처럼 눈치도 있고 세상을 요령껏 살 줄 알면 좋으련만 너무 고지식하고 야단을 치면 울어버리니....

재윤이가 덩치가 큰 탓에(쌍둥이들은 동생이 체격이 크다) 동생 재윤이에게 자주 맞는 모양이다. 큰애가 군대를 가기 전에 재명이가 재윤이 때문에 힘들어한다며 재명이는 논리적으로 잘 설득시켜 달라고 부탁을 하고 갔다. 쌍둥이녀석 둘 성격을 딱 절반씩 섞어놓으면 좋으련만, 동생에게 자꾸 맞고 채이며 사는 재명이가 안타깝고, 언제까지 애비가 재윤이를 불러 형을 때리지 마라, 형을 놀리지 마라하고 야단치고 다독거리며 정리를 해주어야 하나~~
 
# 셋

재윤이는 막내다. 막내는 막내티를 낸다. 집안을 어질러 놓고, 문제를 일으켜놓고 쏙 빠져나가는 것은 막내이다. 이런 책임감이 부족한 막내 때문에 뒷 정리를 하지 않았다고, 치우지를 않았다고 야단맞는 것은 재명이고 막내는 조용히 이를 즐긴다.

그렇지만 재윤이는 창의성이 뛰어나고 생각이 유연하다. 그리고 집중력이 뛰어나 마음만 먹으면 성적을 올리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으리라 본다.

세 자식들도 자라면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하고 애비 곁을 떠나겠지. 애비 품안에 있을 때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 많이 해보고, 좋은 추억 많이 쌓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이 애비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이겠지.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아침 기상시간에 휴대폰 알람이 울리지 않는다. 집안 구석구석과 가방, 어제 입었던 옷을 살펴보았지만 휴대폰이 없다. 어디갔지? 전화를 걸어보아도 받지를 않는다. 평소 진동으로 해놓았으니 집안에 있다면 벨소리는 울리지 않더라도 진동음은 들릴텐데 이마저도 들리지 않는다. 어젯밤 기억을 더듬어보니 어제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택시안에서도 동생과 통화를 했었는데... 택시에 내리면서 택시에 두고 내렸나? 아님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에 길에 떨어뜨렸나? 

어제 마셨던 술이 너무 과했다. 돌려가며 8명이 돌려가며 폭탄주를 마시다보니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흐미~~ 내가 너무 달렸나? 동생도 오라고하여 선배님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나름대로 성과가 있어서 좋았는데 휴대폰을 분실해버리는 바람에 기분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휴대폰에는 금붙이(금 반돈)에 티머니까지 달려있는데, 요즘 금값이 그야말로 금값인지라 누군가가 주웠다고 해도 돌려주지는 않을 것 같다. 금붙이나 티머니야 다시 사면 된다지만 휴대폰 안에 친척들과 친구, 사내근로복지기금 실무자들 등 수많은 소중한 연락처들을 잃어버렸으니 이를 어이 할꺼나? 큰애가 올해 초에 연락처를 다운받아 놓은 적이 있었는데 군입대를 해버리는 바람에 당장 연락도 되지 않고, 나중에라도 활용할 수 있으면 다행이련만.... 

8월 23일에 회사에서 사원가족들 대상으로 갤석시S 휴대폰을 할인판매한다는데 일주일을 앞에 두고 이 무슨 낭패인가? 휴대폰이 없는 답답한 일주일을 어찌 보낼꺼나? 당장 학원에서 문자메시지로 오는 쌍둥이녀석들 성적이며, 쌍둥이녀석들이 다음주는 개학을 하는데 그러면 급히 연락할 일도 많아지고 한소망교회 일이며, 현재 진행중인 프로젝트 관련 연락할 사항도 많은데.... 휴대폰을 분실하게 만든 술이 원망스럽고 휴대폰을 분실한 자신이 실망스럽고 속상하다. 나도 우리 사무실 사무국장님처럼 이참에 저녁에는 금주를 해버려~~

싱글대디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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