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게 되면 명절은 어디서 보낼거예요?"
"설과 추석 명절 중 한번씩은 우리집(처가)과 시골집에서 보내려고
합니다. 추석날이 할아버지 제사이니 설은 우리집서, 추석은 시골에서
보내면 되겠군요"
 
1887년 8월 집사람과 처음으로 만난 자리에서 집사람이 당돌하게 나에게
묻기에 나는 내 의견을 말했고, 결혼후 지금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
22년간 그 약속을 지켜오고 있다. 집사람은 손위 처남과 손아랫 처남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도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가장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이
명절 두번 모두 남편따라 시댁으로 내려가면 친정부모님이 적적할 것 같아
끊고 맺는 확실한 성격에 미리 단도리를 해두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사람과의 약속도 약속이고, 이미 하늘나라로 올라간 사람과의
약속도 약속이기에 이번 설명절에도 나는 올해도 시골 고향을 내려가지
않고 세자식들과 장모님을 모시고 살며 집을 지키고 있다.
 
무정한 사람같으니라고... 나를 만난 첫자리에서 나에게 그런 다짐을 받았으면
함께 설을 보내며 맺어진 부부의연 사랑하며 백년해로 오래도록 잘 살아야지
나만 혼자 두고 이렇게 일찍 훌쩍 가버리면 나는 어찌 하라고....
 
덕분에 설명절 연휴 4일동안 2월에 열리는 한국생산성본부와 CFO아카데미
교육원고 작업을 할 수 있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 내린 폭설로
귀성길 고생하지 말고 힘들게 세 자식 키우고 살려면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멈추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고 생전에 그런 약속을 받아두지않았나 생각하고
위안을 삼는다.
 
다음카페 국사모(국악을 사랑하는 모임) 운영자님이 용산참사에서 희생된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전체메일로 보내준 박병천님의 넋풀이를 듣고
있으니 그 애절함에 가슴이 미어지고 저려온다. 넋풀이를 부르는 박병천님도
작년에 생을 달리했지만 박병천님은 이렇게 음반이라도 남아있어 소리를 듣고
싶을 때 몇번이고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으나 당신은 목소리 하나 남겨놓지를
않았으니 그 맑고 고았던 음성을 어디서 다시 들을 수도 있을까?  
 
오늘따라 KBS에서 방영된 천추태후에서 남편인 폭군 광종이 폐홍을 앓고
있으면서 부인과 피붙이 어린 자식을 지키주기 위해 애쓰다 믿었던 최지몽에게
오히려 배신을 당하자 더 이상 지켜줄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황주원군을 불러
황제자리를 선위해 주는 조건으로 부인과 어린 자식의 신변을 지켜줄 것을
다짐받고 황위를 선위하고 죽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광종이 죽기전 했던 말이 내 가슴을 울린다.
"당신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내 진즉 성군이 되었을텐데 왜 이리 늦게
만났단 말이오. 당신에게 나중에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의 남편으로서 나를
기억해 줄 수 없겠소."
 
2009.1.24.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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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오후 6시 20분. 내 휴대폰 벨이 연신 울린다. 우리 집이다.

장모님 : "난데, 오면서 떡집에 들러 동규엄마 제사상에 놓을 떡좀 사가지고 오소!"
나 : "네. 알겠습니다."

장모님은 내가 당연히 통근버스를 타고 오시는 줄 안다.
그런데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 때문에 통근버스를 타지 못했다.
택시를 타든지 아님 일산가는 직원차 편에 편승을 하든지...
아시는 선배님 자리에 전화를 했다.  선배님이 센터장님실에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문자메시지를 넣었다. 일찍 가시면 태워달라고...
한참 후에 온 전화는 7시 40분경이 되어야 퇴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영등포에 나가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조금 기다렸다 선배님 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나 매한가지일 것 같아 선배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6시 50분부터 선배님 사무실에 올라가 기다리는데 도통 회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를 않는다. 한참을 기다리니 7시 40분이 다 되어 회의가 끝나고 그제서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서강대교를 지나 강변북로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한다.

7시 50분이 되니 집에서 또 전화가 걸려온다. 쌍둥이 목소리인데 장모님께서 내가
늦으니 애를 시켜 전화를 한 것 같다.

재명 : "아빠 지금 어디세요?"
나 : "응, 집에 가는 길인데 30분 정도 늦겠구나!"
재명 : "알았어요"

일분 일초가 바늘방석이다. 성격 급하신 장모님의 성화가 눈에 선하다.
차라리 6시 45분에 곧장 택시를 타고 곧장 집으로 출발할껄~~ 후회가 밀려온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오늘 자유로에서 삼중 추돌사고가 나는 바람에
길이 온통 차들로 꽉 막혀 있다. 백석역에 내리니 8시 20분이다. 허겁지겁 인절미에
약식을 사들고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오니 8시 55분이다.

집에 오니 처형과 동서, 처남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처형은 직장에서 하루
휴가를 내고 오늘 집사람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장만을 도와주셨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처형에게 도움을 청하면 항상 말없이 도움을 주시곤 한다.

우리집은 나와 쌍둥이자식들은 기독교, 장모님과 큰애 동규, 처형, 처남은 불교,
손위 형님은 뚜렷한 종교가 없으시다. 장모님이 차려놓으신 제사상과 상위에
놓인 집사람 영정사진을 보니 갑자기 참았던 그리움이 밀려든다. 영정사진을
보며 혼자 주절거려 본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당신 두번째 맞이하는 제사네. 참 세월 빨라,
당신이 나와 우리 가족을 떠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기 제사라니...
남겨진 세 자식 데리고, 장모님 모시고 좌충우돌 1인3역, 4역 정말 정신없이
살다보니 요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사네.

당신에게 집안 살림 다 떠맡겨 놓고 편하게 살다가 당신이 유방암 말기 판정 받고
그제서야 허둥지둥 살림 하나하나 넘겨받아 꾸리며 남겨진 빚 갚아가며 살다보니
마음 편히 쉬어본 날이 없었지. 당신이 내게 남기고 간 짐이 너무 무거워서
다리 쭉 뻗고 쉴 겨를이 없었지. 누군가는 그랬지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산 자는 어떻게든 산다고..."
당신이 나를 떠나고 나서 내가 그 짐을 다 넘겨받아 헤치며 살아나가다보니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조금은
알 수 있었어.

결혼때 우리 부부는 꼭 백년해로 하자고 그토록 굳게 맹세했었는데,
어이하여 하늘이 우리 부부를 이다지도 빨리 생과 사로 갈라놓았는지
부부사별이라는 운명이 야속하고 또 야속했지만 살아서 받아야 하는 고통이
이다지도 힘들고 견디기 어려웠다면 차라리 그 짐을 나 혼자 다 받아 감내하고
당신은 빚 걱정, 병원비 걱정, 힘든 암투병의 고통없는 곳에서 살게 주어야
겠다고 마음먹으니 그제서야 당신을 홀가분하게 하늘나라로 보낼 수 있었어.

우리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닐 거야!
그저 잠시, 당신이 주고간 선물인 세 자식을 훌륭히 키워 사회에 내보내 훌륭한
리더로 성장해 갈 그 때까지 아주 잠시 떨어져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네.
다시 만나는 날, 그때 나는 아마 훌륭히 성장해 우리나라를 이끄는 리더로 성장해
활약하고 있는 세 자식을 보며 웃는 모습으로 당당히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열심히 후회없이 살아갈테니 꼭 지켜봐줘...

2008.10.18.
김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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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사무실 직원이 장인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어 요즘 마음고생이 심하다.
오늘 식사를 하면서 불현듯 내뱉는 말이 내 폐부를 찌른다.
"뇌사상태에 빠져있는 장인어른을 보고 있으니 지난 시절에 맏사위로서
잘못한 일과 서운하게 해드린 일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평소 잘 다투셨습니다. 장모님은 다투시면 항상 저희 집으로
피신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잠시후에 장인어른이 꼭 오십니다. 그럴 적마다
장인어른에게 서운하게 해드린 일이 자꾸 떠오릅니다."

아직 정정하게 활동하실 예순일곱의 연세인데 약 한달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병원에서 폐암수술을 하였으나 수술후 경과가 좋지않아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어 지난주 금요일부터 뇌사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아내와의 사랑과 만남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백년해로까지는
갈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한지 18년 7개월도 채되지 않았는데
허무하게 막을 내릴 줄 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생전에 집사람 고집에는 늘상 지고 살았는데,
눈을 부릅뜨기라도 하거나 언성이 높아지려고하면 그냥 꼬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집안 청소며 화장실 청소, 이부자리 펴고 개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쌍둥이자식들 숙제봐주기 등 심부름이나 청소는 알아서 척척 해주며 살았는데
막상 너무도 일찍 내 곁을 훌쩍 떠나고 나니
그동안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부족하게만 느껴지고
이내 후회로 다가온다.

사랑하는 아내와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 알았으면
더 기쁘게 해줄껄!
하자고 했던일 다 들어주고
더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줄껄!
내몸이 부서저라 일해서 금전적인 고통을 덜어줄껄!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은 모두 내탓이다.
아내를 먼저 보낸 것은 모두 내탓이다.
이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아내와의 사랑을 어이하랴!

2008.1.28.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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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0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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