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식들이 자라서 하나 둘 제 짝을 찿아 부모 곁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하게 된다.

 

자식은 부모에게 늘 걱정의 대상이다.

대학까지 보내놓으면 한 시름 놓겠지,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하면 끝이겠지,

취직을 하면 좋은 짝 만나 결혼하면 이제는 끝이겠지,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이제는 둘이 잘 살겠지,

그 이후에도 자식들이 집을 장만해야 마음이 놓이고,

자식들이 건강하고 직장에서 짤리지 않고 잘 다녀야 할텐데,

손주들도 별탈없이 잘 자라주어야 할텐데,

걱정과 금심, 조바심은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들을 위해 늘 기도한다.

나도 내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우리 부모님의

보이지 않은 기도 덕분이라 생각한다.

특히 나 하나를 낳으시고 2년 2개월만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께서 별이되어 하늘나라에서 나의 수호천사가

되어 나를 지켜주시고 계실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이 네 번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 고향에서(당섬 부근) 바닷가에 수영 배운다고

나갔다가 빠졌던 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이사간 집에서 연탄가스 중독되었는데

새벽에 화장실 가기 위해 나왔다가 쓰러졌다.

세번째는 군산비행장 해안소대장 시절 BOQ에서 연탄중독사고로

군산의료원까지 실려가 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를 쓰고 살아났고,

네번째는, 2008년 일산신도시 백마마을에 살 때 쌍용아파트

입구를 우회전으로 나오면서 좌측에서 맹렬하게 직전해 오는

자가용을 보지 못했다. 찰나의 차이로 충돌을 면했다.

 

그때마다 나는 운이 좋고, 그 운은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음을

믿게 되었고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고 타인에게 그 행운을 베풀고

살아야 하는 내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1차적인 대상은 가족들이고 자식들이고

사내근로복지기금제도 활성화를 위해 그동안 기금실무자들에게

내 지식과 정보를 아낌없이 나누고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

근로복지공단 사내근로복지기금 사업에 내가 적극 협조했던 것도 

이런 조건 없는 나눔에 대한 열망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올해 둘째의 결혼에 이어 오늘은 셋째자식의 상견례가 있었다. 

자식들이 잘 자라서 독립을 하도록, 근무하는 조직과 사회,

국가의 인재로 성장해 제 역할을 해주기를 후원해주고 기도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후원과 기도이다. 

 

매일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출근하면서 논현동성당 옆을

지날 때마다 성모님 상 앞에 촛불을 밝히며 가족들과 연구소,

내가 아는 지인들과 돌아가신 영혼들, 우리나라와 세계의

평화와 함께 잘 살기를 위해 기도한다.

 

김승훈

Posted by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경영학박사(대한민국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제1호) KBS사내근로복지기금 21년, 32년째 사내근로복지기금 한 우물을 판 최고 전문가! 고용노동부장관 표창 4회 사내근로복지기금연구소를 통해 기금실무자교육, 도서집필, 사내근로복지기금컨설팅 및 연간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사내근로복지기금과 기업복지의 허브를 만들어간다!!! 기금설립 10만개, 기금박물관, 연구소 사옥마련, 기금제도 수출을 꿈꾼다.
사내근로복지기금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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